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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산악 영화 “ 감동적 vs 터무니없다”|⑰ <인투 더 와일드>]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젊은이의 고뇌

글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 입력 2019.03.15 10:21
  • 수정 2019.04.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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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심만으로 야생에 도전했다 죽은 주인공의 실화 다뤄

인투 더 와일드

(Into the Wild, 2007)


감독 숀 펜

출연 에밀 허쉬(크리스 맥캔들리스), 빈스 본(웨인 웨스터버그)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크리스(에밀 허쉬)는 전 재산인 2만4,000달러를 모두 국제 빈민구호단체에 기부하고, 가족과의 연락을 끊은 채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렉산더 슈퍼트램프’라 짓고 산과 계곡, 바다로 모험을 시작하며 히피족과 농부, 낭인 커플, 가죽 세공인 등 여러 사람들을 만나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2년 뒤, 자신이 원하는 최종 목적지인 알래스카로 떠나지 못하고 유타주 산간 지역의 만년설 속에서 길을 잃은 채 크리스는 버려진 버스 안에 정착, 자연에 묻혀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도시와 문명에 익숙한 그의 몸은 야생의 생활을 버텨내지 못한다.

신용관(이하 신) 이번 호에서는 충성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영화 <인투 더 와일드Into the Wild>(감독 숀 펜, 2007)를 다루려고 합니다.

박정헌(이하 박) 러닝 타임이 148분이나 되는데 전혀 지루한줄 모르고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역량 덕분일 텐데, 놀랍게도 감독이 숀 펜Sean Penn(59)이더군요.

 성격파 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감독도 겸하고 있었군요.

 로버트 레드포드와 워렌 비티를 필두로 할리우드 배우 중에는 감독을 겸하는 이들이 적잖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조지 클루니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숀 펜은 사실 마돈나와의 결혼으로 유명한 배우 아닌가요?

 맞습니다. 팝 디바 마돈나와의 결혼과 이혼으로 단번에 유명세를 탔는데, 한번은 사진 기자를 폭행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지요. 하지만 숀 펜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은 미스터리 스릴러 <미스틱 리버Mystic River>(2003)에서의 호연으로 제76회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연기파 배우입니다.

 우리가 다룰 <인투 더 와일드>도 영화상 복이 있었나요?

 권위 있는 ‘미국 감독 조합상’의 감독상 후보와 제80회 미국 오스카 남우조연상(할 홀브룩)과 편집상 후보에 오르는 등 그 완성도를 인정받았습니다. 제65회 골든 글로브에서는 주제가상을 받았습니다.

 어쩐지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흘러나오는 여러 노래들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큰 상을 받았군요.

 영화는 “나는 사람을 덜 사랑하기보다 자연을 더 사랑한다”는 바이런의 시구詩句로 시작합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미국의 대학을 갓 졸업한 한 청년이 가족과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혼자서 알래스카 장거리 여행을 시작하는데, 자연에 고립된 채 굶주림으로 사망한다는 얘기지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크라우커라는 이름으로 2002년에 출간된 책이 원작입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을 유타주 산간지역 초입에 데려다준 뒤 추위를 버티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장화를 건네준 트럭 운전사 외에는 모두 가상인물이라고 하네요.

 문명을 떠나 자연의 삶을 동경하던 청년은 알래스카 사냥꾼들의 쉼터였던 버려진 버스에서 죽은 지 2주 만에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는데, 그가 적은 노트에는 113일이 기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버스 문 옆에는 구조요청 메모도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영화 내용과 직결되니 옮겨보겠습니다. “S.O.S. I need your help. I am injured, near death, and too weak to hike out of here. I am all alone, This is no joke. In the name of God, please remain to save me. I am out collecting berries close by and shall return this evening. Thank you, Chris Mccandless. August?”

(S.O.S. 살려주세요. 다쳐서 거의 죽을 지경이고, 너무 약해져서 밖에도 못 나갑니다. 저는 혼자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걸고 진짜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제발 저를 구하게 기다려 주세요. 근처에 산딸기 따러 나가 저녁에 돌아옵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 맥캔들리스. 8월?)

 저도 자료를 찾아봤는데, 그가 남긴 기록을 볼 때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탈출을 시도했으나 빙하가 녹아 불어난 강물 때문에 실패하고 패닉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알래스카공원 관리자 말에 따르면, 젊은이들이 알래스카의 야생 자연에서 지내기 위해 오곤 하는데 맥캔들리스의 죽음은 제대로 된 사냥법이나, 생존법에 대한 지식과 기본적 장비도 없이 모험심만을 갖고 저지른 행동이 초래한 비극이라고 합니다.

 지도 한 장만 있었어도 그는 그곳을 쉽게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가 머문 버려진 버스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강을 건너는 도르레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고, 여행자들을 위한 산장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군요.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무모하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한 청년의 일탈로 여겨지겠지만, 저 같은 산악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순수를 향한 젊은이다운 열정 비슷한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때는 1992년입니다. 휴대폰은 당연히 없고, PC도 일반화되기 전이지요. 미국 조지아주 에모리대학을 갓 졸업한 크리스 맥캔들리스(에밀 허쉬 분)는 산악지역에서 몇 달간 자급자족하려 길을 떠납니다. 에모리대학은 애틀랜타에 위치한 명문 사립대학교입니다. 미국에는 그런 모험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K2에서 만난 제이라는 미국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오로지 히말라야에 오기 위해 1년 내내 알래스카 탄광에서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서부개척시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 같아요. 워낙 자립심을 강조하는 교육 문화도 있고요.

 영화 초반부터 시종일관 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실린 감미로운 음악이 흐릅니다. 영화의 스토리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모험심’과 달리 꽤 낭만성을 띠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저는 음악은 잘 모릅니다만 골든 글로브에서 주제가상을 받을 만했다고 봅니다.

 주인공 크리스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과 계곡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개울을 건너는데 등산화를 신은 채 그냥 들어가더군요. 겨울인데 신발이 젖으면 발이 얼지 않나요?

 여분의 등산화가 있었겠지요. 개울에는 반드시 신발을 신은 채 들어가야 합니다.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맨발이 훨씬 더 미끄럽고, 개울 바닥에 날카로운 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뭘 믿고 물속에 맨발로 들어가나요.

 크리스는 산 중턱 평원 한가운데에서 버려진 버스를 발견합니다. 수저통, 조리기구, 화덕, 통조림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사람이 생활한 듯 보입니다. 매트리스도 있고, 버스 지붕에 연통도 뚫어놓은 상태지요. 크리스는 매트리스 먼지를 털어내며 정리정돈을 합니다. 거처로 삼고는 ‘마법의 버스’라 부르기로 합니다. 

 버스 내부의 상태로 볼 때 얼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곳이 분명합니다. 실제 일본의 곰 전문 사진기자가 평생을 알래스카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곳 생활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 결국 야생동물에 물려 죽고 말았지요.

 영화에서는 먹을 물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급되더군요.

 계곡 물을 받아먹는 거지요. 알래스카 눈과 얼음이 녹은 아주 좋은 수질의 물이지요.

 영화는 중간 중간 주인공의 지난 시절을 보여 줍니다. 대학 졸업식 때 단상에 훌쩍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크리스가 유난히 형식과 격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타입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캠퍼스 커플인 부모도 같은 에모리대학 동문입니다. 졸업을 맞아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하버드 로스쿨을 갈 수 있을 정도의 학점 관리를 해놓았다는 대사도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산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우리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소셜시큐러티넘버social security number증도 불에 태우고요.

 뭐, 긍정적 의미의 ‘삐딱이’ 쯤 되겠습니다.

 이른바 ‘절대적 자유’를 찾아 산에 들어가는데, 산 입구까지 타고 갔던 차도 폐기하고 번호판마저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소지하고 있던 현금도 모두 불에 태웁니다.

 아무도 자신의 뒤를 쫓지 못하게 아예 모든 흔적을 없애 버린 거지요. 젊은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대단합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이유가 일부 나옵니다. 크리스 여동생의 목소리로 나오는 내레이션이 설명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오누이의 아버지는 천재 소리를 들었던 위성레이더 시스템 설계 전문가로 나사NASA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크리스를 임신했을 때 아버지가 유부남이었다는 거지요.  

 여동생을 낳을 때까지 유부남이었으니, 이 오누이는 이른바 사생아들이었던 거지요. 이 남매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격렬한 부부싸움을 목격하며 성장했던 겁니다. 

 저는 그 스토리를 접하고서 ‘참 배부른 소리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여러 방황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만, 달리 접근하면 먹고사는 게 해결된 사람들이 유난히 진리니 자유니 찾는다는 거지요. 당장 생계가 시급한 사람들은 그런 한가한 소리를 할 여력이 없거든요.

 하긴 주인공 크리스도 부모 덕분에 중상류층 생활을 하던 중이었지요.

 총기류 소지가 허가된 나라답게 크리스는 총으로 야생동물을 사냥해서 불 피워서 구워 먹습니다. 박 대장님은 사냥 경험이 있으신지요?

 저는 사냥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렸을 때 개구리나 참새를 잡아서 구워 먹는 정도였지요.

 ‘마법의 버스’를 발견하기 전 이곳저곳을 떠돌던 크리스는 히치하이킹에서 장년 히피 커플을 만납니다. 

 지난해 제주에서 집 없이 2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부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40대 초반이었는데 직장 생활을 접고 토치와 버너, 텐트만 등에 짊어지고 여행하면서 살고 있더군요. 그 자유로움이 부럽더군요.

 이야기는 잠시 현재로 돌아와 마법의 버스에서 3주째 보내고 있던 크리스는 쌀이 떨어지고 사냥감도 없어 가죽 혁대에 새로 구멍을 잇달아 뚫어야 할 정도로 여위어가고 있습니다.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사설탐정을 고용해 아들을 찾고 있고요. 이렇다니까요. 자식이 저 좋은 대로 하고 있을 동안 부모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으니.

 오가다 만난 사냥꾼으로부터 야생동물 처리법을 배웁니다. ‘동물을 잡으면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먹을 수 있는 부위를 잘라내야 한다’, ‘시간이 관건이다’, ‘파리가 앉으면 안 된다’, ‘파리가 알을 낳으면 구더기가 들끓어서 고기를 버려야 한다’, ‘심장 간 콩팥 내장은 제거해야 한다…’.

 파키스탄령 에베레스트 지역에서는 현지어로 ‘접개’라 부르는, 소와 야크를 교배시켜 만든 동물이 있습니다. 지역 원주민들이 이 접개를 잡으면 재빨리 고기를 썰어내 빙하 안에 저장시켜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지요. 구더기가 끓기 시작하면 기생충이 다 퍼졌단 얘기이기 때문에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카누를 타고 거친 물살을 헤치면서 내려오는 장면도 나오던데요.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은 “일반인은 그곳에서 카누를 타려면 1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대사가 아주 웃기더군요.

 연인원을 제한하고 있어서 그렇지요. 우리 한라산 백록담도 올 가을부터 등반 인원 제한을 시범 실시한다고 합니다. 이미 설악산, 지리산은 지역별로 휴식년제를 운영하고 있고요.

 가이드를 동반해도 이용료가 2,000달러나 하더군요. 크리스는 버려진 카누를 주워 헬멧도 없이 불법으로 무작정 혼자 타고 내려옵니다. 정말 ‘무데뽀’더군요(웃음). 

 그랜드 캐니언에서 카누를 타려면 영화에도 나오듯 ‘퍼밋permit’이 있어야 합니다. 카누로 번역했던데 화면에 나온 건 카약입니다. 카약은 상반신을 제외하고 아랫부분이 전부 천으로 덮여 있는 거고, 카누는 몸 전체가 오픈되어 있습니다. 급류에서는 카누를 절대 못 탑니다. 카누는 일단 뒤집히면 복원이 불가능하거든요. 카약은 250만~500만 원가량 하는데 저도 카약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그 카약을 타고 크리스는 1990년 2월 코르테즈해를 따라 멕시코까지 내려갑니다. 36일 동안 동굴에서 생활하고, 카약이 태풍에 날아가자 밤 화물기차를 타고 미국으로 불법 입국합니다.

 저도 동굴 탐험 경험이 있습니다. 네팔 무스탕 지역으로 800여 개 석회 동굴이 있는 곳이지요. 규모가 워낙 커서 동굴 안에서 텐트 치고 잠도 자고 합니다.

 미국 내에서 밤에 몰래 화물열차를 타고 이동하는데요. 어디선가는 철도 무임승차했다고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피투성이가 돼 쫓겨나기도 합니다.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더군요.

 도시의 비정함 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의 양면성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합니다.

 장년의 히피 아줌마는 집 나간 아들의 얼굴을 본 지 2년이 넘었다면서 크리스와 헤어질 때 털모자를 선물합니다.

 모자 하나의 위력은 느껴본 사람은 알 겁니다. 인간의 신체 부위 중 머리가 열손실이 가장 크지요. 제가 머리를 기른 이유가 답답해서 모자 쓰는 걸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머리털이 모자와 같은 역할을 하거든요. 

 버스 생활 100일째를 넘긴 크리스는 독성 식물을 착오로 먹게 됩니다. 복통과 구토가 이어지고 허기까지 겹쳐 극도로 쇠약해지지요. 1992년 3월 22일 메모에 ‘말 그대로 자연에 갇혔다’고 적습니다. 그리고는 ‘행복은 나눌 때만 현실이 된다 Happiness is real when shared’는 마지막 메모를 남긴 채 사망합니다. 

이 영화에 대한 총평을 하신다면.

 히말라야가 너무 관광지처럼 되어가면서 수년 전부터 알래스카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천연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거지요. 

이 영화는 알래스카의 풍광을 보여 주면서 젊은이의 고뇌를 담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들도 한 번쯤 봐야 할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박정헌 대장
안나푸르나 남벽 한국 초등(1994), 에베레스트 남서벽 한국 초등(1995), 낭가파르바트 문 라이트 등정(1997), K2 남남동릉 무산소 등정(2000), 시샤팡마 남서벽 신 루트 등정(2002) 등의 기록을 가진 한국의 대표적 등반가. 
2005년 히말라야 촐라체 원정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생환했으나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었다. 
이후 패러글라이딩에 입문,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에서 캉첸중가까지 3,200km를 하늘을 날아 종단했고, 2015년에는 자전거와 스키, 카약 등을 이용해 히말라야 5,800km를 횡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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