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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김 셰프의 미식산행] 푸근한 산 아래 충실히 재현된 남도 고향의 맛

글 사진 김문석 셰프
  • 입력 2021.02.2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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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석 세프의 미식산행 – 봉산&시하도

봉산정에서 바라본 북한산.
봉산정에서 바라본 북한산.

김 셰프의 산행 추천 봉산

북한산을 바라보는 해발 209m의 높지 않은 산이 있다. 봉산烽山이라는 이 산은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서울의 북서쪽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봉산은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봉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체 산 형세가 거북이를 닮았다 하여 구산龜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산동의 지명도 여기서 비롯됐다. 산이 완만하여 가볍게 돌아볼 수 있는 산으로, 정상에 설치된 정자 봉산정의 북한산 전망이 몹시 빼어나다.

바지락 듬뿍 미역국.
바지락 듬뿍 미역국.

김 셰프의 식당 추천 시하도

봉산 아래 은평구에는 가벼운 산행을 마친 후 편안하게 고향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식당 시하도가 자리 잡고 있다. 시하도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주광리에 실제로 있는 면적 0.09의 자그마한 섬이자 식당 주인의 고향이다. 주인장은 본인이 맛있게 먹었던 고향의 맛을 재현하고 싶어서 식당 이름을 시하도라 정했다고 한다.

이름이 풍기는 느낌처럼 지역색이 강한 음식들을 선보인다. 겨울철에는 굴을 집중적으로 판매하며, 철이 지나면 굴을 판매하지 않는다. 석화 찜과 굴, 돼지고기 수육과 겉절이를 내놓는 삼합이 있으며, 이 외에도 김치전과 생선전이 있다.

특이하게도 전을 낼 때 으레 따라오는 간장을 내놓지 않으며, 보통 식당들처럼 미리 전을 부치지 않고 주문과 동시에 준비한다. 주인은 원래 진짜 전은 소금 간을 각 재료마다 하고, 바로 부쳐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무와 굴을 이용한 겉절이, 피스타치오를 곁들인 멸치 볶음, 해남에서 깨끗한 물에서 자란 매생이 전도 일품이다.

메뉴에서 살펴볼 수 있듯, 요즘 추세인 한식과 양식의 퓨전 요리나, 새로운 창작 요리가 아닌 오직 시하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때 먹었던 음식만을 재현했다. ‘한식에 대한 정의는 셰프들마다 주관적인 차이가 있는데, 유년 시절의 맛을 고집스럽게 재현하는 것도 진정성 있는 한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주인은 호텔에서 한식 요리사 오랫동안 근무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 그리고 다시 건강을 회복한 후 시하도를 열었다고 한다. 주인은 쉬는 동안 나만의 요리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올라왔다주방에서 혼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내가 생각하는 을 구현하기 위해 작은 가게를 차렸다고 말했다

굴삼합보쌈.
굴삼합보쌈.

굴은 서해안, 병어는 목포, 멸치는 흑산도

시하도의 특출한 맛의 비결은 싱싱한 식재료에 있다. 굴은 시댁에서 받아오는 충남 보령 천북굴을 사용하며, 병어는 목포에서 친오빠가 물때에 맞춰 들어오는 것을 산지 직송해준 것으로 요리한다. 멸치는 흑산도산이다.

같은 주방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료 관리가 궁금했다. 개인적으로는 깐 굴이나 반각굴을 사용하지 않고, 석화로 받아서 예약 수만큼 직접 까서 준비했다. 주인은 시댁에서 받은 신선한 굴을 당일 사용하고, 무조건 다음 날에는 굴국이나 굴전으로 사용한다생굴은 딱 그날 작업량만 제공한다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서해안 굴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굴의 90% 이상은 남해 통영산이다. 통영 굴은 비교적 씨알도 크며, 생산량만큼 유통망도 잘 정비돼 있어 쉽게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조금 더 저렴한 편이다. 해수 양식되다 보니 부드럽고 크리미한 질감이 특징이나, 진한 맛은 약한 편이다.

최근 통영 굴은 바뀌어가고 있다. 프랑스 품종의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개체 굴을 양식하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굴은 크기가 일반 석화보다 3~4배 정도 크고 맛도 진해 특히 지난해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다.

반면 서해안 굴은 씨알은 작되 갯벌에서 밀물과 썰물에 흔들리고, 햇빛을 받고 자란 야생 굴이라 끝맛이 더 달큰하다. 개인적으로도 이 때문에 요리할 때 서해안 굴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또 이 집은 갓 김치가 예술이다. 해남 붉은 갓을 사용하는데 여수 돌산 갓과는 또 다른 깊은 풍미가 있다. 해남에서 나는 갓은 일반적으로 사용된 갓김치의 첫갓보다 크기가 더 크고, 해풍을 맞고 자라 잎이 부들부들하며, 김치가 익었을 때 더 청량감이 있다.

시하도의 굴보쌈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봉산을 누비며 쌓인 산행 피로는 봄에 눈녹듯 사라질 것이다

글쓴이 김문석 셰프

산행 코스는 맛집까지 이어져 있다

현재는 한국의 호텔 요리사로 근무 중이며, 20대를 프랑스에서 보냈다. 한국에서 요리사로 근무 중 본토에서 요리사로서의 삶과 배움을 얻으려,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리옹Lyon의 폴 보퀴즈Paul Bocuse 학교 졸업 후, 리옹의 기 라소제Guy Lassausaie 미슐랭 2스타, 알자스 지역의 르 로젠메르Le Rosenmeer 미슐랭 원 스타 근무. 귀국 후 청담동의 리스토란테 에오를 비롯하여 여러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은 후에 셰프로 활동하며, 현재는 셰프가 바라보는 세상을 글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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