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문화인류학 <10>ㅣ인도 닐기리산군의 석청 채집] 쿠룸바족 선조의 지혜 담긴 ‘벌집 남겨두기’

글 오영훈 기획위원
입력 2019.12.13 10:35
특정 절벽 신성시 여겨 지속가능한 석청 채집 가능… 중간상인 불법 활동으로 숲 훼손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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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기리산군 전경. 사진 모하메드 리즈완.
아시아 산악지대에서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는 가파른 벼랑에 매달려 석청을 따는 모습이다. 벌에 쏘일지도 모르고, 자칫 잘못하면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 꿀을 따는 이들은 대체 누굴까? 그리고 이들은 어떻게 꿀과 바위와 산을 대하고 살아왔을까? 이번 연재에서는 인도 남서부 닐기리Nilgiri산군에서 석청을 채집하는 주민들의 경제구조와 생태관을 살펴본다. 

닐기리는 타밀어로 ‘파란 산’이란 뜻이다. 해발 2,000m급 산릉이 넓게 퍼져 있으며 강수량이 많아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이다. 경기도 절반 정도의 면적에 4,000여 종의 식물, 700여 종의 척추동물이 서식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1986년에는 인도에서 최초로 생물권보호지역Biosphere Reserve으로 지정됐다.

지난 200여 년 동안 닐기리 지역의 숲의 역사는 훼손의 역사다. 먼저 영국 식민지배시기(1858~1947년)에는 커피, 차 농장이 들어섰다. 유칼립투스나 욋가지, 티크 등을 채집·가공해서 파는 임업도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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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주민들이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석청을 따고 있다.
그러자 임금노동을 찾아 외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립 이후에는 지역 산업 성장이 탄력을 받아 유입 인구가 더욱 급증했다. 땔감, 퇴비 수요가 늘었고, 사람들은 숲을 깎아 농지를 만들었다. 농지에는 농약을 쓰기 마련이었다. 숲의 생태가 위협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특히 차 농장이 닐기리 지역의 가장 큰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였다. 살충제와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단일작물 경작지가 확장될수록 숲의 생물다양성은 계속 감소했다. 모든 농장이 획일화된 상품을 내놓으니 불안정성도 컸다.

차뿐만 아니라 커피, 채소, 벼, 바나나, 생강, 옥수수 등 이 지역의 상품작물 모두 상황이 비슷했다. 식량자급률은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주민 영양상태도 악화됐다. 게다가 사냥과 화전은 불법화돼 선조들처럼 수렵채집에 의존해 살기도 힘들어졌다.

숲은 전 방위로 파괴되어 갔다. 농업을 위한 관개시설 확충, 전력생산을 위한 수력발전소 건립, 차 농장과 카다멈(향신료의 일종) 농장 확장 등이 계속됐다. 코끼리나 호랑이, 표범 등 대형 동물들의 서식처까지 파괴됐다. 그러자 이 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와 사람에 직접 해를 끼치는 문제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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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주민들이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석청을 따고 있다.
중간상인 활동으로 불법 채취 성행

이처럼 숲의 파괴가 진행된 것은 이 지역이 주 경계에 걸쳐 있기 때문에 관리가 취약한 탓도 있다. 닐기리산군은 케랄라(남서부), 타밀나두(동부), 카르나타카(북부)의 세 주에 걸쳐 있고 나가르홀, 사일런트밸리, 반디푸르 국립공원 세 곳을 포함하고 있다. 넓고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당국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선 밀렵꾼이나 벌목꾼이 활개치고 있다. 닐기리 북서쪽 가장자리 나가르홀국립공원의 코끼리·호랑이 밀렵은 국제적으로도 악명 높다.

게다가 임산물 채취에 관한 법률이 서로 다르다. 세 곳 중 케랄라주만 석청 채집이 합법이다. 이로 인해 케랄라주에서 대량으로 석청을 구매해 다른 주로 넘겨 파는 중개상인이 많이 생겨났다.

현재 닐기리 보호지역에는 산악지대에 널리 퍼져 사는 쿠룸바족, 저지대의 이룰라족,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해 온 무두바족과 그외 10여 개의 군소 종족들이 제각각 전통 생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대체로 농장노동자로 전향해 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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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생줄기를 꼬아 로프를 만든다.
이들은 인도 종족 구분으로 ‘원주민’이란 뜻인 아디바시Adivasi 계열에 속한다. 문명이 낙후됐고 개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은 정부 측의 용어다. 이들은 카스트 제도로인해 천대받았기에 영국 식민지배기나 인도 공화정기 모두 각종 지원과 보조를 받지 못하고 소외됐다.

숲에서 거주하는 이들의 특징은 큰돈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숲이 바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저축은 농경과 산업사회의 경제관이다. 이들은 혼인, 장례, 축제, 치료 등 목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동네 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린다. 이자는 연 20%에 달할 정도로 높다.

임산품을 채취해 내다 팔기도 한다. 임산품 중 으뜸인 석청 외에 송진, 구스베리, 가자訶子, 무환자, 순비기, 육두구 등을 채취한다. 내다 팔지 않고 실생활에 사용하는 약초도 수십 가지다. 가시비름(부기), 청비름(소화불량, 긴장), 비짜루 알(소화불량, 요로결석), 레드호그위드(가슴통증), 풍선덩굴(무릎관절 통증), 긴강남차(피부질환), 백화채(갈증), 빔바(당뇨) 등이다. 수백 년에 걸쳐 같은 숲에 살면서 자연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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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에 연이어 지어 놓은 대바위벌 벌집.
대다수 아디바시 종족들은 숲을 신성하게 여긴다. 각 마을에선 공동의 승인 없이 숲의 먹거리를 함부로 채취하는 것은 금지다. 때에 맞춰 적당량만 채취해 숲이 풍성하게 다시 자라나게끔 조절한다.

무분별한 임산품 채취는 생태환경에 악영향을 주기 쉽다. 정부가 개입해 임산품 채취에 대해 각종 규제를 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통제는 중개상인, 상인 연합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대체로 아디바시 채취자들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임산품 채취가 중간상인의 매개로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불법이다. 예컨대 제사 때 사용되는 고급 송진인 카나리움 나무 송진은 대부분 지역에서 채취 금지다. 그러나 중간상인은 1kg당 50~70루피(약 1,200~1,600원)씩 주고 사 간다. 마을 사람들은 숲을 다니며 조금씩 카나리움 송진을 모아 놓았다가 중간상인을 만나면 팔게 된다.

사실 중간상인의 활동 자체가 불법이다. 임산품 채취 허가를 받은 이들은 지역 조합에만 판매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중간상인이 부르는 값만큼 쳐주지 않는다. 규제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중간상인들이 숲의 생태계와 경제 생태계를 해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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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콩을 갈아 껍질을 까고 있다. 영국 식민시기 이후 커피 등 특용작물 재배가 확산됐다.
지속가능한 전통방식 석청 채집 

석청 채집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개된다. 세계적으로는 벵골만 안다만 열도의 옹게족, 네팔 중부의 구룽족, 필리핀 팔라완섬의 바탁족, 인도의 첸추족 등이 석청 채집으로 이름난 종족이다. 닐기리에서는 쿠룸바족이 명성을 떨친다.

석청 채집은 큼직한 기획 사업이다. 3~7월 사이가 시즌이다. 3~4명에서 최대 10명까지 ‘원정대’를 조직해 두 달 정도 산으로 떠난다. 원정비용은 최대 1,000루피(2만5,000원, 2005년 기준)까지 든다. 석청은 목청보다 돈도 준비도 더 많이 들인다. 일당은 어림잡아 100루피(약 2,300원). 마을의 평균 임금인 30~40루피(약 700~1,000원)보다 월등히 많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뤄 석 달 동안 꿀을 따면 총 1만5,000루피(약 35만 원)가량 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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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기리 보호지역의 야생벌은 네 종류다. 그중 바위에 벌집을 치는 대바위벌은 가장 몸집도 크고 꿀도 많이 만들지만 위험하기도 한 벌이다. 높은 절벽에 1~2m 간격을 두고 1.5m 길이의 큼직한 벌집을 만든다. 벌집 하나에는 꿀이 20kg까지 담겨 있다. 같은 장소에 매년 벌집을 만든다. 대바위벌은 전체 야생꿀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석청 채집 원정대는 대개 형제, 처남, 사촌 등 친인척으로 구성된다. 가장 험난한 곳에서 석청을 따기로 유명한 쿠룸바족은 대원을 구성하고 결속하는 데 큰 공을 들인다. 이 원정대는 한 번 구성되면 여러 해 동안 고정 인원으로 유지된다. 비시즌에는 각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집단농장에서 일용근로자로 일하다가 석청 시즌이 되면 다시 모인다.

벌집은 충분히 농익었을 때 딴다. 벌집 윗부분이 두툼하면 꿀이 가득 들어찼다는 신호다. 봉아峰兒도 대부분 줄어들었고 벌들도 이사 갈 준비를 할 때다. 미리 벌집을 봐 두면서 원정 떠날 시기를 가늠한다.

출발일이 다가오면 정화의식에 공을 들인다. 금식, 금욕, 기도, 목욕을 매일 반복한다. 마을 제사장에게 채집 성공을 기원하는 제의를 의뢰하기도 한다. 석청이 매달린 바위는 어머니, 채집할 때 몸을 묶는 밧줄은 아버지, 절벽 위 밧줄을 붙들어 맨 나무는 큰형님으로 받들어 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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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꿀벌은 빽빽한 수풀 속이나 나무, 바위, 야자나무 잎 아래 등에 벌집을 친다. 벌집 하나에 1~3kg 정도의 꿀을 생산한다. 워낙 다양한 꽃에서 골고루 꿀을 모아오기 때문에 약효가 좋아 가장 비싸게 팔린다.
원정을 떠나면 산속 개울가에 야영지를 마련하고 인근 벌집을 다니며 매일같이 채집에 나선다. 채집 중 벌은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전통을 무시하고 그냥 불로 태워 죽이는 이도 있다고 한다. 아래에서 연기를 피워 벌을 쫓아내는 동안 채집꾼은 바구니와 낫을 들고 기다란 대나무와 생나무 줄기로 얽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벌 쏘이는 것을 막기 위해 주문을 외고, 향이 짙은 식물을 몸에 두르기도 한다. 이때 아래에서 사다리를 잡아 주는 이는 꼭 처남이다. 인척 관계가 결속의 핵심이다.

벼랑에 매달린 모든 벌집을 다 따지 않는다. 특정 절벽은 신성하게 여겨 아예 접근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듬해 주변 절벽에 더 많은 벌집이 매달리게 된다. 벌집 남겨두기는 이처럼 민간신앙의 형태로 유지되지만 생태적인 이유가 뒷받침한다.

한 절벽에서도 벌집 두어 곳은 따지 않고 남겨둔다. 벌을 싹쓸이하지 않고 보호해야 식생 수분을 돕고 과실도 많이 열려 결과적으로 숲 전체가 건강하게 된다. 벌집 하나를 딸 때도 완전히 떼어오지 않고 일부를 남겨둔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연기가 빠지면 벌이 다시 모여 벌집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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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꿀벌은 바위나 나무 등 다양한 곳에 벌집을 친다. 대바위벌보다는 순하다. 2,000년 동안 양봉을 해왔다.
석청 따기만큼은 아니지만 목청 따기도 위험하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대나무 사다리 대신 외줄기 대나무에 덩굴을 얽어맨 봉을 타고 오른다. 나무에 발판도 만들고 이웃 나무를 지지대 삼아 오르기도 한다.

이들에게 벌꿀은 식량이자 약품이다. 비름가루, 밀가루 따위에 묻혀 먹기도 한다. 봉아는 기침에 특효가 있다. 오늘날엔 대부분 판매용이다. 중개상인에 따라 가격은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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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룸바족의 석청 따는 장면을 그린 그림. 2009년. 그림 쿠룸바 아트 리바이벌 이니셔티브.
닐기리에 꿀벌이 많은 건 꽃을 피우는 식물이 3,200여 종이나 서식할 정도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기후변화와 가뭄, 서식처 파괴로 벌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아디바시 종족 사이에서도 야생 꿀 채취를 전통문화라기보다는 목돈을 만지는 경제수단으로만 보는 경향도 늘고 있다. 생산량이 줄어 소득이 줄어드니 흥미도 떨어진다. 벌과 절벽과 나무와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생명 존중’이 점점 결여되고 있다. 푸른 산 닐기리의 생태가 위태롭다.

닐기리의 숲은 먹거리를 주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고 값비싼 삼림자원으로 돈까지 쥐어줬다. 전통 석청 채취 방식은 그런 숲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종의 생태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식물과 동물과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살았던 숲을 점차 잊고 있다. 숲을 다시 살리려면 규제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비뚤어진 시장을 바로잡고 소외된 현지 주민들을 참여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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