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산행기] 고소·탈수 증세로 기진맥진... 정신줄 놓쳐 로프를 놓다

글·사진 아주대 산악부(15) 김태관
입력 2022.01.19 09:46
Pitch by Pitch〈12〉 키르기스스탄 레닌봉 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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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봉 전경.
‘Pitch by Pitch’는 한 피치 한 피치 앳된 오름짓을 이어가는 대학산악부원들의 진솔하고 톡톡 튀는 목소리를 담은 연재다. 이번 호에서는 아주대 산악부 김태관씨와 인천대 산악부 최선홍씨의 키르기스스탄 등정기를 다룬다. - 편집자 주

나는 등반을 아주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는 게 곧 등반 실력이 훌륭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등반을 추진할 수 있는 실력은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한량으로 지낸 시간이 길어서인지 산악 경험도 나름대로 풍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이번 원정은 실패다. 나는 좁디좁은 텐트의 얼음이 내린 천장 아래서 함께 정상을 밟고 내려온 후배와 추위에 떨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모든 흥미로운 일들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 사건의 인과를 따라 올라가면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인 일이 많다. 예를 들어 두고 나간 휴대폰을 다시 챙기려 집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그 1분 동안 전철이 기가 막히게 달려서 사라지고 30분이 넘게 다음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등반도 계기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정말 우연히 술자리에서 화두로 올라온 고산등반의 이야기에 흥미 반 재미 반으로 찾아본 고산등반지 중에서 하필이면, 어쩌면 다행히 레닌봉이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의 열인지 마음속 열정인지 모를 두근거림에 혹한 나와 인천대의 후배는 그 자리에서 레닌봉 원정대를 꾸려버렸다. 키르기스스탄에 자리 잡은 7,314m의 고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안전하다”였다. 그러한 세간의 평가에 용기를 얻어 조심스럽게 원정을 추진해 보려 했고, 주변 선후배들의 도움 덕분에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2021년 1월에 추진을 시작해 출국한 7월에 이르는 동안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다. 처음으로 20kg의 배낭을 메고 땀을 분수같이 쏟아내며 빙벽화를 신고 종주를 하고, 인터뷰도 했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응원이란 응원은 모두 받고 나서 키르기스스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 여파인지 공항은 스산할 만큼 조용했다. 우는 아이들로 가득하던 뽀로로 놀이방도, 태국과 말레이시아 출국 전 마지막으로 허기를 달래던 푸드코트 라운지도 모두 폐점한 상태였다. 우리는 마치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조용히 출국했다. 아니, 기내 수하물에 라이터가 섞여 들어가는 바람에 카고백을 전부 뒤집어엎는 사건이 있긴 했다. 현지에 도착해서는 원래 일정보다 비행기가 늦어져 5시간이나 에어컨도 없는 찜통더위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며 50달러 아래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환전해 주지도 않았다. 그런 사소한 트러블들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액땜이라며, 처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며 주저 없이 나아갔다. 그런 것들이 있기에 등반은 더 즐거운 것이며 이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과정이야말로 고산등반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식사는 맛있었고, 현지인들은 친절했으며, 무엇보다도 도시의 건물 너머로 얼핏 보이는 눈 덮인 산맥들이 우리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즐겁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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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연상시킨 베이스캠프 가는 길의 풍경.
끝도 없는 오르막 지나 캠프1!

모든 힘든 일들은 사소한 힘든 일에서부터 시작했다. 가령, 안전 등반을 기원하는 맥주 한잔에서부터 말이다. 전날의 음주와 이른 기상,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6시간이 넘게 달리는 동안 속은 뒤집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따금 잠들었다가 이따금 찬바람을 쐬러 일어났다. 종국에는 좌석의 난간을 부여잡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고난의 행군에서 위안이었던 것은 이따금 보이는 기가 막히는 풍경들과 동행한 헝가리 산악인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멀미 같은 건 금방 잊게 된다. 세계 어디를 가도 등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친해질 수 있는 것 같다.

간신히 도착한 베이스캠프에서 캠프 매니저와 인사를 나눈 후 사이트를 배정받고 텐트를 설치했다. 쉬고 싶었으나 후배의 성화에 캠프 옆의 야트막한 능선에서 고소적응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울렁거리던 속은 갑작스러운 등산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나는 순식간에 고산병으로 물먹은 솜처럼 늘어졌다. 그 와중에 빠른 하산길이라며 길도 아닌 비탈을 내려가자는 후배를 보면서 막연한 짜증이 올라왔다. 다행히 컨디션은 금세 나아졌고 후배와 일정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에 들어선 지 사흘째부터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베이스캠프를 떠나 캠프1으로 향하는 날이 온 것이다. 최대한 체력을 보존하고자 거의 모든 짐을 포터를 통해 올리고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캠프1으로 향했다. 캠프1은 해발 4,000m도 되지 않는 고지였다. 고산병이 올 만큼 높은 곳도 아닌데다가 그날은 기상 예보도 좋았기에 우리는 걱정 없이 운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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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1으로 향하는 길 중간의 비탈길.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 굽어진 산길이 우리를 지치게 했다. 초원길은 마치 알프스라도 온 것 같은 풍경에 감탄하며 즐겁게 올라갔지만, 초원이 끝나고 고개를 넘자 그곳은 얼음과 바위와 비탈길에서 수시로 무너지는 좁은 발판이 있는 곳이었다. 내리막이다 싶으면 오르막이고, 오르막 끝이다 싶으면 코너를 돌아 또 오르막, 평지다 싶으면 포터나 다른 등반객들이 길을 비키라 재촉하는 통에 느긋한 페이스의 운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도착한 캠프1은 다른 에이전시의 캠프에 비해 굉장히 소박했다. 천장에 구멍이 뚫린 유르트에 캠프 사이트는 날이 풀리면 수위가 올라가는 개울 바로 옆, 심지어 다른 팀들이 지나다니는 통로 언저리. ‘조금 더 예산을 할애할 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어서 주머니 사정을 깨닫자 따뜻한 식사가 아닌 인스턴트 냉면이라도 고향의 맛이라며 행복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1의 첫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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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2로 향하는 길 도중 지친 김태관(필자).
등반 장비 없이 정상에 올라

이어진 등반은 실수와 사고의 연속이었다. 좁은 어택용 텐트를 견디지 못해 결국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베이스용 텐트를 짊어지고 캠프1으로 올라가거나, 애지중지하던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갑을 화장실에 빠트려 좌절하는 등 사소한 일들도 있었고, 결코 사소한 결과로 끝나지 않은 일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곧 깊은 교훈과 가르침을 주었다. 우리의 고통을 대가로 말이다.

처음 캠프2로 오르던 날, 우리는 스산한 새벽 공기에 옷을 껴입고 출발했지만, 20kg에 가까운 배낭을 메고 설벽을 오르기 시작하자 너무나 더웠다. 손목시계의 기온을 들여다보니 영상 2℃라고 말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날이 뜨거운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눈에 반사된 햇빛이 우리를 전자레인지 속 음식처럼 덥히고 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짧은 거리라며 안일하게 챙긴 적은 물로 인해 입 속은 말라가고, 더위와 탈수로 점점 힘은 빠지기 시작해 나중에는 세 걸음 걸으면 30초는 바들거리며 있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족한 경험이 가져온 실수였다. 급하게 옷을 모두 벗자 그제야 내려오던 등반객들이 모두 반팔에 반바지, 혹은 그에 준하는 가벼운 차림이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렇게 땡볕에서 고생하며 얼마간을 걷자 이번에는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급하게 옷을 껴입었지만 녹았다 얼어버린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질 않았고 우리는 9시간 만에 새카맣게 타고,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캠프1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뼈아픈 실수로 우리는 두고두고 다른 등반객들에게 “네팔인이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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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최선홍(인천대16)과 필자.
가장 큰 실수는 정상공격의 날에 벌어졌다. 정상공격을 위해 캠프3으로 올라가던 날 이른 아침에 누군가 얼핏 캠프3부터는 피켈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그 말을 피켈이 필요할 만큼 가파른 설벽이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로프 등의 안자일렌을 위한 장비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캠프3에 입성한 우리는 가벼운 배낭과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나섰다. 물 두 통, 식량 조금, 장비도 없고 보온의류 여벌만을 챙긴 짐은 너무나 가벼워서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정상을 향해 나섰다.

캠프3 바로 앞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자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린 건 우리의 정보에는 없던 픽스로프 구간이었다. 물론 그렇게 가파른 구간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스틱으로 설벽을 올랐다. 이후 몇 개인가 넓은 설원을 지나자 저 멀리 레닌봉 정상의 철제 십자가와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시장통 같은 인파에 질려버린 우리는 정상의 여운이고 뭐고 느낄 새도 없이 후다닥 사진만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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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1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 등반가에게 눈삽을 빌려주고 받은 소시지가 메뉴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미끄러지다

신나게 하산을 시작한 후 얼마나 지났을까, 후배가 뒤쳐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픈 후배가 내리막에서 조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뒤쳐지더니 이윽고 고꾸라졌다. 많이 지친 것 같았다. 지쳐버린 후배를 다독거리며 페이스를 늦춰 걸어가자 예상했던 운행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주변에는 어느새 운무가 끼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서둘러 픽스로프 구간에 도착했지만, 가이드가 인솔해 온 인파들로 인산인해였다. 원래라면 장비가 없는 우리들은 가장 나중에 천천히 맨몸 하강을 하든지 자일을 붙잡고 클라이밍 다운을 하든지 해야 맞겠지만 지친 후배를 데리고 그렇게 대기할 수는 없었다. 조금 억지스러웠지만 로프로 제동을 하면서 하강하기로 했다. 후배가 먼저 내려간 후 나도 하강을 시작했다.

‘이것만 넘어가면 주욱 내리막이고 그리곤 바로 캠프3으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르막이다. 도착하면 물 끓여서 코코아를 타먹고 한숨 잘 잔 다음 저녁을 먹고 다음날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짐을 챙겨야 한다. 이것만 내려가면 다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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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봉 정상에서 필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끄러지는 몸이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손에 느껴지는 확실한 자일의 마찰이 더욱 용기를 줬다. 그런데 갑자기 텅 하고 몸이 떠올랐다. 손에서 자일이 느껴지질 않았다. 시선 옆으로 후배가 보였다. 낭떠러지를 향해 몸이 추락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떻게 됐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급하게 스틱을 때려 박아 제동을 한 것 같다. 요행인지 실력인지 발을 내리지 않아 절벽 아래로 튕겨져 내려가진 않았다. 탈수에 시달리는 후배와 죽다 살아난 나는 그후 그저 묵묵하게 주저앉고 자빠지며 캠프3으로 향했다. 도중에 후배의 짐을 내가 지고 물을 나눠 마시고 그것마저 모두 마셔버려 헛구역질을 하면서 간신히 캠프3에 돌아왔다. 장장 16시간의 운행이었다. 텐트로 돌아온 우리는 배고픔과 추위를 잊으려는 듯 침낭에 파고들어 잠을 청했다. 그러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설탕물을 끓여 마시고는 텐트를 날려버릴 것 같이 불어대는 바람 소리와 이따금 이마에 녹아떨어지는 천장의 얼음에 시달리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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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2의 눈부신 아침. 좋은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잊지 못할 즐거운 성공이자 실패

그후 등반은 놀라울 만큼 원만하게 끝났다. 눈썰매를 타며 하산하고, 크레바스를 무난하게 통과한 뒤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따뜻한 밥을 먹으며 친해진 다른 나라의 등반가들과 무용담을 나눴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베이스캠프를 떠날 날이 되었다. 그간 친해졌던 터키 친구가 수고했다며 콜라를 한 병 쏘고, 우리도 나름대로 맥주를 한잔했다. 내년엔 어디를 오를 거냐는 캠프매니저의 질문에 당당하게 ‘캉텐그리’ 이름을 외쳤다. 죽다 살아난 놈들 치고는 호기로운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이후로는 너무나 무난한 관광의 날들이었다. 일광 화상 덕분에 누구나 말레이시아 사람인지, 인도사람인지, 네팔사람인지 물어봤지만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카톡을 하니 사바세계로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

레닌봉처럼 찬바람이 부는 요즘 문득 문득 생각한다. 그 위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즐거운 일이었다고. 실수도 성공도, 추위에 떨고 더위에 지치던 산행들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그 고통스러웠던 캠프3의 밤이 끝나고 내다본 텐트 밖 풍경에서 황금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던 레닌봉이다. 그런 심한 꼴을 당하고도 우리가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실에 눈이 시려진다. 그리고 산을 떠나기 전 ‘내년에 더 힘들고, 고통스럽고, 더 가슴 뛰는 등반을 하러 오겠다’고 다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의 경우 흥미로운 일들은 모두 사소함에서 비롯되었다. 더 높은 산, 더 힘든 산을 오르고 싶다는 나의 사소한 술주정이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준 것처럼 말이다. 이런 실수투성이 원정을 보고서 영감을 받기란 쉽지 않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부디 사소한 열정이 당신을 잊지 못할 즐거운 실패로 데려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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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도중, 캠프 2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