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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나홀로 세계여행] 빙하, 설산, 고래, 곰… 무얼 보든 상상을 뛰어넘는 땅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2.10.20 09:33
  • 수정 2022.10.2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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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발데즈

자작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오는 톰슨패스의 가을 풍경.
자작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오는 톰슨패스의 가을 풍경.

에스키모의 나라, 온통 얼어붙은 땅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알래스카의 수많은 산은 아름드리나무가 가득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숲에는 곰을 비롯한 각종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바다 밑에는 고래, 상어, 바다표범, 연어까지 야생으로 가득하다. 오일을 비롯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특히 여름시즌에는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폭포들이 장관을 이룬다.

1898년 골드러시와 더불어 역사가 시작된 알래스카의 작은 도시 발데즈Valdez. 알래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눈덮인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프린스윌리엄사운드Prince William Sounds에는 각종 야생 해양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봄과 여름에는 하루 종일 크루즈를 타고 프린스윌리엄사운드에서 산, 빙하, 야생 동물을 관찰할 수 있고, 발데즈 앞바다는 연어와 광어 등 낚시를 즐기는 이들로 북적거린다. 

알래스카 남쪽 해안지방은 전형적인 피오르드 지형이어서 풍경이 아름답다. 북미에서 두 번째로 큰 조수 빙하인 프린스윌리엄사운드에서는 거대한 얼음 숲인 콜롬비아빙하Columbia Glacier를 바로 눈앞에서 만날 수 있고,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고 바다로 떨어지는 빙산도 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프린스윌리엄사운드를 통과하며 콜롬비아빙하까지 이르는 항로에서는 바다수달, 바다사자, 고래 등 바다의 야생동물 군락지도 지난다. 더욱이 발데즈 암Valdez Arm에서 보는 운무에 싸인 발데즈 항은 천상의 풍광이다.

산속 마을처럼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발데즈항
산속 마을처럼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발데즈항

빙하투어? 고래투어?

콜롬비아 빙하투어를 진행하는 루루벨LuLu belle 투어의 선장 프레드는 1979년부터 루루벨 보트의 키를 잡고 있다. 80이 넘은 나이임에도 프린스윌리엄사운드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그의 열정은 어떤 청년 못지않다.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 앞바다에 있는 바다사자Sea Lion 군락지에서는 포효하는 울음소리가 바다를 호령한다. 태평양의 여러 섬 근처에 분포되어 있는 바다사자는 해수 포유류로 멸종위기에 있어 보호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고래를 보겠다고 뉴질랜드에서 고가의 헬기투어를 했다. 하늘에서 보는 고래투어! 고래 떼가 이동하는 루트를 따라 움직이면서 관람을 하니 그 느낌은 역동적이고 놀라웠지만 아무리 가까이 가도 영상촬영은 어려웠다. 그냥 눈으로만 만족했다. 지난번 수어드Seward 빙하투어에서도 고래는 아주 먼발치에서 보아야만 했다. 

그런데 발데즈에서 대박을 쳤다. 프레드 선장의 열정과 승객들의 환호 덕분에 고래를 두 번이나 가까이서 보았다. 고래가 나올 만한 위치에서 기다리며 바다의 움직임을 탐색하다가 물을 뿜는 모습이 감지되면 보트는 날쌔게 고래로 향한다. 가능한 최단 거리로 접근한다. 물을 뿜던 고래가 커다란 꼬리를 가볍게 수직으로 세운 다음 ‘굿바이’하며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전율이 돋는다. 고래가 꼬리를 세울 때는 멀리 이동하기 위해 물 속 깊이 잠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발데즈 타운에서 만난 곰 가족.
발데즈 타운에서 만난 곰 가족.

수만 개의 유빙이 바다에서 흐르고 나무숲처럼 빙하 벽이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콜롬비아빙하.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빙하숲이다. 빙하가 녹아 천둥소리를 내면서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굉음을 듣는다. 거대한 빙벽을 바로 앞에서 보고 느끼는 경이로움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빙하를 감상할 수 있도록 루루벨 보트는 오랫동안 콜롬비아빙하 앞에 머무른다. 

오전 10시 반에 시작한 투어는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끝난다. 7시간 동안 보는 바닷가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장관이어서 단 1초도 지루할 틈이 없다. 알래스카의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두 번째 콜롬비아빙하를 보러간 날. 불과 10일이 흘렀을 뿐인데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푸르른 빛을 가득 담은 유빙은 온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번보다 더욱 찬란한 빛을 발한다. 가슴이 쿵쾅쿵쾅. 하얀 눈이 내린 겨울엔 또 어떤 모습일까? 남들은 평생 한 번도 보기 어려운 콜롬비아빙하를 두 번이나 보고 오는데도 쉽게 작별하지 못한다.

수정처럼 맑고 푸른 유빙이 둥둥 떠다니는 콜롬비아빙하.
수정처럼 맑고 푸른 유빙이 둥둥 떠다니는 콜롬비아빙하.

알래스카에 왔으니 연어는 낚아야지~

연어를 잡으러 간다. 알래스카는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강과 호수의 수량이 풍부해서 세계 최대의 연어가 잡히는 곳이다. 

낚시 장소인 발데즈 암으로 가는 바닷길. 구름이 이동하는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상영되고 바다 위에 구름이 이불처럼 펼쳐 있는 모습은 마치 천상의 풍광 같다. 비가 예보된 날씨에도 비가 왔다 개었다를 반복하며 천의 얼굴을 보여 준다. 

묵직한 연어의 낚싯대 릴을 감아올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첫날엔 무려 네 마리, 둘째 날엔 두 마리와 우럭도 잡았다. 처음인데 생각보다 아주 팽팽하게 낚시 줄을 당기며 연어와 힘겨루기를 잘한다는 칭찬도 받았다. 내가 잡은 연어는 대부분 실버연어. 아쉽게도 킹연어는 내 낚싯대를 물지 않았다. 연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발데즈 연안에서는 1인당 6마리, 발데즈 암을 벗어나 조금 멀리 나가면 4마리만 잡을 수 있다.  

발데즈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실버연어.
발데즈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실버연어.

연어를 만나는 또 하나의 장소는 연어 부화장salmon hachery. 겨울에 쌓인 눈이 녹아 차가워진 알래스카 강은 연어가 알을 낳기에 적합하다. 부화장에서 태어난 새끼 연어는 강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 바다로 내려가 3년 정도 지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회귀 본능이 있다. 폭포를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강 입구에서 바다사자와 갈매기, 심지어 곰의 먹이가 되기도 하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기운이 빠져 떠내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부화장으로 돌아온 연어는 알을 낳은 뒤 죽는다. 죽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귀화본능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알래스카의 절경, 톰슨패스

앵커리지에서 발데즈로 가는 알래스카 4번국도를 따라서 톰슨패스Thomson Pass를 넘으면 3,000~4,000m 고산들이 양 옆으로 줄지어 나타난다. 이 루트는 알래스카에서 빼어난 풍경을 보여 준다. 그 풍경을 사진에 담고 싶지만 도로에 차량을 세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눈으로 즐감하는 것만으로도 감탄사가 쉼 없이 이어진다. 특히 자작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과 하얀 눈으로 덮인 톰슨패스의 풍경은 더욱 멋지다. 

나에게 가장 멋진 풍경은 톰슨패스 아래쪽으로 계곡을 따라가는 98트레일. 능선을 따라서 펼쳐진 트레일이 한눈에 들어왔다.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곰이다. 발데즈에서 10일 넘게 머무르면서 곰 때문에 가지 못한 길이 참 많다. 

워팅턴빙하는 다른 빙하와는 달리 입장료도 없고 주차장도 잘 구비되어 있으며 바로 앞에서 빙하를 만날 수 있다. 지난번 콜롬비아빙하는 바다에 접해있고 워팅턴빙하는 육지빙하이다. 빙하숲을 형성한 콜롬비아빙하만큼 장엄한 맛은 없다. 발데즈 입구에 있는 호스테일폭포Horse Tail Fallls와 면사포폭포Bridal Bale Falls도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웅장하다.

바람이 불면 폭포의 물줄기가 말꼬리처럼 휘날리는 말꼬리 폭포.
바람이 불면 폭포의 물줄기가 말꼬리처럼 휘날리는 말꼬리 폭포.

발데즈 트레킹

발데즈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적인 트레일을 자랑한다. 짧고 쉬운 트레일부터 골드러시의 역사를 품고 있는 98트레일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자유롭게 걷기는 쉽지 않다. 루트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곰으로부터 안전하게 걸으려면 발데즈 타운과 항구 주변에 있는 트레일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짧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독 포인트 트레일Dock Point Trail, 시빅 센터 오벌룩 트레일Civic Center Overlook Trail 두 개의 트레일은 모두 30분 내외면 걸을 수 있다. 독 포인트 트레일은 습지와 야생화를 감상하면서 발데즈 항과 마을의 조망을 제공한다. 습지는 데크 길이어서 편안하게 숲을 산책할 수 있고 곳곳에 쉬어갈 수 있는 쉼터도 있다. 

시빅 센터 오벌룩 트레일은 다소 짧기는 하지만 발데즈를 둘러싸고 있는 설산과 바다를 360도로 구경하면서 발데즈 항과 발데즈 타운도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터.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타운에서 산책삼아 다녀오면 좋은 코스이다. 정상에는 작은 쉼터가 있다. 마주보고 있는 밀스 힐 트레일Meals Hill Trail은 발데즈 항을 조망하면서 깊은 숲속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에서 유유히 연어를 기다리는 바다사자들.
연어가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에서 유유히 연어를 기다리는 바다사자들.

타운에서 만난 곰

연어 부화장 다녀오면서 두 번이나 곰을 만났다. 연어부화장 견학 끝나고 주차장으로 오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보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아기 곰 두 마리와 엄마 곰이 놀러 나왔다. 아기 곰 앞에서 걸으며 두리번거리며 안전을 확인하는 엄마 곰의 모습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 곰이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산책삼아 나왔는지 어슬렁거리며 잠시 서성이다가 숲으로 들어간다.

연어 부화장을 막 출발했는데 길에 차량행렬이 줄 지어 있다. 이건 분명 곰! 차를 세우고 뛰어가니 연어를 입에 물고 있던 곰이 구경하던 사람들의 아쉬움을 뒷전으로 하고 유유히 숲으로 사라진다. 

세 번째 곰은 발데즈 빙하 다녀오면서 만났는데 세 번째가 되니 이젠 덤덤하다. 야생동물 구경한다고 데날리국립공원Denali National Park에 가서 유료버스를 타고 투어했는데 그 땐 아주 먼발치서 구경 했다. 

원시림, 빙하가 흘러서 만들어진 장엄한 폭포, 수정처럼 맑고 푸른 유빙이 둥둥 떠다니는 콜롬비아빙하, 연어가 넘쳐나는 바다, 곰과 고래의 만남, 물살을 가로지르며 회귀하는 연어의 절박한 몸부림, 유유히 연어를 포획하는 바다사자들의 나태함, 프린스윌리엄사운드 바다 위에 내려앉은 구름, 히말라야 산속 마을처럼 만년설이 덮인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발데즈, 너무나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진정한 야생의 알래스카를 보고 싶다면 발데즈로 가라고 말하고 싶다.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부르는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부르는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알래스카 여행팁

여행시기

알래스카는 백야가 시작되는 5월부터 9월까지가 최적의 여행 시기. 평균 기온은 15℃ 전후로 여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이다. 이 시기에만 낚시가 가능하다. 오로라와 스키를 즐기고 싶으면 12월부터 3월이 좋고,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단풍을 만나려면 9월이 최적기이다. 무엇을 보러 알래스카에 갈 것인지 정하면 최적의 시기 또한 정할 수 있다.

여행방법

알래스카 여행은 자유 여행과 투어 회사를 이용할 수 있다. 도시 간 이동거리가 멀어 길에서 소모되는 시간이 많아 가능한 자유 여행으로 가고자 하는 도시를 정하고 차량 렌트와 숙소를 예약하면 좋다.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여행 중 잠시 시간을 내어서 후버댐에 버금가는 인공건조물 중 하나로 금세기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부르는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Trans-Alaska Pipeline System, TAPS을 만나보자. 총거리 약 1,280km, 1974년 공사를 시작해 1977년에 완공했다. 북극해 인접 프루드베이에서 생산된 원유는 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발데즈까지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송한다. 각종 지진과 기후에 대처하도록 지그재그로 파이프라인을 연결했고, 강과 바다를 건너기 위한 다리로 만들고 지상 구간에서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높이로 설계했다. 파이프 내부에 찌꺼기가 끼지 않도록 스마트피그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경제를 지탱하는 젖줄이기도 하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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