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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차박이 대세다!ㅣ르포] 시동을 거는 순간 자유가 내 곁으로

글 손수원 기자 사진 한준호 차장
  • 입력 2020.09.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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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국망봉자연휴양림에서 차박 후 한탄강주상절리길 걷기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차박을 즐긴다. 하늘이 지붕이고 숲이 텐트가 된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서 차박을 즐긴다. 하늘이 지붕이고 숲이 텐트가 된다

‘차박’이 대세다. 과거 럭셔리 오토캠핑에서 백패킹으로 트렌드가 바뀌었고, 코로나19에 의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차박이 아웃도어 키워드로 떠올랐다. 차박은 말 그대로 차에서 먹고 자는 캠핑이다. ‘내 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캠핑을 즐기는 것으로, 어쩌면 언택트 시대에 가장 부합하는 아웃도어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준영씨가 모형총을 손질하고 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준영씨가 모형총을 손질하고 있다.

내 차가 작은 호텔로 변신

사진작가로서 월간<山>에 객원기자로 참여하기도 했던 김준영씨는 백패킹 마니아지만 요즘엔 차박을 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혼자 즐기는 백패킹이라 할지라도 오가는 사람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곤 한다는 것. 그래서 아예 차 안에서 먹고 자는 것이 속 편하단다.

이번 차박 취재를 제안했을 때 준영씨는 “아무리 차박이라 해도 독자에게 예쁜 사진을 보여 주는 게 좋지 않겠냐”며 캠핑장으로 가는 걸 제안했다. 소위 ‘차박러’들이 가는 곳은 외딴 노지인 경우가 많고 최대한 조용히 왔다가는 게 불문율이라 사진으로 표현할 만한 것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었다. 

숙련된 솜씨로 파전을 뒤집는 지은씨.
숙련된 솜씨로 파전을 뒤집는 지은씨.

요즘은 캠핌장도 일반 오토캠핑 사이트뿐만 아니라 차박을 할 수 있게 노지 사이트를 만들어 둔 곳이 꽤 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포천의 국망봉자연휴양림이다. 이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이라 코로나 시국에도 운영하고 있다. 게다가 넓은 운동장 같은 일반 캠핑장과는 달리 숲 속에 있어 노지 느낌의 차박을 ‘합법적으로’ 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 걸려 도착했다. 휴양림 입구 저수지와 계곡이 자연 그대로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우선 노지와 가장 비슷한 사이트에 차를 댔다. 이번 차박 콘셉트는 ‘수수함’이다. 요즘은 디자인 예쁜 차박용 도킹 텐트 등이 많이 출시되어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굳이 이런 장비를 새로 사기보다는 기존 장비를 활용하기로 했다.

차박이라고 해서 기존 백패킹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차에서 자느냐 텐트에서 자느냐의 차이일 뿐, 그외의 활동은 백패킹 장비를 쓰면 된다. 따라서 이미 캠핑 장비를 가지고 있다면 잠을 자는 차 공간에만 신경 쓰면 된다.

세심한 손놀림으로 레몬소주 하이볼을 만드는 지은씨.
세심한 손놀림으로 레몬소주 하이볼을 만드는 지은씨.

잠잘 공간 평평하게 하는 게 중요

일단 차 2열을 앞으로 접어 공간을 만들어 준다. 의자를 접은 후 바닥이 완전히 평평해지는 차가 있고 약간 경사가 지고 빈 공간이 노출되는 차가 있다. 요즘 출시되는 차는 거의 경사가 있어 평평한 나무판을 깔거나 매트를 덧깔아 바닥을 평평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것을 흔히 ‘평탄화 작업’이라고 한다.

물론 평탄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차박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차에서 요리를 한다든지 허리 아프지 않게 편하게 자려면 바닥을 평평하게 만드는 쪽이 낫다. 어떤 차박러는 “차박의 90%는 평탄화 작업을 얼마나 완벽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은은한 가스랜턴 불빛이 나를 감싸는 분위기에서 커피 한 잔.
은은한 가스랜턴 불빛이 나를 감싸는 분위기에서 커피 한 잔.

의자를 접은 후 발포매트와 침낭을 깐다. 나름 차박에 특화된 SUV라 의자를 접은 바닥이 평평한 것은 물론, 어른이 누워도 발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 만큼 공간도 널찍하다. 아이스박스와 테이블까지 옆에 놓으니 아늑한 맛도 있다. 이제껏 짐만 잔득 싣고 다니던 차가 어느새 작은 호텔로 바뀌었다.

“어머, 이렇게 해 놓으니 텐트 안처럼 아늑하네요!”

이번 취재의 또 다른 게스트 염지은씨는 남정네들이 꾸민 ‘스위트 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준영씨가 ‘귀하게’ 모셔온 지은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 백패커이다. 그녀는 캠핑뿐만 아니라 스쿠버 다이빙, 프리 다이빙 등을 즐기는 아웃도어 레포츠 마니아다. 그녀는 전국을 누비며 백패킹을 즐기지만 차박을 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 만큼 이번 차박에 대해 기대가 큰 눈치다.

나만의 침실이 된 차안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차박의 즐거움이다.
나만의 침실이 된 차안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차박의 즐거움이다.

파전,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이제 외부 공간을 마련할 차례. 타프를 차량 뒷부분부터 덮어 설치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차가 침실이 되고 나머지 타프 공간이 거실이 된다. 텐트로 생각하자면 침실과 거실이 구분된 ‘리빙쉘 텐트’ 구조인 셈이다.

타프까지 쳤으면 사이트 구축은 끝이다. 이제 의자와 테이블만 놓고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면 된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예전 럭셔리 오토캠핑이 유행했을 때 텐트를 치고 테이블이며 주방장비까지 세팅하느라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보낸 것에 비하면 너무 편하다.

차박에선 트렁크가 세상 가장 편한 의자가 된다.
차박에선 트렁크가 세상 가장 편한 의자가 된다.

사이트 구축에 힘을 쓰지 않으니 한결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가을 초입의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우선 원두커피를 내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커피를 다 내리니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타프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 낭만적이다.

“역시 빗소리는 ‘야생’에서 즐겨야 제 맛이죠. 작은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네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좋고… 어? 지은아 뭐하니?”

세상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하던 준영씨가 놀라며 지은씨 쪽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부스럭거리며 배낭에서 무엇을 꺼내더니 어느새 작은 프라이팬에 파전을 부치고 있었다.

“이런 날엔 파전에 막걸리 아니겠어요? 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미리 파전 반죽을 만들어왔죠. 히히. 나름 백종원 레시피예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파전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야말로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이다. 역시 ‘캠핑 좀 하는 여성’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비오는 숲에서 파전에 막걸리라. 이 정도면 타프 하나 친 것 치고는 너무 후한 상이다.

간단하게 먹고 마시다 보니 이내 비가 그쳤고, 짧은 막걸리 파티를 끝냈다. 이대로 술잔만 기울이고 있기엔 초가을의 풍광이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차 뒤쪽에 타프를 치면 훌륭한 거실 공간이 된다.
차 뒤쪽에 타프를 치면 훌륭한 거실 공간이 된다.

준영씨는 “백패킹과 차박의 가장 큰 차이는 차를 이동의 도구로 쓰느냐 캠핑의 도구로 쓰느냐에 있지만 그걸 떠나서 어떠한 캠핑이건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캠핑이라고 하면 으레 고기 구워 먹고 마시는 걸 생각해요. 물론 그것도 캠핑의 즐거움 중 하나죠. 하지만 그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늘 똑같은 캠핑이 되어버릴 거예요. 먹고 마시는 것도 좋지만 무엇을 하면서 노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저 같은 경우는 밀리터리 마니아라서 ‘총질’을 해요. 깡통을 세워 놓고 사격을 하는 거죠. 친구들에게 사격 시범도 보이고 누가 더 많이 맞추나 내기도 하고요. 이렇게 무언가 특별한 놀거리를 만들면 차박이 더 기억에 남죠.”

준영씨는 친구들과 캠핑을 가더라도 그날의 놀거리를 생각해 같이 즐긴다고 했다. 덕분에 어느 캠핑 모임에 가나 ‘레크리에이션 강사’ 역할을 도맡아 한다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서히 해가 졌다. 바다에서 보는 노을은 없었지만 대신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가득 찼다. 저녁 식사 메뉴는 목살과 삼겹살 바비큐다. 이번 차박은 취재가 목적이라 정식 캠핑장을 이용한 덕분에 화로를 피울 수 있었다. 장작불에 고기를 굽는다.

“사실 노지 차박에서는 불을 사용하면 안 돼요. 소위 ‘차박 성지’라고 불리는 곳들이 하나둘 막히고 있는 것은 금지된 곳에서 불을 피우고 쓰레기를 마구 버리기 때문입니다. 과거 백패킹 붐이 일어났을 때도 비슷했어요. 점점 백패커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죠.”

소위 ‘차박 성지’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소수의 캠퍼만 알고 있는 곳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붐비는 곳들이다. 최근 이런 곳들이 하나둘씩 막히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라지만 ‘일부’ 무개념 차박러의 불법행위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준영씨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할많하않’을 시전했다. 차박 문화가 퍼진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누구의 편을 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레기만은 제발 되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결국은 캠핑하는 사람이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매트리스와 폴딩박스로 꾸민 아늑한 차박 공간.
매트리스와 폴딩박스로 꾸민 아늑한 차박 공간.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

노지대신 캠핑장을 선택해 눈치 보지 않고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불멍’을 할 수 있는 게 ‘신의 한 수’였다. 불멍은 장작불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멍 하게 있는 것을 말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겐 멍 때리는 일도 힐링이다.

이번 취재 ‘공식 셰프이자 바텐더’ 지은씨가 만든 레몬소주 하이볼을 마시며 불멍을 하다 보니 한 마리 불나방이 된 느낌이다. 이제 그만 잘 시간이 왔나보다.

차에 누워 선루프를 여니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이렇게 별을 본 게 얼마만인가.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얼마만인가. 오늘 만큼은 차 안이 나만의 호텔이 된다. 사방에서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절로 눈이 감긴다.

포천 국망봉자연휴양림
포천 국망봉자연휴양림

포천 국망봉자연휴양림

경기도 내에서 세 번째로 높은 국망봉(1,168m) 아래 자리한 자연휴양림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수지와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통나무집과 일반 캠핑 사이트로 구성되어 있어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사이트가 자리하고 있어 번잡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나무가 많은 것도 장점. 차박을 할 요량이라면 가장 위쪽에 있는 D사이트가 적당하다. 이용요금 캠핑 사이트 3만5,000~4만 원. 통나무집 10만~20만 원. 구역 예약 후 선착순으로 자리 배정.

문의 010-2234-5522. 홈페이지 www.kookmang.co.kr

한탄강 주상절리길 출발점에 있는 비둘기낭 폭포.
한탄강 주상절리길 출발점에 있는 비둘기낭 폭포.

용암이 만든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

비둘기낭 폭포 기점으로 한탄강 주상절리 등 절경 감상하며 걷는 길

‘큰 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한탄강은 화산폭발로 용암이 흐른 자리에 물이 흘러 생긴 강이다. 총 136km 길이의 강 주변은 현무암으로 된 용암지대를 관류하기 때문에 기암절벽과 협곡 등 많은 지질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불린다.

한탄강이 2015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비둘기낭, 주상절리 등 천혜의 자연 환경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조성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한탄강 주상절리길’이다. 한탄강 일대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최종 인증 받았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현재 총 5개 코스가 개방되어 있다. 모든 코스는 비둘기낭 폭포를 기점으로 한다.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비둘기낭 캠핑장, 편의점, 화장실, 방문자 센터 등이 들어서 있어 베이스캠프 역할을 제대로 한다.

비둘기낭 폭포는 한탄강 8경 중 하나다. ‘비둘기낭’은 비둘기 둥지를 뜻한다. 폭포 뒤의 동굴에서 백비둘기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폭포 주변의 모습도 그릇 같은 비둘기 둥지를 닮았다. 천연기념물 제537호이기도 하며 ‘선덕여왕’, ‘추노’, ‘늑대소년’ 등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며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제1코스 ‘구라이길’은 비둘기낭 폭포에서 출발해 운산리 캠핑장~운산리 자연생태공원까지 4km 구간이다. 구라이는 ‘굴+아위’의 합성어로 ‘굴 바위’라고도 불리며 한탄강 지천에 형성된 현무암 협곡을 말한다. 5개 코스 중 가장 짧아 산책삼아 다녀오기 좋다.

제2코스 ‘가마소길’은 비둘기낭 폭포~포천 한탄강 하늘다리~마당교까지 5km 구간이다. 2018년 5월에 개통된 200m 길이의 한탄강 하늘다리를 건너며 한탄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하늘다리 중간 바닥에는 투명 강화유리로 된 창이 설치되어 있어 하늘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제3코스 ‘벼룻길’은 비둘기낭 폭포~멍우리협곡~벼룻교~부소천교까지 6km 구간으로 벼룻교와 보소천교까지 이어지는 포천협곡의 최고의 명소를 관람할 수 있다.

제4코스 ‘멍우리길’은 비둘기낭 폭포~포천 한탄강 하늘다리~징검다리~멍우리교까지 5km 구간이다. 멍우리협곡이 만들어내는 신비한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제5코스 ‘비둘기낭 순환코스’는 걷기꾼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 3·4코스의 알짜 구간을 순환하는 코스로 비둘기낭 폭포에서 출발해 3코스 벼룻길의 일부인 멍우리협곡 전망대를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 4코스 멍우리길의 일부 구간을 거슬러 비둘기낭 폭포로 되돌아온다. 총 5km 거리이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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