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우먼들의 한북정맥 종주 3] 한북정맥과 전투 초반… 발열 전투식량을 꺼냈다

글 사진 성예진
입력 2022.01.20 14:16
27세 여성 성예진과 언니 조수연의 한북정맥 종주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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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순백의 눈길이 처음엔 좋았으나, 갈수록 힘들어졌다.
네이버 지도에도 등산로가 선명했던 코스라 이렇게 험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로프 구간이 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17㎏을 가뿐히 넘는 배낭 무게에 물까지 더하니 20㎏에 육박하는 짐 덩어리가 된 배낭. 눈으로 뒤덮인 정맥길에서 야영 배낭 수준의 짐을 메고 다니는 것은 퍽이나 미련스러운 짓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사람 다 무겁게 지고 다닌 것에 대한 큰 불만은 없다는 것. 

눈으로 파묻힌 로프 구간은 꽤나 위협적이었다. 언니와 나의 속도가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고정 로프가 있는 바윗길을 무서워하는 나에 비해 성큼성큼이었다. 바위에서만큼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워 보이는 언니의 모습에 등반하는 멘탈은 타고났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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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 로프 구간을 지난다. 거친 구간이 생각보다 많았다.
왜 이런 고생스런 길을 선택했냐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한북정맥 왜 온거야?”하는 농담 섞인 말로 웃어넘기곤 했다. 어쩌면 진심이 더 가득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원한 경치는 없었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기에 섭섭함은 덜했지만 가도 가도 그 흔한 전망터 하나 없는 종주길에 이건 좀 너무한다 싶기도 했다.

복계산 삼거리 이후 3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걸음이 더디다. 슬슬 조바심이 난다. 언니는 난생 처음 메어보는 무게의 배낭 탓에 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 물론, 몇 번의 백패킹에서 더 무겁게 지긴 했겠지만 이렇게 장거리로 걷진 않았으니까. 게다가 길까지 좁고 비탈진 눈길이니 오죽할까. 모든 상황들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에 재촉을 할 순 없고, 그렇다고 나마저 걸음을 늦추면 전체적인 페이스가 떨어질 것 같은 걱정에 속도를 줄이지 않고 꾸준히 걸었다. 

‘불수사도북’ 종주를 할 때도 우리의 걸음은 그랬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걸으며 50~100m 쯤 가다가 뒤돌아서 언니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고, 저 멀리 코너에서 언니가 빠끔히 보이면 다시 걷고. 술래잡기의 반복이었다. 다행히 언니도 그날의 우리 페이스를 알기에 이해했다고 한다. 

불수사도북 산행을 통해 어느 정도 서로의 스타일을 알았던 것이 도움 되었고, 언니도 나름대로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때 당시 초반에 나를 따라 오느라 오버페이스를 한 탓에 후반에 지쳤다며 오히려 각자 페이스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작년 가을, 지인들과 옥스팜 100㎞ 종주를 경험했던 언니는 장거리 종주에서 각자의 페이스가 중요하단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등산, 러닝, 자전거, 종류를 막론하고 장거리 종주는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 것이 관건인 것 같다. 언니는 다쳐서 방해가 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하며, 느려도 부지런히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4시간쯤 걸었을까? 언니가 지금이라도 아이젠을 차는 게 좋겠다며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수피령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아이젠 차야 되지 않아?”하는 언니의 물음이 떠올랐다. 언니 입장에서는 아이젠을 차야 한다는 말이었을텐데 별생각 없이 넘긴 게 화근이었다. 늦게라도 아이젠을 찬 언니의 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아이젠 없이도 잘 따라오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줄로만 알았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너무 내 기준으로만 생각했나 보다. 

제주산악안전대 선배들께 산을 배우며 아이젠을 차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이젠은 비상용’이라 들었고, 그렇게 배웠다. 이를테면 아이젠이 없어 난감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그런 용도. 그 영향 탓인지 비상용으로 아이젠을 가지고 다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차는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금방 내린 눈에 아이젠을 차면 되려 불편하기도 하고, 습설의 경우 아이젠에 눈이 엉겨 붙어 걸음이 더뎌지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낙엽과 엉겨 스노우볼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발의 피로도가 배가 되어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기왕 멈춰선 김에 언니의 젖은 양말도 바꾸며 잠시 쉬어간다. 스패츠가 없으니 걸을 때마다 레깅스와 중등산화 사이로 눈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아마 복계산을 올라오며 잃어버린 스패츠가 딛는 걸음마다 그리웠을 테다. 푹 젖어버린 얇은 양말이 안타까워 원정용으로 구비해둔 두터운 양말을 건넸다. 원정이 코로나로 취소된 탓에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아이젠을 미리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언니에게 양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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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장거리 종주가 처음인 수연 언니는 느리지만 꾸준히 산행을 이어갔다.
처음 먹어본 발열 전투식량

오버트라우져(방수바지)를 건넸지만 언니에게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임기응변으로 방수가 되는 얇은 바지를 한 겹 더 덧대어 입었다. 여태껏 나는 아무것도 없이 참 잘 다녔던 것 같다. 중등산화를 신은 덕에 아이젠이 없어도 지지가 잘 되었고, 마인들이 다른 등산화보다 발목 부위가 높은 편인 덕분인지, 두꺼운 바지가 잘 막아주는 덕분인지 스패츠가 없어도 딱히 불편함은 없었다.

12시쯤 밥을 먹었다. 앞서서 걸어가다가 볕이 잘 드는 양지 바른 곳이 있어 보자마자 배낭을 던져 버렸다. 여길 지나치면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았다. 슬슬 배가 고프기도 했고, 언니도 처음보다 걸음이 많이 쳐지는 것 같아서 이쯤이 좋을 듯했다. 복주산이 가까웠다면 부득불 좀 더 진행했을 테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못해도 2~3시간은 더 가야 할 것 같았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복주산 정상이나 좀 더 내려가 바람 불지 않는 곳에서 밥을 먹으려 생각했는데, 욕심이었나 보다. 아무도 가지 않은, 발자국 없는 복주산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오죽하면 이러다 밥도 걸으면서 먹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에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이미 백두대간 종주를 하며 걸으면서 밥을 먹는 건 해본 적이 있어서 좀 더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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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이 아닌 숙소를 잡는 일정이지만 이것저것 넣다보니 우리의 배낭은 20㎏에 육박했다.
우리는 첫 점심으로 발열 전투식량을 선택했다. 언니도, 나도 주위에서 먹는 걸 보기만 했지 실제로 먹는 건 처음이다. 봉지를 뜯으니 발열팩, 조리용팩, 방부제, 조미용 양념 등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미리 뜯어서 방부제라도 버리고 올 걸…’하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는 걸 보니 가방이 퍽 무겁게 느껴지나 보다. 눈길 위 정맥 길에서는 방부제마저 무겁게 느껴진다. 

2년 전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절반 즈음 했을 때일까. 칫솔을 반으로 잘라서 가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는데, 종주를 끝낸지 좀 지나 그 감을 잃었는지 너무 무겁게 챙겨온 것 같다. 짐을 좀 줄여 올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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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을 능선에 다 쏟아부은 후 발열 전투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발열팩을 처음 쓰는 거라 대충 느낌대로 해봤는데 얼추 맞는 듯했다. ‘미리 먹어보고 왔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 또한 산행의 재미 아니겠냐”며 깔깔거리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물을 붓자마자 팔팔 끓는 녀석의 모습에 기술이 참 좋다 싶었다. 

기왕 무겁게 들고 온 녀석이니 뽕을 뽑고 싶은 마음에 식량을 데우고 나서, 눈을 넣어 죽 한 팩을 데워 먹었다. 마실 물을 발열팩에 끓이는 용도로 사용할 만큼 물이 넉넉하진 않았는데 금방 녹아 펄펄 끓는 물이 되었다. 

눈길에 체력 소모가 큰 탓에 먹는 즉시 소화되는 느낌이었다. 손이 얼어 미역국 양념을 제대로 섞지 않은 탓에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에 짜디짠 소스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렇게 땀내면서 걸을 땐 나트륨 먹어줘야 돼”라는 말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이 터져 나온다. 5시간 꼬박 걸은 후라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밥을 먹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신났던 모양이다.

볕이 좋은 정오에는 그리 춥지 않았다. 그 덕에 혹시 몰라 챙겨온 김장비닐은 배낭 밑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밥을 다 먹고 정리하니 물 먹은 발열팩 무게가 상당했다. 발로 밟아 나름대로 물기를 짠다고 짰는데도 원래 무게보다 더 무거워지고 말았다.

밥을 먹고 나니 걸음에 힘이 실린다. 나도 모르는 새에 배가 고파 힘이 빠졌던 것 같다. 먹고 나니 걸음이 한결 편해졌다. 다시 길을 만들어 갈 힘이 생겼다. 언니는 내 발자국과 함께하는 한북정맥이라며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누구의 발자국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의 발자국뿐이었던 터라 내가 앞서가도 그 발자국을 보고 언니가 따라올 수 있었기에 좀 더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사실 걸음을 먼저 간 데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나 역시 초행길이었기에 이따금씩 길을 헤맬 때가 있었는데, 내가 먼저 가면 나만 다시 돌아 나와 길을 다시 찾으면 되기에 언니가 괜한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