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내 영혼을 정화시켜 준 가야산

정두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입력 2019.12.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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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칠불봉 정상.
청명한 가을 날씨. 운전대를 잡은 마음이 구름 되어 떠돈다. 누렇게 물든 가을 들판처럼 속이 꽉 찬 사람이 됐는지 앞서가는 걸리적거리는 트럭도 밉지 않다. 이처럼 느긋하게 움직이다 보니 가야산(1,433m) 들머리에 오전 10시 20분에 도착했다. 간간이 등산객과 마주칠 때면 경쾌한 인사가 절로 나왔다. 날씨만큼 마음도 맑았다. 

천천히 오르는데 마침 혼자 오르는 젊은이 한 명이 옆을 추월해 올라간다.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정상까지 간단다. 잠시 갈등하다 이내 “같이 가자”하고 의기투합했다. 느림보 거북이처럼 오르다가 날다람쥐 같은 젊은이를 좇기 위해 토끼로 변신한다.

갑자기 빠르게 걸으려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오직 앞만 보고 오른다. 돌부리에 걸리지 않을까 스틱과 발을 조심스레 내딛는다. 세 발자국 걸으면 땀이 한 줄기씩 흘러내린다. 삼보일배가 아니라 삼보일땀이다. 흐르는 땀을 몇 번 훔쳐보다가 아예 포기하고 내버려 둔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산 곳곳의 계곡이 불어났나보다. 신명나게 들려오는 물소리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젊은이는 쉬지도 않고 나를 의식하는 듯 안 하는 듯 앞서간다. 젊은이를 먼저 보내고 계곡에 들러 엉거주춤한 자세로 감로수를 들이 마신다. 세 모금 들이키니 막힌 체증이 씻겨 내려간 듯 시원한 트림이 올라온다. 몸속에 남아 있던 나쁜 영혼과 스트레스, 미세먼지가 한데 뭉쳐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서성대에 도착했다. 모자를 벗고 잠시 땀을 식혔다. 서성대에는 정상으로 갈지 만물상으로 갈지 결정 못하고 서성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난 망설임 없이 정상을 향해 치고 올랐다. 정상까지 1.2km밖에 남지 않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거센 능선 바람에 금세 땀이 식어 추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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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기암괴석들이 빚어낸 절경은 하산하기 싫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기자기한 맛, 만물상

성큼성큼 걸어 오르자 기암괴석과 천년지기 고사목이 왜 이제 왔느냐는 듯 반겨준다. 바위틈에 멋진 자세로 세월을 이겼노라고 으스대는 소나무를 보니 가슴이 뛴다. 갑자기 들이닥친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입이 떡 벌어진다. 그러나 약 20년 전에 처음 가야산을 찾았을 때의 그 느낌에는 미치지 못한다. 돌을 잡고 기어오르던 힘든 길이 지금은 전부 데크가 놓여 있기 때문일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밑에서 본 것과, 조금 오르고 본 모습이 또 다르다. 이 멋진 장면과 감동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했으니 직접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감동의 발걸음을 잇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천하가 발아래 있으니 하늘 아래 최고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최고봉을 상왕봉이라 한 것 같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느낌. 내려가기가 싫다. 바람을 등지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만물상을 내려다보니 남부러울 게 없다.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하산한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나이의 아이들을 거느린 가족들과 마주친다. 어린 나이에도 꾸역꾸역 오르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서성대로 돌아오니 한 단체가 자리를 펴고 제대로 판을 벌이고 있다. 자연을 괴롭히는 행위다. 혀를 몇 번 차고 물을 벌컥벌컥 마신 뒤 만물상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오죽했으면 만물상이라 했겠는가. 기암괴석의 수많은 형상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가다가, 멈추고, 돌아서고, 다시보고, 사진 찍고를 무한 반복한다. 셔터를 누르기 위해 걸리적거리는 장갑도 벗어버리고 스틱도 접어 넣는다. 정상의 바위들이 웅장했다면 만물상은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아름답다.

깔딱 고개에 접어드니 심장안전쉼터가 나오고 쉬었다가라고 벤치도 있다. ‘10분 휴식으로 100세까지 건강한 삶을 즐기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휴식의 미학을 잘 표현한 문장이다. 

마저 내려서니 등산로 입구다. 집으로 오는 길, 차 라디오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이 흘러나오자 운전대의 손가락이 저절로 장단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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