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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3월호
  • 653호

[흔적으로 좇는 동물 이야기] 족제비

월간산
  • 입력 2008.07.2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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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쥐들 공포에 떨게 하는 ‘나홀로 사냥꾼’
욕심껏 수십 마리 쥐 잡아 한 곳에 보관도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족제비는 여름철보다 겨울에 자주 눈에 띈다. 여름에는 풀이 높이, 또 무성히 자라 낮에 돌아다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족제비의 체형도 사람들 눈에 띄기 힘든 형태로 생겼다. 짧은 다리에 긴 몸과 작은 머리를 가지고 덤불을 뒤지고 다니면 풀끝만 흔들릴 뿐 그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겨울이 되어도 족제비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다만 풀들이 시들어 눈에 눌려 앉고 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져 족제비가 노출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또 눈이 내려 쌓이면 배경색이 되어 족제비가 쉽게 드러나지만, 눈이 없으면 누런 족제비 털빛은 황갈색 마른 풀에 녹아들어 발견하기 어렵다.

족제비는 주변이 확 트인 곳으로는 여간해선 잘 나가지 않는다. 가장자리에 풀이 길게 자란 농로를 따라 걷기도 하지만 멀리 가지 않고 곧 덤불로 들어가 버린다. 농로를 가로지를 때도 잠시 서서 주변을 둘러보다 곧장 건너가 버린다.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머리를 좌우로 갸웃거리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어린 족제비. 약 2~3개월이 된 족제비로, 시간이 지날수록 황색으로 변해간다.
어린 족제비. 약 2~3개월이 된 족제비로, 시간이 지날수록 황색으로 변해간다.

족제비는 전문 사냥꾼이지만 동물질에서 식물질까지 먹이 종류는 다양하다. 그러나 족제비가 주로 노리는 먹이는 여러 쥐 종류(설치류)라 할 수 있다. 족제비는 설치류를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사냥꾼으로 진화했다. 족제비 머리를 옆에서 보면 마치 뱀 대가리를 보는 느낌이다. 코에서 뒷통수까지 거의 굴곡이 없이 납작하다. 즉 사람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위가 없다.

몸의 형태 또한 다른 포식자인 삵이나 여우에 비해 많이 다르다. 족제비가 네 다리를 모아 서 있으면 허리와 엉덩이 부분이 묵직하게 보인다. 그러나 네 다리를 뻗어 뛸 때는 짧은 다리와 함께 몸이 유난히 좁고 길게 보인다. 이런 몸 형태는 덤불과 돌틈, 쌓아둔 나뭇가지, 굴 속 등에 숨은 작은 동물을 잡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들꿩과 족제비 발자국.
족제비가 들꿩 발자국에서 냄새를 맡은 후 발자국을 따라갔다. 족제비는 주로 쥐를 사냥하지만, 보충 먹이로 새도 사냥하나 그 빈도는 낮다.
들꿩과 족제비 발자국. 족제비가 들꿩 발자국에서 냄새를 맡은 후 발자국을 따라갔다. 족제비는 주로 쥐를 사냥하지만, 보충 먹이로 새도 사냥하나 그 빈도는 낮다.

여름철 족제비의 털은 짧고 듬성듬성해 더욱 날씬해 보인다. 겨울털은 길고 풍성해, 목도리나 붓으로 쓰는 족제비는 겨울에 잡힌 것을 쓴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 생길 만큼 낯짝 작아

고양이는 쥐의 천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쥐의 입장에서는 족제비가 고양이보다 더 공포스런 존재가 된다. 작으며 특유의 체형과 집요한 성격으로 적극적으로 쥐를 찾아 뒤지는 족제비야말로 쥐의 천적이라 할 것이다.

족제비는 암수의 몸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수컷은 암컷의 두 배 정도 더 크다(그래도 1kg을 넘기 힘들다). 이는 암컷과 수컷의 먹이 경쟁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한 지역에 사는 암수가 비슷한 몸 크기일 경우 먹이가 비슷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서로 몸 크기를 달리해 자주 사냥하는 먹이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다. 몸집이 작은 암컷은 밭쥐나 등줄쥐, 또는 생쥐를 잡고 수컷은 시궁쥐나 곰쥐, 또는 멧토끼와 꿩처럼 큰 종류까지 사냥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개천 바닥의 족제비 발자국. 족제비는 앞뒤 모두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다. 그러나 무른 흙에서 천천히 걷거나 서 있는 경우가 아니면 엄지발가락이 찍히지 않아 발가락이 네 개로 보인다.
개천 바닥의 족제비 발자국. 족제비는 앞뒤 모두 다섯 개의 발가락이 있다. 그러나 무른 흙에서 천천히 걷거나 서 있는 경우가 아니면 엄지발가락이 찍히지 않아 발가락이 네 개로 보인다.

족제비는 수컷이 여러 암컷과 교미한다. 때문에 번식기에 수컷끼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수컷은 몸을 키워 경쟁이 유리한 쪽으로 진화했다는 이론도 있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 속담은 염치나 체면도 없는 사람에게 일갈하는 말이다. 누가 지어낸 말인지는 몰라도 족제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만들었다. 족제비의 얼굴을 정면에서 보면 낯짝이 들어설 자리가 있나 할 정도로 폭이 좁은 게 사실이다.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 족제비는 아주 욕심이 많다. 늦가을에서 겨울동안 족제비는 눈에 보이는 쥐는 모두 잡는다고 할 만큼 쥐 사냥에 열중한다. 사냥한 쥐는 머리 부분을 조금 먹거나 아예 입도 대지 않고 쌓아둔다. 이런 창고는 굴뿐만 아니라 공사용 거푸집 아래서도 발견된다. 먹이가 없을 때를 대비해 저장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걸 모두 먹는 것은 아니다. 남은 쥐는 다른 족제비가 먹거나 곤충들이 분해한다.

목조 주택이 흔하던 시절, 족제비는 안방의 천장까지 침입했다. 나이든 분들은 천장에서 족제비와 시궁쥐가 쫓고 쫓기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소리에 잠을 설친 기억이 날 것이다. 이는 족제비가 천장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게 아니라 쥐를 쫓아(또는 찾아) 천장까지 가게 된 것이다.

족제비는 농경지와 개천이 흐르는 인가 부근에 많다. 특히 양계장이나 닭을 풀어 키우는 곳을 좋아한다. 이는 병아리를 훔쳐 먹기 위함이 아니라 사료가 풍족해 쥐가 많기 때문이다.

족제비 똥. 족제비 똥은 가늘고 길다. 주로 강가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위 등 두드러진 곳에 똥을 배설한다.
족제비 똥. 족제비 똥은 가늘고 길다. 주로 강가의 바위나 쓰러진 나무 위 등 두드러진 곳에 똥을 배설한다.

족제비는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오래된 가옥이 밀집한 곳에서는 낮에 돌아다니는 경우도 잦다. 지금은 모두 재개발되었지만 한때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난곡에서는 골목을 횡단하는 족제비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곳엔 시궁쥐가 많았고, 당시까지 쥐약이 흔히 팔리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한 곳이었다.

작은 섬에 족제비 방사는 위험한 모험

수산시장에도 족제비가 자주 나타난다. 이는 족제비가 생선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곳에 시궁쥐도 많기 때문이다. 족제비는 산간지역에도 산다. 대체로 산간지역의 족제비는 크기가 작은 경향을 띠는데, 이는 먹이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먹이 크기가 작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논둑에서 먹이를 찾는 족제비. 논둑을 따라가며 들쥐나 개구리, 뱀을 찾는다. 먹이는 냄새로 추적한다.
논둑에서 먹이를 찾는 족제비. 논둑을 따라가며 들쥐나 개구리, 뱀을 찾는다. 먹이는 냄새로 추적한다.

족제비가 쥐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나 그밖에도 다양한 먹이를 먹는다.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쥐는 족제비의 먹이가 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다람쥐와 드물지만 청설모도 포함된다. 풀밭에 둥지를 짓는 꿩의 알이나 갈대와 작은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작은 새들의 둥지도 턴다.

뱀과 개구리, 곤충도 자주 먹으며, 얕은 물에 들어가 물고기와 가재도 잡아먹는다. 낚시터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먹다 버린 빵과 과자, 컵라면과 사탕, 고기 반찬도 먹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산딸기와 오디, 감과 같은 연한 열매도 좋아한다.

족제비가 양계장에 침입하면 한 번에 여러 마리의 병아리나 중병아리를 죽여버릴 수 있다. 이는 족제비뿐 아니라 대개의 육식동물에게도 해당되는데, 삵이나 너구리에 비해 피해는 크지 않다. 아마도 몸이 작기 때문일 것이다. 달걀도 능숙하게 훔쳐 가는데, 그 자리에서 깨먹지 않고 아래 송곳니로 끼워서 운반한다.

족제비는 기본적으로 단독형 동물이다. 교미시 암수가 만나는 경우나 새끼가 독립하기 전까지를 제외하면 전적으로 홀로 산다. 크기가 작고 매년 새끼를 길러야 하는 암컷은 좁은 행동권을 소유한다. 수컷은 여러 암컷을 포함한 넓은 행동권을 가진다. 4~5월경 교미기를 거친 암컷은 6~7월경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가을이면 어미로부터 독립하는데, 이 시기에 자주 차에 치여 죽는다.

로드킬을 당한 족제비. 새끼를 기르고 있는 바쁜 암컷이나 갓 독립해 제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어린 족제비가 자주 교통사고를 당한다.
로드킬을 당한 족제비. 새끼를 기르고 있는 바쁜 암컷이나 갓 독립해 제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 어린 족제비가 자주 교통사고를 당한다.

쥐가 많은 곳에 족제비가 이주하면 눈에 띄게 쥐가 감소한다. 때문에 쥐를 퇴치하기 위해 족제비를 이주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족제비가 한 지역의 쥐를 완전히 퇴치하지는 못한다. 족제비가 쥐를 감소시키면 족제비 또한 먹이 부족으로 번식률이 낮아지고, 먹이가 더욱 빈곤해지면 남은 개체도 그 지역을 떠난다. 이윽고 쥐가 새롭게 유입되거나 쥐가 급속히 증가한다.

이와 같이 생태계는 증감을 반복할 뿐 한 쪽이 다른 쪽을 말살시키는 쪽으로 진화된 게 아니다. 다만 예민한 생태계인 무인도나 작은 섬에 족제비를 도입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작은 섬에 무리지어 서식하는 갈매기나 바다 쇠오리 같은 바닷새의 둥지를 공격해 새끼와 알을 완전히 없애버릴 수 있다. 때문에 작은 섬에 쥐가 폭증한다고 해서 족제비를 방사시키면 쥐를 퇴치하기는 커녕 다른 수많은 종을 잃게 된다. 사람들이 쥐를 멸종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인 것이다.<계속>


/ 글 사진 최현명 조경·동물연구가·<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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