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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서울 남부 명산 | 삼성산 르포] 세 성인이 나왔고, 세 성인이 묻혔고, 세 성인 날 그 곳

월간산
  • 입력 2017.03.1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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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세 산줄기 석수능선~장군능선~학우봉능선 11km 종주 코스

관악산 정상에서 학우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설산과 바위의 조화가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했다.
관악산 정상에서 학우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설산과 바위의 조화가 한 폭의 동양화를 완성했다.

숫자 3과 연이 깊은 산이다. 세 명의 성인을 뜻하는 삼성산(三聖山·481m)이란 이름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원효·의상·윤필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년(677) 이곳에서 작은 암자(삼막사)를 짓고 수도하여 그때부터 이름이 유래한다는 설. 둘째,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설. 셋째, <여지도서>의 ‘무학·나옹·지공 세 큰 스님이 각각 절을 짓고 살았기에 유래 한다’는 설이다.

또한 ‘천주교 삼성산 성지’가 산기슭에 있는데,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한 모방 신부와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가 이곳에 묻혔다. 이들 역시 세 명의 순교성인이다. 어떤 이들은 때가 되면 삼성산 자락에서 다시 세 성인이 날 것이라 말한다.

‘3은 예로부터 평범하지 않은 숫자였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부터, 힌두교의 삼신론, 불교의 세 가지 근본, 한국 건국신화의 3신까지, 3은 하늘과 인간과 땅을 의미하는 완벽한 조화를 말하는 숫자였다.

삼성산은 관악산에 속한 위성봉으로 저평가되어 왔지만, 예로부터 두 산은 별개의 산으로 보았다. 관악산은 과천현의 진산이며, 삼성산은 금천현의 주산으로 보았다. 산의 성질도 달라, 두 산의 경계인 무너미고개를 기점으로 산세가 확연히 달라진다. 관악이 불같이 솟구치는 남성적인 바위산이라면, 삼성은 낮고 펑퍼짐하여 무엇이든 넉넉하게 품을 줄 아는 여성적인 바위산이다. 어찌되었든 삼성산은 야트막하지만 ‘큰 산’인 것이다.

석수역에서 호암산으로 이어진 완만한 흙길의 석수능선.
석수역에서 호암산으로 이어진 완만한 흙길의 석수능선.
호랑이 기운 누르려 석구상 조각해

안양과 서울의 경계인 석수역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석수능선을 타고 호암산을 거쳐 장군능선을 타고 삼성산을 거쳐 학우봉능선을 따라 안양예술공원으로 내려서는 코스다. 안양에서 산행을 시작해 안양에서 산행을 맺는 코스로, 하룻동안 삼성산의 다양한 모습을 고루 볼 수 있다.

함께할 이는 등산을 좋아하는 숲해설가인 권오숙·윤상희씨다. 나뭇가지만 앙상한 산이지만, 숲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누며 오른다. 예상과 달리 도시의 산임에도 다양한 나무가 어울려 자란다. 보통의 산은 참나무 한두 종류가 주를 이룬 곳이 많은데 떡갈, 졸참, 굴참, 신갈 등 많은 참나무가 섞여 있고, 이밖에도 물오리나무, 때죽나무,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아카시나무, 노간주나무, 자작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석수능선을 따라 오른다. 살짝 땀이 날 정도의 오르막을 올라서자 능선이다. 산책길 같은 능선을 따라 호암산으로 간다. 호암산은 삼성산 정상에서 장군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봉우리다. 이름처럼 호랑이 형상을 한 바위산이다. 호암산 기슭에는 조선 태종 7년에 세워진 호압사가 있는데, 호랑이를 닮은 이곳 산세 때문에 한양에 호환이 많다고 믿어 산세를 누르기 위해 세운 절이다.

평일이라 연세 지긋한 백발의 등산인이 많다. 개중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걷는 이들이 꽤 많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일 테다. 인생의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들의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호암산성 터 안내판이 있는 곳에 ‘한우물’이 있다. 우물 크기가 제법 커, 과거 성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강아지 모습의 ‘석구상(石狗象)’이 귀엽다. 4마리의 개를 조각해 호랑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한다. 석수능선을 지나 호암산이 가까워오자 조금씩 경치가 터진다. 흰색과 갈색이 섞인 산은 눈과 진흙, 얼음이 뒤엉켜 있어 걸음이 조심스럽지만 경치는 수려하다. 눈 덮인 암릉 구간이 나오나 싶더니 헬기장을 지나 호암산 정상이다.

장군봉 능선의 국기봉(446m). 고정로프나 계단 같은 안전시설이 없는 암봉이라 우회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장군봉 능선의 국기봉(446m). 고정로프나 계단 같은 안전시설이 없는 암봉이라 우회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헬기장과 암릉 꼭대기의 태극기 깃대, 서울 쪽으로 난 데크 전망대가 있다. 특히 금천구와 관악구 방면이 한눈에 드는 데크 전망대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정도로 시원스럽다. 석수능선 최고의 전망대다. 다만 호암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없어 아쉽다. 이정표에는 계속 ‘호암산’ 방향을 표시해 놓았으나 막상 정상에는 이름이 아무것도 없어 혼돈이 올 수 있다.

삼성산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정상을 제외하곤 대부분 표지석이나 알림판이 없다. 태극기 깃대가 있다 하여 그저 ‘국기봉’으로 불리거나 이름이 없는 무명봉이다. 국기봉도 한 곳이 아니라 관악산을 합하면 10개가 넘을 정도로 많아 체계가 전혀 잡혀 있지 않다.

국립공원이 아닌 데다 경기도와 서울의 여러 지자체에 구역이 나뉘어 있어, 제대로 정리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명산만 자연보호와 정비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잊고 있는 주변 산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

호암산에서 장군능선을 따라 삼성산으로 드는 초입은, 능선이 펑퍼짐하게 누그러지며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 방심하면 엉뚱한 데로 갈 수도 있다. 너른 안부인 민주동산을 거쳐 봉우리다운 맛이 없는 장군봉을 지나, 삼성산 정상으로 향한다. 삼성산 정상은 철탑과 시설물이 괴수처럼 거대하게 서 있어 멀리서도 눈에 확 띈다.

괴수의 공격이다. 벽처럼 우뚝 선 바위와 고정로프가 정상으로 갈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손으로 붙잡을 것이 없는 벙어리 바위라 워킹 코스의 암릉치곤 무척 까다롭다. 고정로프에 체중을 실어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데 말처럼 쉽진 않다. 게다가 눈이 있어 미끄럽다. 우회로를 따르면 안전하게 지날 수 있지만 바위맛을 즐기려는 이들은 차례를 기다리더라도 거치는 코스다.

난코스를 지나면 바위 꼭대기에 국기봉(446m)이 있다. 뾰족하게 솟은 바위 꼭대기에 태극기가 있고, 계단이나 고정로프 같은 건 없다. 모른 척 지날 수도 있지만 슬금슬금 오른다. 눈과 얼음이 뒤섞여 집중하지 않고선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암봉이다. 모험심을 주체할 수 없는 사내들만 간간이 오를 뿐 대부분 사람들은 우회한다. 꼭대기에 서자 스릴 넘치는 성취감이 확 번져온다.

호암산에서 본 서울 금천구 일대.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산기슭에 호압사를 세웠다고 한다.
호암산에서 본 서울 금천구 일대.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산기슭에 호압사를 세웠다고 한다.
다시 흙길이 주는 편안함을 음미하며 오르면, 거북이를 닮지 않은 거북바위를 지난 뒤 임도가 나타난다. 정상의 시설물로 이어진 찻길이다. 정상 언저리에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나면 맥이 빠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지저분한 철조망과 낡은 건물, 흉물스런 철탑 때문에 삼성산 정상은 우회하는 이들이 많다.

고집스럽게 정상으로 길을 잡는다. 임도를 버리고 샛길 같은 좁은 산길로 다시 접어든다. 철망 옆을 꾸역꾸역 올라 꼭대기에 서자, 의외로 광활한 경치가 드러난다. 철조망 옆의 암릉 위에 정상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마치 강원도 첩첩산중 같은 분위기다.

맞은편의 관악산이 한눈에 드러난다. 압도적인 힘이 실린 산세가 압권이다. 흰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호랑이 무늬마냥 야생의 자연미가 철철 넘친다. 삼성산의 재발견이다. 멀리 있는 명산은 1년에 몇 번씩 가면서, 가까운 삼성산 정상을 이리 늦게 찾았다니, 하는 미안함이 샘솟는다. 게다가 온갖 난개발로 상처투성이다. 지금이라도 수도권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삼성산의 현황을 조사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자연보호가 아니라, 최소한의 보전대책이 필요하다.

소홀히 여겼던 삼성산의 재발견

국기봉 능선 갈림길에서 삼막사로 향한다. 지나온 국기봉과는 다른 국기봉이다. 암봉 꼭대기에 깃대를 세우고 태극기만 게양할 것이 아니라, 사료 조사를 통해 어울리는 고유의 이름을 붙여 주고 작게라도 표지석을 세워야 진정한 하나의 봉우리로 존재감을 가지고,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게양대는 번개를 맞을 확률이 높아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능선을 버리고 굳이 사면의 삼막사로 내려가는 건, 삼성산의 이름이 유래했을 정도로 유서 깊은 사찰이며 볼거리도 있기 때문이다. 칠성각 앞에 남녀 성기를 닮았다는 남녀근석이 있다. 바위 표면에 여러 개의 동전을 붙여놓았는데 마치 끌어당기는 힘이라도 있는 듯 철썩 같이 붙어 있다.

신라 문무왕 17년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세우기 전부터 토속신앙에서 숭배되었다고 한다. 바위를 만지면 여성은 순조로운 출산을 하게 되고, 번영과 무병장수를 비는 이들이 지금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칠성각 문을 열자 바위벽에 조각된 마애삼존불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빙판에 긴장되었던 몸과 마음을, 포근한 기운이 안아 주는 것 같은 안도감이 든다. 정갈한 고찰의 분위기가 감도는 삼막사에선, 노승 같은 눈빛의 큰 흰둥이가 느릿느릿 걸어와 만져 달라 머리를 드민다.

1 호암산 정상의 전망데크. 삼성산에서 가장 경치가 시원한 곳 중 하나이다. 2 삼성산 이름의 유래가 된 천년고찰 삼막사.
1 호암산 정상의 전망데크. 삼성산에서 가장 경치가 시원한 곳 중 하나이다. 2 삼성산 이름의 유래가 된 천년고찰 삼막사.
본격적으로 학우봉능선으로 든다. 학우봉이란 이름은 꽤 오래된 이름이지만 이정표에선 찾아볼 수 없다. 현장의 등산지도에는 그저 1전망대, 2전망대로 봉우리를 표시하거나 무명봉으로 남아 있다.

마당바위 전망터에 서자 수목원계곡이 발치 아래다. 바위 주변은 노간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철 푸른 침엽수로 땅의 적은 영양분으로 느리게 자라는 지혜로움을 가진, 산신령 같은 나무인데 열매가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다.

안양예술공원으로 이어진 하산길 몇 곳을 그냥 지나쳐 능선으로 잇는다. 데크 전망대와 팔각정이 있는 1~2전망대를 두루 맛보고 하산길을 잡는다. 삼막골의 경인교대 경기캠퍼스가 삼성산 능선을 부수고 깊숙한 곳까지 건물을 세우는 것이 산꾼의 마음에 탐탁지 않다.

석수능선, 장군봉능선, 학우봉능선 세 개의 능선을 거친 탓에 해가 뉘엿뉘엿한다. ‘안양’이란 지명의 기원이 된 안양사에서 삼삼했던 산행이 끝난다. 너무 가까이 있어 귀함을 모르는 것들이 있다. 삼성산처럼.

삼성산

481m
서울특별시 관악구·금천구,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산행 거리
10.6km
산행 시간 5시간 30분
산행 난이도 중(암릉 구간 많지만 우회로 있음, 복잡한 등산로 길찾기 주의)

산행 길잡이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능선이 펑퍼짐하게 퍼져 있어 길찾기가 쉬운 듯하지만 어려운 곳이 삼성산이다. 산의 지형과 전체적인 코스를 숙지해야 원하는 코스로 산행할 수 있다.

석수역 1번 출구의 육교로 나와 파리바게뜨 빵집 옆길을 따라 300m 직진하면 들머리다. 서울둘레길 관악산 구간 안내판이 있다. 사면을 따라 옆으로 가는 길은 둘레길이므로 호암산 방향으로 이어진 오르막을 따라가야 한다. 능선부터는 완만하고 이정표도 많아 산행은 쉽다. 호암산성 터의 한우물을 지나면 하산길처럼 능선이 푹 꺼지는데 안부로 뚝 떨어졌다가 호암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호암산을 생략하고 바로 장군능선으로 가는 길도 있지만, 호암산 정상의 경치가 탁월하므로 들렀다 가는 것이 좋다. 호암산 정상 헬기장 북서쪽 귀퉁이에 태극기가 있는 암릉이 있고, 20m 더 가면 전망데크가 있다.

호암산에서 삼성산으로 갈 때 능선이 펑퍼짐해지며 갈림길이 여럿 나타나 헷갈릴 수 있다. 남동쪽 철탑이 있는 삼성산 정상을 향해 가야 한다. 446m 높이의 국기봉은 진행 방향 우측 뒤쪽에 있어 신경 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된다. 국기봉의 경치는 시원하지만 고정로프나 안전시설이 없어 주의해야 한다.

임도를 만나면 삼성산 정상이 가까워진 것이다. 임도를 따라 50m 오르면 다시 산길이 나온다. 산길을 따라 시설물을 우회해 주능선에 닿은 다음, 뒤로 방향을 틀어 오르면 철조망 옆의 암봉 꼭대기인 정상이다. 북쪽은 시설물로 시야가 가렸지만 동쪽과 남쪽으로 트여 있으며, 정상 표지석이 있다.

삼막사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있으며 내려서는 길에 칠성각에 들렀다 갈 수 있다. 삼막사에서 화장실 옆으로 난 산길이 학우봉으로 난 사면길이다. 학우봉능선에서는 안양예술공원으로 하산하는 길이 수시로 나온다. 안양사로 내려서는 코스는 길지만 1, 2전망대를 두루 거치며 마지막까지 능선 경치를 즐길 수 있다.

교통

1호선 석수역 하차 1번 출구로 나와, 육교를 건너 파리바게뜨 빵집 골목으로 300m 직진하면 산 입구에 닿는다. 날머리인 안양예술공원에서 1호선 안양역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10분 간격)와 4호선 범계역으로 가는 2-1번 마을버스(30분 간격)가 있다. 안양예술공원은 1호선 관악역과 안양역 사이에 있는데 거리상으로 관악역이 가깝다.

식사(지역번호 031)

안양예술공원 부근에는 식사와 술 한 잔하기 좋은 식당이 즐비하다. 아라주꾸미(474-2472)는 매콤한 주꾸미가 별미다. 불주꾸미(1인분 8,000원). 맛있는 찌개(473-3332)는 재래된장과 고추장으로 간을 맞춘 김치찌개가 별미다. 이밖에 큰집추어탕(471-9894), 한정식 전문 유리원(2만 원~, 474-9290), 남씨네청국장손두부(471-0588), 원조보리밥(7,000원, 471-925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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