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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일본 최초의 전국지도 행기도(行基圖)

글·최선웅 한국지도학회 이사, (주)매핑코리아 대표
  • 입력 2013.03.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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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후예 행기스님 제작

일본 역사에서 나라(奈良)시대는 서력 710년 제43대 겐메이(元明) 천황이 도읍지를 아스카(飛鳥)에서 헤이조쿄(平城京, 현 나라시)로 옮긴 때부터 794년 켄무(桓武) 천황이 헤이안쿄(平安京, 현 교토시)로 천도할 때까지 84년간의 시대를 말한다. 당시의 영역은 북으로는 동북지방, 남으로는 규슈(九州) 남단까지였고 대외적으로는 신라, 당(唐)과의 교류가 빈번해 대륙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불교색이 짙은 덴표문화(天平文化)가 번성했던 시기였다.

나라시대에는 중국의 법제도를 본받아 형법과 행정법을 기본으로 하는 율령을 제정해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율령제(律令制)가 본격적으로 성립된 시대이기도 하다. 율령제는 국가의 지배자에 의해 확립된 것이나, 어느 민간인이 율령제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국지도인 행기도(行基圖)를 제작했다는 행기(行基, 일본명 교기) 스님이다.

행기는 668년 가와치노쿠니(河內國) 오토리군(大鳥郡, 현 사카이시)에서 아버지 코시노사이치(高志才智)와 어머니 하치다노코니히메(蜂田古爾比売) 사이에 장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코시는 백제에서 도래한 왕인(王仁)을 시조로 한 가와치노후미(西文)의 일족으로 백제의 후예다. 나라현 이코마시(生駒市) 소재 죽림사(竹林寺)에서 발굴된 행기의 묘지명 대승정사리병기(大僧正舍利甁記)에도 ‘백제 왕인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행기는 15세 때 출가했는데, 홍윤기(洪潤基) 박사가 쓴 <행기 큰스님> 중 ‘행기스님 연보’에 따르면 그는 약사사(藥師寺)에 들어가 신라에서 온 혜기 법사(惠基法師)의 문하에서 3년간 유가유식론(瑜伽唯識論)을 공부한 뒤, 18세 때에는 비조사(飛鳥寺)로 옮겨 백제 스님 도소화상(道昭和尙) 문하에서 선을 배우면서 금식과 심신 수련을 했다. 22세에는 춘일산(春日山) 암자의 백제 스님 의연법사(義淵法師) 문하에서 수도하고, 24세 때 고궁사(高宮寺)에서 신라 스님 덕광법사(德光法師)에게 수계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37세에 산을 내려온 행기 스님은 민간 포교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펼쳤다. 한때 조정으로부터 승니령(僧尼令)을 어겼다고 제재까지 받았으나, 각지를 돌며 다리를 놓고 도로를 정비하고, 수해 대책으로 제방을 쌓고, 농사를 위해 못을 팠으며, 무료 구호·숙박시설인 보시옥(布施屋)을 마련해 빈민을 구제하기도 했다. 또 각지에 사원 49개를 건립했으며, 말년에는 그를 따르던 제자와 민중들과 함께 동대사(東大寺) 건립에 협력해 그 공로로 일본 최초의 대승정(大僧正)이 되었다. 행기보살로 추앙받던 그는 749년 82세 나이로 관원사(菅原寺)에서 입적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국지도인 닌나지(仁和寺) 소장본인 행기식 일본지도. 지도를 그린 종이의 크기는 가로 121.5cm, 세로 34.5cm이고 지도 왼쪽에 설명문이 있으나, 지도 부분만 실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전국지도인 닌나지(仁和寺) 소장본인 행기식 일본지도. 지도를 그린 종이의 크기는 가로 121.5cm, 세로 34.5cm이고 지도 왼쪽에 설명문이 있으나, 지도 부분만 실었다.
간략한 일본지도를 통틀어
행기도라 칭해

행기도라 하면 제작 연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두루뭉술한 필치로 해안선과 쿠니(國)라는 각 지방의 경계와 794년 일본의 도읍지인 헤이안쿄가 있는 야마시로노쿠니(山城國)를 기점으로 한 일곱 개의 경로가 그려진 간략한 일본 전국지도로, 이와 유사한 지도를 통틀어 행기도 또는 행기식 일본지도라 한다.

현존하는 행기도에는 ‘행기보살작’이라 쓰인 것이 많아 그가 처음 제작한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어 있으나, 행기가 직접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이 갈리고 있다. 우선 그에 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인 1175년 이즈미노코부수구네(泉高父宿襧)가 편찬한 <행기연보(行基年譜)>에 지도제작에 관한 기사가 없고, 행기 생존 시 일본의 도읍지인 헤이조쿄가 경로의 기점이 된 지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오래된 행기식 일본지도는 742년 행기 스님이 편집했다는 행기해도도(行基海道圖)와 805년 시모가모(下鴨)신사에 봉납되었다는 여지도(輿地圖)가 있으나, 모두 원본이 남아 있지 않아 1305년에 필사된 인화사(仁和寺) 소장 일본도(日本圖)가 가장 오래된 행기식 지도로 기록된다. 이밖에 토인킨가타(洞院公賢)가 개편한 백과전서인 슈가이쇼(拾芥抄)에 실린 1548년 필사된 대일본국도(大日本國圖)와 1557년에 필사된 당초제사(唐招提寺) 소장본인 남섬부주대일본국정통도(南瞻部洲大日本國正統圖) 등이 있다.

797년에 편찬된 역사서 <속일본기(續日本紀)>에 따르면 738년 각 지방에 파견된 국사(國司)들이 국군도(國郡圖)를 작성해 조정에 제출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찍이 조정에서도 전국지도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다만 교토 인화사 소장 지도는 경로의 기점이 야마시로(山城)인 것으로 봐 도읍을 야마시로로 옮긴 794년 11월 이후에 처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화지(和紙)에 그려진 이 지도는 방위가 뒤집혀 지도의 위가 남쪽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야마시로를 기점으로 각 지방으로의 경로가 주황색으로 그려져 있고, 지도 왼쪽에는 당시의 지리정보와 간기가 쓰여 있다. 원본은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 오른쪽의 시코쿠(四國) 일부와 규슈(九州) 부분은 아예 떨어져 나가 배접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지도 왼쪽 설명문 첫 행에 ‘일본팔도오기오국(日本八道五畿五國)’이라 쓰여 있는 것은 고대 일본의 율령제에 의한 광역지방행정구획으로 원래는 오기칠도(五畿七道)였으나, 팔도는 지도에 없는 북해도가 포함된 것을 말한다. 이어 ‘행기보살어작(行基菩薩御作)’이라 쓰여 있고, 마지막 행에는 ‘1305년 음력 12월에 필사한 것으로 외부에 보여서는 안 된다(嘉元三年大呂謝寒風寫之不可及外見)’고 적혀 있어, 이 지도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인 대회일(大晦日)에 궁중에서 악귀를 쫓는 추나(追儺)의식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행기도는 일본열도를 치졸한 모양으로 그린 지도에 지나지 않지만, 1,000년 가까이 일본 전국지도의 원형으로 널리 이용되었고 해외에도 전해졌다. 1402년 조선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나 1471년 신숙주(申叔舟)가 왕명에 따라 찬진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도 이 지도가 그려져 있다.

19세기 초에는 일본의 유명한 도예촌인 쿠다니야키(九谷燒)나 이마리야키(伊万里燒) 등지에서 행기도가 그려진 ‘지도접시(地圖皿)’가 구워져 서민층에 인기가 많았고, 해외에도 수출되었다고 한다. 이같이 행기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행기도는 은밀한 궁중의식에서부터 대중예술에 이르기까지 일본 역사에 깊숙이 녹아든 지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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