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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서울 남부 명산 | 청계산 르포] 메마른 도시에 솟은 넉넉한 쉼표 하나!

월간산
  • 입력 2017.03.2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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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동 화물터미널~옥녀봉~매봉~청계산~이수봉~옛골 10km 종주코스

청계산에서 가장 시원하게 전망이 터지는 매바위. 성남과 서울 일대가 아득하게 조망된다.
청계산에서 가장 시원하게 전망이 터지는 매바위. 성남과 서울 일대가 아득하게 조망된다.

청계산은 서울 강남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이다. 접근성이 좋아 잠시 짬을 내어 찾기 좋은 뒷동산 같은 산이기 때문이다. 청계산은 북한산이나 관악산 같은 수려한 풍광과 조망을 지닌 곳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흙산이 지닌 넉넉함이 장점이다. 길게 뻗어 내린 깊은 계곡과 능선마다 가득한 울창한 숲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바로 옆에서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의 피로를 풀어 주기 안성맞춤인 환경이라 하겠다.

청계산(淸溪山·618m)은 서쪽의 관악산(冠岳山·631m) 등과 함께 서울 남부의 명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울과 성남, 의왕, 과천의 경계에 솟아 있다. 최고봉인 망경대(望京臺)를 비롯해 매봉(583m), 이수봉(貳壽峰·545m), 국사봉(國思峰·540m) 등 여러 봉우리들이 줄지어 솟아 하나의 산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외곽의 평범한 육산에 불과했지만, 수도권이 점차 확장되며 서울, 분당, 과천, 의왕 주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청계산이라는 이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음을 뜻하는 ‘청계(淸溪)’에서 유래됐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청룡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는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과천 관아를 기준으로 우측(서쪽)에 있는 관악산을 백호산, 좌측(동쪽)에 솟은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본 것이다. 그만큼 의미가 있는 산이라는 방증이다.


1 화물터미널에서 옥녀봉으로 가는 중간의 개나리골 갈림길. 2 고도가 낮은 곳도 북사면에는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웠다.
1 화물터미널에서 옥녀봉으로 가는 중간의 개나리골 갈림길. 2 고도가 낮은 곳도 북사면에는 눈이 쌓여 길이 미끄러웠다.
만만치 않은 덩치의 도시 근교산

청계산은 남북으로 능선이 길게 이어지는 산세를 지니고 있다. 산줄기의 규모가 제법 커서 대도시 ‘뒷산’ 수준으로 생각하고 덤볐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오를 수 있는 산책로 수준의 코스도 많다. 하지만 종주 코스로 주능선을 밟으려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청계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 북쪽 양재동 화물터미널에서 시작해 남쪽 이수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코스를 답사하기로 했다.

“이쪽으로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지 등산객이 거의 안 보이네”

버스에서 내린 백은식씨가 멋쩍은 듯 기자에게 말을 붙였다. 양재역서 마을버스를 타고 15분 만에 도착한 양재동 화물터미널 정류장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평일인데다 날이 다소 춥긴 했지만, 단 한 명의 등산객도 보이지 않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등산로 입구는 대충 알고 있었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지도를 보고 길을 더듬어 청계산 등산로 안내판을 찾았다.

야트막한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산행 채비를 했다. 넓고 평평한 산책로 앞에서 스틱을 펴고 아이젠을 꺼내려니 약간 민망했다. 동네 공원 산보하러 나온 상황 같은데 펼쳐놓은 장비는 너무 거창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청계산의 첫 인상은 평범하면서도 만만했다. 하지만 잠시 뒤 우리는 청계산은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목표인 옥녀봉(375m)은 화물터미널에서 2.6km 거리였다. 우거진 숲속의 완만한 계단길을 따라 서서히 산으로 들어갔다. 흙과 낙엽이 뒤섞인 바닥을 밟고 가는 발걸음은 편하고 안락했다. 하지만 잠시 뒤 만난 비탈길의 빙판을 보니 역시 겨울산은 달랐다. 스틱과 아이젠으로 가볍게 얼음판을 넘어서니 벤치가 설치된 작은 봉우리에 올라섰다.


1 옥녀봉 정상에서 본 눈 쌓인 관악산 원경. 2 옥녀봉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
1 옥녀봉 정상에서 본 눈 쌓인 관악산 원경. 2 옥녀봉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
옥녀봉에서 관악산 조망 터져

잠시 숨을 돌린 다음 곧바로 옥녀봉을 향해 고도를 높였다. 산길은 개나리골약수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면서 서서히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제법 거친 바위들이 드러난 곳도 많았다. 과천 방면의 갈림길을 지나 200m 급경사 산길을 치고 오르니 드디어 옥녀봉 정상에 닿았다.

옥녀봉은 이 코스에서 처음으로 과천 방면으로 시야가 터지는 장소였다. 서쪽으로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관악산과 과천 시가지가 한눈에 조망됐다. 화물터미널 부근과 달리 옥녀봉 정상에는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넓은 정상부에는 외곽을 따라 둥글게 데크가 조성되어 등산객들이 쉬어가기 좋았다. 취재팀도 데크에 걸터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숨을 돌렸다.

옥녀봉을 지나면 산길은 약간 부드러워지며 잠시 숨을 고른다. 하지만 능선 왼쪽 원터골 방면으로 이어지는 산길들이 연이어 나타나며 계속 가지를 뻗었다. 옥녀봉에서 매봉 사이 구간에 청계산 특유의 복잡한 등산로가 집중되어 있었다. 완만한 능선상의 원터고개를 지나면 매봉 직전의 492.4m봉까지는 가파른 계단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표고차 150m가량을 곧바로 치고 오르는, 매봉을 오르는 도중 가장 힘든 구간이었다. 봉우리에 닿기 직전 왼쪽으로 청계골과 원터골로 내려서는 산길이 또 다시 갈려나갔다.

492.4m봉 정상의 공터에서 숨을 고른 뒤 다시 돌문바위와 충혼탑 갈림길을 지나 매바위에 올랐다. 매바위는 청계산 주능선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으로 꼽는다. 바로 앞의 서울 강남과 잠실, 성남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날씨가 흐려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1 옥녀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 2 매바위 오르기 직전에 통과하게 되는 돌문바위.
1 옥녀봉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 2 매바위 오르기 직전에 통과하게 되는 돌문바위.
매봉 지나면 한적한 시골 분위기

매바위에서 매봉(583m) 정상까지 별로 멀지 않았다. 멋진 정상석이 세워진 봉우리 주변은 나무가 울창해 조망은 없었다. 원점회귀 산행을 즐기려면 보통 이곳에서 원터골로 내려간다. 하지만 정상이 목표인 우리들은 계속 능선을 타고 혈읍재로 내려선 뒤 망경대로 향했다.

매봉을 오를 즈음부터 주변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 경계를 벗어나니 산길도 좁아지고 시설물도 적어졌다. 공원 산책로처럼 널찍하던 등산로가 조용한 시골 산처럼 변했다. 산길 위에 쌓여 있는 눈도 거의 다져지지 않아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나의 산이지만 지자체의 관리 여부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가느다란 산길을 타고 혈읍재를 거쳐 국가시설물이 있는 망경대로 올랐다. 하지만 망경대 방면은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폐쇄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동쪽 사면의 우회로를 따라 내려선 뒤, 주능선을 타고 계속 이수봉으로 향했다. 망경대에서 이수봉으로 넘어가면서 눈길을 걷다 보니 과천 방면이 훨씬 가까워졌다.

매봉으로 이어진 호젓한 청계산 능선길.
매봉으로 이어진 호젓한 청계산 능선길.
이수봉 정상에서 하산길에 대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남쪽으로 연결된 능선을 타고 계속 국사봉으로 이동하면 판교로 내려서야 했다. 종주를 계속 하면 다시 돌아가야 할 서울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교통이 편한 옛골로 내려서기로 결정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산행은 접근성을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이수봉에서 천수골 약수터를 거쳐 옛골로 내려서는 길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꽁꽁 얼어붙은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서니 마을이 가까워졌다. 등산로가 끝날 즈음 왼쪽에 스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고압공기 분출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산행을 마치고 더러워진 옷이나 등산화를 깨끗하게 할 수 있도록 해둔 것이다. 이제 먼지를 털어내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다. 이렇게 청계산 종주는 옛골에서 끝났다.

청계산

618m
서울, 성남, 과천, 의왕

산행 거리
10km
산행 시간 4시간 20분
산행 난이도 중(가파른 계단길)

산행 길잡이

청계산을 종주하려면 서울 양재IC 부근 화물터미널 뒤편에서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이 코스는 청계산의 주요 봉우리들을 모두 밟으며 장시간 걸을 수 있어 종주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 인기 있다.

화물터미널 뒤편에서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옥녀봉을 오른 뒤, 매봉과 망경대, 이수봉까지 종주가 가능하다. 이수봉에서는 능선이나 계곡길을 통해 서울 시내버스가 운행하는 옛골로 하산하는 것이 귀가길이 편하다. 과천 방면으로 하산하는 것이 귀가길이 편하다면, 이수봉에서 과천매봉을 거쳐 대공원역이나 인덕원역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이수봉에서 남쪽의 국사봉을 거쳐 의왕시 청계동 방면으로 내려설 수 있다. 이 경우 양재동에서 출발해 산행에만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국사봉에서 동쪽 능선을 타고 판교 쪽으로 내려설 수도 있다. 장거리 종주를 즐기려면 국사봉 서릉을 따르다 하오고개를 경유해 수원 광덕산까지 산행을 잇는다. 약 10시간 소요.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근에서 출발해 옥녀봉~매봉~망경대~이수봉~옛골로 이어지는 청계산 종주 코스는 약 10km 거리로 산행시간만 4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명소

충혼비

청계산 매바위와 돌문바위 사이 등산로에서 옆으로 50m쯤 떨어진 곳에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이 시설물은 1982년 6월 1일 군 작전 중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 순직한 53인의 군인들 중 44명은 특전교육단 250기 교육생이었다. 이들은 특전교관 5명, 공군부대원 4명 등과 함께 수송기를 타고 자격강하를 위해 거여동으로 이동하던 도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고 추락해 유명을 달리했다. 이들의 유해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되어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10번 출구 앞 버스정류장에서 서초 08번 마을버스를 이용해 화물터미널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버스정류장에서 서울추모공원 방향으로 300m쯤 걸어간 다음, 오른쪽에 보이는 KCTC양재물류센터를 끼고 뒤편으로 돌아가면 청계산 종주 코스의 산길 초입이 나타난다.

이수봉에서 옛골로 하산할 경우 버스를 이용한다. 옛골은 양재역에서 운행하는 4432번 버스의 종점이다. 여기서 차를 돌려 다시 양재동으로 간다. 버스를 타고 양재역까지 가는 것보다, 청계산입구역 정류장에서 내려 신분당선 전철을 이용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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