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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주말산행 경상도의 산ㅣ영취산 1076m / 경남 함양군 서상면, 전북 장수군 번암·장계면] 함양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백두대간의 청정 골짜기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17.08.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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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계곡과 대간 능선 잇는 13km 코스, 절터골 길찾기 주의해야

영취산 극락바위에 오르면 파노라마로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백두대간과 진양기맥에 둘러싸인 서상면 일대가 발아래로 훤하다.
영취산 극락바위에 오르면 파노라마로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백두대간과 진양기맥에 둘러싸인 서상면 일대가 발아래로 훤하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백두대간에 솟은 함양 영취산靈鷲山이 그렇다. 산도 높지만 때 묻지 않은 부전계곡을 품고 있어 한여름 산행과 피서지로 손색없다. 아직 입소문이 덜난 부전계곡은 함양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곳이다. 숲이 짙은 계곡과 연계해 산행할 수 있는 백두대간 능선도 빼어나다. 

영취산이란 지명은 <대동여지도>에 전국적으로 8곳이나 된다. 일반적으로 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불가의 산이다. 지명 유래도 비슷하다. 석가여래가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가르쳤다는 인도의 마갈타국 수도 왕사성의 산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전한다.

백두대간 영취산의 유래도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대간을 남북으로 이으며 경남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을 구획하는 경계이다. 남서쪽으로 가지 친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이며, 낙동강·금강·섬진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영취산은 예부터 경남보다 전북에서 더 주목받는 산이었다. 이는 조선시대 장수현長水縣의 진산鎭山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취산 위치도
영취산 위치도
산행은 부전계곡 입구 주차장에서 시작해 절터골을 거쳐 백두대간 주능선에 닿은 후 영취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다. 하산은 고사리재를 지나 이정표가 있는 민령 갈림길에서 대간 길을 버리고 덕운봉 능선으로 꺾어 든다. 능선 따라 덕운봉~제산봉을 거쳐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며, 약 13km이다.

주차장에서 부전계곡으로 들어서는 산길은 넓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발걸음을 옮긴다. 계곡 초입 너른 터에 부계정사扶溪精舍가 있다. 빛바랜 낡은 기왓장을 얹은 솟을대문엔 ‘만행문萬行門’이라 쓴 편액이 걸렸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 전병순이 은거하며 후학을 위해 강학하던 곳이다.

화장실과 식수대를 지나면 오래된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숲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가지를 늘어뜨린 노송이 운치를 더해 준다. 소나무 숲이 끝날 무렵 묘지 옆 갈림길을 만난다. 하산 때 내려설 지점이다. 계곡을 따라 널찍한 산길로 오르면 산속에 터를 잡은 민가도 보인다. 계곡의 물길을 두 차례 건넌다. 부전계곡의 백미인 용소를 지난다.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맑은 물빛이 청정계곡의 진수를 느끼게 한다. 계곡에 깔린 넓은 암반을 타고 흐르는 옥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더위가 확 달아난다.

산행을 시작하고 30분쯤이면 절터 골로 들어서는 갈림길. 계곡을 따르는 넓은 길을 버리고 왼쪽 좁다란 산길로 방향을 튼다. 곧 물길을 한 차례 건너 숲속으로 빨려든다. 잎을 펼친 활엽수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졌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물줄기를 쏟아내는 쌍폭을 지난다. 폭포는 산길 아래쪽 숲속에 숨어 있어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너덜지대가 시작되며 숲은 점점 짙어지고 사람 키를 넘는 산죽이 진행을 방해한다.

제산봉에서 하산은 마사토가 깔린 능선의 날등을 타고 내려선다.
제산봉에서 하산은 마사토가 깔린 능선의 날등을 타고 내려선다.
부전계곡의 백미인 용소.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맑은 물빛이 청정계곡의 진수를 보여 준다.
부전계곡의 백미인 용소.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맑은 물빛이 청정계곡의 진수를 보여 준다.
쌍폭에서 10분 정도면 다시 계곡 길은 갈라진다. 진행 방향은 직진이다. 주변은 덩굴식물과 산죽으로 뒤엉켜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산죽을 헤치고 주의를 기울여 잘 살펴야 할 지점이다.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절터골은 원시 세계다. 사람 출입이 많지 않다는 증거다. 이끼를 덮어 쓴 활엽고목은 칡덩굴을 비롯해 다래며 으름덩굴이 휘감았다. 발길에는 관중을 비롯한 고사리과의 양치류가 싱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환경부가 몇 년 전 계곡 아래 부전마을을 자연생태계 우수마을로 지정한 이유를 알 만하다.

극락의 경치 보여주는, 극락바위

희미한 산길은 사라졌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때로는 물길을 따라 오르기도 한다. 작은 계곡을 몇 차례 건너다보면 이끼 덮인 너덜지대도 끝나고 졸졸거리던 물소리도 멀어진다. 계곡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경사가 가파른 비탈길. 힘들게 올라서면 대간에서 866m봉으로 뻗어가는 지능선이다. 여기서 10분이면 대간 마루금에 닿는다. 북쪽 영취산에서 남쪽의 백운산으로 연결되는 대간 길에서 영취산으로 향한다. ‘전망 좋은 곳’이라는 안내판을 보고 1086.6m봉에 오른다.

산행 후 처음으로 주변 경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다. 남쪽으로 백두대간의 백운산과 그 왼편으로 대봉산이 한눈에 든다. 대간 길은 여유로웠다. 반듯한 산길은 숲 그늘을 이루었고, 산들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 준다. 1085.3m봉은 폐헬기장에 의자가 놓인 쉼터. 한 굽이 내려서면 선바위고개, 다시 한 번 올려치면 영취산 정상에 닿는다. 산정에는 삼각점과 돌탑, 정상 표지석, 이정표 등이 있으나 전망은 시원찮다. 낙엽이 떨어진 겨울에는 그런대로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산은 북쪽 육십령 방향. 15분이면 고사리재를 만난다. 고사리재는 옛날 함양과 장수를 잇는 최단 코스의 고갯길이다. 지금은 함양 최북단 부전계곡 인근의 서상면 촌로들이나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고사리재는 일제 강점기 이후 인적이 끊겨 지금은 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둘레길을 만들고 옛길을 복원하는 이때 이 고갯길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겠다.

논개 생가 갈림길에서 다시 한 번 고사리재를 곱씹어 본다. 대간 마루금을 사이에 두고 전북 장수 계남면에는 의암 주논개 생가가 있고, 함양 서상면에는 주논개의 묘소가 있다. 임진왜란으로 온 나라와 백성이 도탄에 빠졌을 때, 왜장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의인의 삶과 죽음의 흔적이 대간 능선을 가운데 두고 전설처럼 남아 있다. 고사리재가 복원된다면 두 지역을 하나로 이어줄 뿐 아니라 백두대간에서 나고 묻힌 주논개의 혼령도 위로가 될 것이다. 

영취산 부전계곡은 한여름 산행과 더불어 피서지로도 손색없다.
영취산 부전계곡은 한여름 산행과 더불어 피서지로도 손색없다.
민령 갈림길의 바위봉은 주변 경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전망대. 덕유산에서 뻗어온 백두대간이 한눈에 펼쳐진다. 가야 할 동쪽의 덕운봉 능선도 열린다. 이정표에는 덕운봉이라는 표기가 있지만 실제 위치는 민령 갈림길이다. 여기서 대간 길과 헤어져 이정표 뒤 급경사 길로 내려선다.

처음으로 마주치는 덕운봉德雲峰·983m은 아무 표시도 없을뿐더러 조망도 열리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덕운봉은 옛 기록이나 고지도에 부전산扶田山으로 나온다. 부전계곡의 지명도 부전산에서 따온 것으로 짐작된다. 잠시 후, 갈림길에서 왼쪽 능선 길로 방향을 튼다. 무심코 진행하다간 계곡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894m봉 북쪽에는 조망이 좋은 극락바위가 있어 잠깐이면 갔다 올 수 있다. 

극락바위는 서상에 있다는 극락산과 지금은 없어진 옥산리의 극락사 절집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바위에 올라 둘러보는 사방의 파노라마는 극락정토 연화세계가 바로 여기 아닌가 싶다. 높고 낮은 산봉우리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은 함양의 북쪽 울타리다. 진양기맥의 월봉산·거망산·금원산은 물론, 황석산 등등 여러 산이 서로 능선을 맞대고 있다. 고봉준령의 울타리에 둘러싸인 서상면 일대의 전답과 마을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되돌아 나와 제산봉으로 향한다.

한동안 숲속으로 이어지던 산길은 전망이 트이면서 839m봉에 이른다. 갈림길이 있는 폐헬기장. 잠시 후 전망이 좋은 또 다른 헬기장을 만난다. 부전계곡이 내려다보이고, 백운산, 영취산, 덕운봉까지 조망돼 지나온 궤적이 오롯하다. 삼각점이 있는 제산봉霽山峰·852.8m은 암봉으로 짧은 암릉을 오른다. 그런대로 전망도 좋다. 제산봉의 제霽자는 ‘비가 갠다’는 뜻이니 구름의 산 덕운봉과는 대비되는 산이다.

하산은 암봉을 넘어 내려서는 길이다. 백색의 마사토가 깔린 능선의 날등을 타고 묘지 3기를 지난다. 뒤이어 소나무가 울창하고 경사가 심한 계곡 길이다. 30분쯤이면 무덤 옆 갈림길. 땀에 절어 후줄근한 몰골을 계곡물에 담그며 피로를 날린다. 가벼워진 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던 원점에서 마무리를 한다. 

영취산 등산지도
영취산 등산지도

산행길잡이

■ 부전계곡 주차장~절터골~1084m봉~선바위고개~영취산 정상~고사리재~민령 갈림길~덕운봉~극락바위~제산봉~부전계곡 주차장 <6시간 30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5)

대중교통 이용 시 함양군 서상면으로 가야 한다. 함양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지리산고속(963-3745·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 5분 거리) 군내버스 서상행을 탄다. 서상에서 산행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상부전마을까지는 버스가 없으므로 서상 개인택시(963-0094, 963-0258, 963-3304)를 타면 된다. 산행 들머리 부전계곡 주차장까지 1만 원 안팎. 군내버스를 이용할 경우, 함양~서상행 군내버스로 봉정정류장에서 내려 산행 들머리까지 4km를 걸어야 한다.

자가용을 타고 가면 대전통영고속도로 서상IC에서 내리자마자 우회전해 서하면 방면으로 4분쯤 가면 우측에 봉정정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우회전해 상원사 쪽이 아닌 부전마을 쪽 왼편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산행 들머리에 닿는다.

숙식(지역번호 055)

서상면소재지인 서상버스터미널 인근에 덕유장(963-6993), 선유장(963-9620)여관이 있다. 덕유장여관과 함께 운영하는 25년 전통의 덕유식당(962-5964)은 정식, 이삼식당(963-0055)은 추어탕 전문이다. 도천식당(963-0195)은 소머리 곰탕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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