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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중부내륙선 계명산] 충주 시민의 '뒷산'…중부내륙선 타고 전국구로

글 손수원 기자 사진 김종연 기자
  • 입력 2022.01.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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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계명산 르포
충주 시내에서 가까워 접근성 좋아…충주호 바라보는 백패킹 명소

충주호와 주변 산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계명산 정상 헬기장은 백패킹 명소이기도 하다. 왼쪽 작은 공터가 정상석이 있는 정상이다.
충주호와 주변 산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계명산 정상 헬기장은 백패킹 명소이기도 하다. 왼쪽 작은 공터가 정상석이 있는 정상이다.

계명산鷄鳴山(774.3m)은 충주 시민에겐 ‘동네 뒷산’과 같은 산이다. 서울로 치자면 관악산이나 청계산 정도로 친근하다. 일반적으로 산자락에서 소소하게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즐기지만, 등산객에겐 비교적 쉽게 올라 충주호와 어우러진 백두대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조망의 산’이기도 하다. 또한 계명산 정상에는 충주호를 앞마당 삼은 멋진 백패킹 장소가 있어 백패커들에겐 수주팔봉과 더불어 ‘충주 2대 백패킹 명소’로 불린다. 

계명산 산행을 위해 계명산과 남산 사이에 있는 마즈막재에 도착했다. 들머리에 넓은 주차장이 무려 세 곳이나 있어 차를 대기 위기 위해 돌아다니는 수고를 덜었다. 충주시에서 명품길과 종댕이길을 조성하면서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두 곳의 대형 주차장을 더 만들었다.  

마즈막재를 충주 사람들은 ‘마지막재’라고도 부른다. 과거 남산 아래에는 사형집행장이 있었다. 인근 제천, 단양 등지의 죄수들이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남산으로 올 때 이 고개는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또한 이 고개를 넘으면 생이 끝나기에 이 고개는 여러모로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컸다. 

100대 명산에 도전할 만큼 산을 좋아한다는 곽미연씨와 임은숙씨 뒤를 정동벽 회장이 따르고 있다.
100대 명산에 도전할 만큼 산을 좋아한다는 곽미연씨와 임은숙씨 뒤를 정동벽 회장이 따르고 있다.

여명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

계명산은 오동산梧桐山, 심항산心項山 등으로 불렸으나 삼국시대부터 ‘계족산鷄足山’이라고 불렸다. 닭의 발이라니, 무슨 연유가 있을 듯하다. 정동벽 전 충북산악연맹 회장이 이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 산에 지네가 엄청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백제시대 마고성麻姑城(충주산성) 성주의 딸이 지네에 물려서 죽었어요. 성주는 지네를 퇴치하기 위해 매일 산신제를 올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꿈속에 산신령이 나타나 ‘지네의 천적인 닭을 풀어 길러라’고 전해 주었지요. 이에 성주는 닭을 풀었고, 마을 사람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닭을 길렀어요. 그때부터 ‘온 산에 닭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해서 ‘계족산’으로 불렸다고 해요.”

이 이름은 1958년 ‘계명산’으로 바뀌었다. 한 풍수학자가 “부채꼴처럼 발가락이 펼쳐진 닭발은 분산을 의미하므로 이 지역에 인재가 나지 않고, 사업이 망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여명黎明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를 뜻하는 계명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마즈막재에 있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
마즈막재에 있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

마즈막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계단을 조금 오르니 거대한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보인다. 충주는 1231년 12월 몽고군의 충주성 침략부터 시작해 1258년(고종 45) 10월 박달현 전투까지 27년 동안 9차례 전투를 벌여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1253년 몽고군이 고구려 충주산성을 공격할 때 방호별감 김윤후 장군은 관노의 부적簿籍을 불에 태우며 “공을 세우는 자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겠다”며 독려했고, 70여 일 동안 몽고군과 맞서 싸워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기념탑 꼭대기의 ‘1253’이란 숫자가 새겨진 이유이다. 

기념탑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초반부터 경사가 매우 가팔라 발목이 뻐근해진다. 

마즈막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계단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경사는 가파르지만 어렵지는 않다.
마즈막재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계단 등이 잘 설치되어 있어 경사는 가파르지만 어렵지는 않다.

“회장님, 배낭에 뭐 그렇게 맛있는 게 많이 들었기에 이렇게 늦게 올라오세요!”

앞선 두 여인이 가파른 오르막을 평지 걷듯 가볍게 오른다. 38년 전통의 충주예성산악회 회원인 임은숙씨와 곽미연씨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장성한 자녀들까지 있지만 외모는 어김없는 30대 중반에, 산악회에서는 귀여운 막내인 두 여성 산꾼들이다.

청소년오지탐사대 탐사대장, 히말라야 원정대 단장 등을 지낸 정 회장은 물론이고, 동행한 고인식 전 충주시청산악회 회장도 한평생 산에 다닌 ‘고수 중의 고수’지만 역시 ‘나이가 깡패’임을 깨닫는다. 그래도 “니들 맛있는 거 많이 먹이려고 잔뜩 싸왔지”하며 빙긋 웃어 보이는 모습이 영락없이 딸내미들과 산행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인자하다.  

계명산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왼쪽은 충주시에서, 오른쪽 정상석은 충주시청산악회에서 설치한 것이다.
계명산 정상에는 두 개의 정상석이 있다. 왼쪽은 충주시에서, 오른쪽 정상석은 충주시청산악회에서 설치한 것이다.

중부내륙선 개통으로 충주의 산 더 알려지길

헉헉대며 제1전망대에 오르자 충주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달 전 ‘노디지털 무인도 캠핑’을 취재하느라 저 호수 어딘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곳에서 바라보던 산을 오르고 있다. 

“정상 조망이 훨씬 낫다”는 말에 두 곳의 전망대는 속히 지나치기로 한다. 그리고 이윽고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에 올랐다. 누가 뭐래도 계명산의 백미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충주호 조망이다. SNS와 유튜브 등에 이곳에서 백패킹을 하는 사진과 동영상이 소개되면서 ‘뷰 맛집’으로 알려져 주말엔 자리를 잡을 수 없을 정도란다. 

“저기 보이는 뾰족한 바위가 월악산 영봉이에요. 그 옆으로 문수봉도 보이고 백두대간 대미산도 보이고요. 겨울에는 영봉 왼쪽으로 해가 떠요. 눈이 내린 날 텐트 안에서 살며시 문을 열고 호수와 암봉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는 멋은 해 본 사람만이 알아요.”

미세먼지가 운무처럼 호수를 뒤덮었다. 사진 오른쪽 맨 끝, 뾰족하게 솟은 산이 월악산 영봉이다.
미세먼지가 운무처럼 호수를 뒤덮었다. 사진 오른쪽 맨 끝, 뾰족하게 솟은 산이 월악산 영봉이다.

그런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가득이다. 다행인 것은 미세먼지가 낮게 깔려 시야는 그런 대로 좋았다는 것이다. 충주호에 먼지가 가득 쌓이니 마치 아침 운무에 싸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저것이 먼지만 아니라면 나름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선경이다.

“충주엔 좋은 산이 많아요. 그래서 2008년엔 충주시와 충주시산악연맹이 충주의 명산 20개를 뽑아서 책을 만들기도 했어요. 직접 산을 답사하면서 느꼈던 것은 산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재미있는 역사와 이야기가 곳곳에 숨어 있더란 겁니다. 충주는 남한강을 따르는 강 길과 한양에서 동래(부산)까지 가는 영남대로가 만나는 고장이었어요. 늘 사람이 모이던 곳이었죠.”

중부내륙선이 개통되면서 월악산을 비롯해 계명산, 보련산, 오갑산 등 충주의 산들이 더욱 널리 알려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충주까지 열차를 갈아타지 않고 한 번에 올 수 있어야 완성이 되겠지요. 지금은 사는 곳에 따라 한 두 번은 환승을 해야 하니 버스를 타는 것과 시간이 비슷해요. 하지만 길이 생긴다는 것은 단순히 빨리 도착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쌍화차로 몸을 녹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한다. 

“아침 일찍부터 금릉초등학교에서 올라왔어요. 오늘 남산까지 다 타려고요.”

정 회장과 안면이 있는 두 아주머니는 “오늘이 계명산~남산 종주하는 날”이라며 웃었다. 도시에 살면서 이렇게 산책 나오듯이 산에 올라 이런 절경을 맛본다는 것은 축복받은 삶임에 틀림없다. 

복사꽃 피는 봄을 기다리며

산을 내려간다. 이제 호수의 풍경 대신 잿빛 도시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미세먼지에 휩싸인 도시의 모습은 뭔가 을씨년스러우면서 섬뜩하다. ‘저렇게 답답한 공간 속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다가서는 순간, 드넓은 복숭아밭이 일행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에 중부내륙선 열차를 타고 백패킹 하러 다시 한 번 와야 할 것 같다.

산행길잡이

계명산은 높이는 낮지만 정상 부근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와 인근 산들, 특히 남동쪽 방면 월악산 정상 옆으로 아침 해가 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상 바로 옆에 헬기장이 있어 이곳에서 백패킹하며 일출을 맞는 백패커가 많다.

도심에 인접한 계명산은 사방에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계명산 남쪽 마즈막재에서 오르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마즈막재에는 ‘종댕이길’ 주차장이 세 곳 있어 주차하기에 좋다. 마즈막재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약 2.5km 정도로 짧지만 초반 경사가 가파르다.

하산은 마즈막재로 되돌아오거나 대중교통이 편리한 연수동 방면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상에서 막은대미재 방향 능선으로 나려오다가 연수동 방면 이정표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동쪽 ‘종댕이길’을 일부 걷고자 한다면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300m쯤 진행한 다음, 동쪽 ‘하종마을’로 가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도로와 만난다. 도로 외곽 나무 난간을 설치한 걷기 길을 따라 남쪽 방향 계명산자연휴양림 쪽으로 진행하다가 ‘출렁다리’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면 출렁다리를 건너 심항산해맞이도시숲으로 갈 수 있다.

종주를 원한다면 연수동 금릉초등학교 들머리에서 계명산~마즈막재~남산~호암동까지 잇기도 한다. 14km 정도 된다. 계명산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코스는 정상까지 1.3km 정도의 짧은 거리라 많이 찾지만 2022년 8월(예정)까지 휴양림 숙소 보완 공사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교통

자가용 이용 시 중부내륙고속국도 충주나들목으로 나와 3번국도를 타고 달천교를 건넌 후 ‘충주댐’ 방향으로 가다 보면 마즈막재 삼거리에 닿는다. 주차장이 3곳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충주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42번, 101번 버스를 타고 국민은행(건너편) 정류소에 내린 후 119번 버스를 갈아타고 마즈막재 정류소에 내린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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