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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이 없는’ 영국은 어떻게 에베레스트에 올랐나

글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 입력 2022.02.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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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영국 산악인에 관한 기록이자, 명료하게 쓰인 영국 등산사

에드워드 노턴.에베레스트 8580미터지점.
에드워드 노턴.에베레스트 8580미터지점.

등산 종주국으로 알려진 영국은 산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저산低山국이다. 영국 최고봉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벤네비스Ben Nevis’는 높이가 겨우 1,343m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일찍부터 바다 건너 유럽의 4,000m급 알프스로 진출해 산악운동을 창시했고,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말에 세계의 등산을 이끌어 왔다.

1854년 베터호른 초등 이후 1865년 마터호른 초등까지 ‘알프스의 황금기’라 칭하는 11년 동안 알프스의 중요 봉우리 39개가 초등되었는데, 그중 8개를 빼고 모두 영국인들이 쌓아 올린 성과다.

저자 사이먼 톰슨은 영국에서 산악운동이 융성하게 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환경을 다루고, 지난 200년 동안 산악운동을 펼쳐온 학자와 문인, 등반가들 개개인의 성취와 동기를 서술했다.

이 책에는 초기 영국 산악계의 학술적 심미주의자였던 레슬리 스티븐, 1865년 마터호른 등정에 성공해 황금기 최고의 성취와 그 마지막을 장식했던 에드워드 윔퍼, 1890년대 중반 근대 알프스등반의 창시자 프레드리 머메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의 자랑스러운 국가주의적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힐러리와 텐징 등 수많은 등반가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영국 등산 200년사></div> 사이먼 톰슨 지음. 오세인 옮김. 하루재클럽 펴냄
<영국 등산 200년사> 사이먼 톰슨 지음. 오세인 옮김. 하루재클럽 펴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등반 수준은 20년 가까이 정체를 겪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반 수준이 급상승했다. 군에 있던 등반가들이 휴가 기간에 산을 찾기도 했고, 군대에서도 산악전투, 설원전투, 절벽공격을 위해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복장과 장비도 군의 요구조건에 맞추어 크게 발전했다. 그 결과 종전 후 새 등반가 세대는 산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975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영국인 초등은 역사적 성취였다. 두걸 해스턴과 더그 스코트가 영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대장으로 참가한 보닝턴은 이 등반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3등급 훈장CBE과 기사작위도 받았다.

등반의 초점이 소규모의 경량 알파인 스타일로 옮겨간 지 이미 오래된 시점에서 1975년의 등반은 물량공세를 펴는 대원정시대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원정대에 참가했던 피터 보드먼은 “보닝턴의 에베레스트 원정은 등반가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마지막 제국주의적 경험의 하나였다”고 평했다.

두 세기에 걸쳐 세계 미답봉에 흔적을 남겨온 영국은 이미 200년 전에 알프스등산 황금시대의 첫 막을 올렸고 그 폐막을 장식했다. 또한 세계 최초로 산악회를 만들고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을 발견해 그 산의 꼭짓점에서 유니언 잭을 날렸다. 영국등산 200년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곧 세계등산 200년사를 살펴보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더그 스콧.
더그 스콧.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2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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