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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전라도의 숨은 명산 비금도 선왕산] 죽순처럼 도열한 기암괴석 ‘작은 공룡능선’

김희순 광주샛별산악회 산행 고문
  • 입력 2023.02.28 07:35
  • 수정 2023.03.06 09:47
  • 사진(제공) : 김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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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갯벌에서 나는 ‘섬초’와 ‘천일염’의 고장

선왕산의 백미, 하누넘으로 내려가는 해안풍경
선왕산의 백미, 하누넘으로 내려가는 해안풍경

신안군 비금도는 목포항에서 54km 거리에 있는 유인도 3개와 무인도 79개로 이루어진 섬이다. 우리나라 섬 중 면적 순위로는 19번째로 여의도의 5.5배 크기다. 현재의 모습은 대대적인 간척지 사업으로 만들어졌다. 서쪽 해안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해안 남동쪽으로 그림산(226m), 북서쪽으로 선왕산(255m)이 길게 뻗어 있다. 그림산은 단일 화강암 봉으로 이루어진 바위 전시장이다. 선왕산은 노년기 산으로 다양한 암질의 모양이 인상적이다. 죽순처럼 도열한 기암괴석들은 설악산 공룡능선을 방불케 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비금도에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13개나 있다. 특히 4km에 달하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자동차로 달려도 빠지지 않을 만큼 모래가 곱고 단단하다. 하트해변으로 불리는 하누넘해수욕장은 연인들이 가장 가고 싶은 섬 여행지로 꼽힌다.

노지에서 키우는 재래종 '섬초',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노지에서 키우는 재래종 시금치 '섬초', 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돈이 날아다니는 부자 섬

비금도 주민들이 자랑하는 세 가지는 천일염, 섬초, 이세돌 바둑기사라고 한다. 소금은 임금님의 피란길에도 빠지지 않았던 식품이다. 조상들은 오랫동안 ‘자염煮鹽’이란 방식을 통해 소금을 얻었다. 지역에 따라 화염, 육염, 전오염으로도 부른다. 자염은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끓여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연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었다. 

아시아에서 천일염 제법은 300년 역사가 있는 대만 칠고염전七股鹽田이 유명하다. 대만의 제염법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1907년 인천 주안염전에서 최초의 천일염이 생산되었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끌어 가두고 뜨거운 햇볕과 바람으로 말려낸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 당시에는 획기적인 기술이었다. 

비금도는 우리나라 남쪽에서 천일염을 가장 먼저 생산한 곳이다. 광복 이후 비금도 출신 염업 기술자인 손봉훈, 박삼만씨 주도로 수림리 앞바다에 갯벌을 간척하고 천일염전을 조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천일염 생산 방식은 신안 인근 지역과 완도, 부안, 고창까지 퍼져 나갔고 우리나라 염전 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남도 최초로 천일염을 생산했던 대동염전은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안 지역의 천일염이 프랑스의 게랑드 소금을 능가하는 평가를 받는 것은 미네랄이 풍부한 갯벌에 있다. 청정한 갯벌에서 생산된 소금은 오묘한 맛이 난다. 소금은 보통 3월 말에서 10월까지 생산되는데 5, 6월에 생산되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비금도 가산항에 도착하면 수리차를 돌리는 염부 조형물이 제일 먼저 보인다. 수리차는 물레방아에 발판을 설치해 밟으면 바퀴가 돌 때마다 물이 올라오는 기구다. 그 옆으로 비금도를 상징하는 독수리가 있다. 남동에서 북서로 산맥이 지나는 비금도는 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비금도飛禽島라 불린다. 우스갯소리로 “비금도는 돈 金이 날아다닌다”고 부를 정도로 부자 섬이다.

비금도의 논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한겨울에도 푸릇푸릇하다. 이 비옥한 논밭에 자라는 특별한 시금치가 있다. 주인공은 섬초라 불리는 재래종 시금치다. 섬초는 노지에서만 키우는 귀한 손님이다. 수분이 적고 잎이 두꺼운 것이 섬초의 특징이다. 이는 섬초가 바닷가 차가운 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섬초는 갯벌 게르마늄 함량이 높고 뿌리는 붉은색을 띤다. 맛이 단 덕분에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비금도의 귀한 손님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1996년 고유상표로 출원 등록됐다. 섬초는 추수가 끝난 늦가을에 파종하고 11월부터 3월까지 수확하는 비금도의 대표적인 효자상품이다.

투구봉, 목교를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다.
투구봉, 목교를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다.

남성적인 그림산, 여성적인 선왕산

배 시간에 맞추어 가산선착장에 공영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10분간 이동하면 선왕산 입구가 있는 상암주차장이다. 입구엔 거대한 산행 안내도를 비롯한 쉼터와 안전시설, 이정표가 잘 갖추어져 있다. 능선에 올라서면 염전과 섬, 바다 풍경이 연속된다. 바위가 많고 오르막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안전시설이 잘 보강되어 있다. 한반도 지도 바위 조망 데크에 들러 저 멀리 바다와 투구봉까지 두루 조망할 수 있다.

그림산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가는 길은 멋진 경치와 기묘한 바위의 연속이다. 200m급 산이지만 조망은 2,000m급 산에 버금간다. 그림산의 하이라이트는 투구봉(210m)이다. 투구봉은 인수봉 빼 닮은 단일 암봉으로 아치 목교를 건너지 않고는 접근조차 힘든 벼랑이다. 아찔한 봉우리에는 무명 바위가 있다. 나 혼자 ‘투구봉 복 바위’라고 이름을 붙여본다.

‘한산’ 갈림길 안부를 지나면서부터 선왕산에 들어선다. 지나간 세월을 증명하듯 푸석푸석하고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있다. 길바닥에는 크고 작은 잡석이 많다. 바람이 통하는 움푹 파인 골짜기엔 세찬 바닷바람을 막는 돌담인 ‘우실’이 있다. 바람은 막고 사람은 지날 수 있도록 엇갈려 쌓여 있다. 긴 것은 100m가 넘는다. 우실은 근대 문화유산 제283호로 지정됐다. 

그림산 정상, 병풍처럼 펼쳐진 섬들의 군무가 장관이다.
그림산 정상, 병풍처럼 펼쳐진 섬들의 군무가 장관이다.

작고 기운찬 ‘떡메산’도 숨은 명소

선왕산 정상은 통신탑과 헬기착륙장이 있을 정도로 넓다. 탁 트인 서쪽 먼바다에 흑산도 칠락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우이도 상산봉, 북쪽으로 자은도 두봉산까지 가슴 후련해지는 조망이 펼쳐진다. 하산길은 하누넘해수욕장을 내려다보면서 완만하게 내려간다. 한 폭의 그림이다.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 같은 감동이 느껴진다. 

하누넘해수욕장은 하트해변으로 불린다. 이곳엔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 있다. 오래전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간 ‘하누’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너미’는 해안에서 변함없이 그가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누넘은 해가 넘어간다는 뜻도 있다. 구불구불한 포장도로를 1km 올라가면 하트 모양의 해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하트 전망대’가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대동염전 뒤에 있는 덕산(81.1m)도 추천한다. 주민들은 ‘떡메산’이라 부른다. 30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말 탄 장군의 전설이 전해진다. 바둑바위, 게바위, 삿갓바위, 오리바위 등 바위들이 기묘하다. 떡메산엔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고 여겨진다. 바둑천재 이세돌씨가 이 마을 출신이다. 떡메산 건너편에 그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어 함께 구경하기 좋다.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는 하누넘해수욕장.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는 하누넘해수욕장.

산행길잡이

상암마을-그림산-투구봉-죽치우실-전망대-선왕산-하누넘해수욕장-하트전망대(7.4km 4시간)

동아지도 제공

교통 및 숙박(지역번호 061)

비금도는 목포항에서 1시간 40분, 암태도 남강선착장에서 40분 거리다.

암태도 남강선착장(271-9917, 010-2554-6600)에서 07:00, 09:00, 14:00, 16:00 출발하고, 가산선착장에서는 08:00 10:00, 15:00, 17:00 출항한다. 운임료는 편도 6,000원. 배 시간에 맞추어 가산선착장에서 대기하는 공영버스는 상암마을까지 1,000원 한다. 하산지점인 하누넘해수욕장에서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가산선착장까지 개인택시(275-5454)로 2만5,000원이다. 단체 관광버스는 예약(010-4631-5454)하는 것이 좋다. 섬의 특성상 기상에 따라 일정이 바뀔 수 있으니 출발 전에 반드시 선사에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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