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4월호
  • 654호

국립공원 정책 해부(1)

월간산
  • 입력 2003.03.13 13: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두대간 종주객들 모두 범법자로 몰아
국민의 기본권 침해하는 등산 억제 정책

이장오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국장
지난해 12월23일 일요일 새벽 3시경 대관령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오대산 진고개로 향하던 등산객 43명 전원에게 폭설주의보 상황에서 입산했다는 이유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1인당 50만 원씩 2,150만 원의 벌금 딱지를 물렸다.
2001년 1월7일 일요일 북한산이 입산 통제됐다. 바람 한 점 없이 포근한 이 날은 최저 영하 1℃, 15mm의 적설량을 보였다. 가족들이 함박눈이 소복히 쌓인 산을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당시 북한산(동부) 관리사무소장 ㅅ씨(현 공단 기획처장)는 “대설주의보 때문에 통제하라는 행정자치부 재해대책본부의 지시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부와 달리 이 날 서부관리사무소는 통제가 없었다. ㅅ씨의 해명은 입산금지를 합리화하려는 변명이란 것을 말해준다.

탐방객 예측조사에 등산 항목은 아예 없어
오대산에서 최고형의 벌금을 물렸다는 소식을 들은 25시산악회 이영길 회장은 “눈 내린 산에 입산한 게 그렇게 극악한 범죄행위로 볼 수 있을까? 공단의 처사는 횡포다”라고 분개했다.
오대산이나 북한산에서 벌어진 입산통제는 폭설 때문만이 아니라 등산을 억제하겠다는 정책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공단 이사장은 2001년 9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종주금지를 종주코스가 짧은 공원부터 시범시행해 본 다음 지리산 등 종주코스가 긴 산으로 확대해 나가겠다” 고 증언했다. 공단의 정책대로라면 종주산행은 앞으로 전면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백두대간 능선을 제대로 밟은 종주자들은 모두가 범법자다. 백두대간 곳곳이 휴식년제, 입산예약제, 비등산로 등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 미시령~마등령(91~2005), 대청봉~한계령(91~2005), 한계령~1003.6m봉~필례 횡단로(97~2005), 필례 횡단로~점봉산(97~2005), 오대산 두로봉~동대산(91~2002), 진고개~동대산(2003~2005), 지리산 큰고리봉~고기리(법정등산로 아님), 성삼재~종석대~코재(법정등산로 아님), 노고단 정상(91~2005) 등 3개 공원 9개 구간이다.
또한 야간산행이 불가피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대간종주는 야간산행으로 이미 범법행위다. 공단 직원들은 수시로 설악산 미시령, 마등령, 한계령과 점봉산  필례 횡단로, 곰배령, 오대산 진고개 등에서 기다리다가 벌금을 물리고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보통 2~4시간이면 오른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공단 이사장은 “정상 왕복은 당일로 가능하다. 당일 왕복으로 바꾸면 오염방지에 효과가 있다”라고 국감에서 증언했다. 등산 억제정책은 공단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나타난다. 공단은 지난해 4월6일부터 5월31일까지 55일간 홈페이지를 통해 ‘탐방수요 예측조사’ 여론조사(www.npa. or.kr/sechang_11.htm)를 실시했다. 설문을 보면 등산이란 용어는 아예 거론조차 없으며, 산책과 직원동행 등을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설문내용은 ‘(질문) 국립공원에서 하고 싶은 활동은? ①심신수양(휴식, 삼림욕, 산책) ②자연체험, 탐방프로그램 참가 ③직원동행 탐방 ④지역축제 참가’다. 산장(대피소)도 제외시키고 있다. ‘(질문)숙박은 어떤 시설을 이용하고 싶은가? ①공원 밖 콘도 ②공원 내 호텔 ③야영장 ④가족용 통나무집 ⑤민박 ⑥친지집’이다. 공단은 당일등산만 허용하면 산속의 야영장과 산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다.
그동안 공단은 야영장과 대피소를 폐쇄시켜왔다. 폐쇄한 야영장은 지리산 노고단, 월악산 중선암 등 36개소다. 게다가 지리산 불일폭포 등 2개소도 폐쇄할 계획이다(표1 참조). 철거한 대피소는 월출산 바람폭포 등 6동이며, 설악산 희운각대피소 등 11동을 더 철거시킬 계획이다(표2 참조).
야영장이나 대피소는 등산숙박과 긴급피난 등의 요건상 위치가 중요하지 이용객수가 많다고 필요성이 크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설악산 서북릉 귀떼기청봉 부근에도 대피소 1동쯤 있어야할 위치인데도 공단은 이를 무시해 버렸다.
한계령에서 오르면 서북릉에 닿는다. 이 능선에 대피소 공원계획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단은 편법을 써가며 현재의 중청산장 위치로 공원계획을 변경시켰는데, 서북릉과 중청봉은 같은 자연보존지구라는 이유를 내걸어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이러한 공단의 논리를 적용한다면 시설물 위치를 임의대로 옮겨 신축할 수 있다.
이러한 편법을 소백산에도 적용했다. 소백산 북동릉의 국망봉은 대피소 1동쯤 있을 만한 곳이며, 본래 이 곳에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대피소 공원계획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단은 중청산장처럼 같은 자연보존지구라는 핑계로 국망봉에서 비로봉 주목관리소 위치로 공원계획을 변경시켰다. 그래서 2층 건물을 신축하고 관리할 직원을 상주시키려했으나 부지 소유주인 단양군청의 산장 신축 거부로 이루지 못했다.
공단 이사장은 국회 국감장에서 “당일 등산만을 하게 되면 산장이 필요하지 않다. 단계적으로 산장을 줄여나가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축소방침과는 달리 공단은 왜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에 산장을 신축했으며, 소백산에도 신축을 시도했을까? 그것은 등산객 숙박 이유도 있지만 공원관리 편의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설악산 중청산장, 지리산 세석산장, 노고단산장 등에는 분소 사무소를 두고 관리하고 있다.
공단의 등산무시 정책에 동조하고 나선 단체가 있다. 16개 환경, 사회 등의 단체들 모임인 국립공원제도개선시민위원회는 2001년 11월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가진  ‘100대 개혁의제 작성 100인 워크샵’에서 정상등산을 ‘반자연적 비문화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등산을 억제해야 한다’는 항목을 개혁의제로 채택했다. 또한 ‘국립공원을 등산장소만으로 인식하는 탐방객 등의 문제가 국립공원의 존립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개선시민위원회는 서울시산악연맹에 보낸 공문(2002.6.24)에서 ‘국립공원은 휴식과 자연생태체험, 역사문화체험을 위해 오는 손님일 뿐이다’라며 등산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정상 등산을 반문화적 행위로
그렇다면 공단이나 개선시민위원회는 왜 종주산행과 등산을 막으려는 것일까? 공단 이사장은 국감 증언에서 “아직도 먹고 마시고 노는 유흥장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개선시민위원회는 2000년 9월27일 발표한 개선시민위원회 발족문에서 “국립공원을 유흥장소로만 인식하는 탐방객 등으로 인해 국립공원제도가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등산객들이 먹고 마시고 놀며 자연을 훼손, 오염시키고 쓰레기를 무단방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지난 날과 달리 국민들 의식수준이 상당히 향상됐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시민연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조사장소는 덕유산 안성골(2001. 8.16), 설악산 오색(2001.10.25), 북한산 대동문(2001.10.27)이다.
<문1 귀하는 국립공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③먹고 마시고 떠들며 노는 유원지는 0.1%에 그치고 있다(표3 참조). <문2 귀하는 등산객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질문에 ⑤먹고 마시고 놀며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다는 0%, ⑥반자연적 비문화적 인간이다는 0.1%다(표4 참조). 
 여론조사가 이러한데도 공단은 등산을 어떠한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일까? 공단 이사장은 2001년 1월 “먹고 마시는 그릇된 인식을 바꿔 생태가이드제(직원동행 탐방)를 도입하여 자연체험의 장으로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공단은 공원 입구에서 등산객들을 기다리게 하다가 일정 인원을 채우면 직원이 동행하여 안내하면서 음주가무, 쓰레기 무단방치, 샛길산행을 감시할 수 있는 방식을 거론해 왔는데 이사장 발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자유권과 행복추구권 침해
지리산 노고단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생태탐방객들.
지리산 노고단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생태탐방객들.
 가이드제가 드디어 등장했다. 지리산 노고단에 휴식년제에 이어 지난해부터 입산예약제를 시행, 1일 4회 각 100명씩만 접수하고 있으며 인공으로 심은 야생화를 해설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참가신청서에 주민등록번호와 학력을 기재, 서명한 후 개개인의 취향이나 산행일정 등은 전혀 무시된 채 안내자를 따라가며 안내자의 설명을 좋든 싫든 들어야 한다. 게다가 노고단 등산로는 철골조 위에 나무판자를 씌워놓았기 때문에 하루 수천 명이 통과해도 등산로 훼손 염려가 없는데도 인원과 시간을 제한하고 있으며, 비바람의 변화가 심한 노고단인데도 비가 오면 행사는 취소된다. 예약시간에 늦어도 입산할 수 없다. 결국 노고단만을 찾으려해도 먼 거리에서는 하루 이상의 일정을 할애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대한산악연맹 류재호 이사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권과 행복추구권 침해다.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재하고 안내원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게 한다는 것은 금강산 관광방식이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고 우려했다.
공단의 인터넷 여론조사에도 ‘직원동행 탐방’ 항목을 넣는 등 직원동행을 강조하고 있다. 직원동행 탐방방식이 시행된다면 임의산행은 금지되고 예약을 하거나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팀이 이뤄지면 입산하고 등하산방식도 공단 직원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70~90년대 초는 정부가 주도하여 자연보호운동을 휴지줍기로 몰이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대규모 자연훼손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근래에는 전국적으로 생태여행이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공단은 인공화단에 야생화를 심고 인공 새집을 매달아 이러한 유행을 좇아 생태탐방으로 바람몰이 하고 있다. 즉 공단은 ‘휴지줍기’에 이어 ‘휴식년제’를 휘두르더니 이제는 ‘직원동행 방식의 생태탐방’으로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공단은 그동안 등산로 훼손을 방치하다시피 하다가 여론이 일자 최근 들어 인공계단을 마구잡이식으로 설치하여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공원관리에 불편을 주는 종주 및 등산 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생태탐방 행사장을 벗어난 구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자연훼손 사실을 감춰가며 자연과 등산객의 자유권을 무참히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 산장계획을 서북릉에서 지금의 중청봉으로 편법으로 위치를 변경시켰음을 보여주는 문서(자료제공=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노고단에서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오고 있는 생태탐방객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