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오악기행<끝> | 동악 태산] 중국 문화사 결정판… 유불선·민속·산악신앙 아울러

글·사진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입력 2015.12.24 10:29
역대 황제들 글씨 새긴 ‘마애석각박물관’… 오행은 동쪽, 상징색은 청색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 오악독존(五嶽獨尊), 오악독종(五嶽獨宗), 오악지장(五嶽之長), 오악지수(五嶽之首), 대종(岱宗), 대산(岱山) 등….

이들은 모두 하나의 산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바로 중국 오악 중의 지존으로 꼽히는 동악 태산(泰山·1,545m)이다. 동악 태산을 두고 역사학자들은 “서양에 올림푸스 산이 있다면, 동양엔 태산이 있다”고 말한다. 올림푸스산은 서양 문명의 발상지이자 신(神)들의 산이다. 온갖 역사와 신화의 원천이다.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태산은 어떠한가? 중국 고고학자이자 고문자 전문가이면서 역사학자인 곽말약(郭末若)은 “태산은 중화 문화사의 축소판이며 결정판”이라고 했다. 올림푸스산 못지않게 정신사적으로나 종교적, 문명사적으로 중요하면서 연구대상이라는 의미다.

유네스코는 1987년 태산을 세계복합(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몇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봉선제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 독특한 특색을 가진 유교·불교·도교·민속신앙·산악신앙 등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셋째, 중화민족의 정신적 기원이었다는 점을 가치 있게 평가했다.

태산 운무. 일출 직전의 운무는 천하장관이라고 한다.

봉선제는 황제들이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중국 최초의 역사서 사마천의 <사기> 봉선서 편에 ‘진나라 이전에도 72명의 군왕이 봉선했다는 설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그중 12명의 제왕이 봉선한 내용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 72명의 군왕은 고대 무희씨, 복희, 신농, 염제,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우, 탕, 주성왕 등을 말한다. 중국의 상고시대 국가들의 왕이다. 이어 역사서에 기록돼 있는 진시황, 한무제, 광무제, 당현종, 송진종, 청 강희제, 건륭제 등이 태산에 올랐다. 12명에 해당하는 제왕들이다.

봉선에 대한 공식 첫 기록은 B.C 219년 진 시황제부터. 이후 한나라 무제  때는 대규모 정치적 행사로 발전했다. 봉(封)이란 옥으로 만든 판에 원문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여 천신(天神)에게 비는 일이었고, 선(善)이란 토단을 만들어 지신에게 비는 행위를 합해서 봉선이라 일컫는다.

중국 <오경통의(五經通義)>에 봉선의 목적을 ‘새로운 왕조를 열고 태평성대를 이루면 반드시 태산에 봉제를 지내고 양부산에서 선제를 지낸다. 이는 하늘의 명으로 왕이 되어 뭇 백성을 다스리도록 했으니, 하늘에 천하가 태평해진 것으로 고하고, 천지와 모든 신령의 공에 보답하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천명을 받은 제왕이 하늘과 대화하는 최적의 장소로 태산을 선택한 것이다.

태산을 상징하는 계단이 길게 뻗어 있다. 고대 황제들은 이 계단을 통해서 태산 정상에 올라 봉선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부터 12명의 황제가 봉선제 지내

그러면 왜 태산인가? 중국에는 태산보다 높은 산이 수없이 많다. 실제 태산 정상에서 GPS로 측정해 보니 1,444m가 나왔다. 알려진 1,545m나 1,505m보다 더 낮았다. 오차를 감안하더라도 실제 1,500m는 안 되는 듯했다. 그런 산이 왜 중국 최고의 산으로 숭배 받고, 정신·문화·문명사적으로 그렇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까? 중국인들에게 “어떤 산을 가장 좋아하느냐?” 물어보니 “태산”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2015년 3월 현재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과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산 1위는 태산으로 나타났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10위까지의 산은 그 뒤를 황산, 아미산, 화산, 장백산, 에베레스트, 형산, 숭산, 부사산(富士山·일본 후지산), 알프스가 이었다.

중국인이 태산을 숭배시하고 많이 찾는 몇 가지 이유를 역사학자들은 분석했다. 첫째, 태산은 중국 대륙의 동쪽이며, 이는 주역의 팔괘로 진(晉)에 해당한다. 진은 일(日)과 지지(至至:이르다)의 합성어로 ‘밝은 태양이 지상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말한다. ‘군자가 진괘의 상을 본받아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된다. 진은 따라서 만물이 나오는 곳을 뜻한다. 즉, 해가 뜨는 곳이며, 만물의 시초가 되는 것이다.

일출을 보기 위해 공북석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밤을 지새며 기다리고 있다.
둘째, 진은 음양오행사상에서 동(東)과도 통한다. 동은 한자에서 보듯 나무(木) 사이로 해(日)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바로 동악의 의미 자체가 만물을 잠에서 깨우는 생명의 탄생과 연결된다. 동방은 봄이고, 나무에 해당하고, 청색을 나타낸다. 인의예지신의 오상(五常) 중 인(仁)에 해당한다. 동쪽은 하루 중에서 아침을 가리키며, 계절로는 봄, 일생에서는 성장기를 의미한다. 오행에서 목(木)으로 시작되는 동쪽은 농사를 나타낸다. 농업은 고대 사회의 근본이다. 제후의 알현도 네 구역을 차례로 시행한다. 처음에는 청색, 그 다음엔 적·백·흑색의 순서로 의식을 집전한다. 따라서 동악 태산은 목체의 산이며, 상징하는 색깔은 청색이다. 이는 태산에 있는 사찰이나 도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이다.

셋째,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의 만물의 시초·생명의 탄생이라는 점과 맞아떨어진 태산은 중화문명의 발원지로 연결된다. 정신문화의 발원은 민간신앙이나 산악신앙과 같은 민속적 정서와 결부돼 더욱 확대됐다. 애초 태산 숭배사상은 태산이 있는 산둥성에서만 특색 있는 신앙이었다. 하지만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 때 오행사상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오악이 점차 굳어졌다. 따라서 태산묘사는 산둥성에서 점차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하남·산서·하북 등지에 동악묘가 건립되고, 나아가 태산숭배사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더욱이 역대 황제들이 태산에서 봉선제라는 국가행사를 개최하면서 더욱 신성시하고 숭배하면서 천하의 명산으로 거듭나게 됐다. 청나라가 들어선 후 만족과 한족의 문화융합정책으로 동악묘도 동북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신강·티베트를 평정하면서 동악묘사가 동아시아의 대표사상으로 자리 잡게 했다.

태산의 웅장한 봉우리와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유교는 유, 불교는 유무, 도교는 무

이러한 사상을 바탕에 둔 태산은 유불선 3교와 다시 융합한다. 역으로 말하면 태산은 유불선 3교가 가장 잘 공존하고 있는 산이다. 유교에서는 태산을 성산(聖山), 도교에서는 선산(仙山), 불교에서는 영산(靈山)으로 불린다. 이처럼 태산은 자연의 산에 그치지 않고 중화 민족의 단결과 사상적 융합을 주도하는 정신적 지주이다.

유교 유적은 인근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가 있어, 일찌감치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가 작게 보인다고 말한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 비석도 정상 부근에 있다. 또 ‘공자인중지태산(孔子人中之泰山), 태산악중지공자(泰山嶽中之孔子)’라는 주렴이 있다. ‘공자는 사람 가운데 태산과 같은 존재이고, 태산은 산 중에서 공자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 그 외의 태산에 있는 유교 유적으로는 ‘공자등림처’라는 글자가 새겨진 패방, 공자묘, 공자가 태산에 올라 노나라를 봤다는 ‘첨로대’ 등의 석각과 비석이 있다. 따라서 태산은 유교의 발원지라고 할 정도다.

불교 유적은 보조사, 죽림사, 경석욕 및 홍문궁의 미륵원 등이 있다. 경석욕은 금강반야바라밀경 2,500자를 새긴 암벽이다.

태산 정상 옥황정 모습.
도교 및 민간신앙과 관련된 유적은 매우 많다. 도교 유적으로는 정상의 옥황정을 비롯해, 삼양관, 관제묘, 왕모지, 두모궁 등이 있다. 신선사상과 관련한 유적지로는 만선루가 대표적. 만선루 안에는 서왕모를 제사하는 사당이 있다. 이는 여러 신선들을 배향하고 있으며, 후대에 벽하원군에게도 제사를 지냈다.

태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신이 벽하원군이다. 태산 주위 곳곳에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산악신앙으로는 동악대제를 모신 대묘가 대표적 유적이다.

유불선 3교의 본질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3교 모두 중화민족의 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종교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유교는 유(有)를 중심으로 현상계를 설명하려 했고, 불교는 유(有)와 무(無) 사이의 차별이 없음을 강조하려 했다면, 도교는 무위자연사상에서 보듯 무(無)사상을 확립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유교가 중국의 사회, 국가의 질서, 학문·기술을 통치자의 입장에서 규명하고자 한 반면, 도교는 종교적 요소를 중심으로 서민·민중의 입장에서 밝히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따라서 도교는 유교에서 배격한 미신이나 도깨비, 귀신신앙까지도 신앙대상으로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유교는 국가나 왕조라는 관료, 지성인의 입장에서 나온 교학이고, 도교는 민(民), 즉 농민과 일반 민중의 신앙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도교는 중국의 일반 국민들의 절대 다수가 신앙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산은 주역과 음양오행 사상을 아우르면서 유불선 3교의 종교사상을 배경으로 지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도 남을 만큼 가치가 뛰어나다. 그러면 과연 자연경관은 어떨까? 유네스코에서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태산을 등재했다. 흔히 말하는 지속 가능한 보편적 가치와 태산만의 특징적 경관을 모두 지녔다는 얘기다.

태산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는 내용의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큰 뜻 이룰 사람 들러리로 왔다”며 농담

태산을 올라가면서 어떤 경관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낭패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중국 속담에 ‘태산에 오를 때 비가 내리면 큰 뜻을 이룬다’고 한다. 다들 큰 뜻을 이룰 것이라고 위로하면서 태산에 첫 발을 디뎠다. 누군가 농담으로 말한다. “나는 아니지만 누군가 큰 뜻을 이룰 사람을 위해서 우리는 들러리를 섰을 뿐이다”라고 한마디 한다.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그게 누구냐”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묻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태산 오르는 길은 흔히 태산 입구에서 중천문과 도화문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과거 케이블카가 없었을 때 황제들이 오르던 길에 대한 사연이 많다. 이날은 비록 그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이전에 태산 정상을 4번이나 오르내렸던 경험을 되살려 한 번 되짚어 본다.

남천문을 향해서 아슬아슬한 십팔반 계단으로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다.
태산 입구인 일천문에서 중천문을 거쳐 십팔반이 끝나는 남천문까지 계단이 7,000여 개라고 한다. 안내책자에는 7,736개라고 적혀 있다. 책자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하다. 계단이 수천 개 이상 되면 산술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냥 무지무지하게 힘든 길이라 보면 된다. 보통 걸어서 5시간 이상 걸린다. 계단만으로 된 길을 5시간 이상 걷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것도 매우 가파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외국인들은 대개 중천문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걷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들이다. 태산 입구에서 중천문까지 버스로 25~30분 정도, 걸어서 3시간가량 걸린다고 한다. 중천문에서는 케이블카를 타든지 십팔반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이 계단도 매우 가파르다. 십팔반은 계단이 1,633개라고 한다. 거의 훈련수준으로 걸어야 한다. 걸어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십팔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한 그루 있다. 바로 오대부송(五大夫松)이다. 진시황이 봉선을 지내기 위해 산을 오르는 중 큰 비를 만나 소나무 아래서 피했다고 한다. 그 때 소나무가 비를 잘 피할 수 있도록 가지를 늘어 뜨려 줬다는 전설이 전한다. 진시황은 소나무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24작위 중 9번째인 ‘오대부’를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오대부송이다. 하지만 지금 소나무는 청나라 때 보식된 것이다.

역대 12황제가 봉선을 올렸다고 태산 천외광장에 기둥을 세워놓았다.
중천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 바로 아래서 내린다. 걸어서 남천문까지는 10분 남짓. 남천문을 지나면서부터 본격 황제들의 석각이 나온다. 암벽은 전부 석각으로 채워져 있다. 조용헌 박사는 이를 보고 “태산 암벽은 역대 황제들의 낙서판”이라고 말한다. 정말 수준 있는 낙서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 기록만 1,800여 개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2,200여 개라는 주장도 있다. 비석 800여 개, 마애석각 1,000여 개로 추산한다. 거대한 ‘마애석각 박물관’ 그 자체다. 엄청난 환경파괴이자 자연훼손이지만 역대 황제들이 남긴 것이기에 문화유산으로 변해 버렸다.

중국에서 발간된 책에는 태산 정상 석각은 258곳,석각 대부분 역대 제왕이 봉선 의식을 행할  때의 제문, 사묘(寺廟)의 창건과 중수기, 태산을 칭송하는 시문들이라고 소개한다.

남천문을 지나니 처음으로 ‘오악지존(五嶽至尊)’ 석각이 보인다. 이어 ‘산고망원(山高望遠·높은 산에서 멀리 바라본다)’, ‘봉황산(鳳凰山)’, ‘일근운저(日近雲低·해는 가깝고 구름은 낮다)’ 등이 잇달아 등장한다. 벽하사와 공자묘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일단 벽하사 방향이다. 벽하사 현판과 주렴은 전부 청색이다. 동쪽을 나타내는 상징색이다.

십팔반 계단 중간쯤 있는 오대부송.
벽하원군은 민간신앙이면서 도교 여신

벽하사에 모셔진 신은 벽하원군. 태산을 중심으로 한 산둥성 지역의 민간신앙을 대표하는 신이다. 태산 주위에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이 많다. 동악대제를 모신 산악신앙과는 구별된다. 태산 산악신앙이 동악대제다. 동악대제 신앙은 자연신 숭배에서 비롯됐다. 태산 봉선의 출현으로 동악신은 상천이 인간과 소통하는 신성사자이며, 제왕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고 천하를 다스리는 보호신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동악대제라는 칭호가 붙게 됐다. 여기에 도교와 불교가 영향을 미치면서 동악신은 만물의 발생, 인간의 생사, 귀천 등 모든 것을 관장하는 숭고한 존재로 부각되고, 일반 민중의 신앙대상이 된 것이다.

벽하사 안내문에는 ‘천선성모벽하원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벽하원군은 도교의 유명한 여신이다. 민간에서는 태산성모, 태산옥녀, 태산노내내(泰山老奶奶) 등으로 불리며, 화북지방에서는 태산낭랑으로 굳어졌다. 도교경전에 따르면 벽하원군은 상고시대부터 여신이었으며, 황금빛 연꽃에서 사람의 몸으로 화했다고 전한다. 태산에서 은거하며 수천 년 동안 수련한 결과 공을 이루고 도를 통했다(功成道合).’

학자들은 벽하원군이 고대 원시사회의 모계중심 사회에서 모신숭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벽하원군의 호칭은 도교 신선의 호칭과 관련 있다. 도교에서는 남자 신선을 진인, 여자 신선을 원군이라고 한다. 또한 도교 신전 중에는 자주색이나 청색과 관련된 신선이 있는데, 도교가 흥하면서 민간에 널리 성행하고 있던 태산옥녀를 신전에 모셔 벽하원군이라 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벽하원군이란 호칭이 당나라 때부터 사용됐다고 본다.

낭랑도 도교 여신의 총칭이다. 여성들의 일반적인 일을 담당하는 낭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계통적으로 구별하면 세 종류로 나뉜다. 서왕모(西王母)의 왕모낭랑, 벽하원군의 태산낭랑, 천비의 천후낭랑이다. 그 밑에 자식을 주는 송자낭랑, 자손을 번영하게 하는 자손낭랑, 천연두를 고쳐 주는 두진낭랑, 출산을 촉진시켜 주는 최생낭랑, 눈병을 고쳐 주는 안광낭랑 등이 있다.

태산 정상 주변에 있는 마애석각들.
벽하사를 지나자 황제들의 석각들이 모여 있는 ‘대관봉(大觀峰)’이 나온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석각은 황금색으로 입혀진 ‘천하대관 기태산명’이다. 총 1008자의 예서체로 쓰인 마애석각은 봉선의 역사와 선조의 업적, 자신이 하늘에 비는 소원과 각오 등의 내용이라고 한다. 양귀비와의 관계로 유명한 당 현종이 새겼다. 

 바로 그 옆에는 ‘벽립만인(壁立萬仞·우뚝 솟은 절벽이 매우 많다)’, ‘치신소한(置身霄漢·몸을 하늘의 은하수에 둔 것 같다)’ 청 강희제가 쓴 ‘운봉(雲峰)’도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자 중국 신화에 나오는 남신 복희(伏羲)를 모신 청제궁(靑帝宮)이다. 신농·여와 등과 함께 3황에 속하며, 중국 최고의 제왕으로 꼽는다. 안내문에는 ‘청제는 중국 동방의 신이며, 사람의 생존을 주재한다’고 적혀 있다. 청제궁도 현판과 주렴 모두 동방을 가리키는 청색 일색이다.

이어 ‘오악독존’ ‘천하대관’ 등의 석각이 등장한다. 암벽마다 전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는 오는데 여기저기 눈 둘 곳은 많고, 어디에 눈을 붙여야 할지 분별이 안 될 지경이다. 그 중 몇 가지만 둘러보자. 청 강희제가 쓴 것으로 전하는 ‘과연(果然)’이 있다.

‘虫二’도 있다. 청 말기 유정규라는 문인이 표현한 석각이다. 풍월무변(風月無變)을 적으면서 풍월이란 한자의 변을 없애 버렸다. 태산의 2,000여 개 석각 중 가장 함축미가 뛰어난 글로 평가받고 있다. 아름다운 경치가 끝이 없다는 의미다.

태산 정상 옥황정 바로 아래 한 무제가 세웠다는 무자비가 있다.
옥황정 아래 한무제 무자비도 눈길

정상 옥황정 바로 밑에 눈에 띄는 비석이 하나 있다. 집채 높이의 비석에 글자가 하나도 없다. 이른바 ‘무자비’. 진시황과 한무제가 썼다는 두 가지 설이 있었으나 한무제가 쓴 것으로 결론 났다고 한다. 무자비 바로 옆에 ‘높이 5.2m로, 한나라 무제가 세운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윽고 옥황정이다. 태산 정상비석(1,545m)은 옥황정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비석 주위에 수많은 열쇠들과 이를 두르고 있는 붉은 리본이 기복신앙을 나타내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안내판에는 ‘옥황대제의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고대 제왕들이 여기서 천제의식을 진행했다’고 전한다. 옥황정 현판에는 ‘시망유풍(柴望遺風)’이 적혀 있다. 글자 그대로 ‘장작을 바라보면서 바람을 남겼다’는 뜻이다. 이는 하늘에 대한 천제의식과 땅에 대한 제례, 즉 봉선이 생긴 유래를 나타내는 의미로 보였다. 이도 물론 청색현판이다.

인근 공북석·첨노대 등으로 한 바퀴 돌았으나 자욱한 안개와 비가 오는 관계로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다. 태산에서 비가 온 뒤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운해가 환상적이라는데, 이마저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태산이 가진 중국의 문화·종교적 사상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살펴볼 좋은 기회였다. 그 무궁무진한 중국문화에 대해 경탄해 마지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중국의 오악, 그리고 동악 태산이 모두 안고 있었다. 정말 중국 오악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였다.

태산 가이드

중국 태산에 가려면 보통 산둥성 제남공항으로 간다. 인천공항에서 제남공항까지는 약 1시간 30분 소요. 제남공항에서 태산까지는 약 80㎞.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태산은 중국인들이 찾는 최고의 산으로 명절 때는 하루 평균 5만 명이 방문한다는 통계도 있다. 설악산 단풍 인파가 최대 3만 명가량 된다고 볼 때 가히 어느 정도인지 짐작 갈 것이다.

한국인들은 천외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가서, 거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으로 가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걸어서 걸리는 시간은 기사 중에 소개했다.

태산 정상 맞은편에서 본 태산 전경. 옥황정과 천가거리가 보인다.
오악을 마치며…

음양오행·주역까지 녹아…

개별적 산마다 특징적 색깔·형체 모두 달라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중국 오악기행을 이제 마쳤다. 중국 오악사상이 이렇게 깊고 깊은 줄 애초에 몰랐다. 주역과 음양오행사상과 전통신앙에 산악신앙, 민속신앙, 그리고 중국의 신화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3황5제 중의 최고의 신이 동악 청제궁에 모셔져 있는 남신 복희씨다. 단순 호기심과 문화에 대한 지적 자극으로 시작한 오악기행은 하면 할수록 깊이를 더했다. 

오악은 산의 형체에 따라 오행으로 나눠졌고, 방향에 따라 오방으로 색깔이 구분됐다. 동악 태산은 청색, 서악 화산은 흰색, 남악 형산은 붉은색, 북악 항산은 검은색, 중악 숭산은 황색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개별적인 산의 신을 모시는 사당엔 각각의 다른 색깔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악은 대묘, 서악은 서악묘, 남악은 남악묘, 북악은 북악묘, 중악은 중악묘 현판이나 주렴에 어김없이 상징색이 걸려 있었다.

동악 태산은 오행에서 목체(木體)의 산으로 대표된다. 목체는 문필봉과 같이 봉긋한 봉우리의 형상을 보이며, 방향은 동쪽을 나타낸다. 문필봉에서는 흔히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실제 산둥성 지방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중국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수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 왕희지, 제갈량, 신의(神醫) 편작 등이 산둥성 출신이다. 최근에 중국군 34명의 상장 중 산둥성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서악 화산은 금체(金體)의 산이다. 색깔은 흰색이지만 쇠처럼 강하고 단단하다. 실제로 화산은 화강암 덩어리다. 수많은 봉우리가 하나의 화강암같이 생겼을 정도로 화강암들이 우뚝 솟아 있다.

남악 형상는 화체(火體)의 산이다. 화체의 산은 인근 천문산이나 장가계에 가보면 실감한다. 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도저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다. 마치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듯하다. 그 넘치는 기운은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북악 항산은 수체(水體)의 산이다. 계절은 겨울, 방향은 북쪽, 하루 중에서는 밤을 가리킨다. 색깔은 검은색. 차갑고 춥게 느껴진다. 도교의 도사들이 실제로 절벽 사이에 건물을 지어 아슬아슬하게 산다. 도사들은 이를 수련으로 여긴다. ‘공중에 떠 있는 절’이라는 현공사가 대표적 사찰이자 도관이다.

중악 숭산은 전형적인 토체(土體)의 산이다. 이른바 테이블마운틴. 산이 평평하다.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도를 닦았다는 소림사 주변의 산은 능선이 전부 평지같이 널려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이러한 산의 특징은 하나의 봉우리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산의 형세를 풍수적으로 해설하는 것이다. 산마다 각각의 특징을 지닌 사실을 오악기행을 하면서 알게 됐다. 어떻게 산에 음양오행사상과 주역까지 녹여내릴 수 있었을까? 중국인들의 스케일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중국 오악부터 답사하라고 권하고 싶다. 단순히 답사가 아니라 오악의 깊이에 대해 눈을 뜨면 중국의 사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라 정말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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