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휴양림 일출 괘방산] 정동진까지 9.3km… 코로나 잠시마나 잊자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주민욱 기자
입력 2022.01.07 10:00
강릉 괘방산 능선따라 정동진까지 걷는 9.3km 해돋이 종주산행

이미지 크게보기
괘방산 정상 부근에서 본 일출. 희망찬 해돋이에 코로나가 진정되고 일상이 회복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삶이 바닥을 칠 때 종주에 나선다. 땅바닥 쳤다가도 솟구쳐 오르는 게 능선 아니던가. 능선의 오르내림에 몸을 맡기노라면, 슬픔은 사치가 된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산행에 나선다. 침묵의 산에 올라 일출을 맞노라면, 막막한 코로나 시절도 빛으로 바뀔 것만 같았다. 일출 맞이 종주산행에 나선다. 

휴양림 앞에 차를 세웠다. 바다를 뚫고 오르는 태양을 보고 싶었다. 강릉 괘방산(339m)이 제격이었다. 산기슭에 임해자연휴양림이 있어, 찜질방에 온 것마냥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고 휴양림 뒤로 올라 곧장 능선에 설수도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
산에서 일출을 자주 보는 편이지만, 볼 때마다 단순한 자연 현상 그 이상의 힘과 감동을 얻는다. 정상에는 중계탑이 있으며, 바로 아래에 전망터 역할을 하는 간벌 개괄지가 있다.
휴양림 임도를 따라 오르면 산행이 쉽지만, 고지식한 방법을 택했다. 차를 타고 안인항으로 이동해 괘방산 산줄기 처음부터 끝인 정동진까지 가기로 했다. 힘 있는 일출에 어울리는 20대 청춘과 동행했다. 성균관대산악부 한효희(29)·박지우(24)씨다. 박지우씨는 ‘청약패스’라는 프로그램을 4명의 팀원과 함께 개발해 오늘 저작권 등록이 승인되었다며 함박웃음 짓는다. 아파트 청약 예정자의 자격 조건을 자동으로 판단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효용성과 아이디어가 놀랍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데크계단을 따라 곧장 고도를 높인다. 바닷바람, 산바람의 협공에 정신이 번쩍 든다. 헤드랜턴 불빛 사이로 ‘안보체험 등산로’ 글귀가 눈에 띈다. 괘방산이 유명해진 것은 1996년 발생한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괘방산의 부드러운 능선길을 걷는 성대산악부 박지우씨(왼쪽)와 한효희씨.
당시 안인진 포구 남쪽 1.5㎞ 지점에서 북한 잠수정이 고깃배의 그물에 걸려 고립됐고, 상륙한 공비들은 괘방산을 거쳐 칠성산으로 도주했다. 공비들이 소탕된 후, 강릉시와 지역 산악인들이 이 산길을 정비해 안보체험등산로를 만들었다. 이후 괘방산은 전국의 등산동호인들이 찾는 강릉의 대표적인 산행지가 됐다. 

어둠 짙어도 두려움은 없다. 전망 터에 닿기 전에 해가 뜨면 낭패라는 생각에,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급하게 오른다. 산행 시작 30분도 못 되어 보온재킷을 배낭에 넣고, 얇은 바람막이 재킷만 입고 오르막에 몸을 던진다. 
이미지 크게보기
쉼터인 당집 벤치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물을 마시는 성대산악부원들.
며칠간 미세먼지가 많았지만 일출은 복불복 아니던가. 일행에게 “큰 기대 없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고대하고 있었다. 질주하는 증기기관차마냥 거친 입김을 토해내며 완만한 오르막을 빠르게 주파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몸이 뜨거워졌다. 혈액이 빠르게 순환하며 몸의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오르막이 쉬워졌다. 속된 근심 느슨해지고, 날카로웠던 것들이 뭉툭해지고 있었다. 능선의 굴곡과 명료한 걸음만 남았다. 산꾼이라면 이 순간을 기다리기 마련이다. 걸음걸음이 행복한 산행의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괘방산은 처음이다. 선답자는 두 곳의 전망 터를 추천해 주었는데, 첫 번째는 실패다. 데크가 있는 활공장은 탁월한 바다 전망대지만, 하필 해가 뜨는 남동쪽이 능선에 막혔다. 수면 위로 오르는 태양을 보는 건 불가능하다. 서둘러 두 번째 전망 터로 향했다.

애타는 속도 모르고 능선은 푹 꺼진다. 고도를 내렸다가 다시 오르막을 숙제로 던져 준다. 무언가에 쫓기듯 살고 싶지 않았으나, 지금은 체력 전부를 쏟아 부어야 한다. 폭주기관차마냥 폭발적인 숨결을 토해내며 최대 속도로 산을 오른다. ‘아 제발, 태양아 조금만 기다려다오’하며 빌어보지만, 사람의 발이 빛보다 빠를 순 없다. 
이미지 크게보기
정동진으로 하산해 해변의 낭만을 즐긴다. 괘방산 산행은 정동진역을 기점으로 삼을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 볼거리가 많다.
촬영 포기하려는 순간 찾아온 일출

여명이 터오는 두 번째 전망 터. 바위가 있는 봉우리는 소나무와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으나 하필 능선이 해 뜨는 방향만 막고 있다. 이젠 정상밖에 없다. 정상엔 송신탑이 있어 전망 터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틱을 다시 쥐어 잡는다. 

여명이 밝아오는데, 소나무숲이 짙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그렇게 좋아했던 소나무숲 향기가 원망스러운 건 처음이다. 수능시험에 지각한 수험생마냥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포기할 순 없었다. 숲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보고선 주민욱 사진기자가 스틱을 바닥에 떨구며 주저앉으려 했다. 

그때 거짓말처럼 뻥 트인 곳이 나왔다. 나무를 간벌해 생긴 자연스런 전망 터였다. 다급한 외침에 주민욱 사진기자가 재빨리 올라가 셔터를 눌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성대산악부원들 대신 일출 앞에 섰다. 급박하게 오르내렸던 마음의 풍랑이 순간 가라앉았다. 검은 바다를 헤치고 울컥 치솟는 태양은 경이로웠다. 참신한 표현을 하고 싶었으나 ‘경이롭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남쪽으로 뻗은 현란한 해안선과 부드러운 지능선, 그 뒤를 채운 여백 같은 바다. 이 풍경을 관통해 어둔 마음까지 비추는 햇살. 예상보다 훨씬 선명한 해돋이가 모든 걸 포기한 순간 찾아왔다. 막막한 코로나 정국의 세상살이도 오늘 같기를 바랐다. 

짜릿한 결승골에 흥분한 훌리건hooligan 마냥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 포효했다. 지금은 온 세상이 다 내 것이고, 다 찬란했다. 사람 마음이 얕다. 몇 초 사이에 극과 극으로 바뀌다니. 일출이 가진 밝은 힘이자, 예상치 못한 괘방산의 도움이다. 

정상을 내려서자 시멘트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이 이어진다. 푹신한 발디딤의 소나무숲이 아침 햇살에 반짝인다. 포근한 겨울 날씨 탓에 드문드문 진달래가 피었다. 계절을 착각한 꽃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사랑도 때가 있다는 걸 산이 일러준다.  
이미지 크게보기
떠오르는 일출을 배경으로 점프샷을 찍었다. 동해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산 정상에서 보면 감동이 두 배가 된다.
화려한 바위나 시원한 전망대는 없지만 부드러운 능선길은 걸을수록, 묵은 스트레스는 지우고 몸과 마음의 힘을 북돋아주는, 먹기 좋은 죽 같은 역할을 한다.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능선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쪽에는 동해고속도로와 7번국도가 지난다. 낮은 산이라 차량 소음이 들릴 정도지만 이것도 종주의 맛이다. 

문득 풍채 좋은 우람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정갈한 터다. 이정표에서 계속 보았던 ‘당집’이다. 무수한 솔잎과 낙엽이 당집 앞에는 하나도 없다. 누군가 성심성의껏 관리하고 있는 것 같다. 당집을 지키는 호위무사인양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주변을 둘렀다.

아직 산행이 끝나지 않았다며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100m대 오르막의 저항은 어렵지 않다. 무명봉 몇 개를 넘자 ‘183고지(183m봉)’ 표지목이 있는 마지막 봉우리다. 안보등산로이자 바우길임을 이정표가 알려준다. 정동진까지 1.3km 남았다. 

정동진에 내려서면 해돋이 관광인파로 붐빌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는 9km 산행을 하며 보는 일출이 미련해 보이겠지만, 감동적인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 법이다. 어둠을 뚫고 산을 오른 사람에게 오는 햇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 주고 싶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와전되고 폄하될 것을 알기에 가슴에 새겨 넣는다. 
산행 길잡이

괘방산 종주는 해돋이 산행 코스이자, 해파랑길 36코스, 바우길 8코스이다. 걷기길로 보면 난이도가 세고, 산행이라 하기엔 쉽다. 들머리인 안인항과 날머리인 정동진, 강릉의 명소를 잇는 산행이라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편리하고, 볼거리가 많아 새해 여행을 겸한 산행지로 제격이다. 

안인항 삼거리 한켠에 주차장과 화장실, 등산안내도 있고, 괘방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데크계단이 있다. 산길이 선명하고, 이정표가 많아 길찾기는 쉽다. 산행 시작부터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이라 그리 어렵지 않다. 

넓은 데크가 있는 활공장은 백패킹 명소, 그러나 강릉시에서 ‘야영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다. 이후에도 꾸준히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일출 보기 가장 좋은 장소는 정상 부근의 간벌 개괄지다. 정상 직전 이정표에서 ‘정상’이 아닌 ‘당집’ 방향으로 가면 비포장임도 지나 간벌한 개괄지에 닿는다. 이곳이 일출 전망 터다. 인위적인 데크 같은 서설물은 없으며 나무를 베어낸 자연 흙 사면이다. 

개괄지 뒤쪽의 실제 정상은 송신탑이 있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정상에서 당집까지는 평지에 가까운 완만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183고지까지 오르막이 나오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임해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더 짧은 산행을 원한다면, 휴양림 뒤 임도로 주능선에 오르는 방법이 있다. 더 짧은 코스를 원한다면 등명낙가사에서 시멘트임도를 따라 1.7km를 오르면 정상에 닿는다. 


교통(지역번호 033)

서울역에서 강릉역까지 경강선 KTX 열차가 하루 13회(05:11~22:11) 운행한다. 2시간 정도 걸리며 요금은 2만7,600원.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강릉행 버스가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2시간 5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일반 1만5,200원, 우등 2만2,300원, 프리미엄 2만8,900원. 강릉역에서 안인항까지는 112, 113번 버스 이용. 택시로 20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만5,000원 정도. 

정동진역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KTX 열차는 하루 4회(10:33, 14:28, 19:31, 21:59) 운행한다. 정동진에서 112, 113번 버스가 강릉시내로 운행한다. 정동진에서 강릉고속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20~30분 걸리며 요금은 2만7,000원 정도.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