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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나홀로 세계여행 미 올림픽국립공원] 태평양과 빙하와 우림이 공존 ‘거인의 땅’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2.11.24 06:15
  • 수정 2022.11.2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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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올림픽국립공원

허리케인 힐의 일몰, 장대한 침엽수들과 낮은 관목 그리고 만년설들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며 천상의 세계가 연출된다.
허리케인 힐의 일몰, 장대한 침엽수들과 낮은 관목 그리고 만년설들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며 천상의 세계가 연출된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만추’로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 시애틀Seattle은 ‘숲의 도시’로도 불린다. 이 도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미국 워싱턴주의 올림픽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올림픽반도에 자리 잡고 있는 올림픽국립공원은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국립공원이다. 제주도 면적의 두 배. 너무 광범위해서 순환도로를 차로 한 바퀴 도는 데도 하루가 걸린다. 특이하게도 국립공원을 가르지는 길이 없어서 이동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193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81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림픽국립공원은 3개의 전혀 다른 기후와 지형이 공존한다. 올림푸스산Mount Olympus(2,432m)을 중심으로 만년설 뒤덮인 해발 2,000m의 산악지역, 미국에서 연간 강우량이 가장 많은 호 레인 포레스트Hoh Rain Forest가 있는 우림지역, 태평양과 접하는 해안지역이 저마다의 독특한 색을 가지고 있다. 

바다 사이에 좁고 길게 이어진 던지니스 스핏, 미국에서 가장 긴 모래톱으로 해변에서 던지니스 등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바다 사이에 좁고 길게 이어진 던지니스 스핏, 미국에서 가장 긴 모래톱으로 해변에서 던지니스 등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톱, 던지니스 스핏

세큄Sequim 근처의 던지니스 스핏Dungeness Spit은 세계에서 가장 긴 모래톱sand spit 중 하나이며 미국에서 가장 긴 모래톱이다. 모래톱은 해류가 해안선을 따라 퇴적물을 운반하면서 연안 표류Longshore drift라고 알려진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이곳의 암석들은  노스 캐스케이드와 캐나다에서 온 것으로 확인된다. 이 암석들은 마지막 빙하기 동안 빙하에 의해 이 지역으로 옮겨졌고 후에 침식되어 던지니스 스핏을 형성했다. 

던지니스 스핏은 던지니스 카운티 파크Dungeness County Park 안쪽의 던지니스 내셔널 와일드라이프 리퓨즈Dungeness National Wildlife Refuge 해변에서 시작해서 던지니스 등대까지 가는 길이다. 왕복거리는 약 18km. 밀물 때보다는 썰물 때가 더 걷기 편해서 미리 조수를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 키오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들어서면 바로 무성한 숲이 시작된다. 무성한 숲에는 이끼식물이 무척 많다. 해안가 입구까지는 800m 정도. 원시림 숲길이 조금 짧아서 살짝 아쉽다. 숲길은 메인루트와 프리미티브길이 있다. 갈 때는 메인으로, 올 때는 프리미티브로 걸었는데 프리미티브가 조금 더 길고 숲의 향도 더욱 진하다. 캠핑장에서 하루 묵어가면 좋다.

해변에 도착하기 직전에 전망대에 서니 끝없이 이어진 모래톱이 보인다. 그 끝에 보일 듯 말 듯 등대가 있다. 그 등대까지 다녀오고 싶지만 지금은 조수가 가장 높을 때. 나무와 돌이 뒹구는 좁은 모래 해변 길은 걷기가 쉽지 않다. 태평양 먼 곳으로부터 흘러온 유목driftwood들이 나뒹구는 해변은 반은 사람이 걷고 나머지 반은 도요새, 할리퀸 오리, 철새들을 보호하는 보호구역이다. 특별한 금지선은 없고 단지 새보호구역이라는 팻말만 있다. 사람과 조류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바다 사이에 좁고 길게 이어진 모래톱을 걷자니 마치 바다에 열린 길을 나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이다. 각양각색의 유목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걷다가 유목에 앉아서 캐나다로 이어지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다가 모래톱 반대편에 모여서 놀고 있는 수많은 바닷새를 관찰하고 아름다운 바다 경치를 즐긴다. 거대한 모래톱을 걷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거대한 침엽수림에 붉은 태양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허리케인 힐의 일몰.
거대한 침엽수림에 붉은 태양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허리케인 힐의 일몰.

올림픽국립공원 최고 명소, 허리케인 리지

올림픽국립공원의 최고봉은 올림푸스산(2,430m). 올림픽국립공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주위로는 올림픽산맥을 형성하는 수십 개의 빙하 고산들이 있다. 올림픽산맥뿐 아니라 올림픽국립공원 전체를 가장 잘 조감할 수 있는 곳은 해발 1,600m에 있는 허리케인 리지 방문자센터Hurricane Ridge Visitor Center이다. 12월에서 3월까지의 겨울 시즌에는 스키장으로 변신한다. 올림픽국립공원 입구에서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과 수백 미터 절벽 옆으로 나있는 길을 30분 정도 달리면 허리케인 리지에 도착한다. 운이 좋으면 길에서 야생사슴을 만날 수도 있다. 

허리케인 리지에 올라서면 시야가 뻥 뚫린다. 막힘이 전혀 없다. 북쪽으로는 캐나다, 남쪽으로는 올림픽산맥이 360도 파노라마로 빙 둘러싸여 있다. 한여름에도 빙하를 볼 수 있다. 단지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이 모든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방문자 센터가 있는 전망대 뒤쪽은 초지이다. 이곳은 야생사슴들이 겨울을 나는 장소이다. 추운 겨울에는 이곳에서 지내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산으로 이동한다. 야생사슴들이 산으로 들어간 이후 이곳은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꽃천지가 된다. 이런 멋진 전망대를 차로 올라올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허리케인 리지에 왔다면 반드시 허리케인 힐을 다녀와야 한다. 허리케인 힐에는 짧은 하이킹 코스가 여러 개 있다. 모두 1km 내외여서 부담이 없다. 이곳에서 엘화강 계곡Elwha River Valley으로 가는 장거리 트레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허리케인 힐에 오르면 발아래로는 허리케인 리지, 남쪽으로는 험준한 베일리산맥Bailey Range, 북쪽으로는 포트 엔젤레스, 바다 건너로는 밴쿠버 섬이 보이고 가끔은 미국과 캐나다 사이를 오가는 페리도 보인다. 또한 흐릿하긴 하지만 베이커산Mount Baker(3,286 m)도 볼 수 있다. 

허리케인 힐에 오르니 마침 일몰시간. 장대한 침엽수들과 낮은 관목 그리고 만년설들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니 천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모습에 그저 넋을 잃고 취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에 그저 감탄만 할 뿐이다. 

울창한 숲이 녹색 그늘을 만들어서 삼림욕하면서 걷기 좋은 솔덕 폭포 트레킹.
울창한 숲이 녹색 그늘을 만들어서 삼림욕하면서 걷기 좋은 솔덕 폭포 트레킹.

노천 스파와 폭포 하이킹을 함께 즐기는 솔덕

올림픽국립공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명소인 솔덕은 포트 앤젤레스에서 40분 거리에 있다. 무성한 열대우림 가운데 위치한 솔덕 핫스파Sol Duc Hot Springs는 찬 공기 속에서 노천 온천을 즐기는 노천탕으로 유명하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 주는 완벽한 이완제이다. 

무성한 열대우림 가운데 위치한 노천 온천, 솔덕 핫스파.
무성한 열대우림 가운데 위치한 노천 온천, 솔덕 핫스파.

솔덕폭포 트레킹의 출발지는 노천 스파가 있는 솔덕 핫리조트에서 멀지 않다. 왕복거리는 약 3km. 삼림욕을 하면서 걷기엔 최적이다. 초록 숲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느끼며 축 늘어진 이끼식물들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산책로 끝에 솔덕 폭포가 있다. 산책길은 누구나 걷기에 편안하다. 조금 더 길게 걷고 싶다면 오래된 숲으로 덮여 있는 솔덕강 트레일도 추천한다.

올림픽반도의 북서부로 흘러 내려가 태평양으로 흘러가는 솔덕강은 주변 산의 호수와 상류로 올라가는 연어의 이동통로이기도 하다. 가을철에는 산란을 위해 폭포를 뛰어넘는 용감한 연어들도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파도와 육지가 만나서 창조한 절벽의 바위가 마치 거인의 발처럼 보이는 가장 서북쪽 마을, 케이프 플래터리.
끊임없이 요동치는 파도와 육지가 만나서 창조한 절벽의 바위가 마치 거인의 발처럼 보이는 가장 서북쪽 마을, 케이프 플래터리.

미국의 가장 북쪽 마을, 케이프 플래터리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가장 서북쪽에 있는 케이프 플래터리Cape Flattery. 올림픽국립공원 솔덕에서 핫스파와 트레킹을 즐기고 다음 여행지인 케이프 플래터리로 향한다. 자동차로 2시간 반, 왕복 5시간이 소요되는데 트레킹은 단지 3km. 잠시 고민했지만 일단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펼쳐지는 해안이 너무 아름답다. 대부분의 도로가 차를 세울 만한 갓길이 마땅하지 않으니 눈으로만 만족한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케이프 트레일이라 쓰여 있는 입구로 들어선다. 울창한 숲이 펼쳐진 길은 올림픽국립공원의 다른 길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단지 30여 분도 걷지 않고 만난 바다풍경은 참으로 놀라웠다. 내 눈앞에 펼쳐진 케이프 플래터리는 마치 거인나라에 온 듯하다.  동굴에서 부딪치는 파도 소리와  파도가 부서지며 만들어진 포말이 어우러지니 참으로 신비한 모습이다. 절벽에서 바다로 뻗어나온 바위는 마치 거인의 발과 같다. 거인의 발 등에는 갈매기, 가마우지 등 다양한 새들이 파도를 피해서 휴식을 취하고 있고 저 멀리 바다 건너편에는 파도와 바람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타투시 아일랜드의 등대가 외로이 서 있다.

너무나 생경한 모습에 얼마나 사진을 찍고 즐겼는지 자동차로 2시간 반이나 달려왔지만 걷지 않으면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걷는 자만이 즐길 수 있다. 케이프 플래터리 앞으로 펼쳐진 망망대해를 가로 지르며 포효했을 이곳에 살던 인디언들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케이프 플래터리 앞에는 ‘바다의 포위’라는 제목 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다. ‘케이프 플래터리는 거센 파도에 천천히 후퇴하고 있습니다. 당신 발아래의 마카 형성 사암은 바다 동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용히 앉아 있으면 때때로 느낄 수 있습니다. 케이프는 아래의 동굴로 흘러들어가며 폭발하는 파도의 힘으로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수백 년 내에 당신이 서 있는 그 땅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끼와 양치류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있는 호 레인 포레스트.
이끼와 양치류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있는 호 레인 포레스트.

영화 ‘트와일라잇’ 촬영지, 호 레인 포레스트 

미국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은 온대우림 지대인 호 레인 포레스트. 울창한 숲과 함께 다양한 생태계를 접할 수 있다. 이끼와 양치류로 뒤덮인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끝없이 뻗어 있다. 나무의 끝을 바라보고 싶어서 올려다보다가 그만 뒤로 넘어갈 뻔했다. 초록색 이끼를 주렁주렁 매달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생경하고 신비스럽다. 초록색 이끼는 나무에 유해한 생물체가 아니라 습기와 영양분을 공급하며 공생을 한다. 어디선가 신비의 정령이 저벅저벅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이른 새벽의 호 레인 포레스트는 너무나 고요하다.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적막을 깨우지 않는다. 산책을 하는 이들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강우량이 엄청난 숲이라 음산할 줄 알았던 내 선입견은 여지없이 부서진다.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나무 위에서 햇살이 비치니 온 세상이 경쾌한 초록의 세상이다. 깊게 숨을 들이쉬니 상큼하고 청명한 숲의 공기가 내 몸 안에 가득 찬다. 몸도 마음도 산뜻해진다. 마치 녹색 성전에 머무르는 것 같다.

호 레인 포레스트에는 짧은 2개의 산책로가 있다, 홀 오브 모스 트레일The Hall of Mosses Trail(1.2km)’과 스프루스 네이처 트레일The Spruce Nature Trail(1.9km)이다. 많은 사람들이 홀 오브 모스 트레일을 즐긴다. 거리는 1.2km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나무들을 관찰하다 보면 1~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곳은 종일 초록의 샤워를 즐기고 싶을 만큼 매력이 가득하다.

운무와 빛 내림이 가득한 몽환의 바다 칼라록 비치.
운무와 빛 내림이 가득한 몽환의 바다 칼라록 비치.

몽환의 바다, 칼라록 비치

미 대륙 서북쪽 끝, 케이프 플래터리부터 이어진 태평양 해안선은 거칠고 아름다운 원시 상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어디에도 바다가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산중을 달렸는데 어느덧 바다가 곁에 와 있다. 언덕을  내려가니 파도가 철썩거리고 섬들이 둥둥 떠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운무가 가득한 바다. 왠지 내 영혼을 찾아 나서야만 할 것 같다.

루비 비치는 공사 중으로 폐쇄되어 대안으로 찾은 곳이 칼라록 비치Kalaloch Beach. 운무 속으로 빛 내림까지. 몽환이란 단어가 어찌 이리도 잘 어울릴까! 빛 내림 속을 걷는 이들은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닷가를 걷고 또 걸으며 잊지 않도록 온 몸에 이 느낌을 각인한다.

처음으로 미국의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나름 참 많은 나라의 산과 바다를 여행했다고 자부했건만 미국 국립공원은 나의 자부심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나라들, 내가 걸었던 산, 내가 알고 있는 자연이 얼마나 작은 세계였는지를 실감했지만 가야 할 곳이 많아져서 더욱 부자가 된 시간이었다. 

던지니스 스핏 개념도
던지니스 스핏 개념도
올림픽국립공원 개념도
올림픽국립공원 개념도

올림픽국립공원 여행팁

1 시애틀의 10배 크기에 해당하는 미국 워싱턴주 올림픽국립공원은 하루에 돌아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주변 도시에서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것도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2 올림픽국립공원을 제대로 즐기려면 국립공원 안의 숲속에서 캠핑을 하거나 로지에서 숙박하기를 추천한다. 예약은 올림픽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이용한다.

3 올림픽국립공원 내에는 편의 시설이 거의 없으므로 가스와 먹거리 등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4 가을과 겨울에는 올림픽국립공원 내의 도로가 열렸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방문한다. 

5 올림픽국립공원과 올림픽반도의 볼거리, 숙박, 액티비티, 입장료 등은 다음의 2개 사이트를 참고한다.

https://wa100.dnr.wa.gov/olympic-peninsula

https://www.nps.gov/olym/index.htm

6 워싱턴주에 있는 트레일의 모든 정보는 다음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www.wt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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