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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서울 남부 명산 | 관악산·삼성산 걷기길] 누가 ‘악’산이라 했나요? 이렇게 감미로운 숲이 있는데

월간산
  • 입력 2017.03.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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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역~서울대~호압사~석수역 잇는 13km 서울둘레길 5코스

삼성산 호압사 인근의 잣나무숲으로 난 데크길.
삼성산 호압사 인근의 잣나무숲으로 난 데크길.

서울둘레길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개통 2년이 되지 않아 1만 번째 완주자가 나왔으며, 주말이면 서울둘레길을 걷는 이들이 여간한 국립공원 산길보다 더 많을 정도다. 제주올레에 이어 새로운 스타 걷기길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산행에 비해 쉽고 정취가 있는 산길이라 소문이 나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찾고 있다. 2014년 11월 개통한 서울둘레길은 총 8개 구간, 157km로 이뤄져 있다. 

서울둘레길 5코스는 관악산·삼성산 기슭을 잇는다. 사당역에서 시작해 낙성대공원과 서울대, 호압사를 거쳐 석수역에서 끝나는 13km 코스다. 관악산·삼성산 산행 시 보지 못했던 낮은 풍경을 볼 수 있고, 자녀나 초보자와 함께 걷기 제격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일행과 두런두런 얘기하며 걸어도 위험하지 않은 편안한 산길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하지만 둘레길이라 해도 ‘악(岳)’산인 만큼 호흡이 거칠어지고 땀이 흥건히 나는 오르막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만만히 보면 완주를 못 할 수도 있다.

관악산 산행과 마찬가지로 사당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관음사부터 둘레길이 시작되므로 골목을 따라 1.2km 정도 올라야 흙길을 디딜 수 있다. 관음사에서 주황색 서울둘레길 표지기가 손을 흔든다. 관음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역사의 유서 깊은 절이다. ‘관음’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관세음보살’을 모신 기도도량으로 마당에 3m 높이의 관세음보살 상이 있다. “관세음보살”이라 외는 것만으로 자비로서 중생을 구한다는 관세음보살, 불자가 아니지만 절마당에서 조용히 읊어본다. 절로 마음의 때가 씻겨나가는 듯 발걸음 가볍게 관악산 둘레길을 시작한다.

옆으로 가는 길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진다. 게다가 아직 빙판길이 남아 있어 엉금엉금 걸을 때가 많아 속도가 나지 않는다. 관악산·삼성산의 서울 방향인 북쪽 기슭으로 이어져 빙판길이 많은 것이다. 

관악산 기슭의 전망데크에서 본 관악구 일대.
관악산 기슭의 전망데크에서 본 관악구 일대.

심은 지 20년이 되지 않은 청년기의 나무들로 이뤄진 숲이다. 서울시는 서울둘레길에서도 삼림욕하기 좋은 곳으로 관악산·삼성산 구간을 추천하고 있다. 나무가 내뿜는 산소는 우람한 노거수보다 한참 성장하는 청년기의 나무들에게서 더 많이 나온다. 관악산이라 해서 우습게 볼 숲이 아니란 얘기다.  

흙길이 굽이굽이 사면을 따라 할머니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마냥 정감 있게 이어지고, 간간이 지푸라기를 엮어 바닥에 깐 토속적인 양탄자가 푹신한 발 디딤을 전해 주기도 한다. 영하 9℃ 날씨지만 전날 관악산에서 얼어붙은 바윗길과 씨름하던 산행에 비하면, 이건 ‘몰디브에서 모히또’ 마시는 격이다.

숲을 지나온 바람이 선사하는 상쾌함으로 땀을 씻으며 주황색 둘레길 리본을 따라간다. 중요한 갈림길에는 솟대가 방향을 일러 준다. 솟대는 과거 마을을 지켜달라는 뜻에서 조각한 새를 장대 위에 달아, 마을 어귀에 세워 두곤 했다. 마을 입구 같은 곳에 세워 수호신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인헌동 어린이공원에서 살짝 주택가와 만난 다음, 승천하는 용처럼 길은 다시 산으로 올라붙는다. 초보자에겐 힘들 수도 있겠지만 등산인들에겐 추위를 쫓기 딱 좋은 오르막이다.

큼직한 검은 바위 앞에 ‘무속신앙’ 안내판이 있다. 옛날부터 효험이 있다 하여 어머니들이 와서 자식들의 성공과 무탈함을 빌던 샤머니즘이 담긴 바위다. 아쉽게도 불에 그을린 것인지 스프레이를 뿌린 것인지 검게 칠해져 있다. 

숲속의 도서함은 운영중지 안내문이 붙었다. 숲 속에서 누구나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는데 봄부터 운영한단다. “딱딱딱” 소리에 고개 들어 보니, 높은 나무 사이에 딱따구리가 있다. 멈춰서 바라보자, 불편하다는 듯 동작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능선에서는 딱따구리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둘레길에서만 볼 수 있는 행운인 듯하다.

깔끔한 공원은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다.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것을 비롯해 일생을 나라와 백성을 위해 바쳤다. 영정을 모신 사당을 지나자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장군의 동상이 생생하게 서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낮은 산에 든다. 브론톤사우르스의 긴 목처럼 뻗은 매끄러운 껍질의 물오리나무가 부드러운 곡선의 숲을 이루었다. 얕은 오르막을 오르면 작은 잔디밭이 정상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차도를 따라 연결되고, 안경 쓴 똘똘해 보이는 대학생들을 마주치게 된다. 둘레길은 서울대 정문을 지나 관악산의 대표적인 입구인 관악산 공원에 연결된다. 점심을 해결하기 좋은 식당이 모처럼 여럿 있다. 시간도 마침 끼니때라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관악산에 든다.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낙성대 사당.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낙성대 사당.

세 성인 잠든 평화로운 리기다소나무 숲

관악산 공원길을 따라 무너미고개까지 갈 듯 이어지던 걷기길은 오른쪽 갈림길로 인도한다. 관악구에서 금천구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정표에는 ‘도란도란 걷는 길’이라 정감 있게 쓰여 있다.

리기다소나무가 콧수염처럼 귀여운 솔잎을 빼꼼 내밀은 숲 속에 ‘전망이 우수한 곳’ 안내판이 있다. 산길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전망바위를 알려 주기 위함이다. 사실 관악산·삼성산 둘레길은 숲은 좋지만 트인 곳이 드문 게 흠인데, 이곳이 그 아쉬움을 한 방에 갚는 조망 터다. 관악산과 삼성산이 울퉁불퉁 막강한 산세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솟대가 많은 갈림길을 지나자, 둘레길에서 가장 운치 있는 장소인 ‘관악산 산림쉼터’다. 메타세쿼이아, 잣나무가 곧게 뻗은 정갈한 숲 사이로 햇살이 포근하게 떨어진다. 긴장감을 풀어헤치는 힘이 있는 치유의 숲에서 크게 심호흡하며 싱싱한 공기를 최대한 들이마셔 본다.

정자 쉼터에서 얕은 언덕 위를 오르면 천주교 삼성산 성지다. 리기다소나무숲 속으로 아늑하게 오후의 햇살이 비치고 왠지 더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숲의 끝에 성모상과 세 분 성인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라우렌시오 앙베르 범 주교와 성베드로 모방 나 신부, 성 야고보 샤스탕 정 신부가 깊은 숙면에 빠져 있다.

여기서 500m 더 가면, 큼직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는 호압사다.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을 누르기 위해 세운 절이다. 호압사를 지나자 잣나무숲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데크로 만든 무장애숲길인 ‘호암늘솔길’이 길게 이어진다. 노약자와 장애인도 다닐 수 있게 장애물이 없는 데크길을 만든 것이다.

강남순환도시고속도로 곁을 지나자 걷기길도 막바지에 이른다. 사면을 따라 난 자연 흙길로 잔잔한 오르내림이 길게 이어진다. 시흥계곡을 건너 때죽나무 연리지를 지나 서울 금천구와 경기 안양시의 경계인 석수역에 닿는다. 삼림욕을 한 탓에 기분 좋을 정도로 살짝 몸이 나른하다. 

걷기 길잡이

간간이 도로를 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숲길이다. 적당히 오르내림이 이어지는 13km 코스로 5시간 정도 걸린다. 3월이라 해도 걷기길이 전체적으로 북사면이라 아이젠을 준비해야 한다. 진입과 하산이 편한 곳으로 서울대 정문과 낙성대공원이 있다. 사당역에서 서울대까지만 가거나, 낙성대에서 석수역까지만 가는 식으로 나눠서 걸을 수 있다. 잔잔한 숲의 운치는 낙성대공원에서 석수역까지가 빼어나다.

서울대 정문 인근의 관악산 공원 입구가 유일하게 식당이 있는 곳이다. 서울둘레길 표지기와 안내판이 많아 전체적으로 길 찾기는 쉽다. 다만 빙판길만 주의하면 관악산·삼성산 둘레길을 하루에 다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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