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정책 해부 3

[402호] 2003.04
입력 2003.04.17 10:52 | 수정 2003.04.17 10:52

등산 정신과 철학 외면하는 등산 억제 정책
입산예약제와 가이드제의 숨은 의도

이장오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국장

산악훈련 베이스캠프를 산속 텐트가 아닌 여관에 설치하고 매일 아침마다 산속으로 나들이하고 있다. 국립공원에선 야영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산악연맹 소속 산악부원들은 지난 2월 1주일간의 동계훈련을 설악산에서 실시했다. 그런데 산악훈련인데도 불구하고 여관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매일 산속으로 나들이를 해야 했다.

설악동 B지구 국제여관에서 토왕폭까지 드나들어야 했고, 비선대산장에 배낭을 풀고 잦은바윗골 등으로 나들이를 했다. 등반훈련인지 나들이훈련인지 분간키 어려운 등반이 산에서 벌어진 것이다. 대학산련 김윤만 회장은 “정상적인 등반이 이뤄지지 못했다. 베이스캠프와 산속 야영생활도 중요한 등반활동인데도 할 수 없이 여관에 묵어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야영뿐만 아니라 산행하다가 공룡릉 등에서 비박을 해왔다는 산악인은 비박이 불법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허가 없이 종주나 야영, 빙폭, 암벽등반 등을 하다 공원관리소 직원에게 들키면 봐달라고 사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버너·텐트·라이터 휴대금지로 종주산행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야영을 금지하는 이유를 쓰레기 무단방치와 자연훼손에 두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산악연맹 일반등반경기 이사 강성태씨는 “일정한 구역을 지정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여 야영토록 할 수 있는데도 기존 야영장마저 철거시키고 있다”며 공원정책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청와대 비서관 지시로 급속 시행

지난해 11월 환경부 주최 관리공단 주관으로 국토 대청결 운동이 ‘쓰레기도 없는’ 도봉산 등산로에서 실시됐다. 대도시 근교산에선 쓰레기를 찾아보려면 일부러 숨은 곳을 뒤져야 한다. 산에서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환경의식이 높아져 있다. 공단 이사장까지 참가한 이러한 생색내기 전시성 행사를 위해 산으로 600명을 끌어들인 관리공단이 적정인원 초과로 등산로가 패이고 있다며 재작년부터 입산예약제 코스에서 탐방인원을 450명으로 강제 제한하고 있다.

적정인원 입산으로 자연훼손을 방지하겠다는 입산예약제는 최근에 거론된 것은 아니다. 이미 90년대 초부터 시행을 거론해왔다. 93년 9월 덕유산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국립공원협회(현 자연공원협회) 주최의 자연공원 세미나에서 내무부 지역경제국장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정책의 재정립 방향’이란 주제발표에서 “입산예약제를 도입하여 탐방객 수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입산예약제와 가이드제는 관리공단이 자체적으로 시행 시기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2001년 1월18일 청와대 비서관의 요구에 관리공단이 즉각 시행을 결정, 15일 후인 2월2일 도입계획을 환경부에 보고했고, 이어 3일 후인 2월5일 환경부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어 2월14일에는 보도자료를 받은 신문·방송들이 두 제도가 시행된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비서관의 요구가 있은 지 27일만의 일이다. 입산예약제와 가이드제 자체도 문제지만, 청와대의 요구에 일사천리로 급속 시행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적정인원 산정과정과 그 후 변화를 보자. 적정인원 산정은 2000년 2월 서울시립대 도시과학연구원(원장 신범식 교수)이 작성한 용역보고서 ‘국립공원별 특성에 따른 공원 관리방안 연구’(용역비 1억7천만 원)의 ‘자연생태계의 적정 수용능력 산정’에 따른 것이라고 공단은 밝혔다. 공단은 이 보고서를 공단 자체용이므로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고 했었다.


지난해 10월 노고단 탐방을 예약하려고 노고단 고개에 줄선 탐방객들. 인원 초과로 이 날 수백 명이 되돌아서야 했다.
지난해 10월 노고단 탐방을 예약하려고 노고단 고개에 줄선 탐방객들. 인원 초과로 이 날 수백 명이 되돌아서야 했다.
입산예약제 시행 제1차년도(2001년)에는 등산객이 많은 계절을 선택했는데, 한계령이 2001년 10월 한 달간, 노고단이 8월~10월 3개월간 시행됐고, 이 해 12월 ‘국립공원 입산예약제 및 가이드제 제1차 시범시행 결과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적정인원 산출은 ‘국립공원별 특성에 따른 공원 관리방안 연구’에 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한계령 등산로 폭은 2.2m로서 환경피해도가 5~6등급으로 조사됐으므로 입산객 1일 최대 수용력은 450명이라는 것이다. 시행 전해인 2000년 10월 한계령은 입산객이 450명을 초과한 일수는 13일로, 그동안 초과인원은 7,784명이다. 이 정도의 인원이 등산했다 해서 자연훼손이 심해지고 7천 명을 줄였다 해서 자연훼손을 최소화시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산은 벌써 없어졌을 것이니까.

대청봉을 오르는 이웃 코스는 오색 코스다. 시행 전해인 2000년도 10월 한계령과 오색 입산객수는 총 55,155명이다. 한계령 17,568명, 오색 37,587명이다. 장수대에서 대청봉으로 가는 인원은 극히 적으므로 이쪽 입산객수는 무시하자. 시행 첫해인 2001년도 10월 2개 코스 입산객수는 총 47,506명으로 한계령 7,832명, 오색 39,674명이다. 2000년도와 2001년도를 비교해 보면, 한계령 입산객수는 9,736명이 줄어들었다. 반면 이웃 코스인 오색 입산객수는 2,060명이 늘었다. 이는 한계령으로 입산하려던 등산객들이 이웃한 오색이나 장수대, 그리고 다른 코스로 입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오색코스 등 한계령보다 등산로 훼손이 심한 코스에 훼손이 가중됐다는 것을 추정케 한다.

현재 시행중인 입산예약제는 자연휴식년제처럼 훼손 심한 코스로 등산객들을 내몰고 있는 제도다. 국민을 실험대상에 올려놓았는데도 한 마디로 시행효과가 없는 실패한 제도인 것이다. 한계령과 노고단의 입산예약제를 시행하는데 소요된 2001년도의 예산만도 2천2백만 원이다.

강제주입식 생태교육장 노고단

지리산 노고단의 경우 등산로 바닥을 데크로 깔아 놓았기 때문에 훼손 염려는 없다. 공단은 입산예약자를 그룹으로 묶어 가이드를 붙여 자연훼손을 방지하고 자연학습을 겸하게 한다는 방식을 거론해 왔다. 노고단 입산예약제가 바로 그렇다. 그런데 입산객들의 연령층은 유치원생부터 80세 노인까지 있다. 유치원생도 있고 박사학위 가진 이도 있다. 게다가 노고단을 찾는 목적이 각양각색이다.

그러한데도 공단은 탐방객들에게 일률적으로 주입식 생태교육을 시키고 있다. ‘몇 시에 생태가이드를 한다’라는 안내판을 설치하곤, 하릴없이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 이러한 강제가 민주국가의 자연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원하는 탐방객만 생태가이드에 참가케 하고, 시간에 쫓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항시 개방해도 좋은데도 말이다.

입산예약제를 찬동하는 단체가 있다. 40억 원 예산의 북한산 국립공원 인공계단 설치 등 등산로 정비공사로 시끄럽던 지난 2000년 6월 환경단체들이 국립공원제도개선시민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지금 그 40억 공사를 찬성한 사람과 공사 반대운동을 기피했던 사람들도 이 시민위원회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개선시민위원회는 ‘국립공원 100대 개혁의제 작성 100인 워크샵’에서 ‘등산을 억제해야 한다’, ‘입산예약제·공원총량제 등 이용자 규제 관리기술을 연구·시행해야 한다’는 의제를 채택했다. 또한 정상에 오르는 등산을 ‘반자연·비문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단이 시행중인 입산예약제나 가이드제도도 개선시민위원회의 주장처럼 단순한 인원 제한이 아니라 등산 통제수단이라 보아야 한다. 이미 공단 이사장이 종주산행을 금지시켜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고, 야영·취사·라이터 휴대금지, 야영장·대피소 철거 등 일련의 조치가 모두 등산 억제와 관련이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02년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는 등산 항목을 아예 두지 않았는데, 2001년 현장여론조사에선 어떠한가?

(문1) 국립공원 탐방목적은? ①문화재 관람·사찰 방문 ②등산을 통한 체력단련 ③단순관광 및 놀이 ④자연관찰·학습 및 휴식 ⑤해수욕 및 해상레저활동 ⑥기타

(문4) 국립공원의 기능은? ①야생동물 서식처로서 이용이 제한되어야 하는 곳 ②등산을 통한 국민들의 체력단련의 장 ③자연속의 휴식처이자 자연체험·학습의 장 ④유원지 및 레저활동을 위한 관광휴양지 ⑤무응답

두 문항에서 등산을 ‘체력단련’ 정도로 여기고 있는 사고방식이 국립공원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양대산악회 김정원씨는 “등산은 몸과 마음으로 느껴야 알 수 있으며, 체력단련은 주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등산은 개척정신과 강한 정신력, 그리고 정직한 마음을 키워 준다. 정신력이 튼튼한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도 등산을 국가정책으로 권장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설악산 설악동을 예로 들어보자. 호텔이 제일 안쪽에 있고, 여관촌이 그 다음, 민박촌이 그 아래, 그리고나서야 야영장이 있다. 호텔 투숙객과 야영장 이용객의 성격은 곧바로 비교된다. 한쪽은 자가용으로 얼마든지 이동이 편한 사람들이고, 한쪽은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 배치순서는 당연히 반대로 돼 있어야 한다.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자연공원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싶다.

예전에는 신흥사와 비선대 사이에 야영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없는 사람들, 주로 학생 산악부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현재 대피소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적절한 야영장을 만들고 야영장 예약제를 도입하면 된다. 등산을 즐길 수 있는-이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엄연한 국민의 권리다-적절한 시설이나 공간을 적정하게 설치해 놓은 다음 단속이고 뭐고 해야할 것이다. 

산악인들은 이제 관리공단에게 봐달라고 굽실거릴 게 아니라 적절한 야영공간과 등산로를 등산인들에게 다시 돌려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엄홍길과 박영석이 세계적인 산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히말라야산맥에서 훈련했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우리나라 산을 통해 모험심과 탐험정신을 배양했기 때문이다.

야영을 통해 얻는 자연과의 절실한 교감을 우리나라에선 산 이외 달리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야영장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쓰레기를 남긴다면 그것을 법으로 제약하면 되는 것이지, 야영장 자체를 없애는 것은 국립공원을 앉아서 관리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관리공단이나 산림청은 무슨 권한으로 국민에게서 정서함양의 기회를 박탈하는가. 무슨 근거로 자연과 친화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죄악시하는가. 그 유명한 미국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중심부에도 야영장이 마련돼 있다.

등산을 한낱 건강 챙기기나 자연탐승 정도로 비하하면서 등산인을 자연 훼손 제1 원인제공자로 모는 관리공단과, 등산을 ‘반자연 비문화적인 행위’로 간주하는 일부 오만한 환경론자들에게 등산의 정신과 철학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가르쳐야할 시점에 등산인들은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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