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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셰르파 스토리ㅣ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6세 여동생 돌보려 등반 시작…네팔 여성 최초 K2 등정

글 서현우 기자
  • 입력 2020.02.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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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내셔널지오그래픽 올해의 모험가 선정… 2015년 네팔 대지진 이후 사회봉사활동 주력

내셔널 지오그래픽 올해의 모험가 트로피를 들고 있는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트위터.
내셔널 지오그래픽 올해의 모험가 트로피를 들고 있는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트위터.

2015년 4월 25일. 네팔은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사상자만 2만5,000여 명, 이재민 660만 명이 발생한 비극이었다. 이때 한 네팔 여성 산악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적극적으로 구호 활동을 펼쳤다. 그녀의 이름은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Pasang lhamu sherpa akita(35).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네팔은 빠르게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다. 2015년 11월 13일 파상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2016 올해의 모험가’로 선정되자 dZi 재단(접근성이 낮은 에베레스트 산간지방에 자리 잡은 현지 풀뿌리 단체)의 벤 아예스Ben Ayers 이사는 “파상이 올해의 모험가로 선정된 것이 올해 네팔에 유일하게 좋은 소식이다”라고 극찬했다.

파상은 1984년 에베레스트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인 쿰중Khumjung에서 태어난 후 에베레스트의 관문으로 널리 알려진 루클라Lukla에서 자랐다. 파상의 원래 이름은 파상 라무 셰르파로,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던 네팔의 국민 영웅격 산악인인 파상 라무 셰르파(1961~1993)와 동명이인이다. 그녀가 아키타라는 성을 얻은 것은 일본계 출신의 네팔 물리치료사 아키타 토라Akita Tora와 결혼해서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된 2010년부터다.

그녀는 유년시절에 여느 네팔 소녀와 다름없이 바위와 돌과 진흙을 갖고 자연 속에서 놀며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곧장 시련을 당했다. 이미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던 파상은 15세 때 지병을 앓던 어머니도 사망해 여섯 살짜리 여동생과 단 둘이 남게 됐다. 친척을 따라 카트만두로 이동한 파상 자매는 당장 살 길이 막막했다. 그녀는 문득 어릴 때부터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이를 돕던 친척과 마을 주민들이 생각났다.

2014년 7월 26일 K2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밍마 돌제 셰르파.
2014년 7월 26일 K2 정상에 오른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밍마 돌제 셰르파.

그녀는 고작 15세의 나이에 6세 여동생을 돌보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비록 생업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등반이 적성에 맞았다. 파상은 “나는 항상 산을 좋아했다. 산이 매우 공평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산은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산에서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파상은 그렇게 트레킹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등반을 하진 못하고 회사의 조수 정도로만 간간이 일하면서 고등학교 수업을 마쳤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등반을 배우게 된 건 19세 이후였다. 이때 그녀는 미국의 유명 산악인 콘래드 앵커Conrad Anker가 운영하는 쿰부 클라이밍 센터Khumbu Climbing Center 학생이 됐고, 4년 뒤 23세 때 네팔 여성으로는 최초로 등산 강사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

파상은 2004년 쿰부 클라이밍 센터를 졸업하고 등산 강사 자격을 취득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활발한 등반 활동을 펼쳤다. 2006년에는 네팔과 중국 국경에 위치한 낭파 고숨Nangpai Gosum 2봉(7,296m)을 여성 최초로 등정했으며, 이듬해인 2007년에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이후에는 얄라 피크Yala Peak(5,732m), 아마다블람Ama Dablam(6,812m), 로부체(4,910m), 임자체(6,189m), 아콩카구아(6,962m) 등을 등반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가 네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구호물품을 나눠 주고 있다. 사진 셰르파어드벤처기어.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가 네팔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구호물품을 나눠 주고 있다. 사진 셰르파어드벤처기어.

현재는 네팔 여성의 교육권 보장 노력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라는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2014년 네팔 여성 최초로 K2를 등정한 이후부터다. 당시 그녀는 마야 셰르파Maya Sherpa와 다와 양줌 셰르파Dawa Yangzum Sherpa라는 2명의 네팔 여성 산악인과 함께 팀을 이뤘다. 네팔 최초의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원정대였다.

등반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껏 산을 다니면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이 바로 이때였다”고 회상했다. “주능선 상단의 병목구간을 무려 17명의 등반가들이 단 하나의 고정로프에 매달린 채 3시간에 걸쳐 돌파할 때 만약 로프를 고정시킨 설상확보물이 빠졌더라면 우리 모두 수십m 아래로 추락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 등반은 K2 초등 60주년에 이뤄지기도 했고, 원정대가 이 등정을 세계인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했다고 밝히면서 더욱 관심을 받았다.

네팔의 소녀들에게 자신의 등반 경험을 나눠 주고 있는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시라 크로웰.
네팔의 소녀들에게 자신의 등반 경험을 나눠 주고 있는 파상 라무 셰르파 아키타. 사진 시라 크로웰.

파상이 등반보다 구호 및 봉사 활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도 2014년부터다. K2 등정을 준비하던 그녀는 2014년 4월 18일에 발생한 에베레스트 눈사태로 가까운 친구들을 포함해 16명의 셰르파가 죽는 사건을 겪었다. 그녀는 사고에 대한 충격으로 K2 등반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또한, 그로부터 1년 뒤 2015년 네팔 대지진 사건 때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인근에 머물고 있었기에 지진으로 인한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파상은 “지진에서 살아남은 뒤 신이 나를 선택해 살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신이 살려준 목숨을 남을 돕는 데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녀는 등반 활동을 하며 접촉했던 많은 산악인과 재단, 단체들과 더불어서 네팔 곳곳으로 구호 활동을 다녔다. 특히 지진으로 인해 노인, 임산부 및 아이들이 가장 많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을 위한 대피소를 지었다. 고르카Gorkha, 다딩Dhading, 신두팔초우크Sindhupalchowk, 카트만두Kathmandu, 도라카Dolakha 등지에는 1만1,000개 이상의 담요를 배포했다.

현재 파상은 네팔의 여성과 소녀들이 남자와 똑같이 교육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끝까지 졸업했던 기본 교육”이라며 “교육이야말로 여성들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고 성취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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