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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화제ㅣ세계 여행가 이일웅씨] 툰드라 300㎞를 개썰매로 달린 ‘여행 마니아’

글 신준범 기자 사진 이일웅 제공
  • 입력 2020.02.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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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엘라벤 폴라’ 한국 대표로 참가… “허스키들은 토하면서도, 똥오줌 싸면서도 달려요!”

2016년 피엘라벤 폴라에 참가한 이일웅씨.
2016년 피엘라벤 폴라에 참가한 이일웅씨.

수평선 끝까지 얼어붙은 땅 300㎞를 개썰매로 달린 사내가 있다. 2016년 ‘피엘라벤 폴라’ 한국 대표로 선발되어 스웨덴을 다녀온 세계 여행마니아 이일웅(34)씨다. 스웨덴 브랜드 피엘라벤이 주최하는 ‘피엘라벤 폴라’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툰드라를 개썰매를 타고 달리며 야영하는, 북극권 극한 체험이다. 북극권 사미족이 순록을 치며 이용했던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잇는 300㎞ 경로를 따른다.

수평선 끝까지 얼음 평원만 보이는 공간, 악천후라도 닥치면 땅과 하늘을 구분할 수 없는 ‘화이트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하루에 길게는 100㎞를 쉬지 않고 질주하는 폭주기관차 같은 허스키 6마리가 끄는 썰매를 조종하며 달리는 경험은 그야말로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극한 체험인 것이다. 모든 비용(1,500만 원 상당)이 무료인 만큼 선발 경쟁이 치열했다. 공식 웹사이트에 참가신청을 해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선발되는 방식으로 이일웅씨는 지원자 1,152명 중 24위에 올라 선발되었다.

넘치는 힘으로 하루에 100㎞를 달리기도 하는 썰매개들.
넘치는 힘으로 하루에 100㎞를 달리기도 하는 썰매개들.

“허스키들은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쳐요. 브레이크를 제대로 걸어놓지 않으면 계속 앞으로 튀어나가요. 하루 50㎞든, 100㎞든 상관없어요. 정말 달리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밥 먹고 나서는 토하면서 달리고, 똥오줌을 싸면서도 달려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면 부족이다. 오로라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느라 늦게 잠들었고, 일정상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한 고생이었던 셈이다. 이일웅씨는 산행과 백패킹도 즐긴다. 세계 여행을 하는 와중에 자연의 매력에 빠지며 자연스럽게 등산을 하게 되었다.

이일웅씨가 수면 부족에 시달려 가며 카메라에 담은 북유럽의 오로라.
이일웅씨가 수면 부족에 시달려 가며 카메라에 담은 북유럽의 오로라.

시작은 24세에 떠난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10개월 동안 온갖 일을 했고, 그 와중에 오토바이로 호주 일주 여행을 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귀국 후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던 그는 호주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미소 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더 많은 추억을 쌓기 위해 세계 여행을 떠났다. 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등 아프리카 7개 나라를 여행하고 곧장 남미로 넘어갔다.

아프리카와 남미처럼 우리나라에서 가장먼 곳을 택한 건 “젊을 때 더 위험하고 남들이 안 가는 곳을 가보자는 호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후 미국을 거쳐 총 13개월간 세계 여행을 했다. 이때 에콰도르 활화산 코토팍시(5,897m) 정상을 올랐으며, 페루 잉카트레일·마추픽추·69호수트레일을 걸었으며, 아르헨티나 엘찰텐과 피츠로이 트레킹을 하며 자연스럽게 트레킹과 백패킹에 빠져들었다.

귀국 후 얼마 안 가 여행을 꿈꾸게 되었고, 네팔로 트레킹 여행을 떠난다. 이때 2015년 네팔 대지진이 났고, 그는 코이카 봉사자들을 도와 봉사 활동을 했다. 혼돈스런 네팔을 떠나 유럽으로 넘어왔지만, 그는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사람들이 잊혀지지 않았고 그동안 찍은 세계 여행사진을 길거리 판매해 수익금 300만 원을 ‘세이브 더 칠드런’에 기부했다. 여러 봉사단체가 있었지만 “돈이 쓰이는 과정이 투명하고 네팔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겠다는 인상을 받아서 한 선택”이었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등산의 매력에 빠진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등산의 매력에 빠진 그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도 했다.

돈이 목적인 삶, 원치 않아

그는 세계를 돌며 영어를 배우고, 일을 하고, 관광지를 둘러보고, 트레킹과 백패킹을 하고, 자동차를 렌트해 여행하고, 지진을 만나고, 봉사 활동을 하고, 북극권을 개썰매로 달리는 등 많은 경험을 했다. 여행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20대에 걸어서 배낭여행을 했으니 30~40대에는 바이크를 타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어요. 50~60대에는 자동차를 타고 세계를 보고 싶어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달리다가 아름다운 곳에서 텐트 치고 자는 여행을 항상 꿈꿔요. 그 풍경을 원 없이 사진에 담고 싶어요. 그동안의 여행은 제가 좋아하는 걸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이제 바이크 여행을 떠나면 후회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프리카 사막 해넘이에 심취한 이일웅씨.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취미다.
아프리카 사막 해넘이에 심취한 이일웅씨.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그의 취미다.

현재 그는 대구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며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인 삶을 원치 않는다”며 “어느 정도 모이면 새로운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날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특히 “돈 욕심에 발목을 잡혀 1년만 더! 1년만 더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표한 금액과 시간이 되면 모든 걸 두고 떠날 것”이라고 한다.

다시 훌쩍 떠나게 되면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다”며 “그렇게 쌓은 경험을 나눠 주면서 사는 게 꿈”이라 웃으며 얘기하는 이일웅씨다.

남미 볼리비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일웅씨(가운데).
남미 볼리비아에서 만난 친구들과 이일웅씨(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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