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특집] 신안 ‘퍼플 매직’ 유엔을 사로잡다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신안군청
입력 2022.01.11 09:52
반월·박지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반월도와 박지도는 신안에서도 존재감이 크지 않은 작은 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제 섬이다. 섬 살림이 대개 그렇듯 고기잡이로 삶의 터전을 일구어온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이 700여 명에 달했지만 21세기 들어 10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퇴락해 가고 있었다. 주민들은 60대와 70대가 대부분이며,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오래됐다. 섬은 납덩이 같은 무력감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자신들 삶의 기억과 섬의 역사가 다도해 썰물에 씻겨나가듯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빠졌다.

마을 사람들은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꼈지만 궁벽한 작은 섬에 물질적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돈을 들여 뭔가를 새로 짓고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면? 주민들은 마을에 지천으로 자생하는 도라지꽃을 떠올렸다. 섬 사람들의 쏠쏠한 찬거리인 도라지는 여름이면 보라색꽃을 피워 반월도와 박지도 곳곳을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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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 퍼플교에 있는 어린왕자 포토존.
쇠락하던 마을에 ‘보랏빛 희망’

마을 사람들과 민선 7기 신안군(박우량 군수)은 여기에 주목했다. 2019년부터 섬 전체를 캔버스 삼아 보라색으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국내 어느 지자체도 해본 적 없던 시도였다. CNN 등 해외 언론이 ‘도박에 가까운 승부’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신안군 컬러 마케팅의 시작이었다. 마을 지붕과 섬으로 연결한 다리, 심는 식물들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바꿔나갔다. 주민들 옷은 물론 생활도구 등 섬 전체가 보라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해안 산책로에는 라벤더, 자목련, 수국 등 보랏빛 꽃들을 심었다. 반월도와 박지도를 이어주는 다리를 보라색으로 칠했다. 우체통, 쓰레기통, 전동차, 커피잔, 음료수도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밭작물도 보라색의 순무, 콜라비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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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부스도 보라색으로 꾸몄다.
주민들과 군이 힘을 합친 유례없는 보라색 마케팅 3년째, 유엔이 신안의 대담한 컬러 마케팅에 화답했다. 지난 12월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에서 반월도와 박지도가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됐다. ‘제1회 유엔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사업에는 세계 75개국 174개 마을이 본선에 진출해 경쟁했다. 특히 첫 대회라는 상징성으로 대륙별, 국가별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사업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홍보, 관광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을 수행하고 있는 세계의 마을들을 평가해 인증해 주는 사업이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수상소감에서 “이번 선정은 4만 군민과 신안군의 노력을 유엔과 전 세계가 인정해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모든 기쁨과 영광을 반월·박지도 주민을 비롯한 신안군민께 바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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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교를 걷고 있는 관광객들이 쓰고 있는 양산도 보라색.
도박에 가까운 승부, 마침내 결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부한 재원을 갖추고도 주민들의 무관심과 무능한 행정 때문에 귀중한 관광자원이 하릴없이 방치되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지켜봐 왔다. 전국에 수많은 둘레길이 지자체들의 무사안일과 주민들의 몰이해 속에서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도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못한 채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번 신안군 반월·박지도의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쾌거는 주민들의 진정성과 지자체의 시의적절한 마케팅 및 지원이 관광자원 개발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동력임을 일깨 워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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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도 들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스타.
신안군은 ‘퍼플섬’ 반월도와 박지도의 이번 선정으로 코로나 시대 관광 활성화의 큰 동력을 얻게 됐다. 또한 ‘2022~2023년 전남 방문의 해’를 맞아 신안의 섬들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신흥 관광 메카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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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교 끝자락에 있는 반월도 카페. 건물 외벽을 보라색으로 단장했다.
아시아의 신흥 관광 메카 기대

‘퍼플섬’ 반월·박지도는 2019년 개통된 천사대교로 이웃 큰 섬 안좌도까지 연결돼 교통이 더욱 편해졌다. 이 섬에 가면 ‘퍼플섬’ 반월·박지도를 잇는 915m 길이의 나무다리를 밤에 걸어볼 것을 권한다.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보라색 다리를 비추는 조명 속에서 걷다 보면 마치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한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보라색으로 꾸민 퍼플교를 지나 반월·박지도까지 7.6km를 포함, 해안산책로를 따라 박지산 4.4km를 걷는 둘레길 트레킹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섬을 모두 돌아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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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세계관광기구 총회에서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된 직후 유엔 인증서를 받은 박우량 신안군수. 그는 “이 모든 영광을 신안군민들에게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월도와 박지도는 이제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코로나로 전국 거의 모든 관광지가 타격을 입었지만 국민들은 ‘한국의 카프리’ 신안군 반월도와 박지도의 보라색 매직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2019년 중순부터 2021년까지 이 무명의 작은 섬에 섬인구의 수천 배가 넘는 50여만 명이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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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월도와 박지도를 연결하고 있는 퍼플교의 야경. 밤에 이 다리를 걸으면 더욱 환상적인 느낌을 받는다.
섬도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반월·박지도 인구는 120명에서 바닥을 찍고 2020년 130명으로 늘었다. 섬에 인구가 줄어든 지 40년 만에 식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보라색 옷을 입고 ‘퍼플섬’을 찾으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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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 후 포즈를 취한 신안군 관계자와 주민들.
신안, 얼마나 아시나요
7,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거주
고대부터 압해도가 신안의 모태

신안의 섬들에는 약 7,000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안의 임자·하태·압해·흑산·가거·안좌도 등에서 조개무덤과 고인돌 등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신안군의 모태는 압해도라고 할 수 있다. 압해도에는 백제시대에 아차산현, 통일신라 때는 아차산군이 있었는데 아차산군은 현재의 신안군 장산면과 영광군 일부 지역을 아우를 정도로 세력판도가 컸다. 바다를 제압한 섬이란 이름처럼 압해도는 서남해상의 중심지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압해현이라는 독자적 행정구역으로 이어졌다. 현재 신안군청도 압해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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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 전장포 대파.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가장 비싼 대파는?

자은도는 바다에 의존하는 섬이 아니다. 쌀과 마늘, 그리고 대파 등 농사 의존도가 높다. 자은도가 처음부터 농업으로 먹고살던 섬은 아니다. 60년 전만 해도 연해에 몰려든 조기 사촌 부서를 쓸어담느라 전국에서 배들이 몰려들어 파시가 생겨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고기가 자취를 감추면서 흥청대던 자은도 파시촌도 사라졌다.

바다와 섬에는 바람이 많다. 때로는 그냥 바람이 아니라 입안을 버석버석하게 만드는 모랫바람이 불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은 인간에게 해만 주지는 않는다. 자연이 옮겨놓은 모래들이 한 알 한 알 모여 해수욕장을 만들고 모래밭을 만들기도 한다. 자은도 분계해수욕장과 백길해수욕장 사이 모래밭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대파를 재배하고 있다. 이곳 대파는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자라기 때문에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다. 자은도 대파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출하된다. 전국 각지에서 서울 가락동시장으로 집하되는 대파 가운데 가장 높은 값에 거래되는 대파가 자은도산이다.

신안 대파는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갯벌과 모래가 많은 다도해 신안 해풍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흰색 부분인 연백부가 길고 굵은 것이 특징. 달큰하고 알싸한 맛이 매력이며, 특히 다른 지방에서 자란 대파에 비해서 게르마늄 성분이 월등히 풍부하다고 한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