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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국의 무릉도원'을 찾아서ㅣ가평 칼봉산 경반계곡] "시원하고 깨끗한 물에 내 모습 비추며 걸어요"

월간산
  • 입력 2017.08.0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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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경반분교 오지 백패킹 장소로 그만… 회목고개 올라 매봉이나 칼봉산 정상 잇기도

경반계곡 초입인 ‘백합동 한석봉마을’.
경반계곡 초입인 ‘백합동 한석봉마을’.

경기도 가평은 서울에서 가깝지만 예부터 ‘경기도 속 강원도’라 불리곤 했다. 그만큼 높고 깊은 산이 많다는 뜻이다. 이처럼 산이 많으니 여름철에 갈만한 계곡도 많다. 가평의 계곡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용추계곡이다. 맑은 물과 바위가 좋아 피서철이면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에 비해 조금은 덜 알려졌지만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이 칼봉산(899m)과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경반계곡이다.

경반계곡은 칼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수락폭포에서 시작되어 계곡을 따라 5km 정도 내려오다가 가평천과 합류해 청평 부근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경반鏡磐’이란 ‘맑은 물이 너른 반석 위로 거울처럼 비추며 흐른다’는 뜻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거울처럼 맑은 계곡물에 얼굴을 비추며 몸치장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면서 계곡의 작은 마을은 ‘경반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오지 중의 오지였으나 2007년 즈음부터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았고 결정적으로 KBS 예능프로 ‘1박2일’에 계곡 상류에 있는 경반분교 캠핑장(031-582-8009, 010-5339-7816)이 소개되면서 지금은 백패커들과 캠퍼들이 즐겨 찾고 있다.

1970년대만 해도 화전민 마을이던 경반리에는 100여 가구가 모여 살았다. 경반분교에 80여 명의 학생이 다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떠나갔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잣나무가 심어졌다. 마을은 점점 작아졌고 아이들도 사라져 1982년에는 학생이 3명뿐이었다. 그렇게 경반분교는 폐교되었다. 현재는 캠핑장지기인 박해붕(78)씨가 35년째 살며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반계곡으로 가는 들머리는 가평군이 운영하는 칼봉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된다. 경반분교까지는 차량도 통행할 수 있으나 길이 험하고 길 중간에 물을 건너야 하는 곳도 있어 SUV 차량이 아니면 들어서지 않는 게 낫다. 일반 승용차라면 자연휴양림에 주차하고 걸어가야 한다.

33m 높이의 수락폭포. 넓게 퍼지는 물살이 시원하다.
33m 높이의 수락폭포. 넓게 퍼지는 물살이 시원하다.
경반계곡은 인근 용추계곡보다는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경반계곡은 인근 용추계곡보다는 한가롭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경반계곡 상류로 올라가다가 경반분교(1.5km)를 지나 배씨 농가, 경반사를 거쳐 수락폭포까지 이어진다. 여기에서 직진해 회목고개로 오르면 칼봉산 정상까지 갈 수 있고, 왼쪽 등산로를 따르면 깃대봉을 거쳐 북쪽 매봉~회목고개~칼봉산으로 가거나 남쪽 대금산(705.8m)으로 등산로를 이을 수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경반계곡에 이르는 길은 걷기 좋은 임도다. 관리사무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왼쪽으로 펜션과 민박, 식당이 들어서 있는 ‘백학동 한석봉마을’이 있다. 조선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은 조선 선조 32년(1599), 초대 가평군수를 지낸 바 있다.

마을 지나면 왼쪽에 계곡을 두고 흙길을 걷는다. 차가 다니는 길답게 제법 넓은 길이다. 산보하듯 걷다 보면 개울가를 넘는 곳이 곳곳에 나온다. 길 중간에 있지만 워낙 물이 맑아 잠시 발 담그고 쉬어가기에도 좋다. 개울가를 지나면서 계곡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뀐다. 숲길처럼 그늘을 만들어주지는 않지만 세수할 수 있는 계곡이 계속 따르고 쉬어갈 만한 공간도 많이 있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개울을 몇 번이나 건너고 흙길을 40분쯤 걸으면 오른쪽으로 건물 하나가 나온다. 이제는 캠핑장으로 운영되고 있는 경반분교다. 이곳의 주인 박해붕씨는 1997년 은행원으로 명예퇴직한 후 폐교를 매입해 이제까지 살고 있다.

경반분교는 캠퍼들에게 ‘꼭 한 번 가봐야 할 오지 캠핑장’으로 불린다. 전기도 쓸 수 없고 화장실이나 개수대 등의 시설도 요즘의 번듯한 캠핑장에 비하면 한창 부족하지만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캠퍼들이 꼭 한번 오고 싶어 하는 경반분교 캠핑장.
캠퍼들이 꼭 한번 오고 싶어 하는 경반분교 캠핑장.

이른 시간에 경반분교에 도착한다면 텐트를 설치해 놓고 회덕고개로 올라 칼봉산 정상까지 다녀와도 좋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에 이렇게 좋은 계곡을 두고 산행을 하는 일은 고역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1.6km 정도 거리의 수락폭포까지만 다녀와도 좋을 듯하다.

경반분교에서 수락폭포로 가는 중간 경반사라는 작은 절과 만난다. ‘해 뜨는 절’이라는 팻말이 붙은 경반사는 절다운 운치는 조금 덜하지만 시원한 물맛을 볼 수 있고 ‘소원성취’의 종도 한 번 쳐보는 재미가 있다.

경반사에서 수락폭포를 거쳐 회목고개까지는 약 4.3km 거리다. 경반사로 들어가 오른쪽 경사면으로 올라붙는 등산로가 있으나 거리가 짧은 대신 경사가 급하다. 대개는 경반사 대문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수락폭포까지만 다녀오거나 그대로 진행해 회목고개로 간다.

계곡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면 수락폭포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머리 훨씬 위의 바위틈에서 내려와 33m 아래로 내리꽂히는 수락폭포는 매우 우렁찬 소리를 내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가 잘되지 않을 정도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폭포수 아래에 5분 정도 서 있으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다.

수락폭포에서 3.1km 정도 더 가면 회목고개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매봉(1.2km)과 깃대봉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으로 약 800m만 오르면 칼봉산 정상에 닿는다. 커다란 정상석이 있지만 주변에 잡목이 많아 나뭇가지 사이로 운악산만 살짝 보일 뿐 사방 조망은 그다지 좋지 않다. 

칼봉산 정상에서 하산은 여러 방향으로 할 수 있다. 대부분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회목고개로 내려온 후 매봉~깃대봉을 거쳐 경반계곡으로 되돌아온다. 북쪽 능선으로 내려오면 용추계곡 상류로 내려선다. 마음먹고 두 계곡을 잇는 산꾼들은 경반분교를 지나 송이봉 방향으로 올라선 뒤 깃대봉~매봉~칼봉산~용추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즐겨 이용한다. 이 경우 18km 정도 되므로 종일 산행으로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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