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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로마에선 소매치기 조심하라더니…차 유리창이 박살 나 있었다

정갑수
  • 입력 2023.01.11 08:00
  • 수정 2023.01.1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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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열여섯 번째 이야기

포폴로 성당 내부에 있는 라파엘로와 카라바지오의 그림.
포폴로 성당 내부에 있는 라파엘로와 카라바지오의 그림.

로마 시내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건축물과 유적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짧은 일정 중 로마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는 없으므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일단 크게 성당, 미술관, 유적지, 광장, 기독교 성지로 섹터를 나누어 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각 섹터별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따라갔다. 그러면 유명한 곳들이 나온다. 나름의 팁이다.

로마 외곽 캠핑장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 노선은 사통팔달로 잘 되어 있지만 자주 안 와서 최소한 30분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다. 또한 관광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기 때문에 최소한 하루에 2~3만보 이상을 걸어야만 한다. 아무리 로마가 유명한 관광지라지만, 나이 든 사람으로서 호텔로 돌아가면 골병이 들 지경이다. 

로마 시내를 걷다보니 다른 도시와는 달리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가 눈에 많이 띈다. 앱만 깔면 되어 이용하기 편리했다. 관광지를 돌아다니는데 그 이상 좋을 수 없다. 운전도 쉽게 할 수 있으므로 지레 겁먹지 말고 로마 관광 필수 아이템을 경험해보길 권한다. 전기자전거보다 전동킥보드가 운전하기에 훨씬 더 쉽다.

로마에서 가장 큰 포폴로 광장에서 행사가 있다.
핀초 언덕에서 바라본 로마의 해질 무렵

피에타,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 느껴져

성 베드로 대성당은 세계 최대의 성당 건축물로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건물을 설계했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옛 성당이 세워진 후, 1506년에 시작해 120년에 걸친 재건축을 통해 완공됐다. 그러니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이 때문에 면죄부를 팔아서 자금을 조달하려다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했고, 개신교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당 안에 있는 예술품과 장식들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할 만한 것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박물관에 입장하면 먼저 피나코테카라는 회화관을 구경하고 솔방울 정원, 팔각정원에 있는 라오콘 군상, 뮤즈의 방에 있는 토르소 등 여러 방들을 거친다. 도서관 벽에 그려져 있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현대 미술관,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보고 나와서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한다.

대성당의 광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의자들이 있었다. 원래 교황은 죽을 때까지 종신직이었는데, 2013년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 이유로 퇴위한 이래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맡고 있다. 그런데 로마에 머무르는 동안 베네딕토 16세가 서거하면서 1월 5일 장례 미사가 열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장례 미사 날,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선 줄을 6시간 서야만 했다. 

바르벨리니 고전 미술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작품 '터번을 쓴 여인'.
바르벨리니 고전 미술관에 있는 귀도 레니의 작품 '터번을 쓴 여인'.

성당 입구 오른쪽에 미켈란젤로가 만든 피에타 조각상이 있다. 원래 피에타라는 뜻은 ‘연민, 자비’를 의미한다. 미켈란젤로는 생전 피에타 4점을 만들었는데, 바티칸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를 제외하곤 모두 미완성 작품이었다. 바티칸에 있는 피에타는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만든 것으로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 속에서 두 무릎과 오른팔로 예수의 주검을 편안히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머지 3점의 피에타 조각상은 고통스런 에너지가 도드라진다. 아마 미켈란젤로에게 조각이란 대리석이라는 돌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육체를 드러내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형태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실존적 고통과 더불어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에너지가 더 생생하게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로마의 번성기를 보여주는 포로 로마노
로마의 번성기를 보여주는 포로 로마노

압도적인 ‘아테네 학당’과 ‘천지창조’

라오콘 군상은 1세기 중엽에 제작된 조각상이다. 사제 라오콘이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의 목마 계략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라오콘과 두 아들이 큰 뱀에 질식당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신에게 대항하다가 비참하게 죽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대 조각가들이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아테네 학당’은 1510년 라파엘로가 도서관 벽에 그린 그림이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학자들을 그리고 있는데, 작품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을 보자. 붉은 옷을 입은 이는 플라톤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로 그려져 있으며, 하늘을 가리키는 손은 이상주의를 의미한다. 그 옆에 푸른 옷을 입은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로 땅을 향한 손은 현실주의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 조로아스터 등 54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산만하지 않고 조화가 뛰어나다. 높고 둥근 천장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웅장함과 균형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걸작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예배당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4년 5개월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창세기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크게 아홉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시간 순서에 따라 그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가운데에 있는 ‘아담의 창조’로서 닿을 듯 말 듯한 손끝에서 느껴지는 신비감과 생명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제대 뒤쪽에 있는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린 뒤 22년 만에 로마로 다시 돌아와 그린 것이다. 그림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천국과 연옥 그리고 지옥을 그린 것이다. 가운데 위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391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오른쪽 아래를 보면 손에 들려 있는 인간의 가죽이 있는데, 이는 피부가 벗겨지는 형벌을 받으며 순교한 바르톨로메오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얼굴은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한다. 가운데 아래쪽은 튜바를 부는 천사들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그 왼쪽 옆에는 두 천사가 두 명의 흑인을 지옥으로부터 끌어올리고 있는데, 당시 천국에는 백인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사회적인 통념을 깨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 그림은 모든 인물이 완전 나체였는데, 나중에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교회의 압력으로 그의 제자가 나체를 모두 살짝 가렸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

4대 성당을 돌아보다

로마에는 무수히 많은 성당이 있는데, 그중 네 개의 성당은 꼭 들러보아야 한다. 먼저 ‘싼 지오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성 베드로 성당과 같이 로마가 아닌 바티칸 시국의 일부다. 성당 옆의 라테란 궁은 14세기 초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천 년간 교황이 머무르던 곳이다. 이 성당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로마에서 가장 큰 것이다.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의 내부 모습,화려하기 그지없다

다음으로 ‘산타 마리아 마죠레 성당’이 있는데, 성 베드로 성당, 라테라노 대성당, 성 밖의 성 바오로 성당과 더불어 로마의 4대 대주교좌 성당이다. 이곳도 바티칸 시국의 영역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금빛의 천장화로 유명하다. 

‘빈콜리 성 베드로 성당’은 성 베드로가 로마와 예루살렘에서 감금되었을 때 그의 몸을 묶었던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모세 조각상으로도 유명하다. ‘성 밖의 성 바오로 성당’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바오로가 순교한 곳에 지어진 성당인데, 그가 순교한 장소가 당시 로마 성 밖에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이노센티우스 10세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이노센티우스 10세

그 다음으로 구경해야 할 곳은 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궁전을 개조한 미술관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바티칸 미술관, 보르게세 미술관, 바르벨리니 고전 박물관, 카피톨리니 미술관,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 브라스키 궁전의 무세오 디 로마 미술관 등이 있다. 대부분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시기까지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라파엘로, 카라바지오, 벨라스케스, 귀도 레니, 카라치, 베르니니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감동을 불러온다.

로마의 기독교는 역사가 깊다. 기독교는 유대교 내의 한 분파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됐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기독교인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때문에 로마에는 탄압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최초로 기독교를 박해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네로 황제였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목조 건물로 이루어졌던 로마가 대부분 불탄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네로는 불타는 로마를 보며 노래를 부르지도, 자작시를 읊지도 않았다. 하지만 대화재가 네로의 방화로 인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진다. 이에 네로는 자신에 관한 소문을 잠재울 희생양을 찾게 되었다. 네로는 방화가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 

트라야누스 원주
트라야누스 원주

네로 황제 이후에도 기독교를 박해한 황제들은 많았다. 이러한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와 성지 순례지가 ‘카타콤베’다. 본래 초기 기독교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로, 폐광된 채석장이나 지하 가족묘지로 조성됐다. 로마법상 묘지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에 카타콤베는 중요한 피난처이자 예배당이 되었다. 카타콤베의 갱도를 모두 합치면 900km가 넘지만 현재는 그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개방된 곳은 산 칼리스토와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 등 6곳이다.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는 가장 크고 중요한 곳으로 이곳에는 50명의 순교자, 16명의 교황을 포함해 10만 명의 사람들이 매장되어 있다. 많은 교황의 유해가 묻혀있어 ‘교황 납골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산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는 로마 제국의 장교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순교한 성 세바스티아노의 유해를 보관한 곳이다. 이곳에는 세바스티아노를 처형하기 위해 사용했던 화살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도미네 쿠오바디스 교회는 초대 교황이자 십이 사도 중 한 명인 베드로를 기념하여 세워진 교회다. 로마 대화재 사건으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학살하자 베드로는 로마에서 도망친다. 이때 로마를 향해 걸어오는 예수를 만난다. 베드로가 당황해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묻자 예수는 ‘네가 나의 양들을 버리고 도망치므로 너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노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후 베드로는 크게 반성하고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순교한다.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도미네 쿠오바디스 교회로서 내부에는 예수의 발자국 복제품이 있다. 바로 옆에서 차박을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찾아갔는데, 규모나 내부는 허름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인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느껴진다. 

트레비 분수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트레비 분수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170억 벌어들인 분수

로마에는 광장이 많은데 포폴로 광장, 나보나 광장, 스페인 광장, 베네치아 광장, 캄피톨리오 광장, 바르벨리니 광장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하고 큰 광장은 포폴로 광장으로 ‘민중의 광장’이란 뜻인데, 광장 한복판에는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하고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이 광장 서쪽의 핀초 언덕을 올라가면 로마의 해질 무렵 환상적인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 외에 구경할만한 곳은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뜨라스 떼베레 등이 있다.

판테온 신전
판테온 신전

미켈란젤로도 감탄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돔 건축물인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건설되었지만 화재로 2세기에 재건된 건축물이다. 판테온이란 이름은 ‘모든 신’이란 뜻으로 서양 건축 역사에서 불후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힌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무덤으로 사용되었는데, 이탈리아의 유명한 화가였던 라파엘로와 카라치가 묻혀 있으며, 왕과 황제의 무덤도 있다. 판테온은 직사각형의 현관과 원형의 실내로 구분된다. 머리 위로는 지름이 43.3m, 높이 22m나 되는 거대한 돔이 두꺼운 벽을 둥글게 감싸고 있다. 아파트로 따지면 대략 14층 높이에 해당한다. 돔의 한가운데에는 둥근 모양의 천장이 있는데, 우주를 상징하는 돔과 짝을 이뤄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천장으로는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입구의 문을 닫으면 내부의 더워진 공기가 위로 상승해 천장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 옛날 판테온에 울리던 로마 황제의 연설이 오늘날 관광객들의 감탄 소리로 바뀌었을 뿐, 1800년이 지난 지금도 경외심을 갖게 만든다. 

트레비 분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로서 뒤돌아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동전을 던지는 횟수에 따라 이루어지는 소원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 번이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으며, 두 번이면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고, 세 번이면 반대로 연인과 이별할 수 있다고 한다. 단순한 전설이지만 누구나 한 번은 시도한다. 그래서인지 2016년 한 해 동안 트레비 분수에 던져진 동전을 수거하여 집계해보니 무려 한화 170억 원이라는 금액이 나왔다고 한다.

콜로세움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로마를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전쟁 포로인 검투사(글라디에이터)와 맹수가 서로 죽고 죽이는 잔인한 경기가 벌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2000년 세월 동안 지진과 전쟁으로 많은 풍파를 겪었지만 아직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고대 로마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약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바깥둘레 527m, 높이 57m에 이른다.

하드리아누스 개선문을 본따 파리의 개선문이 만들어졌다

소매치기가 차량 유리창을 박살냈다

로마의 열흘은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아침 일찍 시내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물론 힘든 만큼 그에 따른 보상과 재미도 있었다. 성당, 미술관, 관광지를 다니면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로마 그 자체가 역사라는 점을, 유럽의 역사가 로마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의 로마는 해가 너무 짧았다. 오후 5시면 해가 지기 시작해서 차박지로 돌아가기 바빴다. 미술관에서 유명한 작품을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가슴이 벅차서 어두운 밤길도, 쌀쌀한 날씨도 두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차박지로 돌아오니 차의 유리문이 박살나 있었다. 로마에서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오토 캠핑장에 들어가긴 싫었다. 단지 하루를 자기 위해서 캠핑장에 차를 세워놓기에는 돈이 너무 아까웠다. 유리문은 깨졌지만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은 없었다. 아마 도난경보기가 작동해서 인듯하다. 로마의 향기와 악취를 느끼며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하루였다. 물론 다음날부터 캠핑장에 차를 주차시켰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정갑수

연세대산악회 OB. 악우회. 핵물리학 박사. 을지대 방사선과 교수 역임. 저서 <물리법칙으로 이루어진 세상>, <브레인 사이언스>,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 <방사능 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에게>,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암벽등반의 세계>, <암벽등반과 스포츠클라이밍>, <겨울산행과 빙벽등반>, <스포츠클라이밍의 거의 모든 것> 등.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탈레이사가르, 트랑고타워 등반.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6,960m),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m) 등정. 대한민국 체육훈장 대한체육회 연구상 수상.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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