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정책 해부 2

[401호] 2003.03
입력 2003.04.24 13:47 | 수정 2003.04.24 13:47

시행 12년이 지나도록 효과 입증할 조사보고서 하나 못내 관리편의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자연휴식년제

수십 년을 오르내리던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철조망을 쳐놓고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라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이 입산을 통제하고 심지어 벌금을 물리기도 한다. 다른 등산로 입구로 이동하려면 몇 시간 걸려 시외버스나 군내버스를 갈아타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그래서 등산을 아예 포기하는 팀도 많다.

도대체 자연휴식년제가 어떤 제도이길래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권을 이렇게 유린하고 있는 것일까? 시행한 지 3년씩 4주기, 즉 1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자연휴식년제의 실체를 검증한다는 것이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그러나 짚어 봐야할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시행 13년째에 접어들었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휴식년제의 효과를 입증할 만한 보고서를 현재까지 단 한 권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자연휴식년제가 국립공원을 살리고 있다는 홍보에 바쁠 뿐이고, 덩달아 신문도 방송도 국민도 산악계도 온통 동조 일색이다.

방형구 없이 조사한 엉터리 보고서

관리공단은 92년 9월 112쪽 분량의 최초 조사보고서인 「국립공원 자연휴식년제 조사」를 내놓았다. 한국경제사회연구원에게 외부용역으로 맡겨 작성한 이 보고서는 1차 조사를 91년 10월에, 2차 조사를 92년 4월에 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두 조사시기가 식물들이 자랄 리 없는 겨울을 사이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회복여부는 조사하지 못했고, 훼손 등산로 폭의 길이 정도를 적고 있을 뿐이다.

이어 휴식년제 제3기가 끝난 해인 1999년 12월 322쪽 분량의 「국립공원 자연휴식년제 구간 정밀조사」라는 조사보고서를 냈다. 관리공단 소속 자연생태연구소팀이 작성했는데, 생물자원 항목에서 식물상, 포유동물, 조류, 육상곤충을 기록하고 있다. 어느 정도 정밀하게(?) 조사했는가를 보자.

보고서에는 식물상 조사에 조사원 3명을 투입해 총 66개의 방형구를 설치하며 조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방형구 설치란 일정 구역의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줄을 쳐서 그 안의 식물상을 조사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다시 그 방형구 안을 조사해 식물상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조사방법을 말한다.

총괄조사원 ㅇ씨는 방형구를 설치해 조사했다고 말했지만, 조사원 ㄱ씨(토목과 졸)는 방형구를 설치한 곳도 있고 설치 없이 조사하기도 했다고 말해 서로 말이 틀린다. 그런데 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확인해 보았더니 “99년 당시 관리공단에서 사람이 내려와 조사했는데 방형구를 설치하지 않고 걸어가면서 조사했다.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물론 방형구가 남아 있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로 보아 방형구를 설치했다는 주장은 거짓이란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또한 하루에 3개 코스나 10개 지점을 조사한 경우도 있어서 무리하게, 또는 건성으로 조사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조사원 ㄱ씨는 “단독으로 조사하지 않고 ㅇ씨 등과 같이 움직였다”고 말해, 그렇지 않아도 조사원이 모자라는데 함께 돌아다니니 더욱 부실하게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리산 반야봉~쟁기소, 반야봉~심원, 세석평전 등 3개 코스 7개 지점을 하루만에 조사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반야봉에서 세석평전까지 종주할 경우 보통 8~9시간이 걸린다. 걷기도 바쁜데 조사할 시간이 있었겠는가. 속리산 장각동~비로봉과 쌍곡폭포~살구나무골 등 2개 코스 10개소를 역시 하루만에 조사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계룡산 좌암교~도덕봉 코스 조사일자는 달력에도 없는 4월31일이었다.

보고서는 식생 조사결과 80과 326종 출현이라고 보고하고 있지만, 이는 사전 조사자료가 없기 때문에 변화를 비교할 수 없고, 게다가 방형구가 남아있지 않아 다음 조사 때조차 비교자료로서 가치를 상실해 자연휴식년제의 효과를 검증할 수 없는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포유류는 등산객들의 보통 보행속도인 시속 2km로 걸으면서 식흔, 서식굴, 배설물까지 직접 관찰했다고 한다. 그래서 설악산 권금성~화채봉~대청봉의 8km 구간에선 4시간 동안 청설모 2마리를 관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연휴식년제 시행 훨씬 전부터 묶어 놓은 곳에서 겨우 청설모 2마리를 관찰했다는 것은 동물생태계가 훼손됐거나, 아니면 조사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성으로 조사한 ‘정밀조사 보고서’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 구간 9km에선 다람쥐 1마리와 청설모 2마리를, 점봉산 주전계곡에선 다람쥐 2마리와 청설모 2마리를 관찰했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코스별로 다람쥐 청설모 멧돼지 등 몇 마리를 관찰한 것뿐인데도 보고서는 결론 항목에서 ‘포유류의 개체군 유지에 휴식년제는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미시령~마등령 구간에서는 너구리 2마리, 족제비 1마리, 산양 1마리, 다람쥐 1마리, 청설모 1마리를 며칠 잠복 관찰이 아니라 보통 속도로 걸으면서 관찰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이 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이 보고서는 연구원 ㅊ씨(조류생태학 박사) 1명이 포유류와 조류를 모두 조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생태조사는 1일 1개 코스 조사도 쉽지 않다. 그런데 하루에 2개 산을 조사한 경우들도 있다. 99년 11월9일 1일 동안 설악산 권금성~대청봉, 미시령~마등령, 백담사~저항령~신흥사와 점봉산 한계령, 주전골 등 2개산 5개 코스에서 한 사람이 포유류와 조류를 모두 조사했다는 것이다.

또한 8월4일에는 월출산 무위사~갈대밭(조류), 내장산 원적암~망해봉(조류) 코스를 조사했으며, 9월2일에는 오대산 비로봉~호령봉(포유류, 조류)과 내장산 망해봉~원적암(포유류) 코스를 조사했다.

육상곤충은 연구원 ㄱ씨(곤충학 전공)가 맡았는데, 기존자료가 없어서 휴식년제의 효과를 검증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음 조사 때 비교자료로서 가치도 별로 없다. 그리고 조사대상은 12개 국립공원인데도 식물상 7개 공원, 포유류 5개 공원, 조류 5개 공원의 조사기록표만 수록되어 있다. 이러고도 ‘정밀조사’라고 보고서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위의 두 권의 보고서 외에도 휴식년제 보고서는 또 있다. 1997년 「설악산·북한산 국립공원 자연휴식년제구간 기초생태조사」, 「지리산국립공원 자연휴식년제 구간 기초생태조사」, 98년 「국립공원 생태계 모니터링 종합보고서」, 99년 「국립공원 생태계 모니터링 종합보고서」, 2000년 「국립공원 생태계 모니터링 종합보고서」등이 나왔으나 자연휴식년제의 성과를 입증한 보고서는 아니다.

관리공단은 자연휴식년제 조사보고서들을 작성하면서 예산과 인력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서울시산악연맹 기획이사 임홍순씨는 “국립공원 모니터링 시에는 이론 중심의 학자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해 자연과 산을 제대로 아는 산악단체 등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여 실용적인 보고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3년 동안 그대로 두면 회복된다’는 논리

관리공단의 휴식년제 도입 취지는 ‘3년 동안 그대로 두면 회복된다’는 논리인 것 같다. 그래서 휴식년제 기간을 마치고 개방했을 때 등산객을 맞을 준비를 해야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해 두고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며 또다시 틀어막기를 반복하고 있다.

생태·지질학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패인 등산로를 살펴보면 이 논리의 허구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깊게 패인 등산로와 드러난 나무뿌리 위에 흙이 찰떡처럼 붙어 메우기 전에는 풀씨가 싹이 튼다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등산로는 고지대요 숲을 통과하기 때문에 일조량이 적다. 그래서인지 떨어진 풀씨가 겨우 발아되어도 여리게 자란다. 개방했을 때 여린 풀이 발길에 쉽게 훼손될 것은 뻔한 이치다.

북한산 보현봉 사자능선 사진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시행 첫해인 2000년 5월 하순에 촬영한 사진과 3회의 여름이 지난 2002년 9월14일에 촬영한 사진을 비교해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사진에는 등산로 바닥에 새로 생겨난 풀을 찾아보기 힘들다.

휴식년제의 시행취지는 이러해야 한다. 즉 훼손이 심한 등산로를 3년동안 막아 더 이상의 훼손을 중지시킴과 동시에 훼손 등산로를 복구하는 것이다. 복구대책에는 재개방시에 더 이상의 훼손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대책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런데 관리공단은 훼손이 심한 코스를 개방해둔 채 주로 훼손이 덜한, 즉 외진 코스들을 휴식년제로 막아왔다. 왜일까. 관리가 불편하고 수익보다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등산객이 별로 찾지 않는 곳에 매표소를 두려면 그만큼 인건비가 더 들기 마련이다.

정작 휴식이 필요한 구간은 열어 놓고 등산객들을 불러들이니 등산로 훼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예산이 없어서 막아 놓았다고 하면 이해해 줄 수도 있다. 자연휴식년제를 내세워 등산로를 막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계곡과 군락지는 이미 출입금지

계곡휴식년제와 식물군락지 휴식년제를 살펴 보자. 계곡휴식년제는 북한산 6개소, 지리산 1개소, 내장산 1개소, 월악산 1개소 등 4개 공원 9개소에서 실시하고 있다. 식물군락지 휴식년제는 설악산 대청봉, 소백산 비로봉 주목군락지, 한려해상 학동 동백군락지, 지리산 노고단 등 6개 공원 12개소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샛길 산행금지로 계곡 출입은 금지되어 있고, 군락지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이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등산로 양편에는 상당 길이의 철조망, 철망, 철책, 목책, 밧줄 등을 설치해 등산로를 벗어나지 못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기면 벌금 50만원이란 안내판도 곳곳에 서 있다.

이렇게 샛길산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등산로를 벗어난 구역을 별도로 지정해서 관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휴식년제 구역으로까지 지정했을까? 휴식년제의 발상과 채택 과정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관리공단은 독일의 임업에서 힌트를 얻었다(이 제도를 제안한 직원이 임업과 출신이다). 묘목을 일정기간 키우면 목재용으로 쓸 수 있을 만큼 자란다는 데 착안해 신중한 검토도 없이 받아들여 그것을 변형해 엉뚱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등산로가 훼손되고 있다는 여론에 대한 방패막이용으로 휴식년제를 도입한 것이다.

독일은 토양이 기름지고 비가 많이 내려 목재용 묘목을 심은 지 20~30년이면 베어낸다. 그러나 300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닌 3년 동안 그대로 두면 식물이 자라 등산로가 회복된다는 허무맹랑한 논리의 휴식년제를 내세워 멀쩡한 등산로를 막고 건전한 등산을 불법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훼손 지역을 진정으로 복구하려 한다면 3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을 것이 아니라 복구될 때까지 기간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는 주 등산로라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등산로를 정비해야할 일이지, 휴식년제 운운하며 본질을 흐릴 것이 못된다. 휴식년제를 전면 재검토해 백지화하거나 수정해 등산객에게 권리를 되돌려줘야 한다.


이장오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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