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98] 지구 평면설을 주장한 코스마스의 세계지도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 입력 2020.10.20 09: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스마스의 세계지도(출처: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코스마스의 세계지도(출처: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지구가 둥글다’는 설을 주장한 가장 오래된 사료는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 등장한다. 3세기경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전기傳記 작가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땅이 둥글다’고 한 최초의 그리스인은 ‘피타고라스Pythagoras’라고 했다. 이 지구 구형론地球球形論은 기원전 5세기 피타고라스 파에 의해 명문화되었지만, 당시 명망 있는 그리스 저술가들은 대지가 둥글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중세시대로 들어선 550년경, 비잔티움제국 령이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 코스마스는 그의 저서 <크리스천 지형학Christian Topography>에서 지구 구형론을 부정하고 성경을 토대로 ‘지구 평면설’을 주장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생몰연대는 물론 이름조차 본명인지 확실치 않다. 다만 그의 저서를 인용한 성경주석 가운데 ‘코스마스 인디코플레우스테스Kosmas Indikopleustes’라는 이름이 있어 그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인디코플레우스테스는 ‘인도를 항해한 사람’이란 뜻으로, 그가 인도에 가서 무역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코스마스는 젊은 시절부터 지중해를 비롯해 홍해, 페르시아만, 아프리카 북동부의 악숨 왕국Kingdom of Axum 외에도 멀리 인도와 타프로바네Taprobane(지금의 스리랑카)까지 오가며 향신료 등을 수입하는 상인이었다. 그러던 중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한 동방교회 총대주교인 마르 아바Mar Aba를 만나 감화되어 그리스도교인이 되었고, 뒤에 수도사가 되어 시나이반도의 수도원을 거점으로 활동했다. 그는 그 수도원에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크리스천 지형학〉을 저술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지형학〉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3개의 사본만 전해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사본은 9세기경 콘스탄티노플에서 필사된 것으로, 로마 바티칸도서관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에 있고, 나머지 2개는 11세경 필사된 사본으로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성 카타리나수도원(Gr.1186)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라우렌치아나도서관(Plut.9.28)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바티칸도서관 본은 10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성 카타리나수도원과 라우렌치아나도서관 본은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별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제1권은 지구는 둥글고 대척지對蹠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내용이고, 제2권은 지구를 측정한 것을 인용해 지구의 길이가 너비의 두 배라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고, 제3권은 성경의 권위와 조화를 주장하기 위해 많은 문헌을 인용했고, 제4권과 5권은 지구가 둥글다는 교리를 반증하기 위한 내용이고, 제6권은 태양이 지구보다 몇 배 더 크고 거리가 멀다는 것을 서술했고, 제7권은 하늘이 쉴 새 없이 회전하는 구체임에도 불구하고 용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 쓴 저술을 반박했고, 제8권은 선지자인 히스기야Hezekiah의 기도에 대해 설명했고, 제9권은 천체를 다뤘고, 제10권은 자신의 주장이 교회의 가르침과 밀접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설명했고, 제11권은 지리에 관한 것으로 여행 중에 보고 들은 동식물의 묘사와 실론ㆍ인도ㆍ페르시아ㆍ중국 등 서쪽 나라들과의 상거래에 대해 설명했고, 제12권은 원로 이교도 작가들이 구약성서의 고대에 대한 증언을 서술했다.


바티칸도서관 본(Vat.gr.699)은 10권 1책으로, 책의 크기는 가로 31.5cmㆍ세로33.2cm이고, 쪽수는 1r부터 123v까지이다. 1r은 오른쪽 면이고, 1v는 왼쪽 면이므로 1r-123v는 오늘날의 쪽수로 계산하면 246쪽이 된다. 책의 구성은 1r은 인덱스, 1v-2r은 논증, 2r-6v는  I권, 7r-24r은 Ⅱ권, 24r-37v는 Ⅲ권, 38v-44v는 Ⅳ권, 45r-91v는 Ⅴ권, 91v-96r은 Ⅵ권 96v-109v는 Ⅶ권, 109v-114r은 Ⅷ권, 115r-118r은 Ⅸ권, 118r-123v는 Ⅹ권이다. 


바티칸도서관 본에는 56개에 이르는 삽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Ⅳ권 40v에 수록된 삽화가 세계지도이다. 지도의 전체적인 형태는 성경의 내용에 따라 코스마스가 생각한 우주의 이론적 모델, 즉 대지는 평평하고 하늘은 목동의 막사처럼 둥근 덮개로 이루어졌으며, 대지 북쪽은 천공에 이르는 높고 험준한 산이 솟아 있고, 지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태양이 산 뒤로 갔을 때가 밤이라 해석했고, 그 우주의 바닥인 대지는 가로세로의 비율이 2:1인 장방형長方形이라고 생각했다. 


양피지에 채색 필사로 그린 지도의 크기는 가로 30cmㆍ세로 20cm가량이고, 바다를 나타내는 청색이 많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지도의 방위는 위쪽이 북쪽이고, 대륙은 대해양大海洋인 장방형의 오케아누스Oceanus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관은 대지는 원반 모양으로 생겼고, 그 주위를 거대한 바다인 오케아누스가 둘러싸고 빙빙 돈다고 했다. 오케아누스의 바깥쪽은 ‘노아Noah의 대홍수’ 이전에 사람이 살았던 전설의 땅이고, 오케아누스 안쪽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다. 또 오케아누스의 동쪽 땅은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이 살았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화려한 꽃이 가득한 낙원인 오이쿠메네Oikumene, 즉 에덴의 동산이다.


오케아누스 내에는 큰 글자로 ‘OKEANOS’라고 쓰여 있고, 사방 중앙의 붉은색 원 안에 그려진 뿔 나팔을 불어대는 사람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4대 풍신風神이다. 서쪽의 오케아누스와 이어진 내륙의 바다는 로만 걸프Roman Gulf, 즉 지중해이고, 북쪽 오케아누스에서 돌출된 원형의 바다는 카스피해이고, 남쪽 중앙부에 돌출된 원형의 바다는 아라비아만Arabian Gulf, 즉 홍해이고, 그 동쪽에 돌출된 원형의 바다는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이다. 또한 동쪽 오케아누스에서 돌출된 땅은 터키 땅인 아나톨리아Anatolia이다. 


지중해에서 북쪽으로 돌출된 왼쪽의 만입은 아드리아해Adriatic Sea이고, 오른쪽 만입은 에게해Aegean Sea로 흑해나 아조프해Sea of Azov로 연결되고, 지중해 남쪽으로 흘러드는 강은 나일강이다. 에덴의 동쪽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은 오케아누스 밑을 통과해 아라비아해와 지중해로 흘러드는데, 오케아누스 동쪽 밑을 통과해 아라비아해로 흘러드는 강은 피손강Phison(인더스강)이고, 남쪽 땅을 가로질러 지중해로 흘러드는 기혼강Gihon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강이다. 또 사람이 거주하는 대지에서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드는 강은 유프라테스강(서쪽)과 티그리스강(동쪽)이다. 


기원전 194년에 세계지도를 그린 그리스의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는 지구가 완전한 구체라고 주장하면서 지구의 둘레까지 계산했다. 그러나 그보다 7세기 뒤에 제작된 코스마스의 세계지도는 지구 구형론을 부정했지만, 영국의 사학자인 레이몬드 비즐리 Raymond Beazley는 “지형에 대한 또 다른 관심”이라고 평했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