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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정무한] 가을 산 단풍이 2월 꽃보다 붉네

김윤세 본지 객원 기자, 인산가 회장
  • 입력 2022.10.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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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봉화산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 능선. 
봉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 능선. 

나라에 외적의 침입이나 변란, 그밖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국 각지의 주요 산꼭대기에서 토끼 똥 태운 연기나 불을 피워 올려 조정에 알리는 신호체계를 봉화烽火라 하고,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을 봉화대라고 한다.

사방이 탁 트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봉화대가 위치해야 봉화의 신호체계가 신속하게 작동해 조정에서 대비할 수 있다. 그곳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역할과 기능을 하는 곳으로 오랜 세월 중요시되어 왔다. 

지구의 머리로 불리는 히말라야산군山群으로부터 먼 길을 달리고 달려 우리나라 백두산으로 머리를 들이민 뒤 큰 산줄기는 동해를 거쳐 속리산·덕유산으로 내달아 지리산을 지나 다시 바다로 들어가 제주도 한라산으로 용솟음쳤다가 또다시 바다로 들어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후지산으로 솟구친다. 

 

봉화대 들어서기 천혜의 자리

덕유산에서 영취산, 백운산을 거쳐 월경산을 지나 남쪽으로 내닫는 백두대간 큰 산줄기가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사이로 흐름을 이어가다가 고개를 번쩍 든 산, 바로 봉화대가 있었던 봉화산(해발 919.8m)이다. 

지난 10월 2일,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이동해 남원시 아영면 성리 매봉재골 치재 부근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한 뒤 오전 11시 11분 봉화산 산행에 나섰다. 길을 떠나 290m 오르막길을 걸어 봉수정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백두대간 산길을 걸었다. 

약 2.4km의 산길을 1시간 30분 남짓 걸어서 정상까지 600여 m 이상 남은 지점에 다다라 배가 고프다 못해 허기가 지는지라 주변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우선 탁여현 한잔으로 갈증과 배고픔을 다소나마 해결한 다음 삶은 달걀 한 개, 옥수수 한 개로 점심을 먹은 뒤 다시 길을 떠나 오후 1시 40분경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그야말로 사방으로 탁 트여서 멀리 지리산 주 능선이 아스라이 보이고 동서남북으로 먼 곳까지 시야를 확대할 수 있는 특성을 지녀 누가 보더라도 봉화를 올리기에 최적의 장소로 여길 것으로 판단된다.

주위를 둘러보며 탁 트인 조망을 즐기다가 기념사진을 찍은 뒤 다시 길을 걸어 약 700m 지점에 세워놓은 봉화정에 다다라 간단하게 탁여현을 마시고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임도를 따라 하산길에 나선다.

 

봉화산 정상의 표지석. 
봉화산 정상의 표지석. 

당나라 두목의 시를 떠올리다

약 15분 걸으니 봉화정에서 1.1km 지점인 임도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으로는 비득치, 오른쪽으로는 철쭉 군락지 4.2km라 표기한 이정표의 안내에 따라 임도 4.2km를 더 걸으니 마침내 오후 4시 31분, 출발했던 치재 주차장에 도착한다.

백두대간의 능선 산길 3.7km 걸은 것을 비롯해 오름길 4.5km, 임도 5.3km 내림길을 포함, 이날 걸은 총거리는 9.83km이고 오르내린 고도는 해발 596m에서 919.8m이다. 

중추가절답게 산행하는 내내 청량한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 주고 열을 식혀 주는가 하면 하늘의 뭉게구름은 산봉우리를 휘감으며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 준다.

산길 좌우로 줄지어 서서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든 나뭇잎들과 바람에 몸을 흔드는 하얀 억새풀들이 마치 마지막 열정을 불태워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빨간 단풍잎을 보노라니 “붉게 물든 단풍이 2월 꽃보다 더 곱다”고 노래한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의 시가 떠오른다.

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
停車坐愛楓林晩 정거좌애풍림만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멀리 가을 산, 비탈진 바위길 오르나니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
수레 멈추고 늦가을 단풍을 즐기노라니
붉게 물든 단풍 이월 꽃보다 더 붉네

중국 당나라 말기의 낭만시인 두목(803-852)이 가을 산 정경을 읊은 ‘산행山行’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가을 산의 청량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는 한 폭의 동양화 그 자체라 하겠다.

시인의 심미안審美眼으로 보니 인가에서 오르는 연기는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이요, 서리맞은 단풍잎은 2월의 꽃보다 더 붉은빛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두목은 스무 살에 당나라 수도 장안에 나와 학문을 익혔는데, 당시 태학박사 오무릉吳武陵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때 두목이 지은 ‘아방궁부阿房宮賦’라는 시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아방궁부’는 두목이 청년 시절에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으로 화려한 수사와 유장한 리듬이 특징이다.

중당 시대의 시인 두보杜甫와 작풍이 비슷하며, 노두老杜 두보와 구별하기 위해 소두小杜라고도 부르며, 동시대의 시인 이상은과 함께 ‘만당의 이두李杜’로 통칭된다.

‘가을 산’ 산행은 들국화를 위시해 수많은 꽃이 능선길에 줄지어 늘어서서 말 없는 미소로 산행객을 반기지만 노랗게, 붉게 물드는 나뭇잎들 또한 손을 흔들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넨다. 마치 ‘긴 겨울 잠冬眠’에 들어가면서 내년 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듯이….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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