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 83] 우리나라 최초 '서명응의 백두산등행도'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입력 2019.06.13 17:08


백두산 천지와 주변 봉우리의 명칭은 언제 누가 처음 지었을까. 중국에서는 백두산 천지와 16봉의 명칭은 1908년 백두산 일대를 답사한 청조 지방관인 유건봉劉建封이 펴낸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崗志略>에 근거해 유건봉이 처음 명명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천지와 백두산 봉우리에 대한 선조들의 업적은 제쳐놓은 채 유건봉의 성과를 따르는 경향이다.

우리 선조들은 백두산정의 호수를 가리켜 ‘하늘에 있는 거룩한 못’이라 하여 천지天池라 하고, ‘이 세상의 못 가운데 가장 큰 못’이라는 뜻에서 대택大澤 또는 대지大池라 했고, ‘용왕이 사는 못’이라 하여 용왕담龍王潭이라 불렀다. 그러나 조선시대 고지도 중 ‘천지’라고 표기한 지도는 찾아볼 수 없고, 최남선崔南善도 <백두산근참기白頭山觀參記>에서 “천지는 언제 누가 지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천지’라는 명칭은 유건봉보다 훨씬 전에 우리 선조들의 백두산 기행문에 등장한다. 1751년(영조 27) 갑산부사 재임시절 백두산을 오른 이의철李宜哲은 그가 지은 <와유록臥遊錄>에 실린 ‘백두산기白頭山記’에서 백두산 봉우리 7개가 둘러싼 큰 못을 ‘천지’라 하고 그 크기와 모양까지 설명했다. 정조 때 문신인 성해응成海應 또한 그의 문집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실린 백두산기에서 천지를 언급했다. 

백두산 봉우리에 대해서는 1764년 백두산을 오른 박종朴琮이 <백두산유록白頭山遊錄>에서 “대개 석봉들이 사면에 늘어섰는데 그 수가 큰 것은 16~17개이고, 그보다 작은 것은 30개이며, 아주 작은 것은 60개나 되었다”고 봉우리 수를 소상히 밝혔다. 성해응은 12봉우리를 언급했고, 서기수徐淇修는 <유백두산기>에서 병사봉兵使峰과 와갈봉蛙喝峰을 언급하면서 백두산 봉우리 이름은 후세의 뜻있는 자를 기다려야 된다고 했다.  

그러나 1776년(영조 42) 조엄趙曮과 함께 백두산을 오른 서명응徐命膺은 백두산 12봉의 이름을 짓고, 천지지도天池地圖와 백두산등행도白頭山登行圖를 그려 그 기록을 남겼다. 천지지도를 직접 살핀 이상태李相泰 박사에 따르면 이 지도는 어린 대나무를 원료로 만든 죽지竹紙에 그려졌으며, 신문지를 펼친 정도의 크기라고 했다. 백두산 등행도는 고 이종학李鍾學 선생이 수원박물관에 기증해 전해지고 있으나, 천지지도는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서명응의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에 따르면, 1766년 5월 21일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그는 임금으로부터 홍문관록弘文館錄을 주관하라는 명을 받았으나 사양하다가 노여움을 사 갑산甲山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조엄이 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명을 따르지 않자 삼수三水로 유배되었다. 이들은 유배 길에 서로 만나 함께 백두산을 오르기로 작정한 뒤 갑산부사 민원閔源과 삼수부사 조한기趙漢紀 등 일행과 함께 6월 10일부터 6월 17일까지 백두산에 올랐다.

옆으로 길게 그려진 지도는 앞쪽에 ‘백두산동행인원록白頭山同行人員錄’이란 제하에 백두산에 동행한 63인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다음에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의 전체 크기는 가로 590.4cm, 세로 33.4cm이고 지도만의 크기는 가로 233.7cm, 세로 24cm이다. 명단에는 직책까지 적었는데 서명응과 조엄ㆍ민원ㆍ조한기 외에 무관은 민정환閔廷桓 포함 4인, 사대부가의 집사인 겸인人 4인, 종을 뜻하는 예인人 3인, 갑산부 소속 장교將校 13인, 아전인 리吏 10인, 수령의 사환인 통인通引 5인, 원의 명령을 큰 소리로 전달하는 급창及唱 6인, 사령使令 1인이었고, 삼수부 소속 장교 1인·리 6인·통인 3인·급창 2인ㆍ사령 1인이다. 

지도는 종이에 채색 필사로 그렸고, 방위는 동쪽이 위로 놓여 있다. 그려진 범위는 지도의 왼쪽(동쪽)은 백두산, 오른쪽(남쪽)은 후치령厚致嶺, 위쪽(동쪽)은 갑산과 길주의 경계, 아래쪽(남쪽)은 혜산惠山으로 비교적 넓은 지역이다. 등행로는 붉은색 선으로 갑산-동인보同仁堡-운총보雲寵堡-허항령虛項嶺-삼지三池-천수참泉水站-두만강 최상류의 참站까지 그려졌는데, 이정里程까지 표시되어 있다. 이정에 따르면 갑산에서 두만강 최상류 참까지의 거리는 315리이다. 

6월 14일 백두산 산정에 오른 서명응은 천지 둘레와 봉우리의 숫자를 파악하는 한편 화원畵員에게 천지와 봉우리를 그리게 하고, 지남침으로 봉우리의 위치를 측정해 십이지간十二支干에 맞춰 12봉우리의 이름을 백두산의 형세와 천문ㆍ주역ㆍ풍수ㆍ방위 등을 참작하여 짓고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이를 정리하면 북쪽子에 현명봉玄冥峰, 북동쪽丑에 오갈봉鳥碣峰, 동북쪽寅에 대각봉大角峰, 동쪽卯에 청양봉靑陽峰, 동남쪽辰에 포덕봉布德峰, 남동쪽巳에 예악봉禮樂峰, 남쪽午에 주명봉朱明峰, 남서쪽未에 황종봉黃鐘峰, 서남쪽申에 실침봉實沈峰, 서쪽酉에 총장봉總章峰, 서북쪽戌에 신창봉神倉峰, 북서쪽亥에 일성봉日星峰이다. 

서명응의 기록을 보면 처음 백두산에 올라선 것은 최고봉 동북쪽의 안부鞍部로 추정된다. 그곳에서 천지를 조망하면서 동남 언덕의 세 봉우리를 정황석산正黃石山이라 했고, 천지의 이름을 ‘태일택太一澤’이라 지으면서 가장 빼어난 봉우리를 황중봉黃中峰이라 했다. 그렇다면 백두산 봉우리는 12개가 아니라 14개가 된다. 

 14개 봉우리 이름을 현대지도의 봉우리와 비교해 보면 황중봉은 최고봉인 장군봉이고, 봉우리가 셋이라는 정황석산은 삼기봉三奇峰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리고 현명봉은 지금의 천문봉天文峰이고, 오갈봉은 자하봉紫霞峰, 대각봉은 자암봉紫岩峰, 청양봉은 쌍무지개봉, 포덕봉은 망천후望天吼, 예악봉은 해발봉, 주명봉은 제비봉, 황종봉은 와호봉臥虎峰, 실침봉은 낙원봉樂園峰, 총장봉은 청석봉靑石峰, 신창봉은 백운봉白雲峰, 일성봉은 녹명봉鹿鳴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1월 3일자 중앙일보에 ‘최초 백두산 등산지도 발견’이란 제하에 서명응이 제작한 두 지도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지도는 이종학 선생이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구입했는데 백두산등행도에는 화공畵工 조현규의 낙관이 찍혀 있고, 천지지도에는 두만강과 토문강이 발원지를 달리 하는 강임이 명확히 표시돼 있으며, 토문강에는 경계를 나눈다는 뜻의 ‘분계강分界江’도 같이 적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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