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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지도 위를 걷다] 영남알프스와 동해가 발아래 파노라마처럼

강윤성
  • 입력 2023.03.21 07:20
  • 수정 2023.03.2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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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대운산

철쭉군락지에서 대운산 가는 길에 아름드리 노송이 발길을 잡아챈다. 절벽 끝에 서자 울산에서 부산에 이르는 동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철쭉군락지에서 대운산 가는 길에 아름드리 노송이 발길을 잡아챈다. 절벽 끝에 서자 울산에서 부산에 이르는 동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울산에서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산이 어디일까요?” 

“글쎄요. 간절곶이 있는 곳이겠죠. 조망이 멋질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동해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뜬다는 간절곶이 내려다보이는 대운산입니다.”

대운산大雲山(742.6m)은 울산과 부산, 양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서 깊은 산이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산세가 크고 계곡이 깊다. 하나의 산에 대운산, 상대봉(668m), 불광산(659m), 시명산(628.9m), 삼각산(416.4m) 등의 봉우리가 솟구쳐 있다. 게다가 대운산은 제1봉, 제2봉, 주봉으로 나뉜다. 이름 있는 봉우리만 얼추 헤아려도 10여 개에 이른다. 그리고 대운산자연휴양림, 울산수목원,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이 들어설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다.

대운산 제2봉 오름길에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는 내원암이 내려다보인다. 말년을 도통골에서 보냈다는 원효대사 또한 이 능선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왼쪽 산이 대운산 정상이다.
대운산 제2봉 오름길에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는 내원암이 내려다보인다. 말년을 도통골에서 보냈다는 원효대사 또한 이 능선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왼쪽 산이 대운산 정상이다.

대운산의 원래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 불광산佛光山으로 기록돼 있다. 현재는 대운산이 주산으로 불광산과 마주보며 쌍봉을 이룬다. 마치 쌍둥이 남매가 바다로 떠난 부모님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듯한 모습이다. 동해를 바라보는 산이다.

동해에서 제일 먼저 해 뜨는 간절곶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찾은 대운산 들머리인 상대마을의 대형 주차장은 대도시 근교의 산답게 이미 만차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산임에도 차에서 내린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그 대열에 끼고자 서둘러 내린다.

대운산 주능선에서 바라본 동해.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간절곶과 고리원자력발전소가 한눈에 보인다.
대운산 주능선에서 바라본 동해. 해가 제일 먼저 뜬다는 간절곶과 고리원자력발전소가 한눈에 보인다.

산행은 주차장 바로 앞 대운교를 건너면서 바로 시작한다. 인공폭포인 벽천폭포를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등산로는 내원암, 대운산 제2봉 능선길, 대운천(울산수목원,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 코스로 나뉜다.

애초 계획은 치유의 숲이 있는 도통골로 대운산을 오른 후 불광산과 삼각산을 거쳐 능선을 타고 원점회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차장 앞 안내판과 대운교 너머 들머리 입구 안내판에 내원암 쪽과 능선 종주코스를 제외하고는 등산로를 모두 폐쇄한 것으로 표기해 놨다. 순간 당황한다. 전날에 치유의 숲에 전화를 걸어 산행 가능하다는 확인도 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옛말대로 신중을 기하기 위해 여럿이 무리를 지어 가는 사람들 중 한 명에게 길을 물었다.

불광산 가는 길에 집채 만 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다. 얼마나 센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불광산 가는 길에 집채 만 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다. 얼마나 센 바람이 불었던 것일까.

“대운산 산행은 어느 쪽 코스가 좋나요?”

“계곡을 따라 쭉 올라가면 사진 찍을 만한 곳들이 많아요.”

일단 계곡 코스에 구미가 당겼다. 이어 산에서 내려서는 등산인 부부에게 한 번 더 물었다.

“혹시 대운산 많이 다니세요? 어느 코스가 멋진가요?”

“울산이 집이라 주말마다 올라요. 이곳에서 능선을 타고 오르는 코스가 제일 멋져요. 내원암도 보이고 2봉도 둘러갈 수 있거든요.”

토박이 부부의 조언은 애초 계획한 코스와 달랐다. 내원암을 조망하는 것은 좋았지만 2봉을 하나 더 둘러간다는 것은 산행 시간 초과를 의미한다. 고민에 빠졌다. 아내는 얼른 결정하라는 듯이 필자의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속는 셈 치고 가봅시다. 능선으로 2봉을 오른 후 대운산, 불광산, 삼각산을 거쳐 계곡으로 하산하죠.”

“그럼 하산이 늦지 않게 빨리 가요.”

대운산 최고의 전망대인 제2봉 정상. 멀리 영남알프스 가지산에서 동해까지 펼쳐진다.
대운산 최고의 전망대인 제2봉 정상. 멀리 영남알프스 가지산에서 동해까지 펼쳐진다.

영남 제일의 명당 내원암

들머리에서 올라탄 지릉은 내원골과 도통골을 가르며 대운산 2봉으로 향한다. 낙엽이 쌓인 벌거벗은 작은 산은 황량하고 볼품없다. 골짜기에서는 휘몰아친 바람이 쉴 새 없이 능선을 휩쓸고 간다. 눈 돌려볼 만한 데도 딱히 없어 몸을 움츠리고 묵묵히 오른다. 여러 사념들을 들춰내며 내면 깊숙이 빠져든다. 한참을 그렇게 걷자 멋들어진 송림이 반겨줬고, 눈앞에 대운산 2봉을 병풍 삼은 내원암이 산비탈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삼층석탑을 비롯해서 여러 채의 전각이 터를 잡고 있다. 

내원암 창건 당시 고봉선사는 이 자리를 ‘영남 제일의 명당’이라 극찬했다고 한다. 대운산의 여러 봉우리에 둘러싸인 내원암은 한눈에 봐도 명당임에 틀림없다. 말년을 도통골에서 보냈다는 원효 또한 이 능선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그때 마침 서너 명의 방문객들이 내원암 초입에 들어서며 팽나무 주변을 서성거린다. 내원암을 내려다보던 아내의 호기로운 시선 또한 그곳에 꽂힌다.

“아마도 저 커다란 팽나무가 이름값 좀 할 것 같네요. 키도 크지만 뿜어내는 기가 만만치 않아요.”

내원암을 수호하는 수령 500년 된 팽나무 보호수다. 둘레가 6m, 높이가 22m에 달하는 고목이다. 꼿꼿하게 선 노스님의 고고한 자태를 닮았다.

영남 제일의 명당인 내원암 전경. 원효대사의 일화가 전해지는 곳으로 불심이 가득한 곳이다. 예전에는 산 이름도 대운산이 아닌 불광산이었다.
영남 제일의 명당인 내원암 전경. 원효대사의 일화가 전해지는 곳으로 불심이 가득한 곳이다. 예전에는 산 이름도 대운산이 아닌 불광산이었다.

내원암內院庵 자리는 본사였던 대원사라는 큰 절이 있던 터였다고 한다. 내원암은 신라시대에 대원사의 아홉 암자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장안사의 암자다. 장안사는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된 신라시대의 고찰로 673년(신라 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이렇듯 두 개의 큰 사찰을 거느리고 있던 까닭에 이 산이 불광산이라 불리지 않았나 싶다.

능선은 치유의 숲이 들어선 도통골과 내원암이 자리한 내원골을 오가는 고개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치솟기 시작한다. 더욱 가팔라진 능선을 치고 올라 거대한 석문을 통과하자  제2봉(670m) 정상이다.

동해가 한눈에 보이는 대운산 제2봉

동쪽을 향해 길쭉하게 설치된 데크에 올라서자 조망이 사방팔방으로 트인다. 대운산 최고의 전망대다. 북서쪽으로 낙동정맥이 빚은 영남알프스의 산줄기가 장대하다. 이웃한 원효산과 천성산 너머로 취서산, 신불산, 운문산, 가지산, 고헌산 등이 솟구쳐 있다. 동쪽으로는 동해가 거침없이 내려다보인다. 울산 국가산업단지와 현대중공업 조선소 등의 거대 시설들이 꽉 들어차 있고, 고리 원자력 발전소의 원통형 건물도 보인다. 그 사이에는 간절곶이 마치 자라가 목을 빼고 있는 것처럼 뾰족한 땅이 동해를 향해 돌출돼 있다.

“얼마나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으면 간절곶일까요. 저희도 소원 하나씩 빌고 가요.”

간절곶은 동해안 최고의 일출 여행지로 꼽히는 곳이다.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정동진보다 5분, 호미곶보다 1분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간절곶이란 이름은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먼 바다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지만 ‘간절’함과 발음이 같은 걸 보면 그 이름의 유래가 절묘하다.

1.7km 거리의 대운산으로 향한다. 완만한 능선엔 곳곳에 데크로드가 설치돼 산행이 수월하다. 상대봉(668m) 갈림길에 도착하니 군락을 이룬 억새가 반겨준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들이 햇빛을 머금어 은빛 물결을 이룬다. 하지만 이곳은 상대봉 철쭉군락지로 더 유명한 곳이다. 매년 5월이면 이 주변은 철쭉이 만개하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햇빛을 머금은 은빛 억새가 펼쳐지는 상대봉 철쭉군락지. 매년 5월이면 이 주변은 철쭉이 만개해 장관을 연출한다.
햇빛을 머금은 은빛 억새가 펼쳐지는 상대봉 철쭉군락지. 매년 5월이면 이 주변은 철쭉이 만개해 장관을 연출한다.

철쭉나무 터널을 내려간다. 금세 절벽 위에 선 거대한 노송이 발길을 잡아챈다. 노송의 가지가 마치 손가락처럼 펼쳐져 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 너머 벼랑에 서자 제2봉에서 봤던 동해가 그대로 펼쳐진다. 이내 대운산 정상에 올라선다. 커다란 데크 한가운데 정상석이 놓여 있다. 조망이 잡목에 가리지만 휴식을 취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곳이다.

불광산을 향해 내려선다. 좁은 능선에 집채 만 한 나무가 뿌리째 뽑혀 있다. 수백 가닥의 뿌리가 흙을 움켜쥔 모습이 실로 참혹하다. 얼마나 세찬 바람이 불었을까. 또한 비탈진 등산로에는 낙엽이 무릎까지 수북이 쌓여 있다. 아내가 조심스레 내려서며 말을 건넨다.

“발밑이 불안해서 빨리 갈 수 없어요. 미끄러질 것만 같아요.”

안부를 지날 무렵 부녀로 보이는 등산객이 지나친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얼굴이 찬바람에 노출돼 홍시처럼 새빨갛다.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하산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든다. 산행 중 만난 이가 단 4명에 불과하다. 대운산 초입의 그 많던 인파는 대부분 수목원과 치유의 숲만 찾은 모양이다.

굴참나무 명품숲을 걷다

남서쪽으로 향하던 완만한 능선길은 동남쪽으로 꺾이면서 불광산 정상이 나타난다. 이정표와 정상석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법한 봉우리다. 이제 하산이다. 불광산에서 삼각산(416.4m)을 거쳐 상대마을 주차장까지는 내리 급경사 내리막이다. 삼엄한 비탈이 한없이 이어진다. 아내가 하산 중에 무릎이 욱신거린다며 이상을 호소한다. 덩달아 필자도 무릎 인대에 통증이 느껴온다. 절뚝거리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길을 재촉한다. 

겨울산행은 언제나 시간과의 싸움이다. 다행히 삼각산 직전에 상대마을 하산 이정표가 반겨준다. 누군가 고맙게도 탈거된 이정표 널빤지를 끈으로 다시 묶어 놨다.

대운산 제2봉 직전에 나타난 으리으리한 석문. 이곳을 통과하면 하늘이 열리고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대운산 제2봉 직전에 나타난 으리으리한 석문. 이곳을 통과하면 하늘이 열리고 사방으로 조망이 트인다.

상대마을을 향해 원시림을 이룬 사면으로 내려선다. 온통 메마른 땅에 돌밭이다. 물이 마른 계곡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건너 박치골에 이르자 계곡이 훤해진다. 남부지방산림청의 계류보전사업으로 계곡을 널찍하게 정비해 놨다. 고리원자력본부에서 기증한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상대마을 주차장(제3공영주차장)까지는 3.4km. 울산수목원 길이다. 

날이 어두워져도 너른 흙길이라 걷기에 안심이다. 대운산의 자랑거리인 굴참나무 명품숲 구간을 통과해 내려선다. 하지만 계곡 대부분은 땅이 뒤집히고 콘크리트로 덮였으며 군데군데 데크와 평상이 놓여 있다. 한겨울이라 식물은 죽었거나 말라비틀어졌고, 황량한 빈 땅에는 식물 이름표만 달려 있다. 기존 수목 외 새로 조성한 어린 나무가 크려면 수십 년은 걸릴 듯하다. 원래 계곡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자연미가 아쉽기만 하다.

저녁 어스름이 조용히 깃들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평온하고 고요해진다. 오후 5시 30분. 어둠은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한다. 얼어붙은 계곡이 못내 수려해 내려가 보니 애기소다. 아주 먼 옛날에 어린 아이가 빠져죽었다는 곳이다. 빙판 위를 잠시 거닐다 나온다. 옛날에는 소의 물이 검푸르고 깊었을 것이다. 천국에 갔기를 빌어본다. 

산행길잡이

대도시 근교산인 대운산은 울산과 부산, 양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서 깊은 산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산세가 크고 계곡이 깊다. 하나의 산에 대운산, 상대봉, 불광산, 시명산, 삼각산 등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다. 게다가 대운산은 제1봉, 제2봉, 주봉으로 나뉜다. 이렇듯 큰 봉우리만 해도 얼추 10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봉우리가 많아 능선의 오르내림이 심하고 산행 거리가 길다. 또한 산자락에 대운산자연휴양림, 울산수목원,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다.

대운산大雲山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불광산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현재는 대운산이 주산으로 두 산이 마주보며 쌍봉을 이룬다. 이 산에는 673(신라 문무왕 13)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장안사가 있으며, 중국의 <해동고승전>에 그의 일화가 전해지는 척판암과 내원암이 있다. 척판암에는 원효의 사적비와 좌선대가 있다. 현재의 내원암 자리는 대원사라는 큰 절이 있던 터였다고 한다. 이렇듯 두 개의 큰 사찰을 거느리고 있던 까닭에 산 이름이 불광산이라 불리지 않았나 싶다.

산행은 주로 내원골과 내원암 왼쪽 능선으로 올라 주능선 종주 원점회귀로 이뤄진다. 그 외 등산로는 폐쇄해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입구에 서 있다. 하지만 대운산 정상을 지난 후 계곡에 자리한 울산수목원과 치유의 숲 쪽으로 하산하지 않고 능선 종주로 원점회귀하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실상 산행을 통제하지도 않으니 시간이 지체되거나 체력이 부족하면 계곡으로 곧장 하산하는 게 안전하다.

교통

서울-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영천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 온양IC. 나들목에서 대운산 들머리인 상대마을 주차장(제3공영주차장)까지 거리는 5.4km다. 울산수목원이나 국립 대운산 치유의 숲을 목적지로 삼는다.

숙식

대운산 들머리 온양읍 상대마을에 산여울(추어탕, 052-238-7422), 불광산 아래(장안읍)에 장안사 산장(오리백숙, 051-727-7788), 난로회담(전립한판, 0507-1496-8807)가 있다. 그 외 대운산 서쪽 들머리(양산시)인 대운산자연휴양림(055-379-8670) 쪽에 숙식할 곳이 많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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