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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DIN] 가장 아름다운 곳이 가장 더럽다…간월재의 두 얼굴

월간산
  • 입력 2021.05.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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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로 팀 분할해 영축산·간월재·신불산 등산로별 클린하이킹

열두 명이 모은 쓰레기로 만든 실제 사람 크기보다 더 큰 사람 형상의 정크아트. 그 앞에서 클린하이커스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열두 명이 모은 쓰레기로 만든 실제 사람 크기보다 더 큰 사람 형상의 정크아트. 그 앞에서 클린하이커스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클린하이킹’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일반적인 등산모임에 비해 어렵고 힘든 이 모임이 여태 지속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등산이 대중적인 일상체육으로 떠올라서일까? 클린하이킹이 ‘가치’를 실현하는 일인 까닭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 활동엔 건강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산 청소’를 목적으로 한 그룹으로는 유일무이했던 클린하이커스와 비슷한 모임들이 생겨났다. 보기 드물었던 쓰레기 줍기 행사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기업에서는 너도나도 플로깅(조깅을 하면서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운동으로, 스웨덴에서 시작돼 북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됨) 캠페인을 비롯해 환경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데 분주하다.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이러한 움직임이 상승세를 타고 활발해지는 듯했다.

간월재 데크 앞에 무자비하게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간월재 데크 앞에 무자비하게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있는 클린하이커스.

그러나 2020년 봄 이후, 클린하이킹 모임을 잠정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이다. 환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와 같은 사상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 방역 지침을 준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 그런 시대에 ‘사람 간의 모임’이 기반인 클린하이킹 캠페인을 계속하기 힘들어졌다.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년을 기다려 보았지만 코로나가 끝나긴커녕 그 끝이 있기는 한 건지도 불확실해졌다. 그 끝을 기다리다가는, 이 지구가 먼저 끝나 버릴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도 환경 활동을 이어갈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클린하이커스 영남팀 팀장 전성태씨가 운을 띄웠다.

“다 함께 모이긴 힘드니, 산의 각 봉우리마다 인원을 퍼뜨려서 한날한시에 클린하이킹을 하면 어떨까요?”

지산마을을 들머리로 숲길을 올라가는 영축산 팀.
지산마을을 들머리로 숲길을 올라가는 영축산 팀.

아하! 무릎을 탁 쳤다. 코스별로 ‘각개전투’ 하자는 말이다. 여러 인원의 대면 상황을 줄이고, 한 산을 코스별로 나눠 동시에 청소하는 활동! 이전보다 더 효율적인 산 청소 방안이자, 코로나 시대 맞춤형 자연정화활동으로 제격이었다. 하나의 산을 목표로 한 본격적인 ‘쓰레기를 대상으로 한 공격’이라는 뜻에서 이 캠페인에는 ‘클린어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개인적 이유와 친목을 위한 모임과 만남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환경문제와 밀접히 맞닿아 있듯 정화 활동과 환경적 메시지를 전하는 활동은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12명의 클린하이커스는 첫 클린어택 대상지 영남알프스로 향했다.

방문객이 모아서 버리고 간 듯한 과자 포장재와 쇼핑백을 줍고 있다.
방문객이 모아서 버리고 간 듯한 과자 포장재와 쇼핑백을 줍고 있다.

4명씩 3개 팀 이뤄

“영남알프스는 올 때마다 늘 많은 쓰레기가 목격돼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영남알프스는 경상남도 밀양시와 청도군, 울산광역시 울주군 등에 걸쳐 있는 1,000m 이상 높이의 9개 산군을 말한다. 9개의 산군이 유럽 알프스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가을에는 억새가 곳곳에 황금빛 들판을 이루고, 그중 간월대피소와 편의시설이 갖춘 간월재는 2016년 전면 야영 금지되기 전까지는 백패킹 명소로도 유명했다. 최근 울주군은 간월재대피소를 백패킹 야영장으로 개축해 오는 6~7월에 오픈할 계획을 밝혔다.

 20년이 넘도록 썩지 않은 오래된 캔.
20년이 넘도록 썩지 않은 오래된 캔.

4월 11일 일요일, 서울 경기 및 영남지역에서 모인 총 12명의 클린하이커스가 4명씩 3개 팀으로 나누어 영남알프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간월재, 신불산, 영축산을 청소하기로 했다. 팀 별로 각각 산행지 들머리로 집결했다. 필자가 포함된 간월재 팀이 복합웰컴센터에 도착하니 제6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상영관 스크린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서는 발열체크 스티커를 붙이고 소독이 진행됐다.

따스한 볕이 내리 쬐는 봄 날씨가 반겼다. 산 입구에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상쾌함을 더했다. 이 시절에만 볼 수 있는 연두색 신록이 마치 형광색처럼 선명하게 빛났다. 쨍한 연두색 잎사귀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렸다. 등산하기도, 쓰레기 줍기도 좋은 날씨다.

서울팀의 황인갑씨, 부산 장산에서 클린하이킹에 참여한 이후 꾸준히 활동 중인 이한솔씨, 안동에서 달려온 영남팀의 활발한 멤버 황윤정씨가 한 팀을 이룬 간월재 팀은 클린백과 집게를 장착했다. 처음에는 쓰레기가 별로 없는 듯했는데 인갑씨는 마치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사라졌다가 오래된 캔, 음료수 페트병을 들고 서에 번쩍 나타났다. 몇 년 전 100대 명산 도전을 끝낸 이후, 모든 산행을 클린산행으로 이어오고 있다는 진성 클린하이커다.

 방문객들이 쉼터로 삼는 신불산 데크 밑, 투기되어 오랜시간 쌓인 흔적들을 청소하고 있다.
방문객들이 쉼터로 삼는 신불산 데크 밑, 투기되어 오랜시간 쌓인 흔적들을 청소하고 있다.

“영남알프스는 제가 다닌 산 중에 쓰레기가 많은 산 1등이었어요. 얼마 전에 배태망설(천안 아산시에 있는 배방산, 태화산, 망경산, 설화산)이 새로운 기록을 깨기 전까지요.”

쓰레기가 없을 것 같던 아름다운 길에도 귤껍질, 나무젓가락, 각종 페트병이 즐비했다. 봉투에 든 애완견 분변도 발견됐다. 심지어 갓 버린 듯 따뜻했다.

“영남알프스에 몇 차례나 와 봤지만,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얼마 전까지 대구에 거주하며 이곳을 자주 찾았다는 한솔씨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간월재 임도길을 따라 울주군 전경이 펼쳐지고,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간월재 임도길을 따라 울주군 전경이 펼쳐지고,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활공하고 있다.

“여길 보세요!”

자기 몸집만 한 클린백을 메고 쏘다니던 윤정씨가 느닷없이 소리쳤다. 나무 기둥의 움푹 패인 홈에 핫팩이 은폐되어 버려져 있었다. 사용한 사람의 알량한 이기심이 엿보여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홍류폭포 갈림길 기점으로 간월재로 향하는 길은 점점 가팔라졌다. 무심히 지나쳤을 때는 관리가 잘되고 있는 듯했지만 자세히 보니 어느 산에서나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담배꽁초와 스틱 커피 포장재, 코로나 아이템 마스크, 겨울 필수품 핫팩과 연례행사처럼 쏟아지는 생수 병이 가득했다. 공사 후 수거하지 않고 방치된 폐기물도 있었고, 쉼터 주변으로는 흔히 퇴비라고 잘못 생각하는 달걀껍질과 귤껍질도 많았다. 농약 성분이 포함된 과일껍질 때문에 야생 동물이 불임이 된 사례도 있어 과일 껍질도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 커다란 클린백을 가져와 다 채울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지만 그것을 채우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살만 발라먹고 고스란히 버려진 치킨 뼈.
살만 발라먹고 고스란히 버려진 치킨 뼈.

쉼터 평상에서 물을 마시던 중 한 모자를 만났다.

“클린 산행하시나 봐요. 보기 좋아요. 사실 저희도 하산할 때는 쓰레기를 줍고 다녀요. 너무 많이 보여서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지만요.”

무척 공감되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보고 싶어서 등산을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쓰레기를 줍냐’고 초등학생 이지훈 군에게 되물었다.

“보이니까 빨리 치워야죠. 쓰레기가 너무 많이 있으면 모두 불편할 것 같아요.”

요즘 표현으로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어린 친구에게 이런 소리를 듣다니, 어른을 대표해서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든든한 마음도 들었다.

평소에도 클린하이킹을 한다는 이지훈군과 이야기하며 쓰레기를 담고 있다.
평소에도 클린하이킹을 한다는 이지훈군과 이야기하며 쓰레기를 담고 있다.

명소일수록 쓰레기투성이, 간월재의 민낯

어느덧 아스팔트 임도가 나왔다. 간월재까지는 차를 타고 이동 가능하다. 그 말은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는 뜻이다. 간월재에 도착하니 억새들이 빼곡한 장관이 펼쳐졌다. 간월대피소와 데크 테이블 주변으로 가족단위 그룹이나, 연인이나 친구 등의 많은 방문객들이 있었다.

일회용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는 사람들, 그 옆에는 각종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술병과 컵라면 포장재, 마구 버려진 나무젓가락과 음식물 쓰레기들, 야무지게 발라 먹은 치킨 조각도 무자비하게 쌓여 있다.

“치킨 맛있죠. 먹는 것까진 좋은데 왜 이걸 이렇게 두고 가는지 참….”

벚꽃이 떨어진 바닥에 과일껍질이 버려져 있는 풍경이 아이러니하다.
벚꽃이 떨어진 바닥에 과일껍질이 버려져 있는 풍경이 아이러니하다.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곳은 가장 더러운 곳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젠 하나의 수학 공식처럼 검증이 끝난 명제인 것 같다.

간월재는 인간의 실수로 몇 차례 불이 나기도 하고, 쓰레기 무단 투기나 취객들의 싸움이 언론에 실리는 일도 있어 현재 야영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실수가 저질러지고 있는 듯하다.

클린하이커스 신불산, 영축산, 간월재 팀은 신불산 정상에서 잠시 접선하기로 했다. 간월재 팀이 가장 먼저 최종 목적지인 신불산에 도착했다. 신불산 정상 데크에서 바라본 풍경의 중심에는 영축산이 있었다. 15분쯤 뒤 영남팀장 전성태씨를 포함해 정재원, 추장호, 안미진씨가 속한 신불팀이 도착했다.

신불팀은 험하기로 소문난 공룡능선을 넘어왔다. 1km 남짓한 아찔한 절벽으로 이루어진 공룡능선에서 쓰레기를 버릴 틈이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체가 많은 구간이라 기다리면서 많이 먹고 버린다고 한다. 멋진 풍경 앞에서 피운 듯한 담배꽁초가 특히 많았고, 쉼터 곳곳에서도 작정하고 버린 쓰레기가 노다지처럼 쏟아져 나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간월재로 하산하는 클린하이커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간월재로 하산하는 클린하이커스.

마지막으로 가장 먼 길을 걸어온 영축팀이 도착했다. 지산마을에서부터 출발한 고원상, 박승현, 손지훈, 강문희씨로 이루어진 영축팀은 우거진 숲길을 걸어왔다. 간월재나 신불산에 비해 방문객이 많은 길은 아니었지만 역시 벤치 주변으로 버려진 음료 페트병, 과자 포장재와 음식물 쓰레기가 즐비했다. 영축팀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보다는 웃음과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신불산 정상 데크에서 바라보이는 광활한 풍경을 병풍 삼아 주운 쓰레기를 한 데 모았다. 정크아트 작업을 시작했다. 한 팀은 쓰레기를 분류하고 다른 한 팀은 쓰레기를 날랐다. 나머지 한 팀은 쓰레기를 배치시켜 모양을 다듬었다. 12명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다른 산객들은 클린하이커스의 분주한 움직임을 지켜봤다. 산정에서 이루어지는 퍼포먼스처럼 보였다.

각종 쓰레기를 모아 만든 형상은 ‘걷고 있는 하이커’. 열두 사람이 모은 쓰레기라서 더욱 커다란 정크아트가 탄생했다.

순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잇츠베러 티쿠키와 그래놀라. 동물성 식품 대신 식물성 간식을 즐기는 것도 환경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순식물성 원료로 만들어진 잇츠베러 티쿠키와 그래놀라. 동물성 식품 대신 식물성 간식을 즐기는 것도 환경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신불산 정상에서 정크아트 펼쳐

나무젓가락으로 사람의 라인을 만들고, 수건이나 장갑 등으로 머리를 만들었다. 일회용품과 페트병으로 몸통과 팔 다리를 채우고, 지팡이와 공사폐기물로 만든 배낭과 스틱을 장착시켰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수만 리 길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자국이 커다란 녹색 발자국을 만들어 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미션을 마치고 각 팀별로 거리를 유지하며 하산했다. 이날 12인의 클린하이커스는 영남알프스 아홉 봉우리 중 두 개의 산과 두 개의 고개를 청소했다. 세 팀의 도합 이동거리는 약 37km, 전체 쓰레기 수거량은 약 12kg. 쓰레기를 가득 안고 돌아가는 길, 뿌듯한 얼굴을 한 클린하이커 윤정씨와 재원씨가 이야기했다.

“클린하이킹의 대외적인 취지는 자연을 깨끗이 하자인데, 같은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과 함께하니 자연뿐만이 아니라 제 마음도 맑고 깨끗해지는 것 같아요.”

“너무 신선한 도전이었어요! 한 해 동안 활동을 멈춰서 속상했는데, 시국 상황을 반영해서 창의적 방법으로 잘 풀어나간 듯해요. 정말 멋진 프로젝트였습니다.”

언젠가 마라톤이나 철인 대회에 참여하는 것처럼 수많은 산꾼들과 시민들이 모여 한 산을 정화하는 날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이 기세를 몰아, 코로나가 끝난다면 ‘지구의 날’처럼 ‘전 국민 산 청소의 날’을 만들어 한날한시에 청소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본 기사는 월간산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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