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차가 뒤집어졌다, 그림 같은 해변도시 페티예에서

정갑수
  • 입력 2022.12.15 16: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열두 번째 이야기]

비가 내리는 날에 운전하다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비가 내리는 날에 운전하다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차는 안탈리아를 뒤로 하고 카쉬, 페티예, 보드룸, 밀레투스, 에페스, 이즈미르, 베르가마, 트로이 등 지중해 연안을 따라 달린다. 카쉬는 도시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근처에 더 유명한 곳이 두 개 있다. 먼저 찬란한 비잔틴 문명을 자랑했지만, 지진으로 한 순간에 바다 속에 잠겨버린 수중 도시 케코바Kekova 섬이 있다. 유람선이나 보트를 타고 코발트 블루의 지중해로 나가면 투명한 바다 밑으로 성벽과 계단, 거리 등을 희미하게 볼 수 있다.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고대 도시의 찬란했던 영화가 일렁인다. 가끔 물 위에 솟은 십자가를 볼 수 있는데, 바로 무덤이다. 가만히 앉아 바다 속 고요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 서글픈 감정도 들지만 깊은 평온도 느낀다. 

카쉬의 저녁 노을이 진다
카쉬의 저녁 노을이 진다

카쉬에서 페티예로 가는 도중 절벽이 나타나면서 그 사이에 숨어 있는 황금빛 모래사장이 시선을 끈다. 이곳은 클레오파트라가 해수욕을 하고 간 카푸타스Kaputas 해변이다. 옆에서 카푸타스 해변을 내려다보는 연인 중 한 명이 “여기서 수영을 하면 클레오파트라처럼 미인이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철이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곳은 유명한 여행 가이드 북인 론리 플래닛의 책 표지 사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나는 빨간색과 더불어 파란색을 좋아한다. 파란색은 전 세계적으로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색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푸른색 광물이나 염료는 고귀한 대접을 받았다. 파란색 중에서도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라 부르는 청금색이 있다. 바다색 마린에 왜 울트라까지 붙었을까? 그냥 진한 바다색이 아니라 울트라마린은 ‘바다 건너온 물감’이란 의미다. 옛날에 바다 건너온 물감은 당연히 비쌌다. 청금석이란 보석이 있는데, 흔히 ‘라피스 라줄리’라고 한다. 이 보석이 나오는 곳은 전 세계에서 단 한 군데, 아프가니스탄밖에 없다.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에 인접한 해발 7,000m급 힌두쿠시 산맥의 험한 산 속에서만 나온다고 한다. 중국 청나라 시절엔 너무나도 귀하여 황제와 황족들만 장식하던 보석이었다. 그리고 로마 교황은 로마 교황청 안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의 화가들로 하여금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옷에 청금석을 으깨어 만든 울트라마린 색을 쓰도록 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같은 그림들이다. 지중해 해변의 바닷물 색이 바로 울트라마린이다. 그런 바다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 곳이 터키 해변이니 부럽기 짝이 없다. 

클레오파트라가 해수욕을 했다는 카푸타스 해변
클레오파트라가 해수욕을 했다는 카푸타스 해변

그 가운데 페티예Fethyie 해변은 특히 ‘블루 라군’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페티예는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 장소 중 하나다. 지중해의 겨울은 우기라서 구름이 끼고 날씨가 우중충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기는 너무 아까웠다. 그런데 막상 패러글라이딩을 타보니 밑에서 보던 풍경과는 달리 하늘에서 바라보는 해변은 천상의 경치였다.

내리막서 전복됐으나 천운으로 무사

페티예를 떠나는 날 교통사고를 당했다. 날씨가 흐리고 비까지 와서 하루 더 호텔에서 묵으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사워를 하려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왔다. 이미 돈까지 지불했는데 마음이 심란했다.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고 에페스 유적지가 있는 셀축으로 향한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길은 꼬불꼬불하다.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줄이려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그 순간 차는 방향을 잃고 도로 옆의 산비탈을 박고 몇 번인가 데굴데굴 구른다. 잠깐 정신을 차려 보니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 차를 몰고 가던 튀르키예 운전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차에서 빠져 나왔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다친 곳은 없었다. 온갖 상념들이 순간 머리를 스친다.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다니…세계 일주는 물 건너 갔네…그래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으니 천운이라고 해야겠지…비만 안 내렸어도, 뜨거운 물만 나왔어도….’

현재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과거의 잘못된 행동들을 생각해낸다. 하지만 그건 현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회피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과거를 윤색하거나 달리 해석하더라도 현재를 바꿀 수 없는 법이다. 

견인차로 다시 페티예로 오는 동안 “인생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속삭인다.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래서 일단 차를 다 고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남의 차를 타고 이스탄불로 가기로 했다.

지중해의 대표적인 휴양지 페티예
지중해의 대표적인 휴양지 페티예

이스탄불 관광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이스탄불의 현재는 무수한 세월 동안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온 것이다. 사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즉, 현재의 이스탄불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기 전에도 위기는 여러 번 있었다. 그 전에 망해도 여러 번 망했다는 얘기다. 역사가들은 단지 현재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를 모자이크처럼 변색해서 그럴 듯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인간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다.

아야 소피아의 웅장한 내부
아야 소피아의 웅장한 내부

사원에서 박물관, 다시 모스크가 된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도시다.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보스포러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명으로 제우스와 이오의 사랑을 눈치 챈 헤라의 분노에서 시작한다. 제우스는 이오를 흰 암소로 바꾸어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하지만 헤라는 이오에게 쇠파리를 붙여서 잘 수도 쉴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파리를 피해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녀가 건너간 바다는 이오니아해라고 하는데, 이곳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다. 그리고 대륙을 가르는 좁은 물길을 건넜는데, 바로 이곳이 ‘소의 여울’이란 뜻의 보스포러스 해협이다.

이스탄불의 첫 번째 이름은 비잔티움이다. 해질 녘 황금빛의 소뿔 모양인 골든 혼Golden Horn은 비잔티움을 건설하게 만든 천혜의 항구다. 가끔 거친 풍랑이 있는 날에도 이곳만큼은 잔잔하다고 한다.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전의 다신교 대신 기독교를 사실상 로마의 국교로 인정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그 후 330년 그는 전통의 로마 대신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기고 제국의 새로운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후에 그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그는 새로운 로마를 세웠으며, 476년 서로마가 사라진 후에도 서양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당하여 동로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흔히 서양 역사에서 중세를 마감하고 근대가 시작되는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간주된다.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인해 로마의 역사는 끝났지만 동로마의 학문과 기술이 유럽으로 전해졌다. 교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야 소피아의 출입구 벽에 그려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아야 소피아의 출입구 벽에 그려진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아야 소피아 성당 앞의 히포드럼 광장에는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 카르낙 신전에는 두 개의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각각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전차 경기장에 옮겨졌다. 히포드럼 광장은 3세기 초에 건설된 원형 경기장이다. 처음에는 검투 경기장으로 사용되다 후에 10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전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영화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지진 피해로 광장이 축소되었지만, 그 옛날 말발굽 소리가 진동하는 듯하다. 실제로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이나 지중해 지역은 일본보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강력한 통치를 위해 세금을 인상했는데, 시민들의 반발을 사서 532년 폭동이 일어났다. 그는 무자비한 반란 진압 후에 불타버린 아야 소피아를 재건하도록 했다. 그가 재건한 세 번째 아야 소피아는 바실리카 양식에 거대한 돔을 얹어 네모난 세상 위에 천상을 완벽하게 재현한 성당이었다. 이로써 그는 기독교를 선택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더불어 로마를 대표하는 두 명의 황제가 됐으며 아야 소피아를 나가는 출입구 벽면에 새겨졌다. 

아야 소피아는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이었는데,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었다. 한때는 박물관으로 이용되다가 다시 모스크로 사용된다. 희미하게 남아 있는 성당의 흔적이 이슬람 사원의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은 지 1500년이 지났지만, 숱한 지진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로 하여금 그 옛날 어떻게 지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더불어 웅장한 규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다윗의 칼
다윗의 칼
6개의 첨탑으로 이뤄진 술탄 아흐멧 모스크
6개의 첨탑으로 이뤄진 술탄 아흐멧 모스크

54톤 금은으로 지어진 궁전

바로 건너편에 있는 술탄 아흐멧 모스크는 아야 소피아 성당에 대항하여 이슬람 세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사원 내부의 벽면이 청색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고 작은 돔이 층층이 겹쳐진 우아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돔은 직경 28m, 높이 43m의 거대한 크기로 시선을 압도한다. 당시 사원 건설을 지시한 황제가 금으로 만든 첨탑을 세우라고 했는데, 금이라는 말과 비슷한 6(Altin)으로 잘못 들어서 6개의 첨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첨탑의 개수는 권위를 상징하는데, 한 개는 개인이, 두 개는 왕족이, 세 개는 왕이 세운 첨탑이라고 한다. 여느 이슬람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입장하려면 복장에 주의해야 한다. 피부가 노출되는 옷은 피해야 하며, 여성은 반드시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

톱카프 궁전의 정원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톱카프 궁전의 정원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시내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궁전으로는 톱카프 궁전Topkapi Saray과 돌마바흐체Dolmabahce Saray 궁전이 있다. 톱카프 궁전은 대대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사용하던 궁전이다. 옛날 로마 제국의 전성기 못지않게 큰 영토를 다스렸던 제국의 궁전이라 규모도 크고 볼 것도 많지만 생각보다 단출하다는 느낌이었다. 궁전 안의 박물관에는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칼, 요한의 손, 무함마드의 수염 등이 진열되어 있다. 단순히 술탄이 살던 궁전 역할을 넘어 국가 정치를 논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어 많을 때는 5만 명 넘게 머물었다고 한다. 하렘에만 400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정원에서 바라본 보스포러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전망이 아름다웠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1853년 대리석으로 지은 궁전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든 유럽풍 건축물이다. 돌마바흐체란 ‘정원으로 가득 찬’이란 의미로 궁전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프랑스식 정원이 펼쳐진다. 또한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600m 가량 길게 뻗어 있어 ‘바다 위의 궁전’으로도 부른다. 장식에 사용한 금과 은이 각각 14톤과 40톤이었다고 하니 엄청 호화롭게 지어졌다. 술탄의 방 한가운데는 무게 4.5톤의 샹들리에가 장식되어 있는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튀르키예 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타 튀르크 초대 대통령이 집무실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1938년 이곳에서 사망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 궁전에 있는 모든 시계는 항상 그가 죽은 시각인 오전 9시 5분에 맞춰져 있다. 아타 튀르크는 ‘튀르키예의 아버지’란 뜻으로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과 같은 격이다. 

이스탄불의 지하 궁전이라고 부르는 지하 저수지
이스탄불의 지하 궁전이라고 부르는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지하 궁전은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궁전으로 불리지만, 실제 용도는 지하 저수지라고 한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이스탄불에는 안정적인 물 공급이 중요했다. 그래서 도시 곳곳에 물을 저장해 둘 필요가 있었는데, 예레바탄은 그 중 규모가 가장 컸을 뿐만 아니라 매우 아름다웠다. 저수지로 사용된 이곳이 지하 궁전이라 부르게 된 것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기둥 때문이다. 천장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은 모두 336개로 각지의 신전에서 운반해 온 것들이다. 저수지의 기둥 받침으로 사용되는 ‘메두사의 머리’ 조각 두 개가 있는데, 그 중 한 개가 거꾸로 놓인 채 발견된 이유는 메두사의 눈과 마주치면 돌이 되어 버린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

이스탄불은 매력적인 도시다. 사실 먹거리 하나만으로도 일주일은 거뜬히 관광할만하다. 그런데 이스탄불의 거리마다, 뒷골목의 담벼락 하나만으로도 얘깃거리가 많다. 그만큼 역사적 유적지가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스탄불의 교통은 세계에서 가장 혼잡하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길을 넓히지 못하는 이유가 땅을 파기만 하면 유적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겨울에 관광하기엔 별로다. 날씨가 춥지는 않지만 지중해성 기후 때문에 비가 오고 구름이 많이 끼기 때문이다. 초여름에 지중해 해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