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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주말산행 경상도의 산ㅣ황석산 1,192.5m] 함양의 마터호른, 겨울 설산을 대표하는 명산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19.02.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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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민초들의 호국정신 서린 황석산

망월대에 올라서면 달이 없어도 장관이다. 온 사방에 널린 첩첩산중 고봉준령들이 물결치듯 밀려오는 산 너울로 춤을 춘다.
망월대에 올라서면 달이 없어도 장관이다. 온 사방에 널린 첩첩산중 고봉준령들이 물결치듯 밀려오는 산 너울로 춤을 춘다.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솟구치게 하면서 남덕유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월봉산을 거쳐 거망산, 황석산, 금원산, 기백산을 빚어 놓았다. 해발 1,000m가 넘는 이 산들은 서로 능선으로 이어지며 깊은 계곡과 크고 작은 폭포, 기암괴석 등 비경을 품고 있다. 그래서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알려진 산군이다.

이 중 황석산黃石山(1,192.5m)은 산봉우리 주변에 노르스름한 바위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함양의 마터호른이라 한다. 안의면安義面의 주산인 황석산은 범상치 않은 바위산으로 풍수에서 말하는 화산火山이다. 이는 산봉우리가 뾰족하고 멀리서 보면 마치 활활 타는 불꽃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안의 고을 사람들의 불같은 열정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황석산은 너무나 잘 알려졌지만 설경을 즐기기에 좋은 겨울 산행지로 또 다른 묘미를 안겨 준다. 멀리서 보는 눈 덮인 풍경과 가까이서 보는 만발한 눈꽃은 겨울 산의 백미요, 매력이다. 특히 사방팔방 거침없이 넘실거리는 산 너울의 장관은 사람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시원하다. 또 눈 덮인 암봉은 창검을 세운 듯하고, 얼어붙은 계곡에는 새소리만 정적을 일깨운다.

연촌마을로 오르며 뒤돌아 본 유동마을. 그 너머로 기백산이 가깝다.
연촌마을로 오르며 뒤돌아 본 유동마을. 그 너머로 기백산이 가깝다.
황석산 정상은 좁은 암봉으로 사방이 절벽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황석산 정상은 좁은 암봉으로 사방이 절벽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황석산에는 다양한 등산로가 있다. 겨울철 산행은 해가 짧은 데다 눈이 많으니 여유 있게 잡는다.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해 유동마을회관~연촌마을~망월대~황석산성을 거쳐 황석산 정상에 오른다. 하산은 거북바위를 지나 북봉~뫼재 갈림길~산내골~령암사~유동마을회관을 지나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온다. 약 10km의 원점회귀로 겨울철 산행으로 무난하다.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서쪽으로 난 도로를 따르면 길가에 용추계곡 등산로종합안내판이 서있다. 초입에서는 유동마을이 보이지 않지만, 이내 산속에 갇힌 듯한 마을이 나오며 너른 공터가 딸린 마을회관이다. 산행의 들·날머리가 교차하는 갈림목으로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도 가능하다. 

이른 새벽, 조용한 마을을 지나 황석산 정상 4.1km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연촌마을 표석을 지나 한동안 포장된 도로를 걷는다. 뒤돌아보면 산중에 묻힌 유동마을이 한가롭고 건너편 기백산의 모습이 가깝게 다가온다.

민초들의 호국 일념이 묻혀 있는 황석산성.
민초들의 호국 일념이 묻혀 있는 황석산성.

마을을 벗어나면 제법 너른 산길이 철망을 따라 이어진다. 곳곳에 이정표가 서있어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연촌마을 상수도 급수시설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선다. 꽁꽁 얼어붙은 계곡의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두 차례 계곡을 건너고 로프지역을 벗어나면 이정표가 서있는 지능선에 닿는다. 완만한 능선 길로 969m봉을 약간 에돌아 올라서면 남동쪽 820.1m봉으로 연결되는 주능선 길과 만난다. 

     

정상을 향한 주능선 길이지만 아직 황석산 정상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정면의 망월대望月臺로 향한다. 완만한 숲길도 잠시다. 급경사에 로프가 설치된 비탈길이다. 로프를 붙잡고 힘들게 올라선 망월대는 달이 없어도 장관이다. 탁 트인 사방으로 산 물결이 춤을 춘다. 정면에 황석산의 자태가 아름답다. 중앙에 바위를 망토처럼 두르고 솟은 황석산 정상의 모양새가 우뚝하다. 좌우로 남봉과 북봉이 어우러져 뫼 산山자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황석산에서 능선 따라 북으로 거망산을 지나 수망령 너머 덕유산이 조망되고 금원산, 기백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수도산에서 가야산까지, 가깝게는 거창의 보해산, 의상봉, 오도산, 합천의 황매산, 의령의 자굴산, 한우산 등등이 층층겹겹을 이룬다. 남쪽에는 지리산의 웅석봉을 비롯해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주능선의 영봉靈峰들이 하늘금을 긋는다. 백두대간의 마루금 따라 오른쪽으로 백운산, 깃대봉이 아스라하고 대봉산, 도숭산은 손을 내밀면 잡아 줄 것 같다. 온 사방에 널린 높고 낮은 첩첩산중 고봉준령들을 모두 헤아리기도 벅차다. 이런 풍경에 달까지 뜬다면 어떤 경치일까? 망월대라는 이름이 거저 붙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산내골로 내려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석산의 등마루가 낙타 등처럼 꿈틀거린다.
산내골로 내려서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석산의 등마루가 낙타 등처럼 꿈틀거린다.

발걸음을 옮기면 곧 이정표(황암사 4.5km, 황석산 정상 0.6km)가 서있는 갈림길이다. 황암사黃巖祠는 1597년 정유재란 때 황석산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500여 호국선열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다시 능선 길로 한 굽이 넘어 오르면 황석산성 동북문이다. 산성은 자연 암릉을 이용한 요새다.

사적 제322호인 황석산성은 정유재란 당시 정규군이 아닌 의병과 일반 백성들이 왜군 7만5,000여 명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결국 성은 함락되고 함양 군수 조종도와 안음 현감 곽준이 전사했다. 성 안의 남자들이 모두 왜군에게 죽임을 당하자 부녀자들은 바위 절벽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그 흘린 피가 내를 이루었다고 하여 지금도 피바위라 이름 붙은 바위가 전해 내려온다. 민초들의 호국 일념이 묻혀 있는 애잔한 역사다. 

산성 안의 우전 갈림길에서 암봉인 정상으로 오른다. 경사가 가파른 바위에 계단과 로프가 설치돼 있다. 정상에는 바위 면에 붙여 놓은 조그만 표지석이 있다. 황석산 정상은 좁은 암봉으로 사방이 절벽이라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장쾌한 조망이 감동적이다. 백운산을 넘어 육십령을 건너온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덕유산으로 내달린다.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남봉의 걸출함이 인상적이다. 하산은 되돌아 내려와 거망산 방향으로 향한다. 

망월대에서 바라본 황석산은 좌우로 남봉과 북봉이 어우러져 뫼 산山자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망월대에서 바라본 황석산은 좌우로 남봉과 북봉이 어우러져 뫼 산山자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바위벽을 돌아나가 성을 타고 거북바위 능선으로 오른다. 뒤돌아보면 망월대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부드럽다. 반면 황석산 암봉은 하늘을 찌를 듯 그 꼿꼿한 산세가 헌걸차다. 산등성이에 자리한 경주 이씨 묘지를 지나면 거북바위다. 덕유산을 바라보는 거북의 등에 오르면 가야 할 산내골이 내려다보이고 건너편 기백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능선이 끝날 무렵 거대한 북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정표와 함께 암릉 길은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북봉 서쪽의 바위벽 아래로 우회하는 길도 만만치 않다. 눈이라도 쌓이고 얼어붙는다면 암릉 길 못지않게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로프가 설치돼 있지만 조심해야 한다. 빤히 보이는 거망산 능선이 부드럽다. 북봉을 벗어나면 부드러운 능선 길에 헬기장을 만나고 곧 갈림길인 뫼재에 닿는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유동(탁현)마을 방향의 산내골로 내려선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1km쯤 지나면 산길은 다시 계곡으로 꺾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석산의 등마루가 낙타 등처럼 꿈틀거린다.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낙엽송 지대를 만난다.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설치된 철망 울타리를 끼고 가면 령암사라는 절집이다. 여기서부터 도로를 따라 유동마을회관으로 되돌아온다. 마을을 벗어나 버스정류장까지는 500여 m 더 걸어야 한다. 약 2.5km의 포장도로가 다소 지겨울 즈음이면 산행이 끝난다. 아직 적설량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조망은 절경이었다. 

산행길잡이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유동마을회관~연촌마을~망월대~황석산성~황석산 정상~거북바위~뫼재 갈림길~산내골~령암사~유동마을회관~유동마을 버스정류장 <5시간 30분소요>

교통

황석산은 함양에 속하지만 대중교통편은 거창을 경유해야 편리하다. 수월하게 접근하려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안의로 간다. 안의는 거창, 함양, 장계 등을 연결하는 교통요충지다. 안의 버스터미널(1666-0448)에서 산행 들머리까지는 용추사행 군내버스(서흥여객·055-944-3720)를 타고 유동마을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안의 버스터미널에서 용추사행 버스는 08:30~18:30 매시 30분에 출발하며 20분 정도 걸린다. 이 버스는 용추사에서 안의로 다시 되돌아와 거창으로 간다. 

숙식(지역번호 055)

안의는 본래 함양보다 큰 고을이었을 정도로 유래가 깊으나 지금은 면 단위로 

숙박에 약간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유일한 숙박업소인 운성장모텔(964-1399)은 

시골 여관치고는 깨끗하다. 

예로부터 안의는 선지와 야채로만 속을 채운 피순대와 갈비탕이 유명하다. 옛날할매순대(962-4306)와 약초시장 건물 2층에 있는 장터식당(962-0231)이 전문점. 갈비탕은 수십 년씩 전통을 이어오면서 이미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안의원조갈비집(962-0666)을 비롯해 금호식당(964-8041), 할매갈비식당(962-0163), 안의갈비탕삼일식당(962-4492)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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