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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초점ㅣ동계 K2 원정] 동계 K2는 역시 ‘난공불락’이었다

글 서현우 기자
  • 입력 2020.02.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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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마·존 스노리 다국적 원정대 철수…돈 보위는 폐렴으로 하산, 우룹코 홀로 브로드피크로
K2, 등정 중 사망률 29%에 달할 만큼 험난한 산…동계는 1987년 첫 시도 후 33년간 실패

K2. 사진 셔터스톡.
K2. 사진 셔터스톡.

히말라야 14좌 중 유일하게 동계에 등정되지 못한 K2(8,611m)에 도전장을 내민 원정대가 대부분 철수를 결정하면서 K2가 이번 동계 시즌에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게 될 전망이다. 지난겨울 동계 등정에 도전한 두 원정대 중 밍마 겔제 셰르파(네팔)·존 스노리(아이슬란드)·가오 리(중국) 등이 소속된 다국적 원정대는 지난 2월 6일 원정 실패를 선언하고 철수했다. 뒤이어 브로드피크를 먼저 등정하고 K2에 도전할 예정이었던 돈 보위(캐나다)·데니스 우룹코(러시아) 팀도 2월 9일 돈 보위가 폐질환으로 하산하고, 우룹코 홀로 브로드피크를 2월 말 중 등정할 예정이라 사실상 연이어 K2를 오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히말라야 동계 시즌은 2월 말까지다.

이번 시즌 가장 적극적으로 K2 동계 등정을 노렸던 원정대는 밍마, 스노리, 가오 리 등으로 이뤄진 다국적 원정대다. 이들은 1월 21일에 베이스캠프에 입성해 2주간에 걸쳐 캠프2까지 설치하고, 해발고도 6,600m까지 고정 로프를 설치하는 등 순조롭게 등반을 펼쳤다. 2월 2일부터 8일까지 기상 악화로 잠시 베이스캠프에서 대기 중이던 원정대는 돌연 2월 8일 원정실패를 선언하고 철수했다. 

존 스노리는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 명의 고소 포터가 낙빙에 맞아 크레바스로 추락한 뒤 구조됐으며, 동행하고 있던 2명의 셰르파, 1명의 파키스탄인 포터들이 모두 도전에 대한 의지를 상실해 등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또한 원정대원 2명이 도전에 걸맞지 않았다”고 실패 이유를 밝혔다. 스노리는 해당 원정대원이 누구며, 준비가 안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답하지 않았으나, 이미 자신의 SNS에는 “밍마 겔제 셰르파와 가오 리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준비되지 못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팀워크가 무너진 것이 등정 실패 원인 중 하나임을 암시했다. 밍마 겔제 셰르파에게도 철수 상황에 대해 이메일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또한 먼저 브로드피크(8,051m)를 등정한 후 기회가 닿으면 K2도 오른다는 계획을 갖고 있던 돈 보위·데니스 우룹코 팀은 보위가 폐렴 증세를 호소해 긴급히 인근 스카르두로 호송되며 K2 등정이 사실상 요원해진 상황이다. 이들은 2월 4일 브로드피크 7,500m 지점까지 진출했으며, 기상 여건이 좋아지면 정상 공격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보위가 폐렴 증세로 철수하면서 우룹코 혼자 등반을 진행하고 있다. <몽타냐tv>를 비롯한 해외 외신들은 우룹코가 브로드피크에 오른 뒤, 홀로 2월 안에 K2를 처음부터 루트 개척하면서 오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므로 이번 시즌 K2 동계 등정을 실패로 결론짓고 있다. 

브로드피크 등반 중에 폐렴에 걸린 돈 보위. 사진 돈 보위.
브로드피크 등반 중에 폐렴에 걸린 돈 보위. 사진 돈 보위.

동구권 중심 도전, 악천후로 번번이 실패

K2는 등정 난이도가 매우 높은 산이다. 1954년 이탈리아 원정대의 아킬리 콤파뇨니Achille Compagnoni, 리노 라세델리Lino Lacedelli 대원이 노멀 루트인 남동릉 아브루치 능선을 통해 초등에 성공한 이후 23년이 지나서야 일본인 요시자와 이치로와 파키스탄인 아쉬 라프 아만이 재등했을 정도다. <익스플로러웹>에 따르면 K2의 등정 중 사망률은 안나푸르나(34%)에 이어 히말라야 14좌 중 2번째로 높은 2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인들은 ‘거대한 산’이란 뜻의 초고리Qogri라고 부른다. 

K2 동계 등정의 역사는 1987년부터 시작됐다. 폴란드와 캐나다, 영국 합동대로 구성된 원정대다. 이 원정대는 총 24명으로, 폴란드 유명 산악인 마쉐 베르베카Maciej Berbeka, 크리스토프 비엘리키Krzysztof Wielicki 등을 포함한 폴란드인 13명, 캐나다인 7명, 영국인 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포터들의 임금이 겨울철에 비싸지는 점을 고려해 미리 가을에 장비를 옮겼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 아브루치 능선으로 시도했으며 악천후로 인해 정상 등정은 실패, 최대 도달 고도는 약 7,300m다.

이후 K2 동계 등정의 도전은 동구권 국가 출신 산악인들이 주도했다. 1987년에 한 번 실패를 겪은 베르베카와 비엘리키가 이끈 소규모 다국적 원정대가 2002년 두 번째 등정을 시도했다. 현재 브로드피크를 등반 중인 우룹코도 대원으로 포함돼 있었다. 노멀 루트가 아닌 북릉을 통한 시도였으며, 이들은 캠프4를 7,650m 지점에 설치하는 성과를 냈으나 가혹한 날씨와 일부 대원들의 뇌부종 등으로 인해 결국 철수했다.

스노리와 밍마 겔졔 셰르파, 가오 리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원정대. 존 스노리가 동료 대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팀워크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존 스노리.
스노리와 밍마 겔졔 셰르파, 가오 리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원정대. 존 스노리가 동료 대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팀워크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존 스노리.

2011년, 러시아 원정대가 세 번째 도전장을 냈지만 이들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를 겪은 뒤 철수했다. 발레리 샤말로Valery Shamalo, 비탈리 고렐릭Vitaly Gorelik 등이 포함된 이들은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반해 7,200m 지점까지 로프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렐릭이 동상과 폐렴에 걸려 대피를 요청했지만, 악천후로 헬기가 정시에 도착하지 못해 사망하면서 원정대가 철수하게 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거의 매년 주로 유럽 출신의 알피니스트들이 K2 동계 등정을 노리고 소규모 원정대를 꾸렸지만 번번이 영하 40~60℃의 혹한과 시속 100km가 넘는 돌풍에 가로막혀 모두 고배를 마셨다.

한편, 국내 최초로 K2를 등정한 사람은 1986년 장봉완, 김창선, 장병호 대원이다. 이들은 4년에 걸친 국내 훈련과 세 차례 현지 정찰을 다녀오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K2로 향했다. 원정대는 1986년 8월 3일 새벽 5시 캠프5(8,250m)를 출발, 아브루치 능선으로 등반해 11시간의 사투 끝에 장봉완 부대장과 김창선, 장병호 대원이 K2에 올랐다.

스노리의 K2 등정 루트. 사진 존 스노리.
스노리의 K2 등정 루트. 사진 존 스노리.

현재 우리나라 산악인 중에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김미곤 대장이 다음 겨울 시즌 K2 동계 초등을 준비하고 있다. 김미곤 대장은 “K2 동계 등정의 관건은 ‘속도’다. 악천후가 오기 전에 빠른 속도로 등정해야 체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성공률도 높아질 것”이라며, “이를 고려해 10월 중 네팔에 가서 고소적응 후, 11월 동계 고산 등반을 간접 체험한 뒤 동계 시즌에 본격적인 등반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장은 “K2 동계 등반 경험이 풍부한 유럽 산악인들 중 일부는 개인주의적이고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 다국적 원정대는 구성하지 않을 생각이다. 국내에서 대원 2명을 선발할 예정”이라며 “마음을 비우고 등산초보라는 마음가짐으로 도전에 나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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