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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이재용 부회장의 ‘북한산 산행’이 거둔 1조원의 계약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삼성전자 제공
  • 입력 2022.05.06 10:02
  • 수정 2022.05.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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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동통신사업자 디시네트워크 5G 통신장비 공급사로 삼성전자 선정
이 부회장·어건 회장 모두 등산 마니아… 5시간 산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에서 현지 버라이즌 본사를 찾아 한스 베스트베리 CEO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1월 미국 출장에서 현지 버라이즌 본사를 찾아 한스 베스트베리 CEO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의 5세대(5G) 장비 공급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찰리 어건 디시네트워크 회장은 삼성전자와의 회의를 하루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북한산 산행을 제안한 것. 등산 마니아인 어건 회장은 흔쾌히 수락했고, 두 사람은 수행원 없이 5시간 동안 산행하며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 어건 회장은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60m)와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를 등정했으며, 미국 콜로라도의 해발 14,000피트(4,267m) 이상 58개 봉우리를 완등했으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다녀온 열혈 산악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이날 북한산 산행에서 디시네트워크의 5G 통신장비 수주를 사실상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예정된 비즈니스 미팅 시간은 1시간 이내였지만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어건 회장과의 대화 시간을 5시간으로 늘린 게 수주로 이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는 "등산을 즐겨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 부회장이 직접 운전해 픽업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평소 등산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 1일 고故 이건희 회장의 1주기를 맞아 합천 해인사를 방문했을 당시 차담을 나눈 원택 스님은 “이재용 부회장이 평소 취미로 등산을 즐겨하며, 산행할 때마다 사찰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어건 회장과의 ‘북한산 산행’으로 1조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삼성전자는 5월 3일 미국 이동통신사업자 디시네트워크의 5G 통신장비 공급사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1조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미국 내 5G 통신장비 공급 계약 중 역대 두 번째 규모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동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은 직접 차량을 운전해 어건 회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태우고 북한산까지 이동했다. 산행은 오전 11시30분부터 5시간 가량 수행원 없이 이어졌다.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부터 삼성전자와 디시네트워크의 향후 협력 방안까지 폭넓은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경쟁력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고, 어건 회장도 열린 마음으로 이 부회장의 얘기에 귀 기울였다”고 말했다.

찰리 어건 디시네트워크 회장.
찰리 어건 디시네트워크 회장.

백운대 경유 코스 가능성 높아

두 사람이 정확히 어떤 코스로 산행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추측하자면 정상까지 올라야 직성이 풀리는 어건 회장을 위해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를 경유하는 코스로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면 주차가 편한 강북구 우이동 도선사 입구, 혹은 은평구 진관동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방면이 유력하다. 이 부회장이 손수 차를 운전하여 산 입구까지 갔으니, 산행 후에도 어건 회장을 호텔까지 바래다주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감안하면 원점회귀 코스일 수도 있다.

5시간 산행이었다면 북한산 등산 코스를 감안했을 때 단순히 정상에 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능선을 걸은 후 하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도선사를 기점으로 했을 경우 하루재와 백운대를 거쳐 주능선을 따라 적당히 남진하다 용암문에서 도선사로 내려갔거나, 소귀천계곡을 따라 우이동으로 내려섰을 수도 있다. 발 빠른 등산인이라면 5시간만에 더 먼 코스로 가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중요한 비즈니스를 앞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을 것을 감안하면 평소 속도보다 천천히 걸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산성기점이었다면 계곡을 따라 꾸준히 걸어 백운대에 닿은 후, 주능선을 따라 남진하다 다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섰을 가능성이 높다. 주능선을 주파하여 의상능선을 따라 원점회귀한다면 북한산의 비경을 꽉 찬 당일산행으로 둘러볼 수 있으나, 제법 길고 험준한 코스라 그렇게까지 무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바위산이 대도시 곁에 있는 게 놀랍다”는 것이며, 최근에는 한국 여행을 위한 외국 여행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북한산 산행이 한국 여행 필수 코스로 꼽힌다. 평소 등산을 하지 않는 외국인들에게도 놀라운 북한산 경치가, 등산마니아인 어건 회장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으로 와 닿았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등산인의 마음은 등산 해본 사람이 아는 법이다. 아무리 냉정한 비즈니스라 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가진 뛰어난 기술력에 이재용 부회장의 진심어린 등산인의 마음이 더해져 계약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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