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없는 등산화 vs 목 있는 등산화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C영상미디어, 블랙야크, 캠프라인 제공
입력 2022.05.11 09:47
자신의 체격과 체력, 과체중 여부, 목적지에 따라 최적 신발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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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목 없는 등산화’라 불리는 다양한 로우컷Low-cut 신발.
“목 없는 등산화 사면 안 되나요?”

봄이 되면 인터넷 등산 커뮤니티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질문이다. 여기서 목이란, 등산화의 발목을 잡아 주는 부분을 말한다. 운동화처럼 발목지지 부위가 없는 것을 로우컷, 낮은 높이로 잡아 주는 것을 미들컷, 발목 위까지 잡아 주는 중등산화를 하이컷이라 부른다. 즉 로우컷 신발을 등산용으로 사면 안 되냐고 묻는 것.

이런 질문은 매년 봄이면 숱하게 등장한다. 초보자 유입이 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인데, 젊은 20~30대의 등산 유입이 늘면서, 이런 질문이 더 자주 올라오고 있다. 젊은 세대의 성향을 감안하면 ‘목 없는 등산화 사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의 속뜻은 ‘미들컷과 하이컷 등산화는 세련된 스타일이 아니며, 비싸고 무거운데 꼭 그걸 사야 하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산행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면, 세련되어 보이고 도시에서 신었을 때 튀지 않는 로우컷 트레킹화를 사고 싶다는 의미다. 마음은 절반 이상 ‘로우컷 신발을 사겠다’고 기울었으나, 그래도 등산 문외한이라 고수들의 조언을 구하는 셈이다. 당연히 이들은 ‘히말라야 갈 것이 아니라면 로우컷 사도 충분하다’는 답을 얻고 싶은 것이다.

등산 10년 이상한 사람들 10명에게 질문하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각각일 가능성이 크다. 로우컷 추천하는 사람, 미들컷 추천하는 사람, 둘 다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 목적지에 따라 다르다고 답할 사람까지 다양한 답변이 예상된다. 물론 정답은 없지만 합리적인 대답을 찾는다면, ‘사람마다 다르다’이다.

눈 쌓인 겨울에 설악산 서북능선 종주, 지리산 주능선 종주, 백두대간 종주를 한다면 하이컷 중등산화와 미들컷 등산화를 추천한다. 심설에서 방수, 보온, 내구성이 완벽한 하이컷 중등산화가 정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무거운 신발이라 하이컷 등산화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 신어야 위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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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도시에서도 전천후로 신기 좋은 로우컷 신발.
체중 50kg 여성이 청룡언월도를 쓸 수 있나

무게가 82근에 달했다는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체중 50kg 여성에게 무기로 쓰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간단히 풀린다. 하이컷 중등산화는 집약된 기술력의 결정체이자 유럽 장인들의 노하우가 담겨 있지만, 누구에게나 효용성 있는 건 아니다. 중등산화 무게를 종일 걸어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체력이 있는 사람에게 맞다. 자신의 체급과 힘에 알맞은 장비가 있는 것.

등산 경험은 있지만 힘이 떨어지고 체중이 가벼운 편이라면 미들컷 등산화가 겨울 산행에서도 최적의 성능을 발휘한다. 겨울 산에서 로우컷을 추천하지 않는 것은, 고어텍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발목 부위가 낮아 쉽게 눈이 스며들고, 밑창이 미들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얇고 부드러워 긴 산행의 피로도가 그대로 발바닥에 전달된다. 가볍게 설계된 탓에 발수력은 좋으나 동상의 위험이 있다.

힘 좋은 헤비급 체격이라 해서 항상 하이컷만 신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리산둘레길을 가거나, 2시간 이하의 낮은 산 산행을 간다면 가벼운 로우컷이 알맞다. 산행 대상지와 자신의 체격과 체력에 따라 최적의 신발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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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구성 좋고 산행 중 발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미들컷Middle-cut 신발.
등산을 오래한 사람은 등산화를 종류별로 두고, 목적지에 따라 신발을 택할 수 있으나 입문자 입장은 다르다. 한 켤레로 최대한 많은 산을 가고 싶기 마련이다. 정석은 로우컷에서 미들컷으로, 미들컷에서 하이컷 중등산화로 넘어가는 것이다. 거부감 적은 운동화 형태의 로우컷으로 걷기길과 쉬운 산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미들컷 등산화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스스로 경험을 통해 장비의 필요성을 깨닫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좋은 방법이다. 서서히 산행 거리를 늘려 가듯, 산행 경험과 체력과 근육을 단련해 그때그때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는 것이 좋다. 입문자가 처음부터 하이컷 중등산화를 신으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장비는 자신의 실력만큼, 경험만큼 보인다. 무거운 중등산화가 무용지물이라며 불필요하다고 하던 사람도 겨울 설산 종주를 즐길 정도의 체력과 경력이 되면 하이컷 중등산화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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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심설 장거리 산행에 알맞은 하이컷High-cut 신발. 무겁지만 혹독하고 거친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 가격이 비싸다.
나를 알면 신발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이다. 나의 체격과 체중, 하체 근력, 지구력, 목적지, 날씨, 경험치 등을 종합해야 최적의 신발이 나온다.

가령 키 170cm, 체중 80kg 과체중인 남성 초보자가 로우컷을 신고 북한산 돌길을 빠르게 내려오면 연골과 관절이 손상될 확률이 높다. 한번 닳은 연골은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미세한 통증이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오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과체중이 아닌 정상 체중이라 해도, 내리막길에서는 체중의 두 배 이상이 순간적으로 관절에 실린다. 등산을 오래해 근육이 단련되었거나, 특별히 하체 근육 단련을 한 것이 아니라면, 잘못된 산행 습관에 의해 관절 손상이 올 수 있다.

부상 예방 차원으로 시야를 확장하자면 북한산이나 관악산 같은 돌산을 가는 과체중 초보자라면, 로우컷보다는 미들컷이 현명한 선택이다. 일반적으로 미들컷의 밑창이 훨씬 두껍고 단단해 가파른 돌길 내리막 관절 건강에 더 유리하다.

로우컷의 얇고 푹신한 밑창은 돌계단에서 충격이 그대로 몸에 스며든다. 하체 근육이 단련된 몸이라면 속도를 내기에 로우컷이 더 쾌적하지만, 근육이 단련되지 않은 과체중 입문자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몸에 손상이 올 확률이 높다.

등산화를 로우컷, 미들컷, 하이컷만으로 나눌 순 없다. 로우컷만 하더라도 리지화, 트레일러닝화, 트레킹화 등 다른 기능을 가진 신발이 수두룩하다. 다만 갈수록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경계가 모호해지는 면이 있다.

과거의 리지화는 바위에서 밀리지 않는 접지력에만 초점을 맞춘 신발이었으나, 접지력과 통풍성, 쿠셔닝까지 기본으로 갖춘 로우컷 신발이 요즘 신상품으로 나오는 추세다. 입문자라면 한 방면으로만 치우친 신발보다는 이렇듯 종합적으로 평균 이상을 갖춘 로우컷 신발을 고르는 것이 무난하다.
비브람은 접지력이 안 좋다?

간혹 선입견을 가지고 부정적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있다. 이를테면 “비브람창은 한국 산에서 미끄러워서 안 되고, 다이얼 방식은 끊어질 수 있어서 안 되고, 이 브랜드가 아니면 안 돼”하는 식의 조언을 하는 사람이 많다.

비브람창이 미끄럽다는 건 2010년 이전의 기준이다. 2010년대부터 비브람창은 다양한 고무 성분의 창을 만들고 있으며 접지력이 좋은 창도 숱하게 많다. 다이얼 방식이 산에서 끊어질 수도 있으나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는 않는다. 브랜드마다 신발 족형이 다르다. 같은 사이즈라고 해도 브랜드별로 실사이즈와 신발 안쪽 공간이 다르다. 아무리 유명 브랜드 등산화라 해도 내 발에는 불편할 수도 있는 것.

등산 입문과 동시에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싶어하는 등산 초보자가 의외로 많다. 산행은 허세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낮은 산, 쉬운 코스부터 로우컷·미들컷 신발을 신고 서서히 실력을 높여 가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산행의 진정한 재미에 눈을 뜨게 되고, 나만의 장비 노하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장비에 집착하기보다는 산행의 본질, 자연과의 교감에 관심을 가지고, 내 몸과 마음을 토닥여 주는 산행을 시작해 보자.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