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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감동산행기] 기차 타고 떠난 소백산 눈꽃산행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성유진
  • 입력 2020.02.2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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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눈꽃 터널이었다.
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눈꽃 터널이었다.

산행준비는 며칠 전부터 시작됐다. 소백산 눈꽃을 보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옷부터 장비까지 철저하게 준비했다. 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모두 말없이 발을 다친 나를 위해 무게를 줄여 줘서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웠다.

벼르고 별러 산행 당일, 태화강역에 모두 모여 무궁화호를 타고 소백산을 향해 출발했다. 늦은 밤기차를 타고 떠나는 무박 2일 산행이다. 준비한 보쌈을 열차 식당 칸에서 함께 나누려고 했는데 역무원이 무궁화 열차에 식당 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자리에서 조용히 구입한 육포와 캔맥주를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잠을 청했다.

한참을 자고 나니 풍기역이다. 차를 타고 비로사로 이동해 산행 준비를 마쳤다. 대장님을 따라 달밭골을 지나 본격적으로 비로봉으로 향한다. 산 아래는 포근했다. 30분 정도 걷다 보니 덥다. 즉각 장갑과 옷을 벗어 배낭에 넣고 다시 걸음을 잇는다.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느린 속도다. 잠시 후미가 늦어져 바위 밑에 바람을 피할 겸 앉아 있자 졸음이 밀려온다. 

후미와 연결을 마치고 다시 힘을 내어 비로봉에 오른다. 정상에 오르자 바람 소리부터 다르다. 우리가 무척이나 반갑다는 듯 연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품안으로 달려든다. 워낙 이른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산행 길엔 우리 일행 외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정상에는 제법 다른 일행들이 보였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뒤 거친 바람에 등 떠밀리듯 연화봉으로 향한다. 대피소에 들러 잠시 몸을 녹이며 간식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다시 연화봉으로 출발하자 새하얀 눈들이 우리를 반기며 길을 열어 준다. 너무나 아름다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걷게 된다. 다들 눈꽃 구경에 정신이 쏠려 있자 급기야 대장은 ‘빨리 안 따라오면 버리고 간다’는 애정 어린 구박을 늘어놓기도 했다.

보고, 걷고, 먹으며 즐긴 연화봉길

다시 길을 잇다가 제1연화봉을 지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자리에서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로 배를 채운다. 눈꽃 구경에 체력 소모가 무척이나 컸으나 든든한 간식이 들어가니 다시 힘이 불끈 솟았다. 제1연화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더욱 환상적인 설경을 품고 있었다. 봄에는 철쭉이 피고, 겨울에는 눈꽃이 피어 언제 찾아도 아름다운 길이다.

우리는 연화봉에서 희방사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어느새 또 배꼽시계가 울려 일행 한 분이 쉘터를 한 동 치기에 옹기종기 모여 보온병에 담아온 끓인 물로 컵라면에 만두, 어묵을 넣고 데워 먹었다. 왕성히 움직이는 만큼 풍족히 먹어둬야 한다. 걷는 즐거움과 먹는 즐거움이 합쳐지자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희방사로 옮긴다. 워낙 장시간 걸은 터라 발걸음이 잔뜩 무거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리막길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긴장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니 금세 온 몸이 피곤해진다. 게다가 얼마 전 다친 오른쪽 다리가 또 말썽이라 힘을 줄 수 없어 더욱 힘들고 기나긴 하산길이었다.

아슬아슬한 상황을 몇 번이나 간신히 넘기다가 결국 가파른 계단에서 발을 잘못 디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용케 운동신경이 발휘됐는지 낙법을 취하듯 굴러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나보다 동행들이 더 놀라 이젠 앞뒤로 붙어서 이렇게 걸어라, 저렇게 걸어라 조언해 준다.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춥고 힘드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희방사에 닿았다. 택시를 타고 영주역으로 갔다. 역 근처 식당에서 닭갈비를 먹으며 모두들 소백산에서 한가득 가져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예쁜 모습을 보여 준 대자연에 감사했고, 함께한 이들로 행복했던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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