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가덕도와 눌차도의 부부 국수봉

공상규 경남 양산시 물금읍
입력 2020.08.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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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국수봉 정상에서 필자(왼쪽 앞)와 산 선후배들.
가덕도 외양포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는 선배를 만났다. 1989년 경남 의창군에서 부산시 강서구로 편입된 가덕도는 일제 침략에 대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뭍과 연결되기 전에는 나룻배로만 왕래가 가능했는데 거가대교와 부산항 신항이 들어서면서 상전벽해가 된 섬이다.

국수봉國守峰 들머리는 ‘외양포 역사생태탐방로’이다. 이 도로가 나기 전에는 탐방하기 불편했다. 녹산에서 나룻배를 타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빨라서 좋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조성한 산길은 완만하다. 우리 국민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돼 석축을 만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관측소는 관측병이 측원기로 적함의 움직임을 관측한 후 ‘외양포 일본군 포진지’에 신호를 보냈던 곳이다. 최남단에 위치한 가덕도등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 등대 옆에는 100년이 넘는 구 등대가 보존되어 있다. 1909년 대한제국 시절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로 대한해협이 지척이다. 러시아 함대의 침략을 대비한 흔적이 지금도 뚜렷이 남아 있다. 일제가 조선을 합병하기도 전에 침탈해 군사기지를 만든 역사의 현장을 직접 대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포대의 배면 방어를 위해 된비알에 구축한 산악보루를 지난다. 우리들은 짧은 코스지만 한참을 머무르며 국수봉 수목이 내뿜는 향기를 마셨다. 시간에 구애받을 필요 없는 퇴직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다.

산행 들머리 외양포 포진지는 일제가 구축한 군사시설로 5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공했다지만 튼튼하기 이를 데 없다. 사령부발상지지 표석, 탄약고, 유탄포 포좌 등의 시설물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역사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산교육장이다. 일제가 민가를 강제로 이주시키고 창고, 무기고 등을 만든 시설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덕도 부속 도서인 눌차도에도 같은 이름의 국수봉이 있다. 천가교를 지나면 갈맷길로 트레킹하기에 좋다. 갈맷길은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로 부산의 둘레길 이름이다. 눌차도는 지세가 완만하고 낮게 누워 있는 모습에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눌차 국수당은 마을 수호신인 국수봉 할머니를 모신 제당으로 남자를 보호해 주고 키워 주는 신이라고 한다. 아들을 갖고 싶은 사람이나, 국가의 동량으로 키울 사람은 소원을 들어준다. 막내아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미신일지라도 마음은 편하다.

내눌과 정거마을 주민들은 국수당에서 매년 정월 초하루에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빈다. 어촌에서 지내는 풍어제는 만선과 무사 귀환을 기원한다. 만선보다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는 게 더 중요하다. 두 국수봉이 섬을 든든하게 보호하고 있다. 외양포 수호신 국수봉은 전장에 나가 싸워온 남성을 말한다. 눌차도 국수봉은 전장을 지원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을 상징한다. 주민들은 외양포는 할배 국수봉, 눌차는 할매 국수봉으로 부른다. 부부 국수봉인 셈이다.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대구가 이곳의 특산물이다. 수더분한 주인아주머니의 손놀림이 민첩하다. 대구탕 한 그릇에 사랑이 가득하니 대구를 산 게 아니라 인심을 얻었다. 산행으로 소진한 체력을 보충한 건강식이다.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해 어부들의 노고에 비하면 가격은 저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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