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김윤세의 산정무한] 공중을 걷는 듯한 암벽 위 잔도… 길동무 있어 더욱 즐겁다

글·사진 김윤세 본지 객원 기자, 인산가 회장
  • 입력 2021.11.25 10: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궐산 하늘길의 특별한 가을 정취

순창 용궐산 하늘길에서 왼쪽부터 강정호, 김상일, 필자, 조원증, 김윤종.
순창 용궐산 하늘길에서 왼쪽부터 강정호, 김상일, 필자, 조원증, 김윤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내습來襲으로 인해 인류의 삶의 행태가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 지 어언 2년이 되어간다. 되도록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으려는 심리가 팽배하고 비대면 비접촉을 지향함으로써 비교적 사람들과 대면할 가능성이 적은 명산대천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유행의 초기에는 막연한 공포 탓이었는지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의 명산 산길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져 지난봄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필두로 산청, 구례, 남원의 온갖 꽃길을 걷고 또 걸으며 형형색색의 꽃향내를 만끽했고,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을 마치 전세라도 낸 양, 호젓하게 감상하며 즐길 수 있었다. 

코로나 블루에도 如如한 산하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로 압축 표현된 이 시대의 우울한 사회상과는 대조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한결같이 여여如如한 모습을 보여 주는 산하대지山河大地의 듬직한 실상實相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없는 힐링이요, 즐거움의 시간임을 절감했다. 

시정市井에서 일어나는 온갖 시시비비와 번잡함을 떠난 산중 별천지에서의 산행은 그저 몸을 고단하게 하는 노동이나 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파란 하늘과 높이 솟은 바위 봉우리, 오랜 세월을 바라보는 낙락장송,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는 청량한 바람, 다정스레 지저귀는 새들의 지저귐, 장광설長廣舌로 팔만사천 법문法門을 들려주는 계곡의 물소리….

눈에 보이는 경광景光은 그야말로 한 폭의 산수화요, 귀에 들리는 소리는 아름다운 천상의 선율이라 하겠다. 

한국산악회 부회장, KAIST 산악회장을 역임한 산악인이요, 사업가인 김윤종(㈜마성상사) 회장께서 지난 10월 6일, 순창 용궐산 산행의 동행을 제안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터라, 만사 제치고 아침 일찍 함양을 떠나 오전 9시 20분 용궐산 하늘길 주차장에 당도해 강정호 전 경남 부지사를 비롯해 김상일(한국씨솔트 대표이사), 조원증(前 조흥은행 부행장), 이충환(前 아이티센 사장) 등 6인의 산행팀에 합류했다. 김민영 회장(前 ㈜국보 회장)은 ‘걸음이 느려서 민폐 될 수 있다’며 먼저 출발했고, 나머지 6인은 9시 5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전남 순창군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용궐산 초입의 거대한 암벽에 잔도棧道를 놓아 남녀노소 막론하고 다 같이 ‘즐기는 산행’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관광객 유치에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순창군 입장에서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고, 관광객들은 거대한 암벽에 놓인 잔도를 통해 마치 하늘 위 공중을 걷는 듯한 짜릿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차별화된 산행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어서 양쪽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다소 아쉬운 점은 산행 후 이용할 음식점이나 찻집, 목욕시설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졌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자와 뒤풀이, 더 바랄 게 없네

들머리를 출발해 1시간가량 비지땀을 흘리며 돌계단을 올라 하늘길에 들어서니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태가 드러나고, 이웃해 있는 무량산을 비롯해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듬직한 자세로 산행객들을 반긴다. 

가을 햇살이 드센 기세로 여전히 여름철 더위를 부추기지만 일단 그늘로 들어서면 용궐산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영락없는 가을의 청량한 바람을 선사한다. 

가을 산의 아름다운 풍광 속을 산길 도반道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거니노라니 조선조 문인 석지영石之嶸의 ‘가을 산을 가다山行’라는 제목의 시가 떠오른다.

해질녘까지 걸어도 만난 사람 없고
절 풍경 소리만 멀리 구름에 닿을 듯 
가을 끝 무렵이라 날씨는 쌀쌀한데
단풍 들어 누런 잎 온 산길을 덮네

사일불봉인 斜日不逢人 철운요사경徹雲遙寺磬
산한추이진山寒秋己盡  황엽부초경黃葉覆樵徑

잔도로 이뤄진 하늘길을 지나 주 능선길로 들어서서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걷다가 바윗길에 설치된 밧줄에 의지해 오르기도 하면서 2.4km 산길을 걸어 마침내 출발 2시간 만에 해발 647m의 용궐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먼저 출발한 김민영 회장을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한 뒤 7인의 산행객들은 다시 700여 m 하산해 ‘된 고개’ 부근의 평평한 쉼터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았다. 준비해 온 알코올 도수 15도의 농주 시원한 ‘탁여현’을 들이켜며 간간이 웃음 섞인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된 고개’에서 300여 m 거리에 있는 용굴에 잠시 들러 기념촬영을 한 뒤 돌계단으로 이뤄진 길을 따라 하산해 임도를 만나 오후 2시 무렵 들머리 주차장에 당도하니 산행 총거리는 6km 남짓, 소요 시간은 4시간 10분이었다. 필자에게는 올해 들어 84번째 산행이다. 순창 시내 맛집 명소 민속집으로 이동해 걸쭉한 차림 상의 한식에 동동주를 곁들여 늦은 점심과 산길 도반들의 정겨운 대화로 산행을 마감했다. 

비록 한정된 시간이었지만 길고 긴 인생의 여정旅程에서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길동무들이 고된 산길을 함께 걸으면서 정담을 나누고 우정을 돈독히 한 시간은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길이길이 기억되리라 여겨진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