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 경상도의 숨은 명산ㅣ지리산 삼각고지]환상 설경의 지리산, 붐비는 천왕봉이 싫다면?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입력 2020.01.15 11:29
벽소령~형제봉 거쳐 삼각고지 올라 별바위능선으로 원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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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하지 않은 산책로 같은 벽소령 길에 내려서면 멀리 삼봉산, 법화산, 백운산, 금대산 등이 마천골을 에워싸고 솟았다
지리산은 광활하다. 1,000m가 넘는 수많은 봉우리와 흔히 말하는 ‘아흔아홉 골짜기’는 지리산의 지리적인 높고 깊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품마저도 넓고 넉넉하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지리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새해가 되면 해맞이 산행 인파로 지리산 천왕봉은 발 디딜 곳 없이 붐비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천왕봉이 아니더라도 지리산의 아름다운 설경을 즐길 만한 곳이 있다.

겨울철 한시적으로 개방하는 벽소령 길(함양 구간)로 오를 수 있는 지리산 삼각고지다. 좀처럼 눈을 보기가 어려운 남쪽지방에서 완전하게 눈 덮인 지리산의 장엄한 풍광을 볼 수 있는 코스다. 벽소령 탐방로는 겨울철 산불 위험이 없는 시기(12월 16일~이듬해 2월 15일)에 잠시 개방했다가 봄철 산불 예방시기(2월 15일~4월 중순)에 다시 통제한다. 4월 중순부터 가을철 산불 예방기간이 시작되는 11월 중순까지는 다시 개방한다.

산행은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시작한다. 밀양 박씨 묘를 거쳐 작전도로(차량 차단기)에 닿는다. 이후 연하천 대피소 갈림길~벽소령 대피소~형제봉(1452.8m)~삼각고지(1484m)~삼각고지 지킴터~별바위등 갈림길(연하천 삼거리)~샘터를 지나 다시 작전도로에 합류, 음정마을 버스정류장으로 되돌아온다. 겨울 지리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약 15㎞에 이르는 원점회귀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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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정마을을 벗어나 지름길인 산길로 오르면 차량 차단기가 있는 작전도로에 올라선다.
음정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마을길로 들어서면 이정표(벽소령 대피소 6.7,km)를 만난다. 마을을 벗어나 지름길인 산길로 들면 물탱크와 밀양 박씨 묘를 차례로 지난다. 차량 차단기가 있는 작전도로에 올라서서 벽소령 대피소 직전까지는 이 길을 따르게 된다. 임도 같은 도로지만 그늘에는 내린 눈이 녹고 얼기를 반복해 빙판을 이룬다. 아무리 이번 겨울이 따뜻하더라도 고도가 높은 지리산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벽소령 길은 1960년대 지리산이 무장공비들의 은신처나 거점으로 기능할 것에 대비해 개설한 군사작전도로로, 현재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벽소령을 넘어 하동군 화개면을 연결하는 지방도 1023호다. 과거 하동군 의신마을에서 함양군 양정마을까지 약 21km 구간을 추가로 잇고자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당시 산악인들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직도 이 도로를 연결해야 한다는 일부 지역인사들의 주장은 계속되지만 지리산을 동강내는 일만은 없어야겠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남해에서 소금가마를 지고 함양 등 내륙으로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몇 굽이를 돌아드니 벌써 산자락이 아득히 멀어진다. 응달엔 제법 눈이 쌓여 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쌓인 눈의 양이 많아진다. 연하천 대피소 갈림길을 지나면 도로 옆에 데크가 있다. 낙석 위험 때문에 데크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길은 바위가 무너져 내리고 곳곳이 훼손돼 임도처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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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소령 대피소를 나서면 토끼봉 어깨너머로 지리산 마고할미의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생긴 반야봉이 얼굴을 내민다.
발길에 밟히는 눈이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낸다. 올려다보니 주능선에 칼날 같은 암봉이 줄지어 늘어섰다. 형제봉 주변으로 짐작된다. 벽소령 대피소 갈림길에 닿는다. 도로는 벽소령으로 이어지지만, 벽소령 대피소로 오르는 산길로 접어들어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은 지리산 10경 중 4경인 벽소명월碧宵明月이다.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이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푸른 기운이 감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진풍경을 볼 수는 없지만 벽소명월에 못잖은 눈 덮인 백색의 세상은 또 다른 감흥을 안겨 준다. 대피소 취사장에 들어가 잠시 몸을 녹인 뒤 형제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대피소를 나서면 토끼봉 어깨너머로 지리산 마고할미의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생긴 반야봉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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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조금 못미처 오른 암봉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벽소령 대피소 너머로 덕평봉, 칠선봉이 가깝다.
벽소령에서 연하천~노고단으로 가는 주능선에 칼바람이 불고 눈발이 휘날린다. 바윗길은 얼어붙어 미끄럽다. 우람한 석문을 통과하고 형제봉 조금 못미처 오른 암봉에서 지나온 길을 바라본다. 능선에서 살짝 낮은 지대에 앉은 벽소령 대피소 너머로 덕평봉, 칠선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남쪽으로 의신마을 계곡은 깊은 겨울잠에 빠진 듯 고요하다.

거대한바위 아래로 돌아 오르면 형제봉이다. 형제봉은 수도하던 형제가 연하천 요정의 유혹을 이겨내려 등을 맞대고 서 있다가 굳어버린 큰 바위라는 전설이 있다. 그들이 추구한 ‘도’는 무엇이었을까. 산 아랫마을 함양 삼정 사람들은 형제봉을 부자바위父子岩라고도 부른다.

지리산 주능선은 조망이 좋다. 그렇지만 이번엔 눈보라가 휘몰아쳐 희뿌옇다. 갈 길을 재촉해 바위를 지나 삼각고지에 올라선다. 삼각고지는 지리산 주능선과 별바위등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는 꼭짓점이다. 넓은 공터에 아무런 표지가 없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눈보라가 점점 거세진다. 잎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설화가 몽실몽실 핀다. 때 아닌 겨울 꽃에 그만 넋을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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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고지에 이르니 잎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에 설화가 몽실몽실 핀다.
하염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에 쫓기듯 내려서면 ‘삼각고지 지킴터’가 있다. 하산해야 할 음정마을 갈림길로, 이정표(연하천 대피소 0.7㎞, 음정 7.5㎞)도 서있다. 이제 주능선을 벗어나 별바위등 능선으로 접어든다. 평탄한 산길은 눈을 뒤집어 쓴 산죽 사이로 호젓하게 이어진다. 별바위등 갈림길에 이른다. 도솔암으로 연결되는 별바위등 능선 길은 비법정 탐방로라 막혔다. 능선 길과 헤어져 가파른 내리막길로 잇는다. 낙엽과 눈으로 덮인 바윗길이 미끄럽다. 샘터를 지나 곧 작전도로를 만난다.

다시 도로를 따라 4㎞ 정도 더 내려가야 하지만 번잡하지 않은 산책로 같은 느낌이다. 멀리 삼봉산, 법화산, 백운산, 금대산 등이 마천골을 따뜻하게 에워싸 솟았다. 천왕봉도 아슴푸레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려선 음정마을은 온통 흰 눈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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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은 삼각고지 지킴터가 있는 음정마을 갈림길로, 이정표도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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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바위등 능선으로 접어들면 평탄한 산길이 눈을 뒤집어 쓴 산죽 사이로 호젓하게 이어진다.
산행길잡이
음정마을 버스정류장~밀양 박씨 묘~작전도로(차량 차단기)~연하천 대피소 갈림길~벽소령 대피소~형제봉(1452.8m)~삼각고지(1484m)~삼각고지 지킴터~별바위등 갈림길(연하천 삼거리)~샘터~작전도로 합류~음정마을 버스정류장 <6시간 소요>

교통(지역번호 055)
함양에서 마천면 음정마을까지는 함양 군내버스(지리산고속·963-3745)를 타야 한다. 평일 하루 8회(06:20, 07:40, 09:30, 10:50, 13:30, 15:30, 18:10, 19:40) 운행한다. 산행을 마친 후 음정마을에서 함양까지 이 버스가 그대로 되돌아간다.

숙박(지역번호 055)
함양읍에서 해결하는 것이 편리하다. 함양 시외버스터미널 주변과 상림 쪽에 하얏트모텔(962-9696), 스카이모텔(962-8444), 엘도라도모텔(963-9449) 등 깨끗한 숙박시설이 많다. 입소문난 식당으로는 60년 전통 대성식당(964-5400)이 있다. 일반 가정집 분위기에 메뉴가 쇠고기 국밥과 수육뿐인 함양의 맛집이다. 상림 인근의 조샌집(963-9860)은 민물고기 전문으로 탕이나 조림, 튀김에 어탕국수까지 다양한 메뉴로 전통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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