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ㅣ니르말 푸르자 최단시간 14좌 완등] “푸르자처럼 오르면 5개월 만에도 히말라야 14좌 가능”

글 서현우 기자 사진 니르말 푸르자 인스타그램
입력 2020.01.15 11:28
189일 만에 완등한 푸르자에 “알피니즘 아니다” 지적 잇따라…
이용대 교장 “기록 남겠지만 의미 없어”…알피니즘 현대 트렌드 한 단면일 수도


이미지 크게보기
캐러밴을 하지 않고 헬리콥터를 이용하면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등반이 가능하다.
네팔인 니르말 푸르자Nirmal purja(38)의 최단시간 히말라야 14좌 완등이 산악계를 연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푸르자는 2019년 10월 29일 마지막 시샤팡마를 오르면서 189일(6개월 6일) 만에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는 기록을 세웠으나, 산악계에선 ‘푸르자의 등반은 알피니즘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푸르자는 빠른 등정을 위해 고정로프와 산소를 사용하고, 셰르파를 여럿 고용해 노멀 루트로 등반했는데, 이는 ‘무산소, 단독, 신 루트’로 요약되는 현대 알피니즘을 역행한 등반 방식이기 때문이다.

등정주의의 극을 보여 준 푸르자의 등반 방식이 세계 산악계에 던진 충격은 몹시 크다. 최근 히말라야 고산등반은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로 완전히 이행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오영훈 본지 기획위원은 “최근 세계의 알피니스트들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하기보다 6,000~7,000m급 고봉에서 난이도 높은 신 루트 개척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가 고 김창호 대장이다. 김 대장은 지난 2013년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로 완등한 뒤,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고난도 신 루트 개척에 앞장선 바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고정로프를 이용해 사면을 오르고 있는 푸르자.
국내 고산등반 전문가들도 푸르자의 등반 방식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은 “기록은 분명 남겠지만 알피니즘으로서 의미는 없다”며 “고도보다는 태도를 지향하면서 ‘정당한 수단by fair means’으로 산을 오르는 것이 금세기 알피니즘의 화두”라고 말했다. 엄홍길 대장은 “기술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진 등반 방식”이라며, “푸르자처럼 등반하면 5개월 만에도 14좌 완등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오 위원은 “히말라야 등반의 체계화, 상업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푸르자는 누구이며, 왜 이런 등반을 계획한 것일까? 먼저 푸르자는 군인 출신으로 고산 등반 경험은 적은 편이다. 2003년부터 구르카 용병으로 영국 해병대Special Boat Service에서 복무하다 2018년 병장Lance Corporal으로 전역했다. 이번 등정 이전의 고산 등반 경험으로는 2012년 로부체 동봉(6,119m), 2014년 다울라기리, 2016년 에베레스트 등반이 전부다.

2018년 전역한 푸르자는 2019년 4월 23일 안나푸르나 등정을 시작으로 7개월 안에 14좌를 모두 오른다는 ‘프로젝트 파서블Project Possible 14/7’을 개시했다. 푸르자는 “세계에 네팔 등반가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주고 싶었다”며 “또한 많은 이들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14좌 등반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이미지 크게보기
푸르자는 해발 7,500m 이상의 지대에서 산소를 사용했다.
완등 성공요인, 재정 관리와 탁월한 체력

프로젝트는 3단계로 구성됐다. 봄 시즌에는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칸첸중가,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 여름에는 파키스탄에 위치한 낭가파르바트, 가셔브룸 1·2봉, K2, 브로드피크를, 가을에는 초오유, 마나슬루, 시샤팡마를 계획했고,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다울라기리부터 마칼루까지 5개 봉우리를 단 12일 만에 오른 것과 다른 원정대가 날씨가 좋지 않아 시도하지 않을 때 K2를 등반한 점이 눈에 띈다. 물론 고정로프와 산소를 사용하고, 베이스캠프로 이동할 때 캐러밴(인근 도시에서 물자를 갖고 베이스캠프로 진입하는 일로 적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열흘 이상 걸린다)을 거치지 않고 헬리콥터를 이용하면서 거둔 성과다.

등반 중에 동료 산악인을 구조하면서 휴머니즘을 실천하기도 했다. 안나푸르나에서 식량, 물, 산소 없이 40시간이나 고립됐던 말레이시아인 친 위 킨Chin wui kin 박사를 구조하기도 했고, 칸첸중가에서는 갖고 있던 보조 산소를 등반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두 명의 등반가에게 지원했다. 네르말 푸르자의 14좌 완등은 세계 43번째 기록이다. 
푸르자가 최단시간 14좌 완등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고산등반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도 재정 관리와 탁월한 신체 능력을 꼽고 있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푸르자의 등반을 두고 “진귀한 산악 업적Unique mountaineering achievement”이라며 “지도력, 협동력, 재정 관리능력, 신체 능력이 뒷받침한 결과”라고 평했다.

푸르자가 고산 등반에서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발휘한 것은 선천적, 후천적 요인이 결합됐기 때문이다. 푸르자는 다울라기리산군에 위치한 해발고도 1,600m대의 미아그디Myagdi 지방에서 태어난 고산족 구르카 출신이며, 16년간 군복무하면서 특수부대 훈련을 받아 강인한 육체와 정신도 키울 수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푸르자.
또한 군복무를 통해 기초 자본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던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다. 구르카 용병은 영국 군인에 준하는 연봉을 받는다. 미국 구인구직사이트 ‘글래스도어’에 의하면 영국 군인의 평균 연봉은 약 2만8,000파운드(약 4,30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네팔에서는 부유층에 속하는 소득 수준이다. 물론 개인 소득만으로는 14좌 완등을 위한 자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푸르자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 후원사를 섭외하고 인터넷을 통해 크라우드펀딩을 전개했으며, 자신의 집을 저당 잡고 대출을 받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마나슬루, 낭가파르바트 등반은 타 원정대의 셰르파로서 참여했다.

오 위원은 “치밀한 준비성과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담대함, 많은 인력과 자금을 큰 잡음 없이 동원해 낸 출중한 인격 등 정신적인 면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왜 다른 등반가들은 푸르자와 같은 방식의 등반을 시도하지 못한 걸까? 오 위원은 “푸르자 이전에도 최근에 몇몇 등반가들이 ‘1년 이내 14좌 완등’을 꾀하고 시도한 바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다”며 “체력이나 고산병 등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자연재해, 당국의 입산통제 등 개인의 영역을 벗어난 문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엄 대장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가능해진 등반”이라고 분석했다. 엄 대장은 “내가 고산 등반에 주력할 때는 자금도 적고, 정보도 적어 원정을 가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현지의 모든 행정 절차부터 통관절차, 대원구성, 훈련, 예산 마련, 식량 장비 구입, 포장, 수송까지 일일이 챙겨야 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해 모든 행정 절차를 손쉽게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누가 해외 원정 갔다 오면 보고서 하나 받기 위해 직접 찾아가서 부탁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하면 산의 정보가 다 나온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마나슬루의 실제 정상. 푸르자는 사진을 촬영한 위치까지만 오르고 돌아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결과만 중시’ 현대사회 풍조의 산물

푸르자의 등반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알피니즘으로 보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사회 풍조의 산물”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용대 교장은 “각 등반마다 등반의 내용을 면밀히 고찰할 필요는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무산소도 아니고, 신 루트도 아닌 등반을 알피니즘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 교장은 “물론 최단기간이라는 기록은 인정해 줘야겠지만 알피니즘과 고산등반에 있어 다른 산악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엄 대장은 “국내 산행으로 치면 백두대간 종주와 오색코스로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 뒤 헬리콥터를 타고 중산리로 가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행위를 비교하는 꼴”이라고 비유하며 “다른 원정대나 셰르파가 먼저 길을 내고 고정로프를 설치한 곳을 따라 오르는 건 그저 타의에 의한 등반, 거저먹는 등반에 불과하고, 이런 식이면 5개월 만에도 완등이 가능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오 위원은 “알피니즘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오 위원은 “현대 알피니즘은 세분화, 체계화되면서 현재는 6,000m급 고봉에서의 알파인스타일 등반이 주된 형식”이라고 정의하면서 “8,000m 14좌 완등이 알피니즘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오늘날에는 극지도달, 대양횡단처럼 구체적인 규정 속에 기록을 측정하는 하나의 모험 분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한 오 위원은 “무엇보다 푸르자가 자신의 등반을 알피니즘이라고 내세운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재 푸르자의 등반을 지지하는 팬들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푸르자의 등반을 알피니즘으로 공격하는 건 모종의 식민주의”라며 “서양인들이 네팔인의 성공을 깎아 내린다”고 반응하고 있다.

푸르자의 등반이 고산등반의 판도를 바꿀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히말라야 14좌를 짧은 시일 안에 완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에 이와 유사한 ‘히말라야 14좌 연속 등반 상품’을 고산등반 대행사들이 앞 다퉈 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 위원은 “이미 일부 대행사들은 헬리콥터를 이동수단으로 하며 산소를 무제한으로 쓰고, 셰르파도 다수 고용하는 ‘럭셔리 14좌 등반 상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고산등반가들의 활동이 한층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작게는 단일 산악회, 크게는 지역과 국가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였던 과거와 다르게 히말라야 8,000m급 고산의 위상과 가치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오 위원은 “이제 고산등반은 지극히 개인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고산등반가들이 협찬사를 찾기 더 어려워질 것이고, 산악인들도 고산에 대한 동기부여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르면 극한도전의 표상이었던 고산등반이 보조수단을 풍부하게 사용해서 오르는 ‘고산관광’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산악인들이 우러러봤던 히말라야 14좌나 7대륙 최고봉 등의 인기와 가치가 끝물에 다다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산악커뮤니티 <익스플로러웹>에서 등정 사진을 기반으로 푸르자가 마나슬루 정상을 20m 앞두고 돌아섰다는 등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푸르자는 이에 관해 아직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많이 본 뉴스

  • 월간산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