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오은선의 폭로, “故 박영석 대장, 억압적이고 선배 무시하기도”

글 서현우 기자 사진 조선일보DB
입력 2020.04.23 09:42
등반기록 담은 박사논문 발표…동료 산악인과 나눈 사적인 대화·사건 서술
“동료 산악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 Vs “권위적 한국산악계 병폐 지적”
오은선 “남성지배적인 산악계에서 어떻게 알피니즘을 갈구했는지를 주목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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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14좌 완등 인터뷰를 하고 있는 오은선 대장.
‘故 P와 L회장은 같은 D대학 산악부 선후배 관계였다. 당시 L의 말 한마디면 故 P는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이였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었다.’ - 2010년 칸첸중가 등정 논란 中

‘등반대장 故 P는 계속해서 L원정대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모습을 후배 대원들 앞에서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이 불편하였었다. 자신이 경험이 많고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산악인이라 해서 무명의 선배를 무시하는 태도는 분명 산악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잘못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계질서가 분명한 산악부 분위기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故 P대장의 기세에 눌려 누구 하나 말하지 못하였고 갈등은 커져만 갔다.’ - 1997년 가셔브룸 2봉 원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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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대장(왼쪽)과 스페인 여성 산악인 에두르네 파사반. 파사반은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이 논란이 되자 자신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여성 산악인 오은선 대장이 지난 2월 발표한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박사학위논문 <여성 산악인의 고산등반 체험에 관한 자문화기술지>의 내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논문은 오 대장이 일반인이었던 자신이 고산등반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을 스스로 돌아보는 방식으로 구성됐는데, 내용 중 칸첸중가 등정 논란에 대해 억울함을 다시 토로하고, 故 박영석 대장, 故 고미영 대장, 김재수 대장 등 동료 산악인들을 폄하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오 대장은 해당 논문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대학산악부 시절부터 고산등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7대륙 최고봉, 히말라야 14좌 릴레이 과정을 그렸다. 질적 연구 방법 중 하나인 자문화기술지 형식이다. 자문화기술지는 연구자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험을 반성과 성찰을 통해 연구하여 기록한다.

오 대장은 논문 서문에 ‘삶의 기준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과 고달프고 지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연구자의 목숨을 건 고산등반 체험이 심심한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며 ‘특히 여자라는 이유로 사회적 불평등을 겪으며 아프게 사는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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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원정대 발대식.
사적인 대화나 사건 그대로 서술

논문에선 오 대장이 직접 겪었던 사례를 통해 남성지배적이고 권위적인 산악계 문화를 만날 수 있다. 가령 합숙훈련 중 단체기합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는 대목이다.

‘하루는 대원들 모두 단체기합으로 곤장을 맞은 적이 있었다. 며칠 후 단체로 동네 목욕탕에 갔다. 안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우리를 슬슬 피했다. 의아해하며 다른 대원들 뒤태를 보니 엉덩이 아래에 대걸레 자루로 맞은 시퍼런 피멍 자국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깡패 집단도 아니고 부끄럽고 창피했다.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자랑스러운 무용담이 되어 회자됐고, 나도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같이 웃고는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맞아야 했는지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어찌 보면 산악계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상명하복 문화의 영향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즉 남성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던 시절의 산악부 특성상 군대 문화가 그대로 산악부 문화로 전이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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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故 고미영 대장(왼쪽)과 오은선 대장. 사진 C영상미디어
또한 고산등반 중에 들었던 국내 남성 산악인들의 표현도 있는 그대로 실었다.

‘식사 후 H원정대장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골자는 자신들이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들어왔고 캠프2까지 거의 모든 루트 개척을 특정 대원이 앞장서서 다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외국팀들을 모두 별 볼 일 없는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니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러한 내용은 그간 내가 경험해 본 우리나라 남자 산악인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이처럼 직접 겪은 일들을 토대로 한국 산악계의 병폐를 잘 지적했다는 분석도 있는 한편, 등반 중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지나치게 가감 없이 표현한 것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특히 사적인 대화나 사건을 그대로 서술한 부분들은 불필요하며 논문 윤리에도 어긋나고,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베이스캠프 도착 하루 전 콩코르디아Concordia(4,720m)에서 고스톱 치는 도중 그간 쌓였던 감정이 터지게 되었다. H가 반칙하는 것을 내가 보게 되었다. 그 당시 H는 팀 내에서도 고산 경험이 많은 대원으로서 위세가 등등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반칙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는 난데없이 나더러 내려가라며 큰 소리로 고함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감정이 북받쳐오는데 내 의지로는 통제가 되지 않았다. 고소는 그런 곳이다. 그동안 쌓였던 혼자만의 서러움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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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6일 오은선 대장의 칸첸중가 등정에 이어 5월 18일 두 번째로 정상에 선 스웨덴 산악인 매티아스 칼손이 정상 직전 7~8m 지점에 서 있다.
특히 논문에서 언급되는 산악인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실제 성의 이니셜을 따온 데다 전후 문맥을 통해 손쉽게 누구를 지칭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 더욱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오 대장과 14좌 완등 레이스를 펼쳤던 故 고미영 대장으로 추측되는 산악인에 관한 일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故 G가 화장까지 곱게 하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깊은 산속에서 그것도 등반 중에 그런 화장할 생각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과 그 모습이 어쩐지 산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날 밤 생일 선물로 받은 거라며 나에게 자랑하던 그녀의 루비 반지를 보았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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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대장
칸첸중가 등정 논란 재소명

또한 칸첸중가(8,586m) 등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다시금 소명한 대목도 눈길을 끌고 있다. 오 대장은 지난 2009년 5월 6일 칸첸중가 정상에 도착했다고 주장했으나, 각종 의혹이 제기돼 대한산악연맹 차원에서 이를 검증한 끝에 등정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오 대장은 논문을 통해 논란이 됐던 부분을 일부 소명하고, 당시 자신을 압박했던 산악계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설명했다. 여기에서는 故 박영석 대장으로 추정되는 ‘故 P’와 김재수 대장을 언급했다. L회장은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이다. 오 대장은 논문 서두에서 1997년 가셔브룸 2봉 원정 중 故 P가 선배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의 등정을 의심했던 김재수는 나의 등반에 대해 사진이 이상하다, 시간이 이상하다 하더니 정상에서 산소통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를 가지고 결정적 증거인 것처럼 나를 몰아대었다. 알아본 결과, 증언한 대로 내가 올랐을 때는 정상에 산소통이 없었던 것이 밝혀지자 그 다음에는 내가 떨어뜨린 학교 깃발을 김재수가 정상 200m 전에서 자신이 직접 주워 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나의 정상 등정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깃발은 내 뒤에 오던 N셰르파가 주워 여기저기 흥정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내 뒤에 올랐던 다른 팀들도 나의 깃발을 보았다고 증언했다는 말을 들었다. (중략) 당시 N셰르파는 故 홀리 여사에게도 내가 오르지 못한 증거를 가져오겠다고 하고서는 그후 두문불출하게 됐다고 했다.’

‘2010년 10월호 월간<山> 기사 내용을 다시 읽어 보았더니 다른 외국팀들이 본 깃발의 색깔과 모양은 내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기사에 실린 깃발은 세모 모양의 노란색 깃발이었고, 내가 잃어버린 학교 산악부 깃발은 사각 모양의 빨간색이었다. 그 기사를 쓴 A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으나 그는 어찌 되었든 故 P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비공식 1차면담 때 내가 오르지 못한 것으로 자기네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었다는 말만 하였다. 그때는 나도 참석하였었다. 당시 나는 예전에 故 P를 따라다니며 겪었던 억압적인 그의 어투에 질려서 말도 제대로 못 했었는데 어이가 없었다. A기자는 명백한 자신의 실수에 대한 사과는 한마디도 없었다.(중략) S모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의 칸첸중가 등정 논란이 재점화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산악연맹 L회장이 주축이 되어 칸첸중가 등반자들을 모아놓고 나의 등정이 맞는지를 묻는 회의를 2010년 8월 26일 했다고 들었다. (중략) 나는 그 모임 이틀 전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받기는 했으나 그 모임의 주동자들을 알기에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었다. 故 P와 L회장은 같은 D대학 산악부 선후배 관계였다. 당시 L의 말 한마디면 故 P는 그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이였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었다.’

오 대장은 해당 장 말미에 ‘그렇게 나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언론을 통해 표출된 남성 산악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세계 여성 최초라는 영광보다는 논란 중이라는 상처만을 안게 되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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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영석 대장.
“사실과 다른 내용 많아…명백한 명예훼손”

한편 논문에 등장하는 산악인들은 논문 내용의 상당수가 사실관계를 다르게 적었으며, 명예훼손의 소지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H 대장은 “고스톱 사건의 경우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당시 원정을 함께했던 한 원정대원은 “자기가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며 “논문 전개 상 꼭 필요하지 않은 내용들을 한풀이하듯 실명이나 다름없는 이니셜로 처리한 건 논문 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며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석탐험문화재단의 이영균 이사장은 “오은선 대장은 좋아하는 산악계 후배였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까지 표현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칸첸중가 등정시비 때 박영석 대장이 인정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해 반감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수 대장은 “참담하다. 망자의 가족들이 보면 얼마나 참담할까. 고미영 대장이 화장한 일을 논문에 쓴 건 지나치다”며 “10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검증하지 않고 쓴 것은 문제다. 지난 일이니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누군가 이 일에 정식으로 문제제기한다면 기꺼이 증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대장은 칸첸중가 등정 논란에 대해 본인이 거짓말을 했다는 대목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 수원대 산악부 깃발은 내가 직접 주운 것이 맞다”고 해명했다.

월간<山> 2010년 10월호 기사에서 깃발의 모양과 색깔이 다른 것을 지적했는데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목된 A기자인 안중국 전 편집장은 “뜬금없다. 당시 통화하며 등정 과정을 집요하게 물어본 기억은 있지만 오은선 대장이 깃발 문제를 지적한 기억은 없다”며 “논문에서 ‘노랑 깃발’을 기사에 실었다고 하는데 실제 해당 기사를 보면 난 ‘붉은 바탕에 노랑 글씨가 새겨진 깃발’이라고 썼다”고 설명했다.

오은선 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성지배적이고 불합리한 산악계 문화에서 한 여성 산악인이 어떻게 알피니즘을 갈구했는지 학문적으로 풀이했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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