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서울 남부 명산 | 관악산 르포] 대한민국 성장의 ‘역군’이자 서울 남부의 오아시스

월간산
  • 입력 2017.03.13 11: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당역과 안양을 잇는 북남종주 11km

사당능선에서 본 관악산. 포효하는 맹수 같은 기운 넘치는 산세를 지녔다. 철탑이 솟은 곳이 정상인 연주대.
사당능선에서 본 관악산. 포효하는 맹수 같은 기운 넘치는 산세를 지녔다. 철탑이 솟은 곳이 정상인 연주대.

“관악산 때문이다. 나라가 이토록 시끄러운 건 관악산 때문이다.”

무학대사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그리 말했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궁궐 터를 잡을 때, 정도전은 북악산 아래, 즉 지금의 청와대 터를 주장했다. 반면 무학대사는 “백악(북악산) 아래에 남쪽으로 궁궐을 앉힌다면 관악산의 불기운으로 재난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무학대사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동쪽으로 궁궐이 바라보도록 해야 관악산의 화기를 면할 것이라 주장했다.

사당능선 바윗길을 즐기며 오르는 정관구(젊은 산악인의 모임)씨. 초반 난코스인 암릉 구간으로, 우회길을 이용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사당능선 바윗길을 즐기며 오르는 정관구(젊은 산악인의 모임)씨. 초반 난코스인 암릉 구간으로, 우회길을 이용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무학대사는 “200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내 말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 개탄했다. 실제로 198년이 지난 선조 25년 왜구의 침입으로 도성이 온통 쑥대밭이 되었으며, 300여 년이 지나서는 사직마저 빼앗겨 경복궁 앞뜰이 샅샅이 파헤쳐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많은 대책이 간구되었다. 관악산 연주대 정상에 구멍을 판 다음 물을 채우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어 화기를 누르도록 했다. 숭례문을 광화문과 관악산을 잇는 일직선상 사이에 세워 관악산이 덜 보이게 했으며, 현판을 세로로 걸어 맞불 작전으로 화기를 막게 했다. ‘숭(崇)’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또 물짐승인 해태 조각상을 궁궐 대문이나 건물 좌우에 세워놓도록 했다. 

하마바위에서 본 서울 풍경. 관악산은 서울 남부에서 가장 화려한 바위산이다.
하마바위에서 본 서울 풍경. 관악산은 서울 남부에서 가장 화려한 바위산이다.

불의 산에 든다. 동행할 김준영, 정관구, 김성균씨를 만난 곳은 사당역. 관악산은 어디서 오르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과천이나 신림동에서 들면 1시간 남짓이면 연주대에 닿는다. 그래서 산행이 쉽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사당역에서 오르는 관악산은 차원이 다르다. 거리가 먼 이유도 있지만, 거친 바위봉우리가 겹겹이 늘어서 있어 까다롭다. 최근 계단을 설치한 곳이 많아 산행이 수월해졌다지만 여전히 사당능선은 실력을 갖춘 산사람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척도로 꼽힌다. 게다가 사당능선으로 올라야 불꽃처럼 타오르는 관악산의 산세를 정면에서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발 빠른 산꾼들은 사당역에서 산행을 시작해 연주대를 거쳐 관양능선으로 안양까지 종주하며, 관악산의 뼈대를 한 페이지도 놓치지 않고 정독한다. 손쉬운 하산길인 과천이나 서울대 방면의 유혹을 뿌리치고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에 가까운 긴 종주를 하는 것이다. 오늘 산행 코스는 관악산 북남종주다.

연주대 직전의 암릉구간. 체중을 로프에 싣고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연주대 직전의 암릉구간. 체중을 로프에 싣고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서울 남부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 명산 

사당역의 바글거리던 출근 인파도 관음사를 지나자 안녕이다. 영하 10℃에 이른다는 일기예보 탓인지 산길은 고요하다. 성미 급한 관악산은 곧장 바윗길인지 우회로인지 택하라며 갈림길을 들이민다. 사내들의 오기일까,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직등으로 바윗길에 붙는다.

얼마 안 가 “헉” 소리가 난다. 겨울의 사당능선은 만만치 않다. 국립공원이 아니기에 고정로프나 계단이 없는 것은 기본이며, 고도감 있는 바위 틈새가 전부 빙판이다. 산행 초반, 몸도 덜 풀린 상태에서 극도로 조심하며 더디게 바위를 오른다. 보조로프를 준비해 왔지만 사내들은 칼바람 부는 암릉 구간을 빨리 지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깡패 같은 칼바람이 마구 덤비는 암봉에서 잠깐 경치를 둘러본다. 빽빽한 빌딩들, 도시는 저토록 평온한데 여긴 히말라야 험봉마냥 위태로운 긴장감이 돈다.

사당능선의 눈 쌓인 암릉길을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오르고 있다. 사당능선은 관악산에서 가장 난이도가 센 워킹산행 코스다.
사당능선의 눈 쌓인 암릉길을 거친 호흡을 토해내며 오르고 있다. 사당능선은 관악산에서 가장 난이도가 센 워킹산행 코스다.

다시 갈림길, 역시 우회로가 아닌 직등 루트를 택한다. ‘위험’ 안내판은 초보자에게 해당될 정도의 바윗길이지만, 몇 겹의 눈이 쌓여 빙판을 이룬 탓에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짜릿하게 험로를 올라서자 데크 계단이 나타나 안도감을 준다. 계단 위는 공연 무대 같이 거창한 데크전망대다. ‘우수 경관 전망대’라는 안내판이 없어도 “우와~” 소리가 절로 나는 풍경이다. 시야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 한강과 남산이 잘 드러난다. 63빌딩이 저리 낮았나 싶을 정도로 고층빌딩의 숲이지만, 산은 인간의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하마처럼 덩치 큰 하마바위 위에 올라서자 서울에서 훨씬 멀어진 풍경이다. 낙성대역 방면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몇 곳 지나도 등산로는 여전히 한가하다. 곳곳에 헬기장과 데크 쉼터가 있어 호흡을 가다듬고 간식을 먹기에 제격이다.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신갈나무, 물오리나무, 노간주나무가 뒤섞인 숲은, 침엽수와 활엽수들의 고요한 전쟁터다. 제공권을 장악해 서로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나무는 참나무와의 경쟁에서 상대가 되지 않고 병충해에도 약한 편이지만 관악산 소나무는 전체적으로 건강해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사당능선은 수려한 바위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어, 암릉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멀리 철탑이 솟은 봉우리가 정상이다.
사당능선은 수려한 바위봉우리들이 줄지어 있어, 암릉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멀리 철탑이 솟은 봉우리가 정상이다.

암봉들 사이로 멀리 철탑이 솟은 연주대가 보인다. 봉우리를 몇 개나 넘어야 하는지 헤아리기를 포기하고, 스틱을 다시 잡고 걸음을 옮긴다. 흙길과 빙판길, 바윗길이 섞여 있어 아이젠을 신는 게 애매하다. 안전을 생각하면 착용하는 것이 맞지만, 끼는 순간 발의 피로도가 높아지기에 남은 산행 거리를 생각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다.

마당바위에 닿자 모처럼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리며, 관악산다운 활기가 감돈다. 봄철 주말의 관악산은 줄을 서서 오를 정도로 사람이 많다. 한때 산악사고 발생 건수 1위가 관악산이었던 적도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험한 바위산의 상징이었다.

사당능선은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널려 있다.
사당능선은 사진 찍기 좋은 장소가 널려 있다.

거기에는 책임 미루기도 한 몫 한다. 능선을 경계로 지자체 관리주체가 달라 서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이토록 많은 등산객이 찾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기 산임에도 고정로프조차 없는 바윗길이 널려 있다.

흰색과 검은색만으로 등골을 세운 관악산 정상은 포효하는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다. 연주대가 가까워오자 다시 산길이 요동치며 송곳니를 드러낸다. 우회등산로 안내판에서 연주대로 직진한다. 관악문, 침니 사이에 거인의 공기돌마냥 큰 바위가 얹힌 구멍이다. ‘관악문’이란 이름처럼 사당역에서 관악문을 거쳐 관악산에 올라야 초보 딱지는 뗐다고 할 수 있다. 바위구멍을 지나 일부러 바위 위에 올라 바람을 맞는다. 경기도와 서울을 한방에 둘러본다.

관악산 산행의 쉼터 역할을 하는 마당바위.
관악산 산행의 쉼터 역할을 하는 마당바위.

산행의 크럭스는 지금부터다. 연주대를 지키는 나한들마냥 험한 바윗길이 지구력과 담력을 시험한다. 연주대가 가까워올수록 암릉 산행의 난이도 역시 높아지는 바람에 아이젠을 꼈다 벗었다 반복한다. 고정로프에 체중을 완전히 실어 박차고 벽을 밀며 오른다. 어렵지 않은 침니를 올라서자 갑자기 경치가  트이며 연주대 정상이 깜짝 쇼처럼 나타난다.

거대한 축구공 모양의 기상레이더센터와 KBS송신소, 군 레이더 시설 등 각종 탑들이 난립해 연주대 주변은 지저분한 스카이라인이다. 칼로 베어놓은 것 같은 드넓은 슬랩. 시설물만 없었다면 연주대는 전국의 명산들 중에서도 가장 정상다운 정상으로 손꼽혔을 것이다.

연주대 이름의 기원이 된 응진전. 관악산의 대표적인 명 풍경이다.
연주대 이름의 기원이 된 응진전. 관악산의 대표적인 명 풍경이다.

관악산은 서자 취급 받는 산이다. 서울의 잘난 자식으로 한강 이북의 북한산과 한강 이남의 관악산이 있는데, 북한산은 장남으로 대접받으며 국립공원으로 보호받고 애지중지 키워진 반면, 관악산은 과소평가되었다. 경기도와 서울 주택가에서 접근성은 북한산보다 관악산이 훨씬 좋아 과거부터 등산객이 무척 많았다.

1970~1980년대 근로자들이 혹독한 노동량을 감당하며 나라가 성장할 때, 주말마다 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준 것이 관악산이었다. 30분만 올라도 드러나는 바위산 특유의 화려함으로 서민들의 쌓인 피로를 풀어준, 대한민국 성장의 보이지 않는 역군이었다. 수도 서울 남부의 오아시스였던 것이다. 그러나 보호는커녕, 정상에 온갖 시설물과 탑을 세우고, 곤돌라를 설치하고, 서울대는 거리낌 없이 산을 파내 건물을 계속 세워 밀고 올라오고 있다. 등산로는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고 이정표나 등산지도·봉우리 지명은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누구하나 신경 써 주지 않는, 온갖 설움 겪고 있는 서울의 서자인 것이다. 

연주대와 효령대군에 얽힌 사연

관악산 정상을 연주대(戀主臺)라고 부르는 건, 정상 한 귀퉁이에 있는 응진전(應眞殿)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전에 지은 것은 추측되는 응진전은 용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솟은 바위틈에 30m 높이의 축대를 쌓아 터를 만들어 지었다.

연주대는 원래 의상대(義湘臺)라 불렸는데 <연주암지>에 의하면, 677년(신라 문무왕17) 의상대사가 관악산의 수려함에 끌려 정상에 의상대를 짓고 동시에 현재 연주암 자리에 관악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의상대가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고려가 멸망하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오빠 강득용이 이곳에서 통곡하며 고려를 연모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이 이곳에 올라 시를 짓고 궁궐에 있을 세종을 그리워하며 제일 높은 바위에 연주대라는 글씨를 친히 새겨 그 이름이 굳어졌다고 전한다.

관악산 정상(연주대)은 산세에 걸맞은 큰 바위가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널찍한 통바위 슬랩이 있는 연주대. 자연바위를 이용해 관악산 글자를 새겼다.
관악산 정상(연주대)은 산세에 걸맞은 큰 바위가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널찍한 통바위 슬랩이 있는 연주대. 자연바위를 이용해 관악산 글자를 새겼다.

관악산 정상(연주대)은 산세에 걸맞은 큰 바위가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널찍한 통바위 슬랩이 있는 연주대. 자연바위를 이용해 관악산 글자를 새겼다.
관악산 정상(연주대)은 산세에 걸맞은 큰 바위가 있어 경치를 구경하기 좋다. 널찍한 통바위 슬랩이 있는 연주대. 자연바위를 이용해 관악산 글자를 새겼다.

연주암 역시 효령대군이 관악사에 머물며 수행하면서, 건물을 새로 짓고 연주암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런 깊은 인연 때문에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연주암에 있다. 온화한 성품에 효성이 지극했던 효령대군은 아우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성덕이 있음을 알고 왕위를 사양했다고 한다. 독실한 불자였던 그는 억불숭유의 기조 속에서 유불조화론을 주장했다. 또한 당시로는 드물게 90세까지 장수하며 아홉 분의 임금을 거쳤는데, 명예와 재물을 탐하지 않고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며 살았기에 가능했다. 

연주암 효령각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다시 주능선에 몸을 던진다. 시설물을 우회하느라 산길은 사면을 에둘러 나있다. 과천에서 올라온 등산객으로 시끄럽던 산길이 다시 고요해졌다. 흐려지나 싶더니 팔봉능선 갈림길을 지나자 눈보라가 친다. 거인처럼 솟구친 첩첩의 바위산 앞에 막강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기분 좋은 악천후! 도시에서 느끼는 오지 설산 분위기는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산행의 추억이 된다.


연주대에서 관양능선으로 이어진 화려한 산세의 주능선. 도시의 산이라 방심할 수 없는 바위와 빙판이 섞여 있다.
연주대에서 관양능선으로 이어진 화려한 산세의 주능선. 도시의 산이라 방심할 수 없는 바위와 빙판이 섞여 있다.

관양능선의 마지막 전망대인 팔각정에서 본 안양시내.
관양능선의 마지막 전망대인 팔각정에서 본 안양시내.

안양 쪽의 관양능선으로 접어들자, 이정표가 줄어들고 등산로가 희미하게 엉킨다. 사방으로 능선이 흘러내리는 지점이라 여차하면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다. 지도와 GPS, 스마트폰을 비교해서 간간이 짧은 알바(엉뚱한 길로 가는 것을 뜻하는 산꾼들의 은어)를 하며 어렵게 내려선다. 육산에 가까운 산줄기가 편안하게 이어지지만 꽤 길다. 달궈진 근육을 천천히 정리하라는 산의 배려로 삼고 묵묵히 능선을 받아 삼킨다. 정갈함이 감도는 안양의 잣나무숲을 지나 빌딩숲으로 내려선다.

풍수가 최창조 교수는 “명당은 찾아내는 대상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대상”이라 했다. 진정한 명당은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관악산 정상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수행했던 효령대군처럼, 불의 산은 언제든 포근한 산이 될 수 있다. 


산행 길잡이

베테랑 산꾼에게도 사당능선~관양능선 종주는 쉽지 않다. 11km 거리는 당일산행으로 길지 않지만 암릉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사당능선은 얼어붙은 바위가 많아 자신 없다면 우회로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연주암을 지난 뒤 능선이 복잡해지고, 이정표가 부실하므로 길찾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관악산 북남종주는 지구력, 암릉산행 능력, 독도능력을 보통 수준 이상 갖춰야 완주할 수 있다.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와 120m 직진해 남현제일부동산과 로데오김밥 쪽으로 우회전한 뒤 600m 직진하면 관음사 입구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400m 가면 관음사에 닿고, 여기서 우측 산길로 들거나 관음사 입구에서 바로 산길로 들면 된다.

사당능선에서 직등하는 암릉 구간에는 ‘위험’ 안내판이 있으며 우회하는 것이 안전하다. 얼음이 없는 시기에는 암릉 구간이라 해도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일반적인 코스다. 다만 고정로프나 난간 같은 시설물이 없으므로 북한산처럼 친절한 바윗길은 아니다. ‘위험’ 안내판이 있는 암릉 구간은 여러 곳이 있는데 보조로프를 준비해야 할 정도는 아니며, 초보자가 아니라면 집중력만 가지면 오를 수 있는 곳들이다. 초반 암릉길은 얼어 있어 우회하는 것이 좋고, 관악문부터는 바윗길로 가는 것이 산행의 참맛이다.

연주대에서 연주암 내려서는 길에는 기념촬영 장소인 ‘연주대 포토존’이 있다. 연주암에는 화장실이 있으며 효령각 옆의 계단을 오르면 다시 주릉으로 이어진다. 팔봉능선 방향이 직진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왼쪽으로 길을 잡아야 관양능선으로 이어진다. 관양능선은 산길이 얽혀 있고 이정표가 적으므로 길찾기에 극도로 주의해야 관악산산림욕장을 거쳐 관양고교로 내려설 수 있다.

교통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2호선은 5번 출구를 이용하고, 4호선은 4번 출구를 이용하면 들머리 접근이 편리하다. 산행이 끝나는 지점에서 관양고교 정문으로 이동하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다. 8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5번 마을버스는 4호선 범계역과 평촌역을 경유한다.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5-5번 마을버스는 평촌역으로 바로 간다.

맛집

사당역에는 식당과 뒤풀이 가능한 술집이 무수히 많다. 도시락으로 먹을 김밥을 살 수 있는 곳은 3번 출구 앞의 김밥나라(02-588-0076), 관음사로 이어진 길목의 로데오김밥(02-522-2225)이 있다.

날머리인 관양고교 인근은 식당이 없다. 안양시청 부근의 범계역과 평촌역에 식당과 주점이 즐비하다.

※등산지도 142페이지 참조.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핫키워드

#도시근교 명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