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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경상도의 숨은 걷기길] 1,500년 전 아라가야의 발자취 따라 걷다

글·사진 황계복 부산산악연맹 자문위원
  • 입력 2021.06.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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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경남 함안군은 지난 3월 아라가야의 유적지와 지역 명소를 연결하는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이라는 새로운 걷기 코스를 만들었다. 이 길은 가야읍내의 전통 재래시장을 비롯해 주변 경관이 빼어난 함안 중심지의 명소와 고대 아라가야의 성터, 고분군 등을 연결하고 있다. 특히 정자와 연못, 시장과 공원 등 함안의 다채롭고 활기찬 풍경을 두루 느껴볼 수 있어 좋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고대 유적지에서부터 현대인들의 삶이 느껴지는 전통시장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 도시와 자연을 이어 주는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순례길은 함안 버스터미널이 출발점이자 종점인 원점회귀 코스다. 전통 5일장(5, 10일)이 열리는 가야시장과 아라길을 지나는 1구간(1.4km)~동산정까지 2구간(2km)~함안역 3구간(2.2km)~무진정과 성산산성을 거치는 4구간(2.6km)~함안박물관까지 5구간(2.2km)~말이산 고분군을 품은 6구간(3.7km)~남문외 고분군과 연꽃테마파크, 함주공원을 돌아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7구간(3.5km)으로 전체 거리는 약 18km이다. 아직 마무리가 미흡한 곳도 있지만, 이 역사 순례길은 특색 있는 테마에 51개 이정표가 길을 안내한다.

전통 5일장이 열리는 날, 함안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시골의 비좁고 작은 터미널 대합실이 왁자지껄하다. 장날을 맞아 대중교통편을 이용한 인근 지역 사람들이 5일마다 돌아오는 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때문이다. 터미널을 벗어나면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1구간’ 입간판이 길손을 반긴다. 1구간은 전통 5일장이 열리는 가야시장과 옛 경전선 철도의 폐선부지에서 도심재생지로 거듭난 아라길을 지나는 시가지 코스다.

역사 순례길이 시작되는 쌈지공원에서 신발 끈을 죈다. 대로변에 보이는 삼일약국 옆으로 가야시장에 이른다. 상설시장인 건물을 빠져나가면 5일장이 열리는 가야시장 장터다. 노상에 차일을 치고 각종 물건을 펼친 시골 장터의 풍경은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하다. ‘아라길’ 표석을 지난다. 함안을 오가던 경전선 철길을 걷어 낸 자리에는 공원과 산책로 등 군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신했다. 골드캐슬아파트가 보이는 사거리에서 제일자동차정비로 꺾어 드는 사거리에 2구간 입간판이 있다.

2구간은 번잡한 가야읍 중심지를 벗어나 동산정까지 이어진다. 좁은 도로를 따라 제일자동차정비 앞을 지난다. 함안지역 자활센터 옆의 국도 79호선 아래 굴다리를 빠져나가 함안천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꺾어 든다. 하천을 따라가는 길은 벚나무 가로수가 운치를 더해 준다. 공사 중인 검안교를 건너 동산정에 이른다. 정자 입구에는 640세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쇠지팡이에 온 몸을 의지한 채 함안천을 바라본다.

아라가야 패장 전설 전하는 성산산성

동산정東山亭은 동지산 서쪽 기슭 함안천변에 세워진 정자다. 마당에는 바위를 그대로 두어 자연미를 살린 흔적이 돋보인다. 또 벼랑 위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함안천의 물길 풍경이 은은하다. 정자는 조선 세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동산 이호성東山 李好誠이 짓고, 그의 손자 이희조李希祖가 ‘동산정’이라 했다.

동산정에서 시작되는 3구간은 함안천을 따라 검암산 자락에 조성된 산책로를 지나서 함안역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대사마을까지 지난 2009년에 조성된 함안천 생태공원 일주로이기도 하다. 동산정 절벽에 심어진 배롱나무는 여름날 붉은 꽃이 필 때면 정자 주변을 화사하게 물들일 것이다. 도선사라는 조그만 절집 앞을 지나 대사교를 건넌다. 하천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함안역에 닿는다.

함안역에서 시작되는 4구간은 무진정을 거쳐 성산산성 서문까지다. 실질적인 순례길의 시작으로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구간이다. 함안역을 뒤로하고 괴항마을에 이르면 큰 연못이 아름다운 무진정無盡亭이다. 정자는 경남도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조선 중종 때 사헌부 집의와 춘추관 편수관을 역임한 무진 조삼無盡 趙參 선생이 손수 지었다고 한다. 정자의 편액과 기문은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쓰고 지었단다. 지금의 건물은 1929년에 중건한 것이다.

발걸음은 성산산성으로 오른다. 성산산성은 조남산鳥南山(140.3m)을 둘러싸고 있다. 이 산성에는 신라에 패배한 장수가 통곡하며 칩거했다는 아라가야 장군의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목간은 국내 단일 유적 중 가장 많은 양이라고 한다. 연못 터 발굴에서 수습된 700여 년 전 연蓮의 씨앗은 싹을 틔워 ‘아라홍연阿羅紅蓮’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벽을 끼고 이어지는 탐방로는 생각보다 완만하다. 북쪽 성벽 위에 이르면 전망이 좋다. 말이산 고분군 너머로 가야읍이 펼쳐지고, 넓은 들판에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서문지를 빠져나오면 5구간의 시작이다. 성산산성 서문에서 함안박물관까지 숨을 고르며 마을길을 지난다.

백산마을회관 앞에서 건널목을 건너 도동마을로 향한다. 시골 마을의 고샅길은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을 느끼기가 어렵다. 도동마을에서 동쪽 새터마을 방향으로 이동하면 고분군 입구의 쉼터다. 잠시 땀을 식힌 후 쉬엄쉬엄 고분 가장자리로 이어가면 함안박물관에 닿는다. 현재 코로나로 관람은 불가능하다. 대형 불꽃무늬 토기 형태의 출입구와 정원에 설치된 수레바퀴 모양 토기, 사슴 모양 뿔잔을 둘러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함안박물관은 도항·말산리 고분군을 비롯해 함안에서 출토되거나 기증한 1,800점이 넘는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주된 전시 품목은 철기와 토기다. 마갑총에서 우리나라 최초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말의 갑옷은 아라가야의 우수한 철기제작 기술의 진수를 보여 주는 유물이다.

아라가야 하이라이트, 말이산 고분군

함안박물관에서부터 남문마을까지 이어지는 6구간은 아라가야 문화유산의 결정체이자 순례길의 하이라이트인 사적 제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을 지난다. 말이산의 어원은 머리산에서 온 것으로 아라가야의 왕족과 지배층이 묻힌 신성한 산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산이라기보다 구릉지 능선을 따라 아라가야의 왕과 친족 등 당시 집권층의 묘가 모여 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유적지이기도 하다.

철모를 엎어 놓은 듯한 많은 고분들도 장관이지만 주변 조망도 시원하다. 가야읍 시가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고 너른 한바다들과 그 들판을 적셔 주는 함안천, 그 뒤 검암산도 가깝게 다가온다. 지나온 성산산성의 조남산과 그 너머로 낙남정맥을 이어주는 여항산,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인 서북산도 보인다.

이어갈 7구간의 명소들을 눈으로 짐작하며 해동아파트 앞 도로로 내려선다. 서쪽의 아라길을 따라간다. 관동 교량공사로 임시우회로인 도항택지 안길로 잇는다. 관동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둑길로 들어선다. 둑길도 잠시, 가야교를 건너면 남문마을이다.

남문마을은 마지막 7구간의 시작점으로 남문외 고분군과 연꽃테마공원을 거쳐 함주공원을 둘러보고 처음 출발지로 돌아가게 된다. 남문마을 배수장에서 신음천 옆 구릉지로 오르면 함안 남문외 고분군(도기념물 제226호)을 만난다. 함안 읍지인 <함주지咸州誌> 고적古蹟조에 ‘우곡리(가야읍 가야리, 도항리 일원의 옛 지명) 동서쪽 구릉에 옛 나라의 고총이 있다. (중략)…세상에 전하기를 옛 나라의 왕릉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남문외 고분군은 지난 5월 초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 통합돼 국가사적으로 지정 예고됐다.

신음천을 끼고 가는 구릉지로 따라가면 남문외 1호분과 43번 이정표를 만난다. 바로 아래 연꽃테마파크가 보이고 곧 가야마을 입구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도로를 건너 연꽃테마파크 입구 이정표가 가리키는 일직선 방향으로 향하면 연꽃테마파크 전망대에 올라선다. 연꽃테마파크는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인 아라홍련과 우리나라 최고의 자생 연꽃임이 입증된 법수홍련 등 50여 종의 다양한 연꽃을 볼 수 있다.

연꽃테마파크 전망대에서 공설운동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가야정을 지나 경남FC 클럽하우스 앞으로 돌아들면 공설운동장 정문에 이른다. 공설운동장 주변에는 수영장, 스포츠파크, 야구장 등이 있다. 또 함주공원은 함안의 관문에 위치한 대표적인 공원으로 함안 군민들의 문화·예술·힐링의 공간이다.

연못을 지나 공원을 빠져나오면 함안IC에서 가야읍내로 진입하는 대로변이다. 신음천 위에 놓인 함주교를 건너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의 출발지인 함안 버스터미널로 돌아오니 해는 서산에 걸렸다.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아라가야 역사 순례길 길잡이

함안 버스터미널~가야 5일장터~아라길~ 제일자동차정비~동산정~대사교~ 함안역~무진정~성산산성~함안박물관~말이산 고분군~해동아파트 앞~ 관동교~

가야교~남문외 고분군~연꽃테마파크~함안 공설운동장~함주공원~함주교~함안 버스터미널 <6시간 30분소요>

*순례길의 출발지는 꼭 함안 버스터미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기차를 이용한다면 함안역에서 시작해도 된다.


교통

창원(마산)을 경유하거나 또는 진주, 창원에서 기차를 이용하면 된다.


숙식(지역번호 055)

함안에서 숙소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중앙장모텔(583-6318), 가야장(584-1300), 아리랑장모텔(584-5577), 싸이클론모텔(583-7784), 애플모텔(585-1515 등이 있다. 맛집으로 함안박물관 인근의 신자매청국장(585-2014)은 청국장정식과 손두부뚝배기정식이 주메뉴.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두꺼비어탕전문점(584-1331)도 맛집. 가야시장의 진이식당(582-7663)은 명태전에 솔막걸리가 일품이다.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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