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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정무한] 얼음 장벽 너머 피안을 보다

김윤세 본지 객원 기자, 인산가 회장
  • 입력 2023.01.30 10:58
  • 사진(제공) : 김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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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 딴산 빙벽등반

빙벽등반 중인 필자.
빙벽등반 중인 필자.

지난 12월에는 3일의 100차 산행을 필두로 매주 토요일, 일요일마다 ‘힐링 산행’을 이어가 18일까지 모두 6차례 산에 올랐고 2022년 한 해 동안 총 105회의 산행을 기록했다. 

이번 겨울은 12월 들어 계속 강추위가 이어져 설악산 등 북쪽의 산뿐 아니라 남쪽의 대표적 산인 지리산의 불일폭포까지 얼어붙어 아름다운 빙벽이 그 위용을 드러냈다.

몇 년 전에도 혹한의 추위가 몰려와 설악산의 소승폭포를 비롯해 폭포마다 빙벽을 이루고, 강원도 원주의 판대 빙장, 화천의 딴산 빙장 등 인공 빙벽장에도 100여 m의 높이를 자랑하는 거대한 얼음벽이 장관을 연출한 바 있다. 

그때 김용기 암벽등반학교 교장의 주관으로 열린 빙벽등반에 참가해 빙벽을 오른 적이 있었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중력을 거스르며 가파르게 솟은 빙벽을 오른다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혹한기에 한두 달 동안 매주 토·일요일에만 등반할 수 있다는 점이 늘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 

속절없이 돌진해 오는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

겨울을 밀치며 다가오는 봄이 반가운 게 사실이지만 빙벽이 녹으면서 물이 줄줄 흐르고 소멸해 가는 얼음벽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늘 새롭다.

빙벽등반에 나선 그해 1월 중순의 어느 날, 등반팀은 강원도 화천의 딴산 빙장에 도착해 머리에 헬멧을 쓰고, 쇠가시 돋친 크램폰을 발에 착용한 뒤 숫돌에 잘 갈아서 뾰족한 끝이 날카로운 아이스바일을 양손에 들고 출발 신호와 동시에 빙벽으로 다가갔다. 

먼저 출발한 등반가가 초보자이거나 기술적으로 서툴 경우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들이 투하된 폭탄처럼 이제 막 출발하는 등반가에게 속절없이 날아내려 온다. 가끔 얼굴이 찢어져 피를 흘리기도 하고 어깨뼈 골절상을 입는 일도 있지만 총알처럼 내리꽂히는 얼음덩어리를 피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오로지 운이 좋아서 얼음덩어리에 맞지 않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뚜벅뚜벅 걸어서 얼음벽 앞에 다가서니 눈앞의 산은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산이요, 하늘 높이 솟은 얼음으로 이뤄진 벽이 마치 철벽처럼 앞을 가로막는다.

만법은 본래 허공 속의 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어찌 부질없이 바닷가의 모래를 세고 있는가?/다만 그냥 철벽 은산을 뚫고 나아가라/그걸 어떻게 뚫고 나가느냐고 묻지 말고…

萬法由來空裏花만법유래공리화

豈宜徒算海中沙기의도산해중사

但從鐵壁銀山透단종철벽은산투

不問如何又若何불문여하우약하

   

옛적의 선사들은 생사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의 자재로운 삶을 완성하기 위해 목숨 걸고 무섭게 수행에 임해 고해苦海를 건너 피안彼岸에 당도하기 직전의 마지막 난관을 그대로 직진해 돌파한 뒤 마침내 피안의 세계에 당도한다.

강원도 화천의 딴산 빙벽 등반.
강원도 화천의 딴산 빙벽 등반.

길 없는 곳에 길이 있다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파른 바위벽을 기어올라 넘어가는가 하면 시퍼런 유리처럼 빛나는 거대한 빙벽을, 사력을 다해 오르기도 한다. 무엇이 두려워 주저하고 망설일 것인가? 왜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절망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인가?

온갖 난관을 해결하고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바위벽과 은산 철벽을 잘 살펴보노라면 숨은 길이 드러나고 막힌 길이 열리게 된다. 그것은 과감하게 도전해 그곳에 가 본 사람만 아는 법이다. 

영하 10℃가 넘는 추위인데도 빙벽을 오를 때에는 얼굴을 적시는 땀뿐만 아니라 속옷이 푹 젖을 정도로 숨차고 힘겹고 고됨의 연속이지만 등반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아이스 바일을 움켜쥐고 눈을 크게 뜨고 목표를 향한 도전의 힘찬 걸음을 내디딘다. 마치 피안의 세계로 가기 위한 구도자의 구도 행각처럼….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 무렵,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비장하게 등반하던 등반가들은 대여섯 시간의 톱로핑 방식 빙벽등반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구도의 여정을 시작하는 구도자처럼 귀로歸路에 오른다. 이날 등반한 얼음벽은 ‘겨울 선녀’와의 만남으로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겨울 선녀

얼마나 기쁜 일이냐, 그대를 다시 만난 것은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빛을 머금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서는 겨울 선녀

 

험난하기 그지없는 수직의 절벽을 

목숨 걸고 온 힘을 다해 오르지 않는,

그저 그냥 땅을 딛고 선 세상 사람들과는 

만나지도,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

차디찬 성품을 지닌 학처럼 고고한 여인

 

다만 만난을 무릅쓰고 

험준한 인생길의 수많은 고개를 넘고 또 넘어서 

마치 성지를 찾아오듯 찾아온 순례자가

엄동설한의 굳은 얼음벽을 녹이려는

그런 열정으로 다가서면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일지라도

햇살 머금은 따스한 미소로 

두 팔을 활짝 벌려 반갑게 맞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를 나눌수록

순례자와 선녀는 혼연일체로 하나가 되고

이윽고 한 마음이 되어

함께 길을 떠난다 

 

다시 열린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손에 손을 잡고 길을 떠난다

인생 여정의 멀고 먼 길을 함께 떠난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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