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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등산 공포증’ ‘등산 혐오증’ 그녀들 위해 약을 처방하다

윤성중
  • 입력 2022.10.19 09:38
  • 수정 2022.10.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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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시렁 산악회 결성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넘어가는 중. 무악재 하늘다리를 통과하면 손쉽게 갈 수 있다. 다리 아래 산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넘어가는 중. 무악재 하늘다리를 통과하면 손쉽게 갈 수 있다. 다리 아래 산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등산시렁 산악회가 결성됐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산에 가는 모임이다. 멤버는 단 두 명, 방소영, 최민아다. 둘 다 그래픽 디자이너고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다. 등산을 싫어하는 두 사람을 줄로 묶은 다음 억지로 산에 끌고가 ‘산악회’라고 이름 붙인 건 아니다. 어느날 셋이 모였을 때 나는  ‘등산시렁’ 칼럼에 관해 떠들었고, 말이 끝나갈 때 즈음 “산에 한번 가실래요?”라고 미끼를 던졌는데, “좋아요!”라면서 덥석 물어버렸다. 

순간 둘의 얼굴에서 ‘앗! 진짜로?’하는 표정이 스쳤지만 나는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 자리에서 산에 갈 날짜를 정해 버렸다. 월척이었다. 그렇게 산악회가 만들어졌고 나는 ‘대장’이 됐다. 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등산 모임! 아마도 세계 최초이지 않을까 싶어 나만 신났다.

산행지는 서울 서대문구의 안산(259m)으로 정했다. 전철에서 내려 산 입구까지 걸어서 약 5분,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데 1시간 내외 정도 걸리는, 내 기준의 등산 난이도 ‘하’급에 해당되면서 꼭대기에서의 경치가 볼 만한, 등산 싫어하는 사람을 등산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산으로 안산이 딱 맞았다.

점심 때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둘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밥을 ‘먹였다’. 밥 먹고 커피도 마시자고 했는데 그들은 “됐다”면서 거절했다. 얼른 산에 가고 싶은 건가? 긴장한 건가? 산 입구에 도달하기 직전 집에 가겠다고 할까봐 세심하게 살폈다. 아주 조심스럽게 둘에게 물었다. “등산이 왜 싫죠?”

방소영의 대답. “산을 싫어하진 않아요. 무서워요. 얼마 전 아는 사람이랑 북한산에 갔는데,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길을 걷다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어요. ‘여기서 사람이 죽어도 모르겠다.’ ‘낙엽 더미 안에 시체를 묻어도 절대 못 찾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은 최민아의 대답. “초등학생 때 아빠 따라서 불암산에 간 적이 있어요. 산에 가는 건 좋았어요. 그런데 다 내려와서 아빠가 다리에 알 배긴다고 오리걸음을 시켰어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 이후로 산에 가기 진짜 싫었어요!”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산과 관련된 무섭고 힘든 기억을 낫게 하기 위해 1일 약사가 되어야 했다. 약을 발라주고 상처가 아물게 하자! 방법은 쉬웠다. 천천히 가는 것이었다. 필살기인 끊임없이 질문하기 기술을 쓰려고 서서히 발동을 걸었다. 무악재 하늘다리 아래 초입에 도착했다. 오르막 경사가 꽤 가팔랐다. 그들이 “저길 어떻게 오르냐”면서 물러설까봐 내가 먼저 선수쳤다. 

“저 오르막 때문에 산에 가기 싫은 거죠?” 

“그렇긴 하죠. 몸이 힘드니까.” 

아주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둘은 군소리 없이 따라왔다. “더 천천히 갈까요?” 다섯 걸음 갔다가 멈췄다가, 또 네 걸음쯤 갔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그러자 최민아가 말했다. “오, 이런 배려 좋아요. 눈치 안 봐도 되네요!” 천천히 효과는 대단했다. 힘 들이지 않고, 마치 염력을 쓰듯 나는 두 사람을 더 깊은 산 속으로 끌어당겼다.

안산 봉수대에 오른 등산이 싫은 두 사람, 왼쪽이 최민아, 오른쪽이 방소영. 난간 아래쪽으로 서울의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안산 봉수대에 오른 등산이 싫은 두 사람, 왼쪽이 최민아, 오른쪽이 방소영. 난간 아래쪽으로 서울의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여자들은 산에 혼자 가기 무서울 수 있어

숲이 울창했다. 가운데로 길이 선명했다.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적이 없어서 방소영은 그게 좀 무서운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이것 봐요. 분위기 이상해. 이런 데 어떻게 혼자 와요? 성중씨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그녀의 불안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상한 사람이 나무 뒤에서 튀어나와 총을 들이밀고 꼼짝 말라고 해도 나는 ‘저거 진짜 총일까?’ 궁금할 뿐 무섭진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공포심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그녀가 나처럼 어딜 가도 무서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을 믿어야 할까? 체력을 길러야 할까? 산을 더 많이 타야 할까? 나는 이것이 그저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라고 결론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얼마 없었다.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허세를 부렸다. 

“저는 전혀 무섭지 않은데요. 저 밑에는 차가 쌩쌩 지나다니고, 아파트가 코앞인데, 길 잃을 염려는 없고. 설마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를 해치겠어요?” 

그녀가 안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더 가니 길이 널찍해졌고 사람들도 왔다갔다 했다. 방소영은 다시 쾌활해졌다.

무악재 하늘다리 앞에 다다랐다. 고도감이 있었다. 두 사람은 고소공포증이 없는 모양인지 성큼성큼 다리를 건넜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네!”라면서 감탄했다. “원래 이 산들이 다 연결되어 있었다는 걸 아세요? 이 산길 따라서 북한까지도 갈 수 있어요!” 그들은 더 놀랬다. 작년에 안산에서 산양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무악재 하늘다리를 통해서 건너온 것으로 짐작한다는 말은 잊어버리고 하지 못했다.

다리를 건너자 급한 오르막이 나왔다. 그들이 오르막에 눈길을 주기 전에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은 왜 디자이너가 됐죠?” 최민아가 답했다. “저, 만화 그리다가요. 그걸 가지고 포토샵으로 디자인하다가 디자이너가 됐어요.” 방소영이 말했다. “저도 그림 그리다가 칭찬 받고 여기까지 왔어요.”

“두 분 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나요?” 방소영이 답했다. “경력이 오래돼서 그런가? 이제는 머리로 일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것 같아요. 일을 받으면 자동으로 움직여요. 그래서 요즘엔 ‘나 이거 했다’면서 자랑하고 싶은 작업이 얼마 없어요.” 

최민아도 말했다. “영감이요? 저는 그런 거 없어요.” 최민아는 자연에서 얻는 영감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이 ‘진짜’ 자연 속에 있다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와, 어제까지 툼레이더(모험을 소재로 한 게임 이름) 했는데, 오늘 게임하고 비슷한 배경을 만날 줄이야!”

힘든 길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두 사람은 바위 구간 앞에서 멈췄다.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길 우리가 오를 수 있을까요?” “문제 없어요! 멀리서 보면 어려워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길이 있어요. 천천히 가면 됩니다. 천천히는 무적이에요!”

내가 앞장섰다. 물 건너기 싫은 염소를 물가로 끌고가듯 보이지 않는 줄로 두 사람을 묶은 다음 바위 아래까지 천천히 다가갔다. “아, 이렇게 가면 되겠구나!” 두 사람은 더듬거리며 잘 올랐다. 바위 구간이 끝난 중턱에 올라서자 둘은 곧바로 주저앉았다. 경치가 좋았다.

“어때요? 괜찮아요?” 나는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방소영이 답했다. “일주일에 3회 정도, 아침마다 한강으로 산책가요. 너무 좋아요. 여기도 좋네요. 하지만 이런 풍경에 평지면 더 좋아요.” 최민아도 말했다. “헬스장 온 거 보다 더 좋긴 해요. 그런데 저는 열이 차면 머리가 아파요. 머리 아픈 거 빼면 다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민아는 보온병을 꺼내 물을 홀짝였다. 얼려온 물이 녹지 않아서 마실 게 얼마 없었다. 나는 가지고 온 수통의 물을 그녀에게 나눠줬다. 그녀의 얼굴이 활짝 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지금! 너무 좋아요!!”

안산 봉수대에서 남산이 코앞에 보였다. 남산 아랫동네에 살고 있는 둘이 남산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자신들의 집을 찾았다.
안산 봉수대에서 남산이 코앞에 보였다. 남산 아랫동네에 살고 있는 둘이 남산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자신들의 집을 찾았다.

잠깐 쉬었다가 정상으로 향했다. 10분 정도 올라가니 봉수대가 나왔다. 바로 옆에 인왕산이 보였다. 멀리 북한산, 관악산도 또렸했다. 나는 등산 가이드처럼 손가락으로 봉우리들을 짚으며 이름을 읊었다. 둘은 또 감탄했다. “서울에 산이 많구나!” “저기는 우리가 사는 데구나!” 해발 200m밖에 되지 않는데도 그들은 굉장히 높은 곳에 올라온 것처럼 신기해했다.

정상에서 한참 머물다가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내려왔다. 방소영은 목욕탕에 간다고 했다. 최민아는 집에 가서 일단 눈 좀 붙이겠다고 했다. 다음날, 방소영은 최민아와 나눈 메신저 내용을 단톡방에 공유했다.

방소영 피곤하진 않고 또 가고 싶네 종종.
최민아 와;;; 저도요! 등산!
방소영 함께하자! 둘 다 일 없는 날.
최민아 저희 한 달에 두 번 도전해 봐요. ㅎㅎ
방소영 김밥 하나 싸가지고 가서, 위에서 먹고.
최민아 너무 좋아요.ㅎㅎ
방소영 코스가 남산보다 재미난 것 같아.
최민아 조금씩 체력도 늘려보고, 아프면 아픈 대로, 이번엔 반복해서 극복해 보고 싶네요.

등산시렁 산악회 1회 모임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산악회 이름을 ‘등산좋앙’으로 바꿔야 할까?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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