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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시즌 특집 | 서울 북부 4대 명산수락산 르포] 어른들을 위한 짜릿한 스릴 만점의 바위 놀이동산!

월간산
  • 입력 2016.03.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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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역~석기사~용굴암~도솔봉~정상~기차바위~석림사~장암역 8km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구친 기암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즐기는 정예지씨. 수락산은 바위 놀이동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독특한 바위가 많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구친 기암에 올라 탁 트인 경치를 즐기는 정예지씨. 수락산은 바위 놀이동산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독특한 바위가 많다.

이토록 적당한 산이 또 있을까? 높이, 크기, 거리, 코스, 난이도까지 모든 게 적당하다. 초보자가 아닌 일반 등산객 기준으로 말이다. 바위와 계곡, 산세의 조화로움도 황금비율에 가깝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이름값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지만, 산행의 효율성만 놓고 보았을 때 즐거움의 밀도가 더 옹골차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 도솔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수락산은 트인 곳이 많아 지루할 틈이 거의 없다.
1 도솔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수락산은 트인 곳이 많아 지루할 틈이 거의 없다.
이름이 특이하다. 물 수(水)에 떨어질 락(落)을 쓴다. ‘물이 떨어지는 산’이란 의미만 놓고 보면 모호하다. 여기에는 바위산이라 물이 땅으로 스며들지 않고 바로 흘러내그리되었다는 설과, 호랑이에게 물려간 아들 ‘수락’을 찾던 아버지의 그리움이 산 이름이 되었다는 설, 금류폭포・은류폭포・옥류폭포의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 하여 유래한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 중기 학자 박세당은 “수석 경치는 수락산이 으뜸이니 산 이름은 이 때문에 얻어진 듯하다”고 했다. 예부터 계곡과 바위가 탁월하기로 소문난 산임을 알 수 있다.

2 명성황후가 와서 기도했다는 용굴암. 용굴이라 불리는 굴속에 불상을 모셨다 전한다.
2 명성황후가 와서 기도했다는 용굴암. 용굴이라 불리는 굴속에 불상을 모셨다 전한다.
도시의 산이 그렇듯 수락 또한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등산로가 나있다. 수락의 첫째가는 매력은 능선의 암릉미에 있으니 능선 종주를 하기로 했다. 지하철로 접근이 편하면서도 시장통처럼 사람이 줄서서 가지 않는 나름 조용한 산길로 코스를 잡았다. 지하철 4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에서 석가사와 용굴암을 거쳐 도솔봉으로 올라 능선 따라 북진해 정상에 오르는 코스다. 하산은 기차바위 지나 석림사계곡으로 내려서서 지하철 7호선 종점인 장암역에서 끝맺는 코스다.

3 당고개역 인근 석가사에서 용굴암으로 이어진 계곡길.
3 당고개역 인근 석가사에서 용굴암으로 이어진 계곡길.
코끼리바위의 비밀, 새끼 코끼리

병아리의 삐약 거리는 소리처럼 노란 햇살이 지하철 안으로 스며든다. 곧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 도착한다는 멜로디가 울리고, 출근 시간의 지하철은 텅 비어 있다. 미안하지만 평일에 산에 가는 재미는 주말 산행보다 몇 갑절 곱빼기다. 당고개역에 내리고서도 다른 등산객들 다 가는 길을 두고 외딴길로 걸음을 옮긴다. 석가사에서 계곡을 따라 용굴암으로 오르는 길은 여간한 등산지도와 네이버 지도에도 표시된 등산로지만 찾는 이는 적다. 대신 도로 따라 1km가량 걸어야 흙길이 나온다.

고정로프를 잡고 하강바위를 내려선다. 바위 반대편에 클라이머들이 하강을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바위가 있어 이름이 유래한다. 정면의 큰 바위더미가 코끼리바위이고 그 뒤로 살짝 튀어나온 것이 철모바위다.
고정로프를 잡고 하강바위를 내려선다. 바위 반대편에 클라이머들이 하강을 연습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바위가 있어 이름이 유래한다. 정면의 큰 바위더미가 코끼리바위이고 그 뒤로 살짝 튀어나온 것이 철모바위다.
수락에 든다. 김시우(원주고 총동문산악회장), 조용환(만복국수 건대점 사장), 정예지(2015년 청소년오지탐사대원)씨와 함께다. 초입의 약수터에 ‘균이 나와 식수로 부적합하다’고 쓰인 경고문처럼, 얼어붙은 계곡은 을씨년스럽다. 드문드문 바위가 있지만 기교를 최대한 억제한 계곡을 따라 오른다. 사람 발걸음이 쌓여 생긴 자연 등산로가 정겹다.

갈림길, 국립공원이 아닌 탓에 이정표가 많지는 않다. 방향을 보니 어디를 택해도 용굴암으로 이어질 성싶다. 산행 시작 40분쯤 되었을까, 가팔라진다 싶더니 가파른 터를 다져 건물을 세운 용굴암이다. 1878년 자연동굴인 ‘용굴’에 불상을 봉안하고 수행하여 시작된 암자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 가는 길에 잠시 들러 기도했다고 전한다.

1 수락산의 하이라이트인 기차바위. 홈이 패여 있어 홈통바위라고도 불린다.
1 수락산의 하이라이트인 기차바위. 홈이 패여 있어 홈통바위라고도 불린다.
용굴암 옆으로 올라서자 도솔봉에서 수락산역으로 이어진 굵은 능선 위다. 고속도로처럼 뚜렷한 산길과 늘어난 등산객들이 주능선이 가까웠음을 알려 준다. 도솔봉에 다가갈수록 힘 좋은 바위들이 거대한 함선처럼 늘어서 있다. 흙길을 두고 도솔봉 정상으로 이어진 바윗길에 붙어 본다.

고정로프만 있으면 쉬울 법한 길에 로프가 없다. 크랙 라인을 밟고 홀드를 잡아 당겨 오른다. 수고했다며 고래등처럼 매끄러운 바위들이 비범한 경치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뱉어낸다. 남쪽의 불암산은 도시의 바다를 향해 호통을 치며 진격하고 있다. 서쪽의 북한산과 도봉산이 그려내는 능선의 흘러감이 기막히다. 인수봉과 선인봉은 어쩌면 이토록 신비롭게 치솟았는지 볼 때마다 새롭다.

2 기차바위 슬랩을 지나 하단 크랙 구간을 지난다. 까다로운 바윗길이 간간이 있어 초보자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2 기차바위 슬랩을 지나 하단 크랙 구간을 지난다. 까다로운 바윗길이 간간이 있어 초보자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
수락의 주릉을 탄다. 바위 놀이동산의 시작이다. 햇살이 반짝이는 먹음직한 슬랩, 치마바위다. 우회하는 산길이 있지만 빛나는 바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결이 살아 있는 바위의 질감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짜릿하게 오른다. 치마바위 다음은 하강바위다. 굳이 아슬아슬한 바윗길을 올라가 낭떠러지의 고도감을 피부로 느낀다.

저만치 솟은 코끼리바위가 쿵쿵거리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다. 코끼리바위의 비밀은 꼭대기에 숨은 아기 코끼리다. 절벽 끝으로 치솟은 바위를 철난간을 잡고 올라서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았던 새끼 코끼리가 바위 꼭대기에 귀엽게 선 걸 볼 수 있다.

여기서 정상 쪽을 보면 수락산의 또 다른 명물 철모바위가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철모를 꼭 닮았다.

수락산 정상에서 본 서울 도봉구와 노원구 일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 줄기가 한폭의 그림처럼 서있다.
수락산 정상에서 본 서울 도봉구와 노원구 일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 줄기가 한폭의 그림처럼 서있다.
거대한 바위가 솟은 탓에 산길은 능선을 우회하며 요동친다. 모처럼 고도를 내렸다가 고정로프 구간을 낑낑거리며 올라서니 정상이 눈앞이다. 정상 역시 이름난 암봉이지만 6년 전 계단을 깔아놓아 와일드한 맛은 없다. 서울의 여느 산봉우리처럼 태극기가 생동감 있게 펄럭인다. 봄・가을이었다면 막걸리와 캔맥주・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사꾼이 있을 텐데 지금은 없다.

그런 먹을거리보다 더 매력적인 수락의 정상 경치다. 서울의 무수한 아파트 숲을 제압하는 건 서울 북부의 명산들이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줄기가 강북권을 지배하고 있다. 산의 나라의 수도 서울 또한 산의 도시임을 실감한다. 수락산 정상에 왔다면 반드시 들를 곳이 있다. 20년 역사의 수락산장이다. 가녀린 체구지만 강단 있는 성격의 곽유진 산장지기가 변함없이 산장을 지키고 있다. 수락산 정상 바로 아래인 9부 능선에 있어 요기하고 가기에 제격이다. 마침 주인장 곽유진씨가 환하게 웃으며 일행을 반긴다.

제철 채소를 넣은 얼큰한 라면과 수락산 자연버섯으로 부친 두툼한 버섯전과 색다른 건강식인 도토리전까지 한 상 차려진다. 주인장의 정성과 일행의 땀에 수락의 풍치를 더하니 이런 꿀맛이 없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다닥 뱃속으로 투입이다.

수락산 산행의 백미 기차바위

기차바위와 도정봉 사이의 전망바위. 뒤로 의정부 일대의 신축 아파트들이 숲을 이뤘다.
기차바위와 도정봉 사이의 전망바위. 뒤로 의정부 일대의 신축 아파트들이 숲을 이뤘다.
꿀맛 같은 바위동산 산행에 배까지 부르니 흥얼거림이 절로 나지만, 수락산의 백미는 지금부터다. 수락산을 대표하는 명물인 기차바위다. 홈통바위라고도 부르며 100m가량 되는 대암벽 슬랩이다. 매끈한 슬랩 가운데에 기찻길처럼 홈이 나있어 이름이 유래한다. 국내산 워킹 코스 중에서는 가장 긴 계단 없는 슬랩이라 초보 여성들이 눈물을 터뜨리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고도감이 세다.

1 수락산 정상은 걸출한 암릉 꼭대기라 경치가 탁월하다. 
2 용굴암으로 이어진 계곡길. 등산객이 비교적 적은 호젓한 코스다.
1 수락산 정상은 걸출한 암릉 꼭대기라 경치가 탁월하다. 2 용굴암으로 이어진 계곡길. 등산객이 비교적 적은 호젓한 코스다.
탱크라도 당길 수 있을 것 같은 굵은 고정로프를 붙잡고 서면 도망칠 곳은 없다. 몇 백 m 아래의 도시 풍경과 달리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절벽 한가운데일 뿐이다. 암릉산행이 몸에 익은 사람들은 압도적인 고도감을 쾌감으로 즐기며 내려설 수 있다. 놀이동산의 하이라이트인 롤러코스터처럼 수락산 산행의 즐거움의 정점에 있는 것이 기차바위다.

의정부시에서 세운 안내판은 ‘토라진 산에 있는 기차바위’라고 안내한다. 수락산은 원래 금강산 자락에 있다가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다는 소문을 듣고 왔지만 이미 남산이 도읍지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어 토라져 등지고 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수락산 서쪽 서울 방면은 산세가 거칠고 동쪽인 남양주 방면은 부드럽고 수량이 많아 비교되곤 한다.

기차바위를 지나면 산길은 급격히 고도를 내리며 하산길로 치닫는다. 하지만 미끄러운 마사토가 많고 산길이 희미해 몸과 마음은 긴장을 풀 여유가 없다. 정비된 산길이나 이정표는 없다. 서울과 의정부・남양주의 경계에 있어 산길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탓이다. 너른 암반이 계곡을 모처럼 넓게 틔우며 산길이 거의 끝났음을 알려 준다.

수락산이 꾸며놓은 바위동산에서 놀이기구를 실컷 탄 덕분에 일행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발 끝에 남아 있다.

수락산
640.5m
서울 노원구, 의정부 장암동, 남양주 별내면

산행 거리 7.9km
산행 시간 4시간30분
산행 난이도 중(위험한 암릉 구간엔 우회로 있어)

산행 길잡이

곽유진 수락산장 지기와 대표 메뉴인 자연산 버섯전.
곽유진 수락산장 지기와 대표 메뉴인 자연산 버섯전.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에서 시작해 지하철 7호선 장암역에서 끝맺는 산행이라 교통이 편리하다. 수락산은 등산로가 복잡하게 나있지만 전체적인 진행방향만 숙지하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주능선부터는 암릉이 많아 스릴 있는 구간이 있지만, 우회로가 있어 선택해 갈 수 있다. 고도감의 정점인 기차바위 역시 우회길이 있다.

들머리인 당고개역에서는 도로와 골목을 따라 1km 걸어야 입구인 석가사에 닿는다.

1번 출구로 나와 대로를 따라 덕릉고개 방행으로 650m 가다 왼쪽 골목으로 접어들어 석가사를 지나 직진하면 ‘석천공원’이라 적힌 비석이 있는 산길이 나온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산길이 나뉘는데 계곡을 왼쪽에 두고 오르는 산길과 계곡을 건너 지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 모두 용굴암에 닿는다. 혹시 용굴암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능선을 타고 도솔봉으로 가면 된다.

주능선부터는 이정표가 충분하고 외길이라 길찾기는 쉽다. 기차바위를 지나 석림사로 내려설 때는 마사토가 있는 미끄러운 경사로가 많으므로 주의해서 하산해야 한다. 총 산행거리 7.9km이며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교통

지하철 4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하산 후에는 석림사를 지나 계속 직진하면 대로가 나오고, 여기서 횡단보도를 지나면 지하철 7호선 종점인 장암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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