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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국의 山神을 찾아서] 가장 신성시하는 태백산 토착 샤머니즘서도 최고

월간산
  • 입력 2008.05.2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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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불교·유교 이념 띤 지배권력에 억압받아

한국에서 신성시 되고 있는 산 정상 봉우리들은 다른 전통적 종교에서도 성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좋은 예가 지리산이다. 이는 지난 3월과 4월호 원고에서 이미 자세히 설명했다. 충남 계룡산과 서울 삼각산 역시 좋은 사례다. 하지만 한국에서 신성시 되는 몇몇 산은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 특히 토착 샤머니즘이나 한반도에 전래된 지 1636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 등에 의해서도 그 신성함이 존중받고 있다. 

태백산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태백산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 가장 신성시되는 산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종교적 행위는 민족 지향적인 샤머니즘 활동들에 기반을 둔 것이 대부분이다. 불교 사찰들과 유교 성지도 다른 산에서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이렇게 유명한 산에 주요 사찰은 없고, 있다 하더라도 작은 절뿐이다. 아주 중요한 두 사찰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93년 10월3일 개천절에 천제단에서 성대한 천제의식을 행하고 있다.
지난 93년 10월3일 개천절에 천제단에서 성대한 천제의식을 행하고 있다.
한국 사람에게 흰 색은 신성한 빛의 색으로 여겨왔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빛줄기가 구름 사이로 비추며 생명의 비를 뿌리게 해주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고대 사람들이 하늘에 기도를 올리던 산을 ‘백판’ 이나, ‘백산’이라 불렀다. 밝은(하얀) 산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가장 크고 밝은 산을 태백산(太白山)이라 불렀다. 이런 특정한 지역을 애초에는 ‘한배달’ 또는 ‘행박모에’라 불렀다고 한다. ‘밝음이 넘치는(excessive brightness)’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태백산의 이름과 특징은 신라 초기부터 신성시 되어왔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토착 샤머니즘 문화는 불교나 유교를 국가의 지배이념으로 이용한 권력에 의해 억압받아왔다. 그래서 태백산은 별로 소개되지 않았고, 등산 애호가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샤머니즘과 산신 문화의 대중 ‘커밍아웃’과 공식적, 법적 인정을 통해 대중적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장엄한 태백산은 현대에 들어서야 한국의 가장 중요한 산의 위상을 되찾았다.

무쇠봉 근처에서 아주 오래됐지만 여전히 녹색을 띠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주목 옆에서 메이슨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했다.
무쇠봉 근처에서 아주 오래됐지만 여전히 녹색을 띠며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주목 옆에서 메이슨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했다.
오늘날 태백산은 강원도 남쪽 경계선까지 중간 정도만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1989년에 지정된 면적은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경상북도로 뻗어있는 산림지역은 내버려두었다. 지정된 지역은 원시종교, 문화유산을 포함하고 있으며, 대부분 31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부터 내려오는 계곡과 산등성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의 서쪽 부분에 자리한 긴 협곡에는 한국의 군기지가 주둔하고 있어 여전히 대중 접근이 차단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 태백산에 관해 언급하고자 하는 지역은 태백시와 정선군 고한읍, 영월의 동쪽, 삼척의 북쪽, 봉화군의 북쪽 절반 가량이다. 이 지역은 태백산의 신성한 평판 아래 있는 대략 1,600㎢에 이르는 지역이다.

역사·민족 문화의 명소로 자리 잡아

태백산은 도립공원 경계선 안쪽으로 해발 1,500m에 달하는 네 개의 중심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특정한 신화와 성지, 사원과 관련돼 있으며, 각각의 종교적 특징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해발 900m 주변까지 더 넓게 보자면 20여 개 다른 봉우리를 더 포함하고 있다. 태백산 정상인 장군봉(1,566.7m)은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높은 산이다. 1,500m에 있는 망경사라 불리는 절이 남한에서 가장 높이 있는 사찰이다.
산등성이와 산봉우리 주변에 20세기 이전에 발견된 작지만 전통적 가치가 있는 불교 사찰이 두 채 있고, 열두 곳에 암자와 샤머니즘적이면서도 한국 토속문화가 배어 있는 역사적인 민속 문화의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매우 깨끗하고 질 좋은 1급수 샘물이 열 개의 골짜기와 협곡으로 흘러내리며, 가장 잘 알려진 당골 샘물은 낙동강의 수원(水源)이 된다.
망경사 삼성각에 단군 왕검과 태백산신을 차례로 모지고 있다. 흰 의복과 두가지 다른 종류의 나뭇잎을 가진 단군왕검과 
길고 특징적인 흰 수염을 가진 산신은 아주 표준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망경사 삼성각에 단군 왕검과 태백산신을 차례로 모지고 있다. 흰 의복과 두가지 다른 종류의 나뭇잎을 가진 단군왕검과 길고 특징적인 흰 수염을 가진 산신은 아주 표준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큰 강의 분수령은 그 주위 산을 신성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로 꼽힌다. 태백산은 두 큰 강의 수원지다. 한국에서 두번째로 길며, 강원, 충북, 경기, 서울 일대에 매우 중요한 물 공급원인 남한강은 태백산의 북쪽에 있는 함백산의 검봉 북쪽 사면에 있는 검룡소(Golden Dragon Source)에 원천을 두고 있다.
남한에서 가장 길며, 경상도 일대의 중요한 상수원 역할을 하는 낙동강도 태백산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물줄기를 두고 두 개의 신성한 불교 사찰이 있는데, 하나는 용지(Dragon Pond·용의 샘)와 관련된 청원사이고, 다른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용정(Dragon Well·용의 우물)과 관계있는 망경사다. 한국의 가장 큰 강 두 물의 원천이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다른 산 하나를 더 말하자면, 가장 영험하고 신성한 백두산이라 하겠다. 백두산은 북한과 중국 사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국의 문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태백산은 광활하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는 대한민국의 보배이지만, 이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떠한 범주나 영역에서 보더라도 태백산은 최고의 산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명산 중에도 단연 손꼽힌다. 어떤 이들은 영산 혹은 신성한 산, 신령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신성한 산 서너 곳을 꼽아 보라면 태백산은 항상 그 중 하나로 꼽힌다. 한국의 유명한 웹사이트에서 ‘한국의 4대 영산(靈山)’을 찾으면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과 함께 올라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사이트에도 ‘한국의 3대 신령한 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태백시의 웹사이트에도 ‘민족의 정기를 담고 있는 산,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모든 산의 근거가 되는 산…. 한국의 어머니 산이라 여겨지는 태백산은 숭고한 아름다움과 인내를 담고 있다’고 묘사돼 있다.

당골 청원사의 샘 인근에 용왕을 모신 암자가 있다. 이곳이 낙동강 수원이 되고 있다.
당골 청원사의 샘 인근에 용왕을 모신 암자가 있다. 이곳이 낙동강 수원이 되고 있다.

고대 종교 · 문화유산 영문 정보 전혀 없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대 종교 역사나 현대 정신적 유산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영문사이트나 자료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영어로 된 국제적인 사이트나 기관은 전무하다. 이러한 현실이 매우 불행한 일이며, 한편으로는 불공평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난 20년간 태백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세계에 알리려 애쓰고 있다.

태백산은 압도적인 규모로 영토를 지역별로 나누는 데 결정적인 지리적 위치에 있다.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힘을 실어준다.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동쪽 해안선을 타고 뻗어있고, 소백산맥은 한반도의 남부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경상도 지방의 북쪽과 서쪽 경계를 지어준다. 이 산맥을 따라 신라시대에는 북방 군대가 주둔했고 영적인 수호산로 여겨왔다. 이 지역이 지금의 경상도 일대다.

문수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5개의 거대한 돌탑 중의 하나.
문수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5개의 거대한 돌탑 중의 하나.
신라시대 승려였던 도선국사가 제시했던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태백산은 ‘한국의 가장 영험하고 신성한 지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지리설은 오늘날에도 백두대간의 지력과 수원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척추라 여기는 가장 핵심적인 이론적 근거라 할 수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부터 거의 일직선 상으로 한반도의 남쪽을 향해 뻗고 있으며, 소백산의 서부지역을 지나기 때문이다.

태백산의 지형학적 특성은 하이킹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는 참으로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한국의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이 접근하기 쉽고 정상까지 다다르는 데 몇 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말이다. 이곳은 한국의 가장 높은 산악지대에서만 발견된다는 주목나무와 같은 아주 독특하면서 희귀한 식물군을 가지고 있다. 특히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나 사진작가에게도 인기가 좋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항상 녹색 빛을 띠는 주목나무를 불행과 악귀에 맞서 싸우는 강력하고도 신성한 기운을 만들어내는 나무로 여겨왔다. 또한 무당들은 이 나무를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여긴다.

당골에서 문수봉까지 등산로 숲길을 따라 태백산신을 위한 공식적 유교행사가 치러진다.
당골에서 문수봉까지 등산로 숲길을 따라 태백산신을 위한 공식적 유교행사가 치러진다.
고대 신라의 왕들은 태백산을 통일된 왕국을 보호하는 외부의 오악(다섯 개의 봉우리)이나 5대 큰 산으로 여겼다. 그래서 산신 숭배 사원과 천제단 봉우리(1,563m)에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제단을 만들었다. 영봉(Spirit Peak)은 국가와 민족의 안녕을 지키며 날씨에도 관여한다고 믿었다. 한국은 근대 이전에 두 가지 통치방식을 보였다. 불교적 스타일과 왕권에 기반을 둔 유교적 의식이 그것이다. 이는 이후 국가의 정체성을 성립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삼국유사나 역사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만덕사에 있는 풍부하게 채색된 산신. 태백산 왕은 범상치 않은 턱수염과 도교적 스카프를 두르고 왕관에 노란 후광을 띤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녀 동자는 왕에게 불멸의 복숭아 3개를 제공하고 있다.
만덕사에 있는 풍부하게 채색된 산신. 태백산 왕은 범상치 않은 턱수염과 도교적 스카프를 두르고 왕관에 노란 후광을 띤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녀 동자는 왕에게 불멸의 복숭아 3개를 제공하고 있다.
태백산의 산신은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신령으로 오랫동안 그 명성을 누려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경덕왕은 산신이 그의 궁전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태백산 주변의 지역주민들은 여전히 천산신이라는 산신을 위해 일 년에 두 번씩 특별의식을 수행한다.

초기 한국 불교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자장율사(590~658)는 그의 말년을 함백산 정암사에서 보내며 인근 지역을 오르곤 했다. 정암사는 그가 생활한 지역과 걸어서 하루 정도의 거리에 있다. 그는 그곳에서 태백산 정상 바로 아래 낙동강의 기원이 되는 용정샘에 나타난 문수보살(불교 지혜의 보살)의 석상을 발견했다. 그는 문수보살을 안치하기 위해 망경사라는 절을 지었다. 석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신도들은 대웅전 아래 묻혀있다고 믿고 있다.

등산로에서 몇 킬로 내에서 ‘문수보살의 어머니’가 산신으로 있었던 것으로 발견됐다. 그 세번째 높은 봉이 오늘날 문수봉이다. 한국 불교에서 신성한 지역으로 간주되는 지역이다.

그 외에 장군봉이나 가장 넓은 계곡인 당골, 백단사(White Altar Temple)와 같이 신성한 신령의 특성을 본 따 이름 지은 곳도 있다. 오래된 망경사는 '모든 것을 망라해서 볼 수 있는 절' 이란 의미처럼 당골계곡과 문수봉 너머까지 장관을 이루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이름은 불교 경전으로부터 온 용어이기도 하다. 현세의 모든 것을 망라해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불교 수행자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얻고자 한다.

그 지혜는 모든 것 위에 있으면서 정제되어있고, 아주 귀중하고 희귀한 것이다. 한국 사찰 중 높이 평가되는 망경사는 신성하고 위엄있는 산신이 깃들어있는 신성한 산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신성한 영에 대한 숭배와 그에 따른 전통 문화와 산신의 역할 때문에 한국문화와 산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겠다.

다음 호는 마지막으로 태백산, 두 번째 이야기가 계속된다.


/ 글·사진 데이비드 메이슨 경희대 호텔관광학 교수·www.san-sh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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